<-- 파티 마무리 -->
“빨아.”
“으, 응. 알겠다는.”
담배를 사이에 두고, 지현과 민우의 숨결이 서로의 폐를 오갔다. 단지 담뱃불을 붙여주는 상황임에도,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후으읍 -
파사사삭.
민우가 숨을 들이키자 담배에 불이 붙었다.
“뱉어.”
“푸하…!”
정체 모를 연기가 민우의 폐를 돌아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담배라기엔 생각보다 단 맛. 제조는 많이 했으나, 정작 한 번도 피워보지 않은 까트였다.
덤으로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 흥분제로 쓰이는 만드라고라 원액까지 첨부 된 까트 말이다.
“맛있다.”
민우는 이후 순식간에 담배를 태웠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담배가…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나?’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지현이 예뻐 보이는 건 왜일까?
마치 앙칼진 퓨마 같아 쓰다듬고 싶어졌다.
술과 까트, 만드라고라로 흐물거리는 의식은 행동 필터를 몇 겹이나 날려버렸고, 이에 따라 민우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야, 야. 너 뭐하는 거야?”
지현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부드럽다.”
“뭐, 뭐?”
너무 오래간만에 칭찬을 들었기 때문일까?
지현은 기분이 묘해졌다. 거기다 술기운까지 겹쳐지니, 묘하게 민우가 호감 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뭐래, 미친놈이….”
지현은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머리는 민우가 쓰다듬게끔 내버려 뒀다.
민우는 지현이 저항하지 않자 용기가 생겼는지, 그 다음으론 손을 붙잡았다.
덥석!
화악.
지현은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는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부, 부드럽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지훈은 전혀 행복해 보이질 않았다.
지훈이 그대로 민우의 옷을 집고 지현에게서 떼어냈다.
“어, 억!?”
“헐?”
지현과 민우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너 뭐하냐?”
민우는 놀란 사슴마냥 동공을 부풀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기분 좋았던 까트와 술기운까지 모조리 날아갈 정도였다.
“어, 어… 저… 그게….”
머릿속에 하얘지는 민우였다.
뭔가 변명을 해야 했음을 알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보틀샷’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민우가 내심 ‘그래도 샷건은 안 맞으니, 죽지는 않겠구나.’ 하고 미련을 정리하려는 찰나….
“내가 손 차갑다고 잡아달라고 했어!”
갑자기 지현이 끼어들었다. 여전히 볼이 붉었다.
“뭐?”
어이없는 말에 지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치료 받고 나서, 체온이 좀 떨어졌나…. 갑자기 으슬으슬 하더라. 그러니까 민우 씨가 잡아 준 거라고.”
민우가 아니라, 민우 씨.
지현이 민우를 남자로 인식했다는 증거였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스킨십 이후 갑자기 성적인 긴장감이 팍 올라서 민우가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지현이었다.
“그래? 얘가 이상한 거 안 했어?”
“전혀. 내가 부탁한 거라니까?”
지훈은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 것을 느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단지 민우에게 다가가서 작게 속삭였을 뿐이었다.
- 승호 봤지? 샷건 맞기 싫으면 내 동생 건들지 마라.
미국이냐며 비웃은 게 하루도 안 됐거늘, 똑같은 상황에 처하니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지훈이었다.
- 네, 넵!
민우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밌게들 놀아.”
지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이후 별다른 탈 없이 파티가 끝났다.
어느 순간부터 커플(?)끼리 모여 얘기하는 형식이 됐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먼저 갈게. 다들 재밌게 놀다 가.
제일 빠져나간 건 칼콘과 톨퐁이었다. 둘은 술과 고기를 만족할 때 까지 먹고는, 9시 쯤 집에 갔다.
“저도 가볼게요.”
그 다음으로는 민우가 이탈했다. 지현이 묘하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슬슬 새벽이 가까워질 시간.
시연을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물었다.
“너는 언제 갈 거야?”
“음… 자기랑 밤새 같이 있어도 되긴 하는데….”
시연은 은근 슬쩍 유혹의 말을 꺼냈지만, 지훈이 쳐냈다.
“집에 가. 동구는 치안 안 좋다.”
“알겠어….”
집에 보내려고 하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차였다.
“나 그럼 대리운전 불러서 갈게.”
“무슨 소리야, 대리운전?”
여기는 세드였다.
차가 귀하기도 하거니와, 다들 취할 때 까지 먹지 않고 일찍 귀가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대리운전 수요도 없었으니, 공급이 있을 리 없었다.
“택시 부를게, 기다려.”
“알겠어.”
택시는 몇 분 정도 지나자 도착했다.
이에 지훈은 시연과 같이 올라탔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싶은 염려에서였다.
“걱정돼서 그래?”
“아니. 그냥 술이나 깰 겸 서구나 다녀올까 싶어서.”
물론 솔직하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시연은 지훈의 그런 속마음을 알고, 취한 척 지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좋다….”
“뭐가?”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
자기도 모르는 사이 미소가 지어졌다.
“맞다. 근데 자기 차 없어?”
“유지비 많이 나가서 안 샀어. 헌팅 나갈 때 삑 하면 부서지니까 아예 렌트만 하고 있다.”
“흐응….”
차가 없다는 말에 시연이 얼굴을 찌푸렸다.
“남자는 차가 있어야 되는데….”
“왜, 그래서 싫어?”
택시 안에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응. 아무리 생각해봐도, 차 없는 남자는 별로야.”
“그럼 차 있는 남자 만나던가.”
지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야겠다.”
“뭐?”
이상한 말을 하기에 혼 좀 내줄까 싶어 휙 밀어냈는데, 긍정이 돌아오자 지훈은 적잖이 당황했다.
“차 있는 남자 만나야겠다구.”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니, 시연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왜, 싫어?”
싫기 보단 어이가 없었다.
차가 없다는 게 이별 사유라니 뜬금없지 않은가?
“됐다.”
지훈이 택시를 세워 내리려는 순간, 시연이 지훈의 손에 뭔가를 쥐어 줬다.
“너 뭐하냐?”
벤츠 열쇠였다.
“말했잖아. 차 있는 남자 만난다고.”
급전개에 머리가 굳어 있자니 시연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옷에 비비크림이 묻었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이제부턴 차 없는 남자 말고, 차 있는 남자 만나려고.”
가지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지훈은 무시 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당장 시연을 떼어냈다.
“필요 없다.”
‘남자 자존심이 있지. 기둥서방도 아니고 무슨….’
시연이 움츠러들었다.
“화났어?”
“조용히 해.”
“나는 그냥….”
시연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뱉곤 말을 이었다.
“자기한테 차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어…. 헌터가 차 없으면 불편하다고 그래서….”
시연이 풀이 죽었는지 자기 무릎만 쳐다봤다.
“미안해…. 뜬금없이 준다고 그러면 안 받는다고 할까봐, 놀라게 해주려고 차 있는 남자 만난다고 한 건데…. 절대로 이상한 뜻 같은 거 없었어….”
시연이 지훈을 쳐다봤다.
울먹거리는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워낙 거래관계에 익숙해져서, 엄청나게 비싼 물건을 그냥 받으면 마음이 불편한 지훈이었다.
하지만 시연이 ‘그냥 받으면 안 돼?’ 하며 울먹거리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거렸다.
‘젠장.’
과연 여자 이기는 남자 없다고, 지훈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받아 줄 거야?”
“대신 김 기사 마냥 출퇴근 할 때 마다 부르지나 마라.”
“응!”
시연이 기쁜 듯 지훈을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지훈의 차는 사뭇 많은 남성들이 원하는 드림카, 벤츠로 정해졌다.
☆ ☆ ☆
지훈은 시연을 데려다 준 뒤, 아파트 단지에서 담배 한 피 피고 다시 돌아왔다.
☆ ☆ ☆
집에 돌아오니 지현이 자지 않고 기다렸다.
“왔어?”
“어. 안자고 뭐해?”
“그냥, 잠이 안 와서.”
지훈 역시 최근 악몽을 꿔서 잠자리가 뒤숭숭한 까닭에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대화 없이 TV소리만 듣고 있자니 지현이 말했다.
“있잖아.”
“뭐.”
“민우 걔 뭐하는 사람이야?”
평소 민우가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지훈이었다.
그렇기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므로,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식물학자였어. 지금은 나랑 같이 헌팅 다닌다.”
“그럼 위험한 일도 많이 하겠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위험한 일, 전투는 칼콘과 지훈이 다 했다. 굳이 따지자면 민우는 후방지원 정도일까?
그래도 헌팅을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면, 위험했기에 고개만 끄덕여 대충 긍정했다.
‘찌질하게 생겼는데 의외네….’
지현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걔 여자 친구 있어?”
지훈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악귀 같은 얼굴이었다.
“그게 왜 궁금하냐?”
“그냥. 찌질하니,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솔로인데, 그런 놈도 여자 친구 있으면 배 아프잖아.”
지훈은 그럼 그렇지, 싶어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없어.”
“그럼 그렇지.”
다행이라는 듯, 지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있잖아, 남자들은 어떤 여자 좋아해?”
“마음에 드는 남자 생겼냐?”
“그건 아닌데, 이제 나도 몸 나아지니까 준비해야 될 것 같아서.”
그럴싸한 말이었다.
‘하긴, 지현이도 이제 20대 중반인데, 결혼하기 전에 연애 몇 번은 해보고 싶겠지.’
“남자야 뭐 간단하지. 가슴 큰 여자.”
지현이 자기 가슴을 내려다봤다.
최근 이상하게 근질거리며 조금 커진 것 같긴 했지만, 여전히….
“아, 씨. 그런 거 말고. 좀 제대로 된 거.”
“예쁜 여자.”
“죽을래?”
“농담 같아?”
득달처럼 달려드려는 지현의 모습에 농담은 그만 뒀다.
“글쎄다… 남자 따라 다르긴 한데, 아무래도 얌전하고 착한 여자가 좋지. 말 잘 들고.”
“음… 그렇구나. 알겠어.”
지현이 결의 찬 표정을 지었다.
“됐고, 오늘 조용히 있더라. 잘 했어.”
“으, 응. 당연하지.”
차마 까트를 챙겼던 사실은 말하지 않는 지현이었다.
‘앞으로 조금 얌전하게 굴어야지. 근데 까트 어디 있지?’
힘들 때 피려고 남겨둔 마지막 남은 까트였다.
지현은 담뱃갑을 열어봤지만, 이상하게 보이질 않았다.
‘뭐지, 술김에 폈나?’
지현이 머릿속으로 까트의 행방을 찾는 사이, 지훈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에도 이상한 남자 만나면, 그 때는 농담 안하고 그 새끼한테 샷건 갈길 거니까 알아서 해라.”
“걱정 마. 이번엔 잘 고를 거야.”
“아니다. 일단 생기면 그냥 갈겨야겠다.”
“아, 왜!”
“이년아, 네가 오늘 저녁에 한 짓 기억 안 나냐?”
시연에게 폭탄을 던지려고 했었다.
지현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 미안. 안 할게. 그러니까 샷건도 넣어 둬.”
“앞으로 그러지 마라. 앙?”
“으, 응….”
그렇게 제 1차 남매대전은 허무하게 종결됐다.
☆ ☆ ☆
그날 밤.
민우는 이상하게 가슴이 가려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샤워를 하며 거울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이상하게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뭐, 뭐야. 내가 젖 튀어나올 정도로 살이 쪘다고?’
큰 충격이었다.
여유증, 가슴 튀어나온 남자라니.
지훈이 그렇게 잔소리를 퍼부어도 살 뺄 생각 전혀 않던 민우였거늘, 가슴 한 방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