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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41화 (41/173)

<-- 꿀 같은 휴식, 고기파티 -->

문이 열리고 시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하느라 편하게 입은 건지, 둥근 뿔테 안경에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은 상태였다.

“어, 왔… 어?”

방금 가속 이능을 쓴 까닭일까?

지훈은 속이 니글거려 토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여자 소리 난 것 같았는데?”

장금장치를 푼 게 여자니, 당연했다.

“여자라니. 잘못 들은 거 아냐?”

“그런가?”

시연은 지훈의 집을 슥 둘러봤다.

청소를 했음에도 꽤 지저분했기에, 살짝 부끄러웠다.

“여기서 사는구나.”

“좋지도 않은 데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만 봐“

시연은 턱을 좌우로 얕게 흔들었다.

“아냐. 아담하니 좋아. 그리고 자기 냄새도 나서 좋고.”

“그래. 근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자기 빨리 보고 싶어서 차 가지고 왔거든.”

그제야 시연 뒤로 벤츠 한 대가 보였다.

‘베, 벤츠?’

포탈 열리기 전에도 눈 튀어나오게 비쌌던 물건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수입까지 어려우니, 과연 그 가격이 눈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차였다.

“아, 저거? 저번에 쟤네 회사에서 내 특허 관련으로 기술 협력 요청해서, 자문 좀 해줬거든. 고맙다고 한 대 주더라. 근데 나 차는 잘 안타고 다녀서 유지비만 잔뜩 나가. 애물단지야.”

그래도 이번에는 어떻게 남자 친구 보러 올 때 썼다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시연이었다.

“어쨌든, 빨리 와서 좀 놀랐어.”

“응. 이제 장보러 가자!”

시연은 지훈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걸음, 걸음마다 팔 너머로 부드러운 게 말캉거리는 기분 좋은 느낌도 잠시.

시연이 벤츠 조수석에 탔다.

“뭐야, 왜 조수석에 타?”

“나 사실 운전 잘 못해. 오빠가 운전해주는 차타고 싶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운전이 미숙했다면 보사에서 여기까지 절대 30분 안에 올 수 없을 거리였다.

시연은 단지 지훈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시연은 제 남자 친구가 이런 걸로 기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본디 이런 사소한 배려가 남자의 기를 살려주는 법이었다.

“나 차 거칠게 모는데 괜찮겠어?”

“어차피 무상 수리 해준다고 하니까 상관없어.”

시연은 그렇게 말하며 안전벨트를 맸다. 흉부에 사선으로 벨트가 지나 가슴에 포인트가 들어가 묘하게 야해 보였다.

지훈은 몇 초 정도 쳐다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럼 편하게 몬다.”

부으으우 -

시동을 걸자 벤츠가 작게 으르렁거렸다.

☆ ☆ ☆

지현은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미, 미친놈…. 내가 뭘 한다고 집어 던져.’

현재 지현의 몸무게는 50kg 가량.

일반인이 던진다고 휙 날아갈 중량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훈이 던졌을 땐 어땠던가?

무슨 공 마냥 하늘을 날아 소파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각성한 인간이 잡으라는 몬스터는 안 잡고 여동생을 때려잡나!’

지현은 속에서 열불이 끓었다.

‘내가 뭘 한다고!’

겨우 사소한 장난이나 치려고 했었다.

‘좋아, 김지훈. 네가 그렇게 나오면 진짜 전쟁이다.’

지현은 이를 꽉 깨물곤, 집에 뒀던 까트를 찾았다. TV 아래 있는 수납장에 들어 있었다.

지현은 까트를 챙기려는 찰나, 뭔가 떠올랐다.

‘아… 근데 약에 절여놨는데, 어떡한다….’

언젠가 지훈이 몸에 좋다고 녹죽 같은 액체를 준 적이 있었다. 매일 먹긴 먹었으나, 하도 맛이 없어서 아예 까트에 적셔놓은 참이었다.

‘뭐 몸에 좋은 약이라는데. 별 일 있겠어?’

지현은 약에 절여놓은 까트를 일반 담뱃갑에 교묘하게 집어넣었다.

‘두고 보자고. 김지훈.’

☆ ☆ ☆

그 시각.

지훈과 시연은 같이 장을 봤다.

시연은 한 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훈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부부라도 된 것 같다.”

시연은 기운 좋은지 팔짱 낀 손에 힘을 줬다. 팔 너머로 꾸욱 하고 시연의 가슴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에 지훈은 기분이 묘해졌다.

저번 헌팅 끝나고도 느꼈지만, 이 행복한 순간들이 가끔 현실감 없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뒷골목에서 항상 목숨 걸고 외줄타기하며, 내일 따윈 바라보지도 않고 곧장 앞만 보고 달렸던 게 겨우 3달 전이었다.

‘이게 정말 현실인가?’

불안해졌다. 금방이라도 꿈에서 깨어나 만드라고라 앞에서 피를 토하고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저번에 만드라고라 헌팅 때 겪었던 호접지몽 때문인지, 간혹 그와 관련된 끔찍한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지훈은 마치 꿈과 현실 사이에 갇혀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나보다. 이번엔 좀 푹 쉬자. 운동도 하고, 마법 연습도 하고. 할 거 많잖아?’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무것도. 그냥 뭣 좀 생각하고 있었다.”

지훈은 시연이 부르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번엔 좀 맘 편히 먹고 쉬어야겠다. 진짜 돈 번다고 계속 달렸다간 돌아 버릴지도 모른다.’

최근 대두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각성자의 정신 오염 문제였다.

구세계. 곧 포탈이 열리기 전에는 군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헌터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은 고인이 된 중배도 거의 까트를 입에 달고 살았었으며, 많은 헌터들이 마약 혹은 정신병원에 의존했다.

물론 지훈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지훈은 단지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까닭에 현실감이 없어, 금방이라도 모든 게 거품처럼 사라져 버릴까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또 뭐 살 거야?”

지금 쇼핑카트엔 상추 같은 채소 및 쌈장이 담겨 있었다.

“지금 보니 술이 없네. 술 사자.

본디 남자들의 축제에 술이 빠지면 섭섭했다.

지훈은 주류 코너로 가 버카디 141, 보드카, 소주, 맥주 등 여러 주류들을 챙겼다.

“아니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사? 다 마실 수 있어?”

“내 친구 중에 술고래 하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물론 여섯 남짓한 사람이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하지만 이번 파티의 참가자 중에는 엄청난 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칼콘이었다.

☆ ☆ ☆

장을 보고 돌아와 불판과 숯, 밑반찬까지 다 차려놓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지훈, 나왔어!”

칼콘은 키가 175는 족히 넘어 보이는 여자를 데려왔다.

활동적인 성격인 듯 청바지에 탱크탑만 입고 있었는데, 다 드러난 배에 노골적으로 보이는 11자 복근이 인상적이었다.

세드에서 여자가 저러고 다녔다간 큰 일이 난다며 걱정하는 지훈이었지만, 칼콘의 여자 친구만큼은 예외로 했다.

‘저 정도면 도리어 괴한이 위험하겠네.’

곁눈질로 살펴보고 있자니, 칼콘의 여자 친구가 다가와 꾸벅 인사했다.

“반가워. 김 톨퐁 이야.”

독특한 이름만큼, 외모도 독특한 여자였다.

피부 톤이 살짝 어둡고, 씩 웃는 모습 사이로 굉장히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왼팔에는 알 수 없는 문신들이 가득 박혀 있었다.

“얘기 진짜 많이 들었어, 우리 그이 은인이라면서?”

초면에 반말이 툭 튀어나왔다.

지훈이 고민하고 있자니, 칼콘이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 혼혈이야. 하프오크, 인간 군락 온 지 얼마 안됐어.

한 방에 이해됐다.

칼콘 포함 모든 오크들은 자기 직속상관이 아니고서야 절대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존댓말을 복종의 의미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본인들 언어도 굉장히 직설적이고 호전적이기 때문에, 높임 표현이 풍부한 한국어와는 잘 맞지 않았다.

“나도 얘기 많이 들었다. 실물이 낫네.”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많은 걸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전투 경험이 있는 듯 했다.

“아, 이거. 군 생활 할 때 생긴 거야. 멋지지?”

톨퐁은 굳은살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후 남은 인원끼리 간단한 소개를 주고받았다.

시연은 톨퐁과 인사하며 혼혈은 처음 본다며, 인간과 오크의 문화 차이 같은 걸 이거저거 캐물었다.

여자들이 수다를 시작하자, 지훈과 칼콘은 픽 웃었다.

“이야, 능력 좋다?”

“지훈 여자 친구야말로 정말 괜찮은데?”

내심 서로 비교했었거늘, 안타깝게도 무승부였다.

시연이 백치미 섞인 귀여움을 뿜어낸다면,

톨퐁은 건강미 가득한 섹시함을 뿜어냈다.

“근데 민우는 어디 있어?”

“글쎄다.”

“기다릴 거야?”

이미 시간이 7시가 넘었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내버려둬. 지가 알아서 찾아오겠지.”

결국 민우를 버려둔 채 파티가 시작됐다.

제일 먼저 마법을 이용해 숯에 불을 붙였다.

주변 사람들은 마법 쓰는 걸 보자 환호성을 질렀지만, 정작 본인은 ‘이러려고 배운 마법이 아닌데.’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 사이 칼콘은 페커리 고기를 손질했다.

아무래도 덩어리로 포장되어 있던 까닭에 잘게 잘라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지훈이 하려고 했지만, 칼콘이 자기가 나서서 한다기에 맡긴 거였다.

- 지훈, 오크 군락에선 우두머리가 고기를 만진단 말이야. 내가 하면 안 될까?

멋있는 척을 하고 싶었나보다.

여자 친구 앞에서 멋 부리고 싶다는데, 막기도 뭣해서 그냥 맡겼다.

매일 사료 씹는 모습밖에 못 봐서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들었지만, 의외로 몇 번 해본 듯 솜씨가 좋았다.

먹기 좋게 썰린 고기가 석쇠 위로 올라갔다.

츠스스스….

석쇠가 잘 달궈졌는지, 고기가 올라가자마자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그 위에 칼콘이 이름 모를 식물 가루와, 후추, 그리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기름을 발랐다.

마치 누군가 코끝을 살짝 살짝 건드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좋은 냄새가 퍼져 나갔다.

그 외에도 석쇠 구석에 마늘과 소세지, 버섯, 감자, 양파 등 부가적인 것들을 올려놓으니 과연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당장이라도 집어 먹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다들 고기만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서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우와, 냄새 죽이네요.”

민우였다. 친구 데려온다고 하더니, 결국 혼자 왔다.

“어, 왔냐. 친구는?”

“그냥 좀 바쁘대요. 그래서 혼자 왔어요.”

“제 발로 이 귀한 거 공짜로 먹을 기회 차버렸으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겠네.”

칼콘이 픽 웃었다.

“마침 다 익었네. 먹자.”

석쇠 위에 올라온 고기를 한 점 집어다 입에 넣었다.

제일 먼저 옅은 풀 냄새와 더불어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아마 칼콘이 세팅한 식물 가루와 기름 때문인 것 같았다.

‘역시 오크는 먹는 쪽으로는 정말 신경 많이 쓰는군.’

이후 한 입 씹자, 질길 거라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좋은 식감이 느껴졌다.

마이 녹아내리듯 잘려 나가는 고기가, 마치 잇몸을 간질거리는 것 같아 황홀하기까지 했다.

‘오… 나쁘지 않아. 식감 좋아.’

이후 향과 식감을 음미하며 오물오물 씹고는, 꿀꺽 삼켰다.

더 말할 것 없다. 맛있었다.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야생짐승 특유의 활동성 때문에 기름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근육 때문에 질기지도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양식한 양 너무나도 완벽한 맛이었다.

“크으으으!”

일행 모두가 맛에 감탄했다.

이후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젓가락과 포크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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