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기품은 악마 -->
끼이익 -
집 문을 열자 겹첩이 녹슨 신음을 내뱉었다.
“나왔다.”
“어, 왔어? 생각보다 일찍 왔네.”
방 안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지현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요리야?”
지현은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몸이 괜찮았을 때도 배가 고프거나, 지훈이 시켰을 때나 마지못해 하던 게 다였다.
“그냥 밥이나 해줄까 했지. 방금 시작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더군다나 몸이 아팠을 때는 부엌 주변에 가지도 않았던 지현이었기에, 지훈은 속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몸 좀 괜찮아 졌나보네.’
저번 혈석화 치료를 받은 이후 지현은 눈에 보일 정도로 활기차졌다. 이젠 아침에 조깅을 나갈 정도였다.
“하지 마. 필요 없어.”
지현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자 장난기가 솟았다.
“사람 잡을 일 있냐, 누구 죽이려고 독 만들고 있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만 해라.”
기껏 성의 부려서 밥 차려 준다는데, 독극물 제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야, 뒤질래!”
“뭐. 내가 거짓말 했냐?”
실제로 지현은 요리 솜씨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혀가 어디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영양검사를 해 보면 일일 권장 나트륨 섭취량의 150%는 거뜬히 될 정도로 소금을 뿌려댔다.
거기다 맛이 제 맘에 안 들면 중화한다고 설탕을 잔뜩 뿌리는데, 그 맛이 과연 음식물 쓰레기에 필적할 정도였다.
“기껏 밥 해준다는데 그게 할 말이냐, 이 자식아!”
지현이 콩나물 다듬던 칼을 든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놀렸다간 정말 칼빵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기에, 장난 그만치고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들어보였다.
“이거 먹자.”
“뭔데?”
“페커리.”
“어?”
지현이 머리를 맞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약 3초 정도 지나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지현이 꺄악 비명을 질렀다.
“대박. 진짜 페커리야? 최 셰프가 요리했던 그거?”
“왜. 못 믿겠으면 보여줘?”
평소에 하도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친 터라, 지현이 의심 먼저 했다.
“나 지금 고기 먹을 생각에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거든? 구라면 뒤진다, 진짜.”
지현은 칼끝을 지훈에게 향하곤 위협적으로 말했다.
‘에휴, 도대체 누구 닮아서 말버릇이 저런지.’
글쎄. 누구 닮았을까.
존댓말 쓰는 경우 거의 없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반 쯤 비꼬는 말투를 씀은 물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물론 본인은 그게 자기인줄 몰랐다.
부스럭.
지현이 페커리 고기를 확인하고는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이 년아. 됐냐?”
“예, 됐습니다. 위대하신 오라방.”
정치인 울고 갈 태세변환에 웃음밖에 나질 않았다.
“사람들 불러다가 파티할 거니까, 너도 부를 사람 있으면 몇 명 데려와.”
부를 사람이라는 말에 지현이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아냐. 다른 사람 부르면 내 고기가 줄잖아! 필요 없어!”
“그러던가.”
고기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지현을 뒤로하고, 전화기로 향했다.
‘일단 시연이 부터 부르자.’
지금 시각은 6시.
바로 전화하지 않으면 저녁을 먹어 버릴지도 몰랐다.
뚜르르… 뚜르….
“응~ 자기!”
역시, 이번에도 연결음이 채 2번 울리기도 전에 대답이 들려왔다. 그 모습이 꼭 현관문 열리는 소리 들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치와와 같아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1순위라는 뜻 아니던가?
“어. 나야. 뭐해?”
“나 지금 한국 정부에서 신금속 보내서, 그것 좀 보고 있었어. 사냥은 어떻게 잘 다녀왔어?”
“쉬운 일이라 몸만 풀고 왔어. 그나저나 나 밥 먹었어?”
워낙 생체 리듬이 왔다 갔다 하는 시연이었기에, 안 먹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나 이따 사내식당에서 먹으려고 했지. 왜?”
“페커리 잡았는데, 같이 먹을까 싶어서.”
“그게 뭐야?”
여태까지 전부 페커리라면 입에서 침부터 뿜었기에, 지훈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살짝 당황했다.
“그냥 세드에 사는 돼지야. 우리 집 주변에서 구워 먹을 건데, 올래?”
“나 그럼 자기 집에 가는 거야?”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페커리에 정신 팔려 파티 장소에 집 주변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만약 시연이 파티에 온다면 다 무너져 가는 열약한 지훈의 집을 봄은 물론….
지현과 마주칠게 분명했다.
‘썅.’
집이야 동생의 병이 낫자마자 이사한다고 쳐도, 아직 지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은 지훈이었다.
‘이걸 어쩐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차라리 지현의 입단속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 무너져 가니까 기대하지 마.”
“난 자기 집보다, 자기가 더 중요해. 신경 쓰지 마.”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말에 짙은 배려가 섞여있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맞다. 여동생도 있으니까….”
“우와, 나 작은 시누이 생기는 거야?”
시누이는 개뿔.
시‘발’누이만 안 되도 다행이었다.
기대하는 것 같은 말투에서 지훈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 애가 병 때문에 아팠거든. 그래서 좀 까칠하니까, 그냥 알아만 둬.”
“응, 응. 나 그럼 지금 바로 간다?”
“굳이 당장 올 필요 없어. 내 동료들도 기다려야 돼서 장 먼저 볼 거야.”
“그럼 장 같이 보자. 나 꼭 한 번쯤은 남자 친구랑 같이 장 보고 싶었단 말이야.”
“오지 마. 너 바쁘잖아. 그러다 실적 떨어지면 곤란하다.”
아무리 보사(BOSA)가 출퇴근이 자유로운 외국계 회사라지만, 그만큼 실적에 민감했다.
마냥 놀았다간 바로 인사고과나 기타 페널티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우리 지사에서 나보다 실적 내는 사람 없어. 걱정 마.”
도대체 얼마나 능력이 좋은 건지 가늠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럼 내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주소 알려줘.”
“알겠어.”
전화를 끊자마자 동생을 불렀다.
“김지현. 너 잠깐 이리와 봐.”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지현이 고개만 돌렸다.
“왜?”
“할 얘기 있으니까 빨리 와라.”
“에이… 씨. 기다려.”
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 앞으로 다가왔다.
“뭔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나 여자 친구 생겼다.”
“그래? 어떤 년인데?”
아니나 다를까 지현의 얼굴에 악마 같은 미소가 걸렸다.
설마 했던 불안이 점점 현실화 되어가는 듯 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지현을 막아야 함이 확실시 되는 순간이었다.
“뭐, 년? 새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우와. 벌써부터 여자 친구 감싸는 거 봐. 극혐이다, 진짜. 내가 오빠 키우느라 얼마나 허리가 휘었는데, 흑흑. 이래서 오빠 키워봐야 다 필요 없어.”
지현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과장스럽게 눈을 비볐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재미없기는. 근데 여자 친구 생긴 게 뭐라고 나한테 얘기하는데?”
“걔 지금 오고 있다. 오늘 같이 고기 구워 먹을 거야.”
“아, 떡치게 비켜달라고? 돈 줘. 모텔 가서 잘게.”
도대체 뭘 어떻게 연결하면 저런 결론이 난단 말인가?
지훈이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됐다. 짧게 말 한다. 너 내 여자 친구한테 허튼소리 하면 가만 안 둔다, 진심이야. 알겠냐?”
좋게 말해선 안 되겠다 싶어 목에 좀 힘을 줘서 말했다.
평소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 정색한 모습에 지현은 살짝 움츠러들었다.
“알겠어. 조심할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것 같으니까,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절대 까트 같은 것도 주지 말고. 알겠냐?”
지현이 고개를 푹 숙이곤 고개만 끄덕였다.
지훈은 그런 지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제발 잘 하자. 믿는다.”
“응….”
“화내서 미안하다. 가서 볼일 봐.”
지현은 풀이 죽은 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지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씨익.
입에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새언니구나. 재밌겠다.’
지현의 머릿속에 뭘 어떻게 해야 폭탄을 크게 터트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됐다.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 ☆ ☆
지훈은 주소를 보내준 뒤 느긋하게 기다렸다.
동구 자체가 바둑판식으로 지어진 계획지구였던지라 찾아오는 건 무리가 없을 터였다.
단지 보사에서 여기까지 오기엔 시간이 걸리려니 싶어 샤워를 한 뒤 TV를 보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뭐 재밌는 거 없나 채널 돌리다가 페커리가 나왔기에, 요리 프로에 잠시 머물렀다.
대충 10분 보고 있자니, 따라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채널을 돌리려는 찰나….
띵 - 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은 바로 시계를 확인했다.
전화 끊고 겨우 30분밖에 흐르질 않았다.
“뭐지? 너 택배 올 거 있냐?”
“아니. 없어. 내가 나가볼게!”
지현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평소라면 지훈에게 나가보라고 닦달했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서, 설마?’
보사에서 동구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물론 대중교통 기준이었다.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면 대충 30분 정도 걸….
지훈이 다시 시계를 살펴봤다.
딱 30분 지났다.
‘이런 미친!’
지현은 이미 광기가 흐르는 미소를 지은 체 현관문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상태!
이대로라면 끔찍한 악마가 순진무구한 천사에게 마수를 뻗히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년이, 내가 그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무조건 잡아야 했다.
‘이능 발동. 가속!’
지훈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지현은 현관문으로 달리고 있다.
둘의 거리 차이는 3M다.
지훈이 몸을 낮춘다.
지현이 광기서린 미소를 짓는다.
둘이 거리 차이는 2M다.
지훈이 온 몸의 힘을 발가락 끝에 농축해….
파앗!
점프한다.
각성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때문인지, 마치 짐승처럼 보였다.
“이히히히힉!”
지현은 현관문 앞에 거의 다 왔다.
둘의 거리 차이는 1M다.
지훈이 무슨 수를 써도 막겠다는 듯 손을 뻗는다.
지현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현관문에 손을 뻗는다.
둘의 거리 차이는 0.3M다.
덥썩!
덥썩!
지현은 현관문 잠금 장치를.
지훈은 지현의 머리와 어깨를.
동시에 잡았다.
둘의 거리 차이는… 이제 없다.
머리와 어깨를 잡혔음에도, 지현의 눈에는 여전히 광기 섞인 즐거움만 가득했다.
- 당장 그거 내려놔라. 죽는다, 진짜.
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 싫은데. 내가 이 재밌는 걸 왜 포기해. 너나 놔. 새언니가 우리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충격 받지 않겠어?
- 두 번 얘기 안 한다. 놔라.
지훈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싫은데.
그렇게 말하고, 또 말했거늘. 시‘발’누….
아니, 지현은 현관문 잠금장치를 풀며 외쳤다.
“예~ 나가요!”
철컥!
장금장치 풀리자, 시연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지훈은….
- 망할 년. 네가 자처한 거다.
지현을 그대로 소파로 집어 던져 버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사이 지현이 하늘을 날았고,
쿵!
시연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딱 떨어졌다.
지훈은 그제야 이능을 풀고 시연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