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쟁터에서 총알을 피하는 꿈을 꾸고 있자니, 흐릿하게나마 칼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훈, 일어나서 저기 좀 봐.”
“아… 갑자기 왜?”
잠을 자다 깼기에, 얼굴을 찡그리며 밖을 살폈다.
평야 한가운데에 웬 차량 한 대가 박살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차량을 두고 총격전이 오가기까지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야. 강도?”
저 쪽이 마무리 된다면 분명 이 쪽을 노릴게 분명 했다.
“어쩔래?”
칼콘이 침착하게 물었다.
아직 피해자들이 살아있어서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망가죠. 괜히 남에 일에 끼어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이미 일 끝났잖아요.”
민우가 현실적인 선택지를 꺼냈다.
사실 눈 딱 감고 지나가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고, 강도 역시 놓친 목표물에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도와주고 보수 받는 것도 좋고, 아니면 전통적인 방식도 좋아.”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말에 민우가 갸웃거렸다.
“전통적이라뇨?”
“오크는 전쟁 가는 길에 약탈로 보급품을 채워. 한 마디로 강도든, 피해자 둘 다 죽이고 물건 뺏는 거야.”
충격적인 대답에 민우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니면 쟤네 죽기 기다렸다가 강도 털어도 되고.”
선택의 순간.
선택지는 총 세 개였다.
1 - 피해자를 돕는다.
2 -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
3 - 둘 다 죽이고 뺏는다.
‘어쩐다….’
언더다크는 예외로 두고, 고등급 각성자가 겁을 상실하지 않고서야 강도 따위나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바로 가디언 때문이었다.
최근 언더 다크가 세를 늘림에 따라 각성자 범죄율이 치솟았다. 이에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가디언이었다.
가디언이란 각성자 범죄를 담당하는 치안 유지 단체로, 세계 정부를 등에 업고 반 언더 다크 세력으로 성장했다.
강력한 각성자들이 넘쳐나는 건 물론, 경찰 병력까지 몰고 다니기 때문에 상대하기 엄청 까다로웠다.
게다가 범국가적 집단 특성상, 세계 어디로 숨든 복잡한 행정적, 정치적 절차를 무시하고 바로 쫓아오기 때문에 숨을 장소도 없었다.
한마디로 아군으로 두면 참 든든했지만, 적으로 돌리면 정말 끔찍할 만큼 두려운 집단이라는 얘기였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강도짓 하는 놈들 중에 고등급 각성자는 없다는 말이었다.
기껏해야 F등급 각성자나 드문드문 섞여있을까?
‘멀리서 저격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싶진 않았다.
사냥하느라 몸은 곤죽이오, 마음은 축 늘어진 상태다.
‘다 죽이는 쪽은?’
그 쪽이 수익은 제일 많았다.
피해자 측의 차량과 화물. 강도들의 무기와 차량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 아지트에 숨겨놓은 물건까지 죄다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딴 짓 했다간 가디언 둘째 치고, 이블 포인트가 미친 듯이 치솟을 게 분명했다는 거였다.
‘빌어먹을 이블 포인트.’
게다가 정황상 구할 수 있음에도 버리고 갔다간, 이블 포인트가 오를지도 몰랐다.
‘짜증나 죽겠네.’
결국 구해주고 가자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차 세워. 저격한다.”
가까이 가봐야 총격전에 휘말릴 게 분명했기에 지훈은 멀찍이서 차를 세우곤, 차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한 뒤….
‘이능 발동. 집중.’
푝!
- 이블 포인트가 1 감소했습니다.
☆ ☆ ☆
강도 소탕은 손쉬웠다.
현재 위치는 엄폐물이 거의 없는 평야. 위치가 노출 된 강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푝!
400M쯤 떨어져 있던 강도가 풀썩 쓰러졌다.
“뭐야, 어떤 새끼야!”
이에 강도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지훈을 가리켰다.
“저기다! 쏴!”
타탕! 탕! 탕!
강도들이 반격을 해왔지만, 전부 차에만 박힐 뿐 지훈에게 단 한 발도 맞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400M면 사람이 점으로 보일 거리였다.
웬만큼 사격 실력이 아닌 이상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퍽! 퍼벅! 퍽!
칼콘은 타이어 뒤에 기댄 체 담배를 물었다.
퍽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옛날 생각난다. 그치? 강도들 많이 털어먹었는데.”
“누구는 목숨 걸고 총질하는데, 누구는 과거 회상이나 하고. 참 팔자 좋네.”
“에이, 지훈한테 저 정도는 그냥 껌이잖아. 옛날에도 할만 했는데, 지금은 오죽 하겠어.”
민우는 그런 지훈과 칼콘의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어졌다.
머리 위로 총알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오가는데, 잡담을 하다니?
“아, 안 무서워요?”
“왜?”
“지금 총질 중이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인간들 기술 좋아서, 한 대 맞아도 뽑아내면 그만이야.”
칼콘이 의료 기술이 빈약한 세계에서 살았던 때에는 가벼운 총상이라 할지라도 곧 죽음으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뛰어난 의료 기술에 몸을 맡길 수 있으니, 총격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전투 중 사망하는 것을 명예로 인식하는 오크가 총알 맞는 걸 무서워 한다는 것도 웃겼고 말이다.
물론 민우는 그걸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
시간이 지나자 강도들의 총소리가 멎었다.
“끝났으면 가서 시체 수거할까?”
“기다려. 아직이다.”
빈토레즈가 몇 번 더 불을 뿜었다.
“한 놈 무장해제 해놨으니까, 가서 손 좀 봐놔.”
“응, 알겠어.”
칼콘은 강도에게 향했다.
“저는요?”
민우는 어쩔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너는 여기 있어. 누가 차 들고 튈 수도 있다.”
“네, 형님.”
“누구 다가오면 그냥 말 걸지 말고 바로 쏴라. 알간?”
☆ ☆ ☆
평야 한가운데서 죽은 척을 하고 있던 강도는 애가 탔다.
오크 한 마리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강도도 오크의 악명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나가다 누군가 보이면 무조건 약탈했고, 포로 따윈 남기지 않고 모두 잡아먹어 버렸다.
눈 꼭 감고 그냥 지나가라고 기도하길 수 분.
강도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싸늘했다.
눈을 뜨면 바로 앞에 오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을 만지는 손길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구름 인가?’
애써 아닐 거라 믿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오크와 눈을 마주쳤다.
오크, 아니 칼콘이 방긋 웃었다.
“그래. 너지? 쟤하고 헷갈렸는데 맞았네.”
퍽!
☆ ☆ ☆
지훈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피해자들에게 향했다.
멀찍이서 봤기 때문에 종족을 정확히 구분할 순 없었다.
피부가 하얀 게 백인 같기도 했고, 엘프 같기도 했다.
저벅, 저벅.
대강 서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피해자는 엘프였다. 숲에서 과일을 가져온 듯, 차에는 과일이 잔뜩 실려 있었다.
‘민간인 같은데 뭔 깡으로 기어 나온 거야?’
엘프는 암시장에서 굉장히 비싸게 거래되는 물품이었다. 그 만큼 강도들의 타깃이 될 확률이 높다.
까닭에 엘프들도 될 수 있으면 티그림 밖으로 나가는 걸 꺼려했다. 굉장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인간…?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
지훈이 다가가자 엘프가 총을 겨눴다.
경계하는 것 같았다.
“원래 뽀죡귀 새끼들은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나보지?”
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비무장 상태였다면 얄짤 없이 투항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방탄외투를 걸친 상태였다.
게다가 저항도 웬만큼 높아져서 기관단총 탄 따윈 몇 발 맞아줘도 괜찮았고 말이다.
“시끄러워! 너희 뭐하는 놈이야!”
“그건 알 거 없고. 죽기 싫으면 총이나 치우지?”
“웃기지 마! 허튼 수작 부리면 바로 쏠 거야!”
지훈이 투항하지 않자 엘프의 총구가 떨리기 시작했다.
과격한 상황을 처음 겪는 것 같아 보였다.
“혀, 형… 그만하자. 좋은 사람 같은데….”
“저 새끼들도 강도일지 어떻게 알아. 인간이잖아!”
“그래도 우리 구해….”
“입 다물어!”
큰 엘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작은 엘프가 움찔거렸다.
“난 동생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너희 죽일 거였으면, 멀리서 저격했지 내가 뭐 하러 말을 걸었겠냐?”
“닥쳐! 인간의 말 따위 믿을 것 같아?”
지훈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가쉬도 그렇고, 저 엘프도 그렇고 편집증이 심했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엔 좋은 자세였으나, 얘기를 주고받는 입장에선 골치가 아팠다.
‘이래서 오지랖 떨기 싫었는데. 쯧.’
엘프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총 내놔!”
“혀, 형! 총은 또 왜? 진짜로 도와준 사람들이면 어떡해!”
“이미 사이는 틀어졌어. 돌아가서 저격하면 곤란해!”
그저 웃음만 나왔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둘 다 육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능을 발동하고, 옆으로 구른 뒤, 사격하면 그만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죽여도 될 것 같긴 한데….’
사실 저쪽이 먼저 총을 겨눴기에 정당방위로 사살해도 상관은 없어 보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엘프를 죽였다가 괜히 마법 검문에서 걸리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놀아줄까.’
“총 여기 있다. 가져가라.”
지훈이 빈토레즈와 글록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 손바닥을 보여줬다.
“에르파차, 가져와!”
에르파차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미안해요. 저희가 나쁜 녀석들은 아닌데… 세상이 좀 흉흉해서 그랬어요. 이해해 주세요.”
죄책감을 느끼는지 대뜸 사과부터 건넸다.
“괜찮아. 원래 또라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병신이 돼야 하거든. 그리고 나한테 사과할 거 없어.”
에르파차가 고개를 끄덕이곤, 총을 집으려 수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휙!
지훈이 에르파차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대로 들어올려, 껴안아 버렸다.
“어, 억!?”
저항이 느껴졌으나, 이쪽은 각성자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풀 수 있을리 만무했다.
“에르파차! 너, 너 이 새끼! 당장 내 동생 놔줘!”
큰 엘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죽기 싫으면 빨리 풀어줘!”
“동생 벌집 만들고 싶으면 쏴 보던가.”
지훈은 큰 엘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떨리는 총구와 어정쩡한 자세를 보건데, 훈련을 받았거나 주기적으로 사격 연습을 한 녀석 같진 않았다.
정밀 사격은 당연히 불가능해 보였고, 지향 사격을 할 경우 당연히 지훈과 겹쳐있는 에르파차도 맞을 게 분명했다.
“지, 진정하세요. 인간님, 저희는 이런 걸 원한 게 아니….”
“내가 그랬잖아. 사과할 필요 없다고. 너희가 먼저 시비 털었으니까, 자업자득이니 해라.”
지훈이 주먹으로 에르파차의 등을 때렸다.
에르파차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에르파차!”
“동생 살리고 싶으면 총 내려놔, 새끼야.”
지훈이 짜증 섞인 욕설을 내뱉었다.
‘어디 되도 않는 칠푼이 새끼들이 총부터 들이대? 아주 작살을 내 줘야지 다음부터 저딴 미친 짓 안하지.’
버릇이나 고쳐줘야겠다 싶은 순간 에르파차가 외쳤다.
“형. 그 총 내려놓으면 다 죽어! 그냥 나 무시하고 쏴!”
“아, 안 돼! 어떻게… 그럴 순 없어!”
“제발! 난 괜찮으니까!”
이후 에르파차와 큰 엘프는 몇 번 더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결국 총을 내려놓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큰 엘프가 총을 지훈 쪽으로 휙 던졌다.
툭!
“안 돼! 제발… 형이라도 살아야….”
“이제 내 동생 놔 줘!”
위협이 없어졌기에, 에르파차를 바닥에 꽂았다.
퍽 소리와 함께 에르파차가 뒹굴었다.
그 사이 지훈은 총을 챙기곤 슬쩍 둘을 번갈아봤다.
둘은 분노, 좌절, 저주 등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화물 뭐냐?”
“과일. 루비솔트부쉬.”
처음 들어보는 과일이었다.
루비솔트부쉬는 엄지 손톱만한 작은 과일로, 굉장히 독특한 맛을 내는 과일이었다.
인간 기준으로 더럽게 맛없는 과일이었지만, 몇몇 매니아들이 광적으로 좋아해 가격이 꽤 비싼 편이었다.
지훈은 슬쩍 화물칸으로 다가가 하나 집어 먹어봤다.
“어우… 이게 뭔 맛이야.”
몇 번 씹다가 뱉어버렸다.
괴상한 맛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칼콘이 강도를 질질 끌고 다가왔다.
“얘기를 뭐 그렇게 오래 해? 재밌는 얘기라도 있어?”
엘프 형제는 칼콘을 보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뭐야, 엘프네?”
“민간인이야. 둘이서 과일 따러 온 것 같더라.”
“이제 어쩔 거야?”
지훈이 엘프 둘을 바라보고 씩 웃었다.
에르파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 어쩌긴. 강도들 물건 챙겨서 집 가야지.”
“그래.”
예상과 현실이 빗나가자 형제의 표정이 풀렸다.
지훈은 멍하니 서있는 엘프에게 다가갔다.
짝!
시원한 소리와 함께 큰 엘프의 얼굴이 돌아갔다.
“아…?”
“앞으로는 누가 도와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부터 숙여라. 알간?”
“아… 저기….”
큰 엘프는 할 말을 잃은 듯 버벅거렸다.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에르파차에게 총을 건네줬다. 그리고 총을 받자마자…
짝!
에르파차도 때렸다.
“쏘긴 뭘 쏴? 지랄하지 말고, 네 목숨부터 챙겨라.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나발이고 필요 없으니까, 고기되기 싫으면 앞으로 도시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마라.”
지훈과 칼콘은 강도를 끌고 엘프와 멀어졌다.
뒤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섞인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