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36화 (36/173)

<-- 페커리 사냥 -->

티그림에 도착하자 검문이 시작됐다.

저번에 봤었지만,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Isikukood, võrreldes. (개인 식별, 비교).”

저항 하냐는 반지에 물음에 짧게 부정했다.

엘프 검문관은 지훈을 식별하자마자 빙그레 웃었다.

“만드라고라 사건을 처리해 주신 분이군요. 감사합니다.”

“뭐야. 그런 것 까지 나오는 거요?”

“예. 저희가 사용하는 식별 마법 정보는 모두 서기관을 통해 공유됩니다.”

이는 곧 과거에 지훈이 저질렀던 엘프 관련 범죄가 기록에 없었다는 말도 됐다.

‘다행이네. 뭐 잡힌 적이 없으니 당연한가.’

덤으로 엘프들의 범죄 기록에는 엘프 관련된 범죄자가 거의 없었다. 이로 발각되는 즉시 즉결 처형되기 때문이었다.

간접적이나마 엘프 밀반입을 도왔던 지훈은 물론, 엘프 고기를 먹었던 칼콘 역시 과거 행적이 밝혀지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 게 분명했다.

뭐 검문을 통과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믿을만한 분이시니 나머지 두 분은 넘어 가겠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 오셨습니까?”

“페커리 사냥하러.”

“알겠습니다.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게 산림청에 미리 연락해 놓겠습니다.”

이후 검문관은 요상한 나무 모자를 쓰더니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일종의 통신수단인 듯싶었다.

건문소를 지나 도로를 달렸다.

“와, 진짜 볼 때 마다 엄청 특이하네요.”

민우가 창밖에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양은 현대 건축물 모양이었으나, 재질이 거의 다 살아있는 나무였다. 인간 혹은 기타 종족의 건축 양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거 아세요? 엘프들은 건물 짓는 게 아니라 키운대요.”

관심은 없었으나, 운전하기 지루했기에 들어봤다.

보통 나무를 산림자원이라고 인식하는 타종족과 달리, 엘프는 나무를 하나의 동료로 인식한다.

까닭에 가공된 나무를 사용하는 건축 자체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렇다고 원시인마냥 굴에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온 게 학술명 급속 성장식 건물용 나무.

리빙 트리였다.

식물 줄기로 건축물의 골자를 잡은 뒤, 성장을 기다리거나 급속성장 마법을 이용해 건축물을 지었다.

그야말로 꿈의 건축 방법이었다.

환경오염 없고, 원자재 안 들고, 리모델링도 마법 한 번에 전부 처리됐다. 저 건축술 때문에 티그림의 건축물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다.

이에 인간들은 자본 침투를 시도했으나, 엘프들은 절대로 건축물을 팔지 않았다.

“왜 안파냐는 질문에 ‘너는 친구나 가족을 돈에 팔아넘기나?’ 라고 답했대요. 진짜 특이하죠?”

“퍽이나.”

덤으로 티그림의 영토는 법적으로 타종족이 소유할 수 없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금방 산림청에 도착했다.

산림청은 콘크리트가 섞여있던 터미널과 달리, 완벽하게 나무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빌딩만한 나무가 우람하게 서있는 모습이 방문자를 깔보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연락 받았습니다. 지훈 님이시죠?”

“그러는 그 쪽은 누구고, 뭐하는 사람이쇼?”

“어머니 나무의 풍성함이 함께하길. 저는 산림청에 근무하는 에피도우라고 합니다. 페커리 수렵 확인증 발급 절차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딱딱한 말투에 화가 날 법 했음에도, 에피도우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민우는 에피도우의 미소에 넋이 나간 듯 헬렐레 팔렐레 했지만, 지훈은 고개만 까닥 거리고 말았다.

“이 쪽으로 오시죠.”

칼콘은 내버려 두고 산림청 안으로 향했다.

엘프 영토인 만큼 괜한 시비를 우려해서였다. 칼콘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조용히 차량을 지켰다.

산림청 안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엘프 특유의 업무 속도 때문이었다.

수명이 긴 엘프 특성상 일처리가 끔찍하게 느렸는데, 본인들은 여유롭다고 말하지만 타 종족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쭉 걷고 있자니 줄에서 누군가 하나 튀어나왔다.

“우리는 2시간째 기다리는데 이 새끼는 뭔데 그냥 가?”

“이 분은 북티그림 숲에 큰 도움을 주신….”

“우리도 페커리 두 마리나 잡아줬잖아. 우린 뭔데!”

겨우 페커리 두 마리.

이쪽은 포미시드와 공생체계를 형성한 만드라고라를 처리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픽 웃음이 나왔다.

“야, 거기. 너. 웃어?”

인내심이 떨어졌는지, 남자는 지훈에게 시비를 걸었다.

“문제 있나?”

“이 새끼가, 어디 겁도 없이! 죽고 싶냐?”

대답해 줄 것 없이 주변을 슥 훑었다.

에피도우 포함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여 있었다.

“혀, 형님. 그냥 가죠… 저 사람 각성자 같은데….”

민우는 싸움이 무서운지 슬쩍 꼬리를 말았다.

“서로 갈 길 먼데 그냥 가지?”

남자가 지훈을 슥 내려다보곤 코웃음을 쳤다. 외모가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다.

“이 새끼가 어디 겁도 없이!”

남자가 말을 끝내며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에피도우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훙!

각성자는 개뿔.

비각성자인지 주먹이 하품 나올 정도로 느려보였다.

볼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간단하게 숙여서 피한 뒤, 녀석의 배에 주먹을 꽂아줬다.

퍽!

“거, 꺽!”

남자가 몸을 확 구부리며 입을 쩍 벌렸다.

힘 조절 없이 그냥 쳤다간 그대로 요단강 건널 것 같아 적당히 살살 쳤거늘, 여전히 강했나보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분노조절 장애인가 뭔가 앓고 있냐. 앞으로 성질 좀 죽이고 살아라. 알간?”

뼈아픈 충고 한 마디 건네주고 지나가려니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아 귀찮은 새끼들이 진짜.’

지훈보다 앞서 에피도우가 나서며 관청에서 소란을 부리면 구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란을 잠재우려는 시도였으나, 도리어 화를 돋우기만 한 듯 부작용만 났다.

“이 새끼가 먼저 때렸잖아! 장난 하냐!”

하나 상대할 때야 힘 조절이 됐지만, 여러 명일 경우는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냥 뒀다간 사람 여럿 병신 만들 것 같아 적당히 지갑에서 각성자 등록증을 꺼냈다.

시끄럽던 남자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총 있으면 모를까, 비각성자가 맨손으로 각성자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떻게 관절기를 제대로 넣으면 모를까, 곰과 사람이 맨몸으로 붙는 것과 진배없다.

“나 바쁘니까, 적당히 하고 그냥 가자.”

남자들은 욕설을 내뱉었지만, 덤비진 않았다.

에피도우는 그 모습을 보고는 묘한 얼굴을 지었다.

“여기 발급 완료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피도우는 활짝 웃으며 수렵 허가증을 건넸다.

“원래는 한 팀당 2마리까지 밖에 허가가 안 나지만, 저번 일 계기로 5마리 적었습니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건지, 에피도우가 귀를 위아래로 얕게 흔들었다.

“수고하쇼.”

지훈은 그에 짧게 답했다.

에피도우가 살짝 당황했다.

“저, 저기요!”

“왜.”

“페커리 서식지인 서티그림 숲에 요즘 강도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조심 하세요….”

“그러지. 수고하쇼.”

원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짧게 답하곤 뒤를 돌았다.

아니 돌려고 했다.

에피도우가 소매 끝을 살짝 붙잡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또 뭐요. 할 말 있소?”

“저기… 제가 인간과 교류를 많이 못해봐서… 궁금해서 그런데… 다음에 또 티그림에 오시면, 언제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시간… 되세요?”

부끄러웠는지, 에피도우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훈도 저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았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내가 너랑 밥을 왜 먹소?”

“소란 잠재워 주신 감사 인사도 할 겸, 그냥 저냥요.”

에피도우가 눈동자에 기대를 담아 촉촉하게 빛냈다.

이쪽은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

당연히 그 기대를 들어 줄 생각은 없었다.

“이종교배 관심 없소. 딴 놈 찾아보쇼.”

에피도우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단순 데이트 신청에 ‘나는 너랑 섹스할 생각 없다.’ 라는 답을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아, 아니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에피도우가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민우가 끼어들었다.

“나는 어때요? 나는 관심 있는데.”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일까?

분노의 핀트가 어그러져 길을 잃어버렸다.

“됐어요!”

에피도우는 흥! 소리를 내곤 등을 홱 돌려 걸어갔다.

민우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 나도 여자친구….’

지훈은 그런 민우를 닦달했다.

“뭐 하냐, 일 하러 가자.”

☆ ☆ ☆

페커리 사냥은 순조로웠다.

저번에 만드라고라가 서식하던 북티그림 숲과는 달리, 서 티그림 숲은 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널찍했다.

대충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큼지막한 발자국을 발견하면 내려서 추적하는 식이었다.

“이거 맞아?”

“발자국이 페커리네요. 이대로 가면 될 거에요.”

민우가 눈을 가린 양을 끌고 오며 말했다.

웬 양인고 하니, 일종의 페커리용 미끼였다.

페커리는 사람을 먹이로 인식해 도망치질 않아 발견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요는 기습이었다.

아무리 총기로 무장했다 해도 소형차만한 페커리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뺑소니 쳐버리면 답이 없었다.

이에 민우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양을 미끼로 페커리를 유인해서 잡자는 거였다.

대충 페커리 주변까지 이동한 뒤 양을 혼자 묶어두면 분명 울기 시작할 테고….

메에에에 - 메에에에 -

그 사이 심박 감지기로 페커리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 지 파악한 뒤….

삐 - 삐삐 - 삐삐삐 -

삐삐삐삐삐삐 -

삑!

- 10시 방향요 기관총하고 샷건 준비해 주세요!

- 칼콘, 엎드려서 쏴. 탄 튀면 위험하다.

- 알겠어!

페커리가 나타나면…!

- 이제 보여요. 시선 끄세요!

지훈이 샷건으로 선공을 날렸다.

양을 먹는 사이 공격하는 게 제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미끼가 하나밖에 없다보니 될 수 있으면 살려둬야 했다.

타앙!

콱!

사람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엄청난 탄두가 튀었다.

꽤 거리가 있어 일격에 쓰러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꺼운 가죽과 지방을 뚫기에는 충분했다.

“뀌이이이익!”

페커리가 분노와 고통 섞인 울음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대충 훑어봐도 약 2.5M. 성체였다.

녀석은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마치 소형차가 달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훈은 샷건 펌프를 당기며 말했다.

“쏴!”

타타타타타타타타탕!

푝푝푝! 푝푝!

타-앙! 타앙!

타타타타타타탕!

몇 초 사이에 수십 발의 총알이 튀어나갔다.

특히 K3가 압권이었는데, 마치 전기톱마냥 페커리의 온 몸을 긁고 지나갔다.

“뀌엑!”

전면부에 집중포화를 맞은 페커리가 풀썩 쓰러졌다.

사냥 성공이었다.

“조금만 더 다가왔어도 나란히 뺑소니였어. 조심하자.”

“알겠어, 앞으론 조금 더 긁어볼게.”

총열(총알이 나가는 관)이 망가질까봐 적당히 끊어 쐈던 칼콘이었다. 결재 떨어졌으니 이제 인정사정없이 풀 오토로 갈길 생각이었다.

“근데 기관총은 언제 봐도 좋다. 인간들은 전쟁할 때 마다 이런 거 시원하게 갈기겠지?”

“좋은 것도 아니다. 방아쇠 한 번에 사람 여럿 뒤져나가는데, 그게 뭐가 좋냐.”

“그냥 드르륵 나가는 게 참 신기해. 그래도 난 방패가 더 좋지만 말이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페커리 시체를 화물차에 실었다.

더럽게 무거웠다.

덜컹!

페커리를 올려놓자 화물차가 크게 휘청거렸다.

굉장히 무거워서 운송이 고됐지만, 그만큼 고기가 많다는 뜻이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양 싣고 빨리 다음 사냥가자. 피 때문에 비위 상해서 오래는 못해먹겠다.”

과적한다고 쳐도, 화물차에 실을 수 있는 페커리는 4마리가 최대였다. 지훈은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다음번 2마리는 순조롭게 잡아낼 수 있었다.

타앙! 타타타탕!!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물론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야, 야! 저거 뭐야! 크기가 뭐 저렇게 커!”

“지훈, 어떡해. 쏴! 말아!”

인터넷에서 슬쩍 언급됐던 5M급 페커리였다.

말이 5M지, 실제로 보니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마치 탱크가 달려오는 기분이랄까?

어차피 잡아봐야 무게 초과로 가져갈 수도 없었기에 도망치기로 했다.

“밟아! 저렇게 큰 놈이면 총알 박히지도 않겠다!”

그나마 차에 탄 상태로 마주쳐서 다행이었다.

쿵! 쿵! 쿵! 쿵!

부르르릉 - !

타탕! 탕!

마지막 페커리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벌써 3번이나 옮겨봤기에, 익숙한 손길로 차에 실었다.

“4마리 다 실어 놓기는 했는데, 진짜 이대로 가게요? 허가증에는 5마리까지 가능하잖아요.”

민우는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 같았다.

지훈과 칼콘 역시 이에 동감이었으나, 이미 4마리를 실은 상태로도 과적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 퍼지면 렉카비가 더 나온다. 포기해.”

사실이었기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숲 밖으로 향했다.

그 사이 지훈은 슬쩍 정보 창을 열어 능력치를 배분했다. 뭘 올릴까 고민하다 민첩으로 정했다.

‘이미 저항은 15라서 나무껍질 쓰면 D등급 찍는다. 이제 다른 능력치를 찍는 게 좋아 보인다.’

- 반영되었습니다.

민첩 : E 등급 (18) = > E 등급 (19)

‘근데 능력치 등급 낮은 게 은근히 신경 쓰인단 말이지.’

C등급 2티어인데, 능력치 대부분이 E등급이었다.

종족 특성 없는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나,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보니까 자전거 타거나, 거친 활동 같은 거 하니까 능력치 오르던데… 앞으로 좀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

실제로 쉴 때 하는 거라곤 담배피고, 술 먹고, 영화 보는 게 다였으니 능력치가 오를 턱이 없었다.

게다가 헌팅을 나가서도 총만 쏴서는 능력치가 오르질 않았다. 실제로 이번 사냥에서도 티어만 올랐지, 능력치는 그대로지 않았던가?

앞으론 건설적인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법, 격투기, 운동, 연애 등. 할 거 많네.’

돌아가는 운전은 칼콘에게 맡기곤, 거친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가끔씩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긴 했지만 참을 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