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더 위험한 사람인데? -->
별 다른 일 없이 평화로운 일상 속.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것저것 편안히 쉬는 사이 주말이 됐다.
지훈은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 뚜….
전화음이 채 2번도 울리기 전에 받는다.
전화 예절 참 마음에 드는 여자다.
“오늘 약속 확인 좀 하려고 걸었소.”
“7시요. 그러고 보면 장소를 안정했네. 어디서 볼래요?”
그거 물어보려고 든 전화다.
“그러게. 어디서 보고 싶소?”
“서구가 좋아요. 저 서구역 주변에서 자취 하거든요.”
자취라는 말에서 묘한 유혹의 냄새가 나는 건 왤까?
“그럼 거기 주변에서 봅시다.”
유혹에 이끌린 대답은 아니었다. 단지 아무 생각 없이 서구역 주변에서 산다기에 그러자고 했다.
‘어차피 동구에선 여자랑 갈만한 식당 찾기도 어렵다.’
“서구역에서 7시에 봐요. 저 정문에 서있을게요.”
“그 때 봅시다.”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꾸며 입고 나갈까 몇 초 정도 고민하다 그만뒀다.
결국 평소대로 하의는 워커에 빈티지한 청바지, 상의는 무지 티셔츠와 가죽재킷을 걸치곤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날씨가 좋았다.
☆ ☆ ☆
서구.
개척시대의 전쟁과 투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구와는 다른,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곳이었다.
이에 동구민들은 왜 동구가 낙후지구로 남아있어야 하나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땅이 넓은 세드에서 굳이 재개발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10년 쯤 지나면 모를까, 아직은 안 될걸.’
지금도 북구가 신설되고 있는 상태였다.
새로운 도시 계획을 하는 쪽이 재정비보다 여러모로 싸게 먹히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러워서라도 이사해야지, 쯧.’
지훈은 슬쩍 예금을 생각했다.
좀 더 노력한다면, 서구 중앙은 아니더라도 외곽 지역 아파트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현의 병을 고치는 게 우선이었지만 말이다.
‘잠깐만. 그 여자 서구역 주변에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 서구역 주변에서 자취 하거든요.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도 그렇고, 서구역 주변에 집을 얻었다는 것도 그렇게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뭐 얘기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부자라고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을 뿐이었다.
“왔어요?”
서구역에 도착하자 시연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시원해 보이는 하늘색 원피스와 웨지 힐을 신은 상태였다.
살짝 백치미 있어 보이는 언행과 달리 꽤 과감한 성격인지, 앞뒤가 많이 패여 있는 원피스였다. 덤으로 옆트임까지 들어가 있어서, 그녀가 움직일 때 마다 새하얀 허벅지가 살짝 살짝살짝 드러났다.
“반갑….”
TV에서 말고는 저런 옷 입은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대놓고 위아래로 훑었다.
“옷 어때요? 대만 개척지 갔을 때 사왔어요. 차이나 드레스 같고 예쁘죠?”
앞트임, 뒤트임, 옆트임 다 들어간 드레스에, 시연의 몸매 굴곡에 전부 드러났다. 보기는 좋았지만 지훈은 도리어 눈을 찌푸렸다.
“겁도 없군. 돌았소?”
“갑자기 왜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소?”
“두 달쯤 됐어요.”
비록 서구역 주변에 경제주체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치안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지만, 분명 지구보다는 훨씬 위험한 장소였다.
강도, 강간, 살인. 피해자 올림픽 그랜드 슬램 까지는 아니어도 앞에 두 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앞으로 절대 이렇게 입고 다니지 마쇼. 특히 밤에는 더더욱. 발정난 개 달라붙기 딱 좋아 보이네.”
지훈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시연에게 덮어줬다.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났는지 시연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고마워요, 근데 쟈켓에서 냄새 난다…. 담배 펴요?”
“하루 두 갑. 왜?”
“나는 담배 피는 남자 싫더라.”
“담배 피는 남자도 네가 싫다니까 걱정 마쇼.”
여태껏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른 불친절한 태도에 시연은 뾰로통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겉은 툴툴거려도 속은 친절한 사람이네.’
묘한 기분이었다.
분명 말에는 가시가 잔뜩 돋쳐있었지만, 그 본질에는 친절이 숨어 있었다. 과격한 친절이랄까?
시연은 덮고 있는 재킷을 여몄다.
“근데 우리 어디 가요?”
“네가 만나자고 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지훈과 시연을 쳐다봤다.
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만났던 사람들은 전부 다 알아 와서 버릇 됐나 봐요. 미안해요.”
“알면 됐소. 그래서 어디 좋은 가게 있소?”
시연은 자기가 가봤던 가게들을 살짝 떠올렸다.
최근에 갔던 곳이었는데, 이탈리안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라 맛이 퍽 괜찮은 장소였다.
“혹시 파스타 좋아해요?”
“아니.”
보통 남녀가 처음 만나는 경우 싫어도 좋다고 하거나 거절 하더라도 에둘러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직설적인 반응에 시연이 버벅거렸다.
‘이런 남자는 또 처음이네.’
평범한 여자였다면 뭐하는 인간인가 싶을 반응이었지만, 시연은 도리어 호기심을 느꼈다.
“그럼 우리 랍스타 먹을래요?”
“나 갑각류 알레르기 있어서 싫소. 그리고 그거 비싸잖아?”
과거야 해로를 통해 수입하면 됐으니 괜찮았지만, 지금은 지구의 해로가 모조리 막한 상태였다.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포탈 여러 번 드나들며 유통하기 때문에 수입품은 눈이 콱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이후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나왔지만 모조리 거절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게 까다로워요? 그냥 술이나 먹죠.”
술이라는 말에 지훈이 씩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어. 현명한 선택이군.”
결국 둘은 가까운 삽겹살 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삽겹살.
과거 몬스터 브레이크 전엔 국민 음식일 정도로 흔한 음식이었지만, 식량난이 심해진 지금은 부자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음식이 됐다.
과거엔 지훈도 멀리서 바라만 보며 침만 꿀떡 삼켰지만, 헌팅으로 큰돈을 만질 수 있게 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보급용 음식으론 영양이 부족하단 말이지. 잘 챙겨먹어야 한다.’
정부에선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좋은 음식이라고 주장했지만, 받는 입장에선 어딘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고기가 도착하자 시연이 고기를 집어 불판 위에 올려놨다. 경험이 없는지 살짝 어색한 모습이었다.
답답했다.
“내가 하지.”
지훈이 시연 손에 있던 집게를 뺏겨 고기를 불판 위에 차례로 올려놨다.
지글지글….
“술은 뭐?”
“맥주가 좋아요.”
“맥주 드쇼. 난 소주 하지.”
주문을 하자 소주, 맥주가 한 병씩 테이블에 올라왔다.
각각 잔에 술을 따르곤 가볍게 짠 하고 부딪혔다.
한 번에 털어 넣자,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이 느껴졌다.
꼴깍, 꼴깍, 꼴깍.
시연도 애주가였는지, 200cc 한 컵을 그대로 털어 넣었다.
‘여자가 뭔 술을 저렇게….’
문득 술 마시는 모습을 보다 목젖에 눈이 갔다.
맥주를 삼킬 때 마다 위 아래로 얕게 진동하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야릇해 보였다.
“커흠.”
“왜 그래요. 오늘 술 잘 안 받나 봐요?”
“그런 거 아니니 신경 끄쇼.”
목젖 쳐다봤다고 할 순 없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초면인 남녀가 다 그렇듯, 둘은 술과 고기를 사이로 서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이름, 사는 곳, 하는 일 등.
그 모습이 마치 소개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와, 진짜 헌터에요?”
“뭐가 신기하다고 그렇게 놀라나? 거리만 봐도 개나 소나 헌터인데.”
“그래도요. 아는 사람 중엔 처음이란 말이에요.”
“그러는 당신은 뭐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데?”
“저 보사 다녀요. 연구원이에요.”
신선했다.
‘그냥 부잣집 딸인가 싶었는데, 보사 연구원이라?’
보사(BOSA)는 유명한 헌팅 서포트 기업으로, 유명한 과학자 집단이었다. 헌터들의 능력치 측정 기계를 발명한 것은 물론, 세드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는 보사에서 이루어진다고 봐도 옳았다.
그만큼 보사는 아이덴티티 같이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었고, 영웅이었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서구 주변에 살았던 건가.’
보사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이 연봉 1억을 가뿐히 넘었으니, 연구원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 게 당연했다.
“이번에 세드로 넘어왔어요. 원래 지구에 있고 싶었는데, 다들 싫다고 빼서 돌고 돌다 혼자 사는 제가 걸렸죠 뭐.”
“불쌍하군.”
지훈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보사 연구원이라기에 신선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래봐야 남이고, 타인 아니던가?
앞으로 안 볼지도 모르는 사이에 높여줄 필요 없었다.
소주 2병과 맥주 3병이 더 돌았다.
시연은 취기가 올라오는지, 발그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좀 외로워요. 아는 사람도 없고. 집도 휑하고.”
“힘내쇼.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영혼 없는 위로보단 술 한 잔 채워주는 게 익숙했기에, 지훈은 시연의 잔에 맥주를 채워줬다.
이후 이쪽 잔에 소주를 따르자 시연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근데 소주 맛있어요? 난 쓰던데.”
“맛으로 먹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한 번 먹어볼래요.”
“술 약하면 먹지 마쇼. 모르는 것 같으니 하는 말인데, 세드에선 취객이 밖에 나돌아 다니면 백에 백 강도 만난다.”
술이 꽤 오른 걸까?
시연의 볼이 발그레해 보였다.
“지금 걱정해 주는 거예요?”
귀엽게 생긴 주제에, 얼굴엔 여우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테이블 아래론 발로 슬쩍 지훈의 다리를 쓸었다.
“헛소리. 전날 같이 술 먹었던 사람 이름을 다음날 뉴스에서 듣기 싫을 뿐이오.”
“친절하네요. 고마워요.”
도대체 어디로 들으면 친절해 보이는 지 알 수 없는 말이었음에도, 시연은 씩 웃음을 지었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시연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보니까 이미 술 된 것 같은데, 그만 드쇼.”
“싫어요. 맛있어.”
시연이 헤~ 웃으며 맥주를 들이키곤, 혀로 입술을 핥았다.
붉은 입술 위로 분홍색 혀가 미끄러졌다.
“나 많이 외로운가봐. 집에 가기 싫어요.”
“그 상태로 밖에 5분만 나돌아 다녀 보쇼. 뒤에 남자들이 드글드글 쫓아오는 거 보면 당장 들어가고 싶어질 거요.”
“지훈 씨 있잖아요. 뭐가 걱정이야.”
지금이야 같이 있지만, 지훈은 술자리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뭔 개소리요. 난 이거 다 마시면 바로 집 갈 건데?”
“아 몰라! 그냥 나랑 있어요.”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상황을 보니 외로워서 술을 잔뜩 마신 모양인데, 취해버린 모양이다.
‘이걸 어쩐다?’
버리고 가자니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뉴스 나올까봐 신경 쓰였고, 술 깰 때 까지 데리고 있자니 시간이 아까웠다.
“개소리 집어치우쇼. 내가 왜 당신이랑 같이 있소? 오늘 두 번째 본 사인데.”
“치. 밖에 위험하다면서. 내가 위험해져도 상관없어요?”
어이가 없어져 되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관없지. 그리고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위험한 사람이란 생각은 안 해봤소?”
“거짓말. 이렇게 친절한 늑대가 어디 있어.”
시언은 그렇게 말하며 덮고 있던 재킷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가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아 보였다.
그리고 지훈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술을 누구한테 배워서 주사가 이따구야. 저러다 큰 일 한 번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쯧.’
남자라면 대충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고 집으로 갔겠지만, 여자라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오늘만 챙겨줄까.’
결국 지훈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
“술 깨러 갑시다. 너무 많이 먹었네.”
“싫어!”
히히 웃으며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시연이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우리 집 가까운데… 라면 먹고 갈래?”
산 넘어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