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보는 번호 -->
서울 개척지의 한 유명 병원.
“어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생명을 살리셨어요!”
교수와 두 조교가 고개를 숙였다.
“돈 받고 한 일이오. 감사 필요 없소.”
고개를 돌리자 교수와 조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바로 보수에 관한 말을 드리고 싶은데….”
교수가 제안한 보수는 2억.
세 명 다 돌아왔으니 깎일 것도 없었다.
혹 부상을 빌미로 흥정이 돌아올까 싶어 바짝 긴장했다.
“저건 우리가 한 거 아니니까, 보수 까자는 얘기는 하지 마쇼. 그리고 저 인간 살려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구조대 불렀으니까 그 가격도 그쪽이 부담하고. 알겠소?”
속사포처럼 휘몰아치자 교수가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예, 당연히 그건 저희가 부담해야죠. 위에 물어보니 렌트카 배상비도 저희가 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건….”
현찰이냐 계좌 이체냐였다.
계좌로 받는 게 편했지만 현금을 선택했다.
돈 문제는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나누지 않으면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 1시간 후, 지훈은 교수에게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오만 원 권 지폐 40뭉치. 정확히 2억이었다.
그 외에도 교수는 사람 팔뚝만한 돌덩이를 건넸다.
“근데 이건 뭐요?”
“가시산맥에서 구한 원석 샘플입니다. 연구 완료되면 시중에 유통될 거니, 값 비싼 물건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거 줘봐야 장식물로 밖에 안 쓰니까 가져가쇼.”
“사람 성의라 보고 받아 주십시오.”
교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
“근데 민우 이 새끼는 어디 갔어?”
“몰라. 잠시 각성자 물품 거래소 간다고 하던데? 아마 기다리면 올 거야.”
현상금을 가로채려던 전과가 생각났기에 기분이 나빴다. 돌아오면 한 소리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채 커피 한 잔 다 마시기도 전에 민우가 웬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그거 뭐냐?”
“정산금입니다.”
쌩뚱 맞은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민우가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식물 어쩌고 하며 밖에 나갔다 왔던 사실이 떠올랐다.
“뭐 또 이상한 나물이라도 캤냐?”
“뼈살이 꽃 기억 하십니까?”
“그게 왜?”
“찾았죠.”
더 말할 것도 없었는지, 민우는 가방 지퍼를 열었다.
쫘악!
안에 황금빛 지폐가 가득했다.
“거래가 5980만원. 세금이랑 수수료 총 33% 떼서 4007만원 되겠습니다.”
“와 이 새끼! 쓸 만하네!”
칼콘이 환호성을 지르며 민우의 등을 토닥거렸다.
“근데 이걸 왜 여기로 가져온 거냐? 너 혼자 캤으니까, 그냥 꿀꺽해도 됐을 텐데?”
민우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만드라고라 때… 전 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도 정산금 1/3로 나눠 주시지 않았습니까. 저 그렇게 의리 없는 놈 아닙니다.”
순간 ‘그런 새끼가 사람 버리고 도망가잔 얘기를 하냐?’ 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렀다.
원래 사람이란 실수도 하고, 바보 같은 짓도 하면서 성장하는 거였다.
‘새끼, 컸네.’
픽 웃음이 나왔다.
“고맙다. 그럼 잘 받고, 정산 시작하자.”
테이블에 셋이 둘러앉았다.
[정산 결과]
획득.
의뢰 성공 보수 : 2억 원.
뼈살이 꽃 : 4007만 원.
지출
구조대 호출 비 (렉카 포함) : 2930 만 원. (의뢰인 지불)
렌트카 수리비 + 보험료 : 492만 원. (의뢰인 지불)
총액.
2억 4천 7만원 획득.
[배분]
[지훈]
현금 8002만원 수익.
- 장비 손상 : 없음.
- 부상 : 없음.
- 능력 : 티어업 14번, 이능 1 증가. [가속] 이능력 획득.
- 기타 : 가벡과의 친분.
[칼콘]
현금 8002만원 수익
- 장비 손상 : 방패의 이가 나감.
- 부상 : 꿈에 대한 그리움(만드라고라 전투 후유증)
- 능력 : 각성자에 대한 경각심, 대 각성자 전투 경험
[민우]
현금 8002만원 수익.
- 부상 : 무릎 슬개골 부상.
- 능력 : 총기 숙달. 전투 경험. 인성 성숙.
“자, 이번에도 죽을 똥 싸느라 수고했다.”
“에이 뭘. 지훈이 다했지.”
칼콘이 씩 웃으며 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칼콘 너 없었으면 나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겐포의 아들은 그만큼 강적이었다.
포미시드 때처럼 근접해서 폭발탄환을 썼으면 어찌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목숨 걸고 노름질 하는 꼴임엔 틀림없었다.
“민우, 너도 수고했어. 병영 쪽 잘 처리했다.”
“히히, 아닙니다.”
쑥스러운지 민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처음으로 받은 인정이기 때문이었다.
“일정 끝났는데 어떡할래. 이대로 해산, 아니면.”
“술! 고기! 여자!”
칼콘의 강력한 주장을 따라, 해산하기에 앞서 술집으로 향했다. 물론 옆에 여자가 있긴 했으나, 퇴폐 업소는 아니었다.
워낙 고기를 좋아하는 칼콘이었던 만큼, 룸살롱 안에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다.
“미친놈아, 뭔 룸살롱에서 통 돼지 바비큐야!”
바로 안주로 통 바비큐를 시킨 것.
웨이터는 그런 안주 없다며 기겁을 했지만, 칼콘이 웃돈을 준다고 말하자 어떻게든 구해왔다.
홀복 입은 접대부, 독한 양주, 노래와 춤 그리고 바비큐가 섞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자, 오늘 수고들 했고. 사고치지 말고 다음에 보자.”
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위험천만한 세드에서 취객으로 돌아다녔다간 수명이 10년은 족히 단축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각자 주량에 맞춰 먹었기 때문이었다.
셋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곤, 각자 집으로 향했다.
☆ ☆ ☆
“왔어?”
집에 들어가자 동생이 반겨줬다.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나 행동이 정상인걸로 봤을 때 까트는 아닌 것 같았다.
“다녀왔다.”
피로와 술기운 범벅이라 피곤했다. 방탄 외투를 대충 집어 던지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지훈이 옆에 앉자, 지현은 슬그머니 지훈 뒤로 향해 어깨를 주물렀다.
악력이 약해 시원하진 않았지만, 내버려 뒀다.
“나 약 거의 다 먹었어.”
단가가 꽤 센 약이라 소량만 사놨기 때문이었다.
“어떡해. 좀 아껴 먹을까?”
“아끼지 마. 이참에 검사 받으러 병원도 한 번 다녀오자.”
다행이라는 듯 지현이 씩 웃었다.
“나 빨리 병 나았으면 좋겠다.”
동감이었다. 지현에게 다시 일상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친 풍파에 담금질 된 지훈에게 있어 그런 표현을 하기란 굉장히 어려웠기에, 과격한 방법으로 돌려 말했다.
“그런 말하기 전에 담배나 끊지?”
“피 굳는 병이랑 담배가 무슨 상관이야, 싫어. 이거라도 없으면 어떻게 버티라고.”
“됐다. 됐어. 이제 약 많으니까 까트만 하지마라.”
“걱정 붙들어 매셔.”
픽 웃음이 나왔다. 가벼운 침묵.
“나 없는 동안 별 일 없었고?”
“오빠 찾는 전화 왔었어. 여자던데?”
여자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 술집 기도를 했을 때 몇 알긴 했었지만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연락해선 사람 죽여 달라지만 안았으면 좋겠군.’
전화를 받은 입장에서 답을 안 할 순 없었으므로, 지현이 적어놓은 메모대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핸드폰이었다.
삑, 삑, 삑.
뚜-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들어본 적 없는 맑은 목소리였다.
이쪽은 유선이지만 저쪽은 휴대전화다.
연락처를 저장해 놨을 게 분명했기에 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누구쇼?”
“여동생 분이 메모 안 해놨나 봐요?”
메모는 해 놨다. 단지 이름이 적혀있질 않았다.
“처음 보는 번호인데, 누구고 무슨 용무요?”
“딱딱하기는.”
여자는 살짝 삐쳤는지 흥 소리를 냈다.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화를 내야하나, 한 발 물러서야 하나 고민하길 잠시.
“백시연이에요. 왜 저번에 카페에서 만났잖아요.”
지훈은 그제야 상대방이 누군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카페에서 마법 연습할 때 연락처를 줬던 여자였다.
희미하게나마 언젠가 같이 밥 먹자고 했었던 게 기억났다.
“우리 밥 먹을래요?”
“지금은 피곤해. 잘 거요. 다음에 다시 전화하쇼.”
밥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쓰러질 정도로 피곤했다.
‘어차피 자기가 좋으면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지.’
시연은 끊어진 전화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도대체 뭐야?’
마법사라서 고리타분한 학자인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는 사람이었다. 왠지 더 알아보고 싶어지는 시연이었다.
저녁쯤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결국 주말에 저녁을 약속을 잡았다.
그 날 심야.
시체 구덩이.
칼콘과 민우가 저녁 약속이란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정말? 지훈이 데이트를?”
“형님 여자 친구 없었어요?”
“쉿, 조용히 해 새끼들아. 다 들리잖아!”
조소 섞인 웃음을 흘리는 둘에게 지훈이 소리를 질렀다.
소란이 일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주인이 얼굴을 비췄다.
“들어보니 우리 지훈이한테 여자 친구가 생겼나봐?”
“아니. 곧 생길 것 같아!”
“하도 안 만들어서 이 쪽 인줄 알았는데, 역시 노말?”
주인은 아쉬운지 콧소리를 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민우가 되물었다.
“이 쪽 이라뇨?”
“게이, 새끼야. 게이.”
저 말은 곧 주인도 게이라는 말이었기에, 민우가 묻기 위해 기울였던 몸을 뒤로 쑥 뺐다.
“정상인거 알고 있으면서 그딴 농담 그만하지?”
“호호, 놀려먹는 게 재밌는 걸 어떡해. 나 말고 지훈을 탓하라고.”
주인이 느릿느릿한 손길로 지훈의 어깨를 쓸었다.
그 행동이 꼭 여자처럼 부드러웠다.
“그래서, 어떤 여잔데?”
“몰라. 그냥 직장인 같았어. 핸드폰 갖고 있더라.”
“부잔가 보네.”
별 감흥 없는 반응이었다. 여자가 돈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어차피 결혼하기 전엔 내 것 아니었다.
오히려 돈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얼굴이랑 몸매는요?”
“예뻐?”
“고와?”
바로 외모였다.
“누가 고추 아니랄까봐 바로 물어보는 거 봐라. 그리고 석중 할배도 아니고 고와는 또 뭐야?”
투덜거리면서도 시연에 대한 기억을 곱씹었다.
살짝 웨이브 진 갈색 머리에선 샴푸와 향수가 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났었고,
핏이 잘 맞는 블라우스와 H룩 스커트로 이뤄진 오피스 룩은 당장이라도 흩트리고 싶은 배덕한 마음을 자극했다.
나이는 약 스물 예닐곱.
얼굴은 눈이 컸던 것만 기억났으며, 몸매는 괜찮았다.
‘몸매가 좋지 않았으면 애초에 딱 붙는 옷을 안 입었겠지.’
“그냥저냥. 예쁜 편?”
민우가 박수를 짝 쳤다.
“대애박. 약속 언제에요?”
“이번 주말. 왜?”
“콘돔 사가는 거 잊지 마세요.”
콘돔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겨우 밥 한 번 먹으러 가는데 도대체 콘돔이 왜 나온단 말인가?
“너는 뇌에도 좆이 달려있냐? 생각하는 수준 하고는.”
“아닙니다. 형님, 보세요. 마법 보여 달라고 했잖아요. 진짜 마법을 보고 싶었으면, 밤이 아니라 낮에 보자고 했을 걸요? 이거 백방 그린라이트라니까요.”
그럴싸한 의견이었다. 이에 다른 사람의 의견도 궁금했기에 슬쩍 칼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글쎄? 교미야 발정기 왔을 땐 아무나 붙잡고 하는 거고, 평상시엔 암놈 수놈 마음 맞으면 그냥 하는 거지. 낮이랑 밤이 무슨 상관이야? 하려면 아침에도 할 수 있잖아.”
다른 종족 아니랄까 상상을 초월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머. 난 근육남이 좋더라. 이쪽은 어때?”
주인은 칼콘의 오픈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추근덕 댔지만, 칼콘이 우람한 주먹에 입을 다물었다.
“인터넷에 하프 오크 여자 얘기가 왜 그렇게 많은가 했더니 저런 이유였나보네요.”
민우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며 픽 웃었다.
“됐다. 너희들한테 얘기한 내가 병신이지, 병신.”
지훈은 맥주만 연거푸 마셨다.
☆ ☆ ☆
집에 가는 길에 강도를 마주쳤다. 어째 낯이 익었다.
바로 저번에 만났던 양아치들이었다.
입고 있는 옷까지 죄다 털린 주제 배운 게 없었나보다.
“가진 거 다 내놔!”
여전히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다.
“너네 아직도 이 짓거리 하고 다니냐?”
양아치들이 머뭇거렸다.
“우, 우리 알아?”
“저번에 나한테 털린 거 기억 안 나지?”
양아치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옷까지 다 털린 날 이후 아무것도 안하다, 오늘 다시 시작한 거였는데… 딱 지훈을 만나버린 양아치들이었다.
참 운도 억세게 없었다.
“야, 튀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판단한 걸까? 양아치들이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거리 하나 있는데 잘 됐다. 몸이나 풀어 볼까.”
지훈은 바로 가속 이능을 발동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성난 정의가 밤을 질주했다.
- 이블 포인트가 1 감소했습니다.
- 민첩이 상승했습니다. E등급 (15) = > E 등급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