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전 그리고 이능 -->
일행은 겐포의 시체를 들고 가 종전을 알렸다.
이에 그가쉬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포로를 내어줬다.
종전까지도 스파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 같았지만, 이미 전쟁이 끝난 시점인지라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괜찮소?”
여자 둘이 지훈에게 달려들어 여태껏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히 겐포 부족에 다녀온 사이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근데 경수가 많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부상을 입은 남자의 상처가 심각했던 것.
이에 지훈은 그가쉬에게 치료를 요청했지만, 묵살 당했다.
첩자였을지도 모르는 인물을 치료해 줄 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미친 새끼가! 약속이 다르잖아!”
“난 포로를 해방한다고만 했지, 원래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약속엔 문제가 없지 않은가?”
더 이상 따져봐야 해결 될 일이 아니었기에 지훈은 뒤로 물러섰다.
“형님, 어떡하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삼일도 못 버틸 것 같은데요.”
엎친 대 덮친 격으로 현재 일행의 차는 지뢰를 밟아 망가진 상태였다.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걸어간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 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사 두길 잘했네.”
지훈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지훈, 핸드폰 샀어?”
“혹시 몰라서 구조대 호출용으로 하나 사놨었다.”
칼콘과 민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구조대가 오는 사이 가벡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훌륭한 싸움이었다, 인간.”
“너도 나쁘지 않더군.”
가벡이 지훈의 상완을 주먹으로 툭 쳤다.
처음엔 시비라도 거나 싶었지만, 전사로서 인정한다는 표시라고 했다.
이에 지훈 역시 가벡의 상완을 툭 쳤다.
“다음에 다시 봤으면 좋겠군.”
“여기 전화는 없어 보이지만, 혹시라도 전화기 있으면 전화 해라. 찾아오면 적당히 관광 정도는 시켜주지.”
지훈은 가벡에게 전화번호를 건네줬다.
구조대를 기다릴 동안 민우가 주변 식물들을 조사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위험한 얘기였기에 말렸으나, 가벡이 안내역으로 동행해서 그냥 보내 줬다.
사고를 칠까 싶은 우려가 들었지만, 날려버렸다.
‘저번보다 나아졌으니 괜찮겠지.’
총 고장 났다고 징징대던 저번과 비교해서, 부쩍 성장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구조대는 약 10시간 정도 후에 도착했다.
다행히 가벡이 그가쉬 몰래 응급처치를 해준 덕에 남자는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출장, 의료, 구조에 차량 견인까지 요청했기에 추후 청구될 가격에 머리가 지끈지끈해왔지만, 일단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구조대 청구 비용은 저쪽이 부담하겠지.’
보건데 교수는 뒤에 정부를 업고 있는 듯 했다. 구조비 정도야 어떻게 해 줄 수 있겠지.
‘이번에도 목숨 걸고 온갖 기행을 다 했네.’
지훈은 차량 좌석에 몸을 뉘였다.
렉카 조수석인지라 진동이 심했지만, 피로 때문인지 엄청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잠들려는 찰나, 반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과정이 폭력적이긴 했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조함은 물론, 평화로운 방법으로 종전을 시도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이블 포인트가 5 감소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구조는 돈 때문에 했고, 종전 역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한 거였지만 결과적으론 선행이 된 모양이다.
‘확인이나 해볼까.’
지훈은 정보창을 열었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종족 : 인간
이블 포인트 : 67 (-5)
등급 : C 등급 1티어 (+1)
보너스 점수 : 1
이능 점수 : 1
근력 : E 등급 (15)
민첩 : E 등급 (15)
저항 : E 등급 (15)
마력 : E 등급 (11)
이능 : F 등급 (8) (+1)
[이능력]
집중 (F랭크) :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극대화 합니다. 사용 시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며, 하나 혹은 여러 대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얼마간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연속 사용 시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블 포인트는 착실하게 깎여가고 있었고, 티어가 하나 상승함에 따라 C등급이 됐다.
‘그러고 보니 순찰 돌던 놈을 잡았을 때 이능도 올랐었다.’
지훈은 보너스 점수를 이능에 투자했다.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이능이 제일 쓸 만하다는 판단에서였다.
- 반영되었습니다.
이능 : F등급(8) = > F등급(9)
‘근데 등급이 C인데 능력치는 왜 다 E야.’
보통 인간의 경우 모든 능력치가 고르게 분배되어 있기에 자기 등급과 티어에 비해 능력이 낮은 게 정상이었다.
예를 들어 포미시드 같은 경우 등급에 비해 저항이 높았지만, 다른 능력들은 훨씬 낮았다.
또한 오크의 경우 근력과 민첩 능력이 월등했지만, 오크는 정말 특이케이스가 아닌 한에는 마력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등급에 비해 능력치가 딸린다는 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헬스나 격투기라도 배우던가 해야지. 쯧.’
지훈은 능력치 배분을 마치고 창을 닫으려는 찰나,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다.
바로 이능 점수였다.
- 점수를 배분하거나, 새로운 이능을 선택해 주십시오.
새로운 이능!
지훈의 눈이 흥분으로 부풀어 올랐다.
재능이 이능에 몰려있는 종족 혹은 개체를 제외하곤, 보통 각성자들은 C등급이 되면 이능을 얻을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개인의 능력 및 활동 양식에 따라 무작위로 나타났지만, 반지는 이번에도 ‘선택’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능력뿐만이 아니라 이능 역시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 추후 등급이 오를 경우 이능 점수를 추가로 획득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경험 혹은 기타 행위를 통해 무작위 이능을 각성 혹은 수련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이능 능력의 등급이 올라갈 경우 이능력을 레벨 업 할 수 있는 점수를 얻습니다.
현재 이능 점수는 9점.
등급이 10 단위로 바뀌니 1만 더 올려도 이능 점수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고를 수 있는 이능엔 뭐가 있지?’
- 강화계, 방출계, 마력계, 변이계 이능이 있습니다.
강화계는 말 그대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이능이었다.
몸의 신진대사를 낮추거나,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이능부터 몸을 불리거나 근육을 키우는 능력 등이 있었다.
방출계는 외부에 간섭할 수 있게 해주는 이능이었다.
손을 대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염력, 빙결, 발화 등의 초능력이 대부분 방출계에 속했다.
마력계는 마력에 관련 된 이능이었다.
마나를 대폭 늘려주거나, 영창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거나, 마법의 위력을 대폭 늘려주거나 하는 등 화력 하나는 끝내주는 이능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를 제외하곤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변이계는 신체 자체를 바꿔버리는 이능을 말했다.
손톱을 날카롭게 만든다거나, 온 몸에 비늘이 돋게 한다거나, 광합성을 하게 해주거나 하는 등이었다.
강화계가 원래 있었던 육체를 베이스로 단순 강화만 제공하는 반면, 변이계는 사용자의 육체 자체를 변이시킨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잠깐만. 신체 변이는 뭔데? 그럼 난 이미 변이계 이능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설명을 듣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현제 지훈은 재생과 화염 속성 변이를 갖고 있었다.
- 아닙니다. 신체 변이와 변이계 이능은 다릅니다. 모든 이능은 발동형이며, 지속 시간에 차이가 있으나 최대 하루를 넘지 못합니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엑티브와 패시브의 차이였다.
모든 계통의 이능력은 엑티브로 자기가 원할 때 마다 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고,
신체 변이는 기본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지속형 능력이었다.
지금으로선 각성자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정밀검사 외엔 신체 변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신체 변이로 유명한 건 보사(BOSA)출신 외래 연구원이 있었다. 그는 B등급 헌터로 현재 10가지도 넘는 신체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면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이라고 봐야지.’
실제로 어느 정도 변이가 겹칠 경우, DNA 재결합이 이뤄지기에 다른 종족이 된다고 봐야 옳았다.
현재 신체 변이와 유전에 대한 상관관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괴소문이 간혹 들리긴 했지만, 사실을 확인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뭘 고를까.’
강화, 방출, 마력, 변이 모두 매력적으로 보였다.
강화 같은 경우 겐포의 아들을 봐서 알 수 있듯, 짧은 시간동안 육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이능이었다.
실제로 겐포의 아들도 이능 발동 후 아음속탄(9X39mm)을 튕겨내지 않았던가.
현대 화기에 저항이 생긴다는 건 굉장한 의미였다.
더 이상 엄폐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물론, 사소한 공격 따윈 무시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그래봐야 폭탄은 못 버티지만.’
방출 역시 매력적이긴 매한가지였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경우 활용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방출계 능력자는 굉장히 희귀한 관계로 방송 말고는 단 한 번도 못 봤으나, 그 대접이 마법사만큼 후한 게 보통이었다.
마력은 지훈에게 있어선 그다지 쓸모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마법을 쓸 수는 있었으나 전부 단순한 것들뿐이었다. 보조 수단 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다.
변이는….
‘괴물 되는 것 같잖아. 싫어.’
그냥 싫었다.
이후 강화계와 방출계를 쭉 훑어봤다.
‘그나마 쓸 만 한 건 가속이랑 염력 정도인가.’
가속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사용자의 속도를 높여주는 이능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 박동, 두뇌 활동 역시 가속되기에 남발했다간 부정맥, 뇌출혈 등의 위험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었다.
염력은 손을 이용해 멀리 있는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랭크가 강해질 경우 돌진하는 적을 막거나 본인을 들어 올리는 등 엄청난 짓도 가능했지만, 안타깝게도 저랭크에선 쓸 곳이 없었다.
‘탄창 좀 쉽게 갈자고 이능 투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결국 지훈은 가속을 선택했다.
- 이능력을 얻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이능력]
가속 (F랭크) : 사용 시 사용자의 신체를 가속합니다.
내장기관 역시 가속화되기 때문에 장기 사용 시 심부전, 부정맥 등의 부작용이 올 수 있습니다.
또한 가속 상대로 무리한 운동을 할 경우 근육이 파열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짜릿했다.
C등급 밖에 되질 않았는데도 이능이 2개나 있질 않던가?
배운 기념으로 시험 삼아 발동해 봤다.
‘가속 발동.’
심장이 터질듯이 뛰기 시작했다. 온 몸의 혈관이 부서지기라도 할 듯 혈액이 미친 듯이 지훈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기분 좋은데?’
창밖을 바라봤지만 안타깝게도 풍경이 느리게 지나가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훅! 훅! 훅! 훅!
단지 주먹을 휘둘렀을 뿐인데도 광풍이 휘몰아쳤다.
이 정도라면 백병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터.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역시 훌륭한 선택이었다.’
만약 저기에 집중 이능까지 더해진다면?
후폭풍은 엄청날 테지만, 이능 지속시간 만큼은 엄청난 속도와 컨트롤을 얻을 수 있었다.
‘해제.’
이능을 해제하자 가슴이 살짝 뻐근했다.
갑작스런 심박 변화로 인한 심장통 같았다.
‘주의해서 써야겠군.’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안정시켰다. 렉카를 몰던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우와, 속도 봐. 각성자에요?”
“맞소만?”
“몇 급이에요?”
대답하려는 찰나 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새끼야. 그런 거 함부로 묻지 말라고 했냐, 안했냐. 지금 고객님 피곤해서 쉬려고 하시는데 네가 왜 방해해!”
운전자의 사수로 보였는데, 기관총좌를 잡고 있던 사람이었다. 렉카에도 기관총좌가 달려있다니, 과연 세드 전용 렉카가 아닐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신참이라서….”
“아니오. 말 몇 마디 한다고 뒤지는 것도 아니고. C등급.”
렉카 직원이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저 C등급 각성자 처음 봅니다…. 이따가 사진 좀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기분이 묘했다. 여자한테 번호를 따일 때도 이런 기분이었던가?
“됐소. 계집애도 아니고 사진은 무슨.”
렉카 직원은 울상을 지었다.
동경과 부러움.
참 낯선 감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기분 좋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