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28화 (2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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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 순찰. 어떻게 할 거지?

- 일단 지나가길 기다린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해가 지려면 적어도 5시간 이상 남았다.

발각되기 전에 굳이 시체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 지훈. 저거 선글라스 쓰고 있어. 위험해.

고블린에게 있어서 선글라스는 일종의 나이트비전 같은 존재였다. 너무 밝은 광원을 억제해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그 말은 곧 아침이라 한들 어렴풋이는 보일 정도로 시야가 회복된다는 말이었다.

- 걸리면 내가 쏜다. 주변 경계해.

아무리 소음기를 달았다지만, 일반탄을 쓰는 MP5는 생각보다 큰 소음이 났다. 혹여 선잠을 자고 있던 고블린이 깨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빈토레즈의 아음속탄은 여타 다른 무기보다 소음이 약 반 이하였다.

지근거리가 아닌 이상에야 알아들을 수 없다.

고블린은 본진에 적이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지 여유로운 자세로 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내 고블린은 방향을 틀었고, 일행이 숨어있던 골목길 어귀까지 다가왔다.

지훈의 총구가 고블린에게 향했다.

현재 고블린의 무기는 이름 모를 수제 권총과 검 한 자루가 다였다. 하지만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저 녀석이 고블린이라는 것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잘 걷던 고블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언젠가 느꼈던 이름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등 뒤에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느낌.

불안함과 비슷했으나, 분명 그것과는 본질이 다른 감각.

‘이능 발동. 집중.’

지훈은 바로 집중 이능을 발동했다.

솨아아아아.

정신이 극도로 날카로워짐에 따라 몸에서 피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야가 조금씩 점멸되더니 이내 목표, 고블린 밖에 보이질 않게 됐다.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숨을 멈췄다.

얕게 흔들리던 총구가 고정됐다.

‘허튼 짓을 하면 바로 쏴 주마.’

고블린은 슬쩍 주변을 훑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한 열 걸음 쯤 걸었을까?

집중 된 청각이 숨 들이마시는 소리를 포착했다.

바로 호루라기였다.

일행을 안심시키고 호루라기를 불 생각이었던 것!

‘불 게 놔둘쏘냐.’

고블린이 날 숨을 내뱉는 동시에

휘…

푝!

풀썩.

- 이능이 상승했습니다. F 등급 (7) = > F 등급 (8)

호루라기 소리가 끊기며 고블린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집중을 해제하자 가벼운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 칼콘. 가서 시체 가져와.

칼콘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시체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정확하게 목에 명중했다.

‘다행이야. 좋은 이능 덕을 봤군. 그리고 능력치도 상승했으니 앞으로 자주 사용해야겠어.’

사용 후 어지럼증만 제외한다면 정말 매력적인 이능이었다.

- 시체는 어떡해?

- 어차피 족장 집에 코앞이다. 주변에 버려 둬.

굳이 시체를 수습할 필요도 없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 놓은 후 돌입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저 커다란 건물이 겐포의 집이다. 옆에 있는 건 병영이야.”

아무리 대다수의 병력이 전선에 가있다고 한들 군락을 지킬 병력까지 없진 않을 것이다.

만약 일이 틀어질 경우를 위해 대비를 해둬야 했다.

가벡이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말해줬지만, 딱히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없었다.

“그 외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나?”

“아마 겐포가 폭발물을 들고 있을 거다. 조심해.”

폭발물. 굉장히 곤란한 얘기였다.

비록 화염 저항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폭발 자체에 저항이 있는 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졌다간 사지가 날아가거나, 충격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공격 받는다면 얄짤 없이 맞아야했다.

“그럼 칼콘과 내가 족장에게 가지. 둘은 병영을 맡아.”

가벡과 함께하라는 말에 민우가 울상을 지었다.

“제, 제가요?”

“문제 있냐?”

“버그베어잖아요. 어떻게 믿어요?”

“동료 버리고 가자고 하는 새끼보단 믿음직해 보인다. 닥치고 따라가.”

그렇다고 그냥 보냈다간 변사체가 될 것 같았다. 민우의 손에 수류탄을 건넸다.

“쓸 줄 아냐?”

“영화에서 본 적은 있어요.”

그대로 뒀다간 사람 잡을 것 같았기에 설명해 줬다.

“안전핀 뽑고 던지면 돼. 던지기 직전까지 안전 손잡이 꽉 쥐고 있어라. 그거 놓치면 터진다, 알간?”

안전 손잡이를 놓친다고 해도 바로 터지진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그렇게 말해뒀다.

민우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칼콘도 민우에게 뭔가를 더 건네줬다.

“가져가, 난 하나면 충분해.”

MP5용 탄창이었다.

아무리 힘이 좋다지만 방패를 든 상태로 MP5를 재장전 할 수도 없었거니와, 칼콘도 총격보단 근접전을 선호했다.

“자, 그럼 돌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잘 들어.”

[팀]

지훈과 칼콘은 겐포 족장,

민우와 가벡은 병영으로 향한다.

[겐포 족장 팀]

1 - 지훈이 먼저 문을 열고 섬광탄을 던진다.

2 - 칼콘이 방패를 앞세워 탄막을 저지하고, 지훈이 뒤에서 엄호한다.

3 - 난전이 됐을 경우 지훈 역시 근접전으로 돌입한다.

[병영 팀]

1 - 가벡과 민우는 병영 입구로 향한다.

2 - 지훈이 섬광탄을 사용하길 기다린다.

3 -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 적들을 민우가 사살한다.

4 - 놓친 적들은 가벡이 처리한다.

“다들 잘 해라. 살아서 보자.”

지훈이 일행의 눈을 각자 한 번씩 마주쳤다. 특히 민우와는 조금 더 오래 마주쳤다.

그 모습이 못 미더웠는지, 가벡이 민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수류탄 잘 던질 수 있겠나?”

민우의 표정이 하얗게 탈색됐다.

사용자가 되기에 앞서 피해자가 됐던 경험이 있던 까닭이었다. 중배와 함께 있었을 때, 민우는 수류탄이 터지며 사람 하나가 그대로 증발하는 걸 목격했었다.

“무, 무시하지 마! 잘할 수 있어.”

“그 말에 책임지길 바란다.”

“자. 그럼 출발하지.”

지훈이 족장 집으로 향했다.

고블린 기준으로 엄청나게 큰 문이 나타났다.

‘천장이 낮아서 고생할 일은 없겠군.’

지훈은 돌입 준비를 하곤 칼콘을 쳐다봤다.

“준비 됐냐?”

“응. 충분해.”

칼콘이 방패 스위치를 누르자 차쟉!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가 쫙 펴졌다. 오른손엔 흉측한 둔기를 들고 있었다.

고블린 입장에선 엄청나게 위압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간다.”

섬광탄 핀을 뽑음과 동시에 문을 활짝 열었다.

그 짧은 순간 안에 있던 고블린들을 모두 눈으로 훑었다.

‘하나, 둘, 셋, … … ….’

총 일곱이었다.

겐포로 보이는 녀석은 왕좌 같은 의자에 앉아있었고, 넷은 구석에 있는 짚단에서 자고 있었으며, 한 녀석은 보초를, 마지막 녀석은 겐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게겍?”

본진 한가운데 나타난 인간의 모습이었다. 문지기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도 본 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톡, 토르르르….

그 사이 지훈은 바로 섬광탄을 던졌다.

“수류탄!”

문지기의 외침과 동시에 깨어있던 셋이 몸을 숨겼다.

파 - 앙!

☆ ☆ ☆

… … … 파 - 앙!

섬광탄이 터진 시각. 병영 앞.

‘나오면 쏜다, 나오면 쏜다, 나오면 쏜다. 나오면….’

민우는 긴장감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지금은 실수해도 지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곧 실수 한 번이 죽음과 직결될 수 있음을 뜻했다.

가벡은 사선에서 벗어난 채 검을 고쳐 잡았다.

민우와 비교했을 때 퍽 안정 된 자세였다. 어차피 이런 전투는 수십 번도 넘게 경험했기에, 그에게 있어선 쉬운 전투에 속했다.

섬광탄 소리에 놀란 건지, 병영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알몸에 칼만 든 상태였다.

퓨퓨퓨퓩!

방아쇠 한 번에 네 발이나 되는 총알이 뿜어져 나갔다.

그 중 두발이 명중.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총알 아껴야 돼. 조종간 단발!’

민우가 조종간은 단발로 놨다.

그 사이 고블린 둘이 연달아 달려 나왔고….

퓩! 퓩! 퓩!

비록 급소는 아니었으나 나란히 총에 맞고 바닥에 누웠다.

세 명이나 당하고 나서야 고블린도 정신을 차렸는지 방패를 들고 나왔다.

‘나무방패로 총알을 막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상싱적으로 쇠가 나무를 뚫지 못할 리 없었다. 민우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퓩 - 팅!

하지만 상식과 달리 탄환은 나무에 도탄 됐다.

‘이게 뭔…?’

아티펙트였다.

얼이 나간 민우와 달리, 가벡은 도탄을 보자마자 바로 상황을 파악하곤 왼손에 E급 단도를 꺼내 들었다.

‘내가 나설 차례군.’

가벡이 바로 방패를 든 고블린에게 달려들어….

퍽!

몸무게를 잔뜩 실은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 ☆ ☆

“칼콘 진입해!”

칼콘이 문을 발로 차며 진입했다. 섬광탄이 제대로 먹힌 건지, 문을 열자마자 경계사격이 날아오진 않았다.

쿵! 쿵! 쿵! 쿵!

칼콘이 마치 멧돼지마냥 돌진했다.

“아, 아악. 안 돼!”

고블린은 그런 칼콘을 발견하고 도망치려 했지만, 보폭 차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뻑!

칼콘이 방패로 후려치자, 샌드백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문지기가 붕 떠올랐다.

엄청난 힘!

아무리 비각성자라 해도 칼콘은 오크였다.

높은 신진대사와 힘을 가진 종족인 만큼, 체급 차이가 심함 고블린 따위 돌진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지훈은 칼콘이 진입함과 동시에 지원사격을 개시했다.

목표는 누워있던 고블린이었다.

푝! 푝! 푝! 푝!

일격에 처리하지 않아도 상관없었기에 신체 부위 중 아무데나 노리고 쐈다. 현재로선 움직이지만 못하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적은 둘.

겐포 족장과, 정체불명의 고블린만 남았다.

☆ ☆ ☆

가벡의 발차기에 방패병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티펙트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각성자 같았으나, 안타깝게도 가벡도 각성자였다.

훅!

가벡이 쓰러진 방패병의 다리를 잘라낼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민첩한 종족인 고블린답게 피해버렸다.

“방패 사라졌다! 쏴!”

퓩! 퓩! 퓩!

탄막을 막아주던 방패병이 사라졌기에, 입구에 있던 고블린들이 피떡이 됐다. 지원 병력이 사라졌기에 가벡은 다시 방패벽에게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사선 베기!

방패병은 재빨리 방패를 들어 막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병의 자세가 무너졌다. 가벡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왼손 단도를 훅처럼 찔러 넣었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죽음의 일격!

경험이 적었다면 단숨에 목이 꿰뚫렸겠지만, 고블린 역시 만만찮은 상대인지 옆으로 굴러 피해버렸다.

‘입구를 막게 둘 순 없지!’

하지만 가벡의 목적은 사살이 아닌 시간 끌기.

그런 의미에서 가벡의 승리였다.

가벡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던 녀석을 있는 힘껏 차버렸고, 방패병은 1M 가량 날아갔다.

“병영 안에 수류탄 까!”

“아, 알겠어!”

☆ ☆ ☆

… … … 콰 - 앙!

멀찍이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인간? 오크? 너희는 뭐지!”

겐포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원래 전투 중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 지훈이었으나, 기습을 위해 적당히 받아줬다.

“곧 죽을 양반이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그가쉬가 보낸 용병이냐?”

“맞아. 왜?”

“녀석이 제시한 것의 두 배를 주겠다.”

조약한 협상에 웃음이 나왔다.

창조주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건 너희가 줄 수 없는 거거든. 더 매력적인 제안 없어?”

지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 베스트 타이밍은 딱 겐포가 입을 열 때였다.

“네가 원….”

퓩!

퍽!

원래대로라면 족장이 피를 쏟으며 쓰러져야 했거늘, 겐포 옆에 서있던 정체불명의 고블린이 막아버렸다.

‘이런 썅!?’

다행히 완벽하게 막아낸 것은 아니었는지, 고블린의 손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 모습으로 추측 건데 손에 총알이 박힌 것 같았다.

‘이 새끼는 또 뭐야!’

총알이 다시 한 번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지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포미시드 때의 기억 때문 이었다.

“대화 중 공격하다니! 비겁한 놈!”

“지랄하고 앉아있네. 내가 뒤질 판에 그딴 게 어디 있어.”

“아버지. 제가 저 들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가라, 아들아!”

철컥 철컥 철컥!

갑옷을 입은 고블린이 칼콘에게 달려들었다.

들고 있는 무기는 조악한 철검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위험한 냄새가 났다.

- 전방 강화계 이능 사용 감지!

- 상대의 육체가 강화됩니다!

‘이능력자!?’

지훈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한 일반적인 경우. 각성자들은 C등급이 되면 이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곧 저 고블린 역시 C등급 이상이란 말이었다.

“칼콘, 피해!”

“겨우 고블린이잖아. 괜찮아!”

피하라고 소리쳤지만 칼콘이 무시했다.

덩치가 있는지라 고블린 따위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방패로 막고 한 번 후려치면 끝날 거야.’

칼콘이 달려오는 고블린을 가로막았다.

마치 거대한 벽이 생겨난 것 같은 착각.

우월한 체급 차와 아티펙트로 무장한 칼콘이었다. 웬만한 적에게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깡!

쩌적!

프스스스스!

하지만 검 한 번 받아내자 생각이 달라졌다.

‘무, 무슨 힘이 이렇게 세!’

겨우 50kg도 안 돼는 녀석에게 맞았는데, 30cm쯤 뒤로 밀려났다. 게다가 검을 받아낸 방패는 쩍 하고 이까지 나갔다.

“각성자?”

칼콘이 그제야 지훈의 뜻을 알아채곤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렸다.

“왜 남의 전쟁에 끼어들지?”

“구할 사람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남이 얼마나 죽든 상관없다는 건가?”

씁쓸한 질문이었다.

“도덕책 읊는 소리 그만 하지. 피차 피곤한데.”

고블린이 다시 칼콘에게 달려들었다.

“칼콘, 최대한 버텨! 내가 엄호한다!”

고블린은 전력으로 가겠다는 듯 도약 공격을 시도했다.

첫 일격이야 충격지점이 낮았으니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어깨 주변을 맞았다간 그대로 고꾸라질 터였다.

‘때리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지훈은 급히 조종간을 연사로 놓고 그래도 쭉 갈겼다.

표표표표표푝!

티팅!

많은 탄환 중 딱 두 발만 명중했고, 그나마도 갑옷과 저항에 막혀버렸지만 그 걸로도 충분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물리학을 무시하고 공중에서 받은 충격까지 버틸 도리는 없었다.

고블린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칼콘 이리와!”

이번엔 무시하지 않고 곧바로 칼콘이 지훈에게 달려왔다.

“저 새끼 위험해 보인다. 섣불리 다가가지 마.”

“알겠어!”

더 이상 칼콘이 버티는 사이 쏘는 방법은 먹히질 않았다. 전략에 수정을 가해야 했다.

‘폭발 탄환을 써볼까?’

애매했다.

칼콘이 휩쓸릴 가능성은 물론, 건물 높이가 낮기 때문에 천장이 무너져 내릴 위험도 있었다.

결국 빈토레즈를 내려놓고 등에 매고있던 C등급 창. 여왕의 은혜를 꺼냈다. 길이가 약 1m 50cm밖에 되지 않는 단창이었지만, 그 걸로도 충분했다.

‘고블린의 체구가 작은 만큼 리치도 짧을 거다.’

“창이라니. 진심이야?”

“어차피 총으론 못 죽여. 빈틈 노릴 자신도 없다.”

집중 이능을 쓰면 가능 하겠지만, 만약 그 사이 저 녀석을 끝내지 못한다면 도리어 이쪽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Koor puu(나무 껍질).”

마법을 완료하자 지훈과 칼콘의 몸에 나무껍질이 돋아났다.

비록 나무로 만든 얇은 막이라 할지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지훈은 살짝 정보창을 확인했다.

[정보]

저항 : D 등급 (15+5)

나무껍질의 영향으로 저항이 5 증가, 현재 D등급이 된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저 무식한 일격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간다, 칼콘. 앞뒤로 둘러싸서 상대한다!”

“알겠어!”

타탓!

지훈과 칼콘이 동시에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실력 차이가 월등하면 모를까, 혼자서 둘을 상대하긴 어려웠다. 특히 앞뒤로 둘러싸고 사각에서 내지르는 일격은 등에 눈이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엑!”

고블린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거리를 벌렸다.

누구 하나라도 달려들면 그대로 전투가 시작 될 아찔한 상황. 하지만 지훈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 끌어봐야 불리한 건 저쪽이다.’

시간을 끌면 분명 가벡과 민우가 지원을 와 줄 터였다.

☆ ☆ ☆

수류탄이 터짐과 동시에 병영이 초토화가 됐다.

움막 자체가 반 쯤 날아갔을 정도였다.

“나는 방패병을 맡는다! 너는 계속 경계해!”

“걱정 마!”

민우는 이제 좀 안정됐는지, 바닥에 풀썩 엎어졌다.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한 후 빠른 속도로 재장전 했다.

“끄어어…!”

장전이 끝나자마자 병영 안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부상을 입었기에 이탈하려는 시도로 보였지만, 채 도망가기도 전에 총알이 틀어박혔다.

이제 남은 건 방패병 뿐.

민우는 고민했다.

‘도와줘야 하나?’

맞출 수 있다면 좋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가벡이 맞을 수도 있었다.

챙 - 챠장! - - 뻑!

민우는 빠른 속도로 치고 박는 둘을 바라봤다.

방송 혹은 영화로만 봤던 각성자 간 전투였다.

겨우 F급~E급 남짓한 각성자들의 싸움임에도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민우로썬 궤적을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만 두자. 지금 내가해야 할 건 경계다.’

껴 봐야 도움 될 게 없음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았다.

민우는 고개를 돌리곤 다가오는 녀석이 있는지 경계했다.

얼마 후 덜 자란 고블린 하나가 검을 들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꺼져!”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소음기를 제거하고 위협사격을 몇 발 쐈다.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리자 녀석은 겁먹고 도망쳤다.

가벡은 고블린 너머로 민우를 쳐다봤다.

병영 정리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나도 제대로 해야겠군.’

이제 방해받을 위험이 사라졌기에, 가벡은 바로 방패병에게 들러붙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방패병의 방패에 들러붙었다고 해야 옳겠다.

“캬각! 뭐야!”

여태껏 견제만 하던 가벡이 방패로 찰싹 달라붙자 방패병은 당황했다. 그가 가진 아티펙트는 방패 뿐, 들고 있던 단검은 일반 무기였다.

“꺼져!”

있는 힘껏 방패를 휘둘렀지만, 몸무게가 족히 2배는 차이나는 거구가 쉽게 떨어질 리 없었다.

방패병은 어쩔 수 없이 단검을 휘둘렀지만, 그나마도 가벡의 아티펙트에 막혀버렸다.

아찔한 힘겨루기!

가벡의 아티펙트와 방패병의 단검이 동시에 떨렸다.

끼긱 - 쨍!

얼마 지나지 않자 방패병의 단검이 깨져버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깍!”

유일한 공격수단이 사라졌다는 좌절도 잠시.

방패병의 어깨에 가벡의 검이 깊게 틀어 박혔다.

“걹… 꺽….”

가벡이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방패병이 피 분수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끝났군. 이제 겐포 족장 쪽으로 가자.”

☆ ☆ ☆

그 시각.

지훈과 칼콘은 여전히 고블린과 대치중이었다.

결국 칼콘이 참지 못하고 방패를 앞세워 달려들었다.

“그워워억!”

평소 아담한 말투와 다른, 오크로서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블린은 칼콘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검을 휘둘렀다.

방패와 검의 충돌!

쩍!

하지만 검은 방패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박혀버렸다.

나름대로 힘을 실은 일격을 날린 듯싶었지만, 방패만 베어내 도리어 검이 박혀버린 것이었다.

칼콘은 칼이 박힌 걸 확인하자마자 방패를 휘둘렀다.

제 아무리 각성자라 한들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버리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고블린도 알았기에, 고블린은 깔끔하게 검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죽어!”

무장 해제된 적은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름없었기에 칼콘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흉측한 쇠뭉치가 하늘을 날았다.

머리를 목표로 한 횡격!

하지만 고블린은 허리를 숙여 피한 뒤 달아났다.

“어딜 가나!”

아니, 달아나려고 했다.

뻑!

지훈이 휘두른 창이 고블린에게 그대로 직격, 입고 있던 갑옷이 박살났다. 과연 C급 아티펙트였다.

신금속으로 만든 조악한 탄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과였다.

“끄어어억!”

파편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튀었다.

갑옷이 박살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으니, 착용자에게도 큰 충격을 줬을 터.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고블린의 팔이 부러져 있었다.

‘끝났군.’

이 대 일 상황에서 한 손을 쓰지 못하는 부상이었다.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었다.

“이봐, 살아있나!”

게다가 이젠 병영 정리를 끝마친 가벡과 민우까지 합류했다. 겐포와 그 아들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의.”

칼콘이 짧게 대답하곤 다시 메이스를 휘둘렀다. 이에 고블린은 다른 한 팔로 흘려낸 뒤, 굴러서 피했다.

“뭐야! 내 껀 왜!”

E급 아티펙트의 최후였다.

“그래봐야 구석에 몰린 쥐다. 천천히 요리해.”

가벡과 지훈까지 합세해 고블린을 구석에 밀어 넣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겐포였다.

그는 어디서 꺼냈는지 RPG를 들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장착되어 있는 탄두는 파쇄탄.

여기서 저걸 터트렸다간 겐포 포함 저항력이 낮은 자들은 모조리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휩쓸릴까 쓰기 주저한 물건을 꺼내든 모습에서 비장함이 흘렀다.

반면 지훈 일행은 싸늘하게 식었다.

지훈이야 저항으로 버티면 죽진 않을 터였고,

칼콘 역시 방패로 막으면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민우와 가벡이었다.

저걸 맞았다간 무조건 육편이 된다.

“이제 그만해라. 더 이상 했다간 발사하겠다.”

칼콘이 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무시하고 돌격하겠다는 기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였으므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걸 쐈다간 너도 죽을 텐데?”

“상관없다. 어차피 너희는 내 아들을 죽이고 그 다음으로 날 죽일 걸 알고 있다.”

지훈은 긍정을 담은 침묵을 돌려줬다.

“너희가 원하는 건 종전이겠지. 그래. 우리가 졌다. 내 목숨을 가져가라.”

엄청난 제안에 가벡이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목숨을 그냥 주진 않을 테고, 조건은?”

“내 아들의 목숨. 그리고 평화.”

평화라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던 가벡이 고함을 질렀다.

“웃기지 마라! 이 전쟁으로 죽어간 동료가 수십이다. 평화가 온다면 그 동료들의 죽음은 도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

“너야말로 동료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구나, 어린 버그베어여. 애초에 이 전쟁의 원흉이었던 녀석들은 첫 전투에서 죽었다. 어찌 더 이상 명분 따윈 없고 증오만 가득한 전쟁을 계속하려 하는가?”

“죽어간 동료들의 넋이 아직도 매일 밤 꿈에서 울부짖는다. 그런 반쪽짜리 승리로는 내 동료들을 위로할 수 없다!”

지훈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깊게 알 순 없었지만, 될 수 있으면 좋은 방향으로 끝내고 싶었다.

“나도 겐포 의견에 동의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죽었다.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명예다.”

명예라는 말에 지훈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개미새끼도 명예 운운하더니, 다들 미쳐 돌아가는군.’

“명예고 나발이고 다 죽어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얼마나 더 뒤져야 만족하겠냐, 앙?”

지훈의 고함에 겐포와 가벡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말로는 명예를 부르짖는다고 한들, 이미 속으로는 이 전쟁이 두 군락간의 감정싸움으로 변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선 결국 이 전쟁은 길 잃은 분노와 상처받은 승리밖에 낳질 못하게 되어버렸다.

“저 인간의 말이 옳다. 이젠 이 끔찍한 전쟁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 우리가 졌다. 내가 모두 책임지지. 날 죽여라.”

“네가 죽인다고 이 전쟁이 끝날 것 같은가? 네가 그런 제안을 해도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우리 클랜장이다.”

겐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적어도 내 아들과, 내 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기는 걸로 만족한다.”

결국 겐포의 동의로 이 전쟁의 막이 내렸다.

겐포의 아들은 끝까지 부르짖으며 저항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던가. 마지막 가는 길 그게 너무나도 아쉽구나.”

가벡의 칼에 의해 겐포가 최후를 맞이했다.

죽음에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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