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겐포 부족 -->
지훈이 내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 그가쉬 클랜의 각성자 가벡이 안내역으로 동행
2 - 포로를 감옥이 아닌 주택에 연금.
만약 위험한 임무라면 그가쉬가 가벡을 내어주지 않을 터였고, 다녀오는 동안 포로들의 피로도 줄일 수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그가쉬는 흔쾌히 가벡을 붙여줬다.
☆ ☆ ☆
일행은 겐포 부족 군락으로 향했다.
겐포 부족은 의외로 그가쉬 클랜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벡 말에 의하면 걸어서 3시간 정도면 도착한다고 했다.
근데 독특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밤이나 새벽이 아닌 아침에 출발한다는 거였다.
“밤에 가는 게 더 좋지 않나? 아침은 위험할 텐데.”
질문에 가벡이 가시나무를 잘라내며 답했다.
“고블린은 야행성 종족이다. 밤눈은 굉장히 밝지만 아침에는 멀리 보질 못한다.”
원리는 알 수 없었으나 고블린은 빛이 과도할 경우 앞을 잘 보지 못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크나 버그베어 역시 다크비전(밤눈)을 갖고 있긴 했으나, 낮에 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많은 학자들은 고블린의 선조가 오랜 동굴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아직까진 가설에 그쳤다.
걸어서 이동하길 약 2시간 반. 민우가 고통을 호소했다.
“무릎이 아파요… 조금만 쉬었다 가요.”
평소 운동을 잘 하지 않는 현대인들 같은 경우, 갑자기 급격한 운동을 할 경우 슬개골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비만이 동반될 경우 하중이 심해져 더더욱 그랬는데, 민우가 딱 그 케이스였다.
아마 현재 체중도 간신히 버티는 데 거기에 방탄복 포함 온갖 도구들을 짊어지고 있으니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여긴 위험해. 고블린들이 순찰을 도는 장소다.”
“조금만 더 버텨 볼게요.”
울먹이는 표정이 애처로워 보였다.
지훈은 그런 모습을 보며 이번 임무 끝난 뒤 민우에게 체력 단련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동 좀 해라. 뒤처지면 못 챙긴다.”
덧붙여 한 소리 하려는 순간 총 소리가 들려왔다.
타 - - 앙.
소리를 신호로 일동이 몸을 숙였다.
‘소리가 가깝다. 교전인가?’
숨죽이고 기다렸으나, 추가 총격은 없었다.
단순 오발이거나 야생 짐승에게 쏜 듯싶었다.
“벗어나자. 고블린 녀석들이 순찰을 도는 것 같다.”
가벡이 상체를 숙이곤 최대한 조용히 이동했다.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온 몸이 곤두섰다.
게다가 빈토레즈가 가벼운 총이라 한들, 총알 포함 3kg 넘는 쇳덩이였다. 계속 들고 있자니 손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빌어먹을 박쥐. 잘못하면 잡아먹힐 뻔 했어.
- 이거 어떡하지? 분명 주변에서 총 소리를 들었을 거야.
- 놓고 갈 순 없어. 동료들이 굶주렸다고.
- 빨리 해체해서 들고 가자.
마치 칼과 칼을 비비는 것 같은 기괴한 목소리. 그르렁 거리는 것 같은 버그베어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고블린인가. 인원은 둘 같다.’
지훈은 왼 주먹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 왜?
- 고블린이다. 현재 박쥐 시체를 해제하고 있다.
가벡이 무슨 뜬금없냐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가벡의 각성 등급은 E등급. 지훈이 D급 각성자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 1시 방향. 거리는 약 500M 전후. 인원은 둘.
- 확실한가?
- 장담하지.
현재 진행방향과 딱 맞물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마주칠게 뻔했다.
가벡이 이를 꽉 깨물었다.
- 싸우면 주변에 있는 순찰대가 몰려온다. 피해야 해.
-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가벡은 피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지훈은 거절했다.
이동 중 적의 순찰대를 만난 것으로 봤을 때 가벡 역시 적의 순찰 지역과 시간을 정확하게 알진 못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가벡을 믿기 어려웠다. 괜히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 밤이 오면 외통수나 다름없었다.
- 처리하고 간다.
- 어떻게?
지훈은 들고 있던 빈토레즈를 두드렸다. 소음기 일체형에 아음속탄을 쐈기에 소음이라면 둘째가면 서러운 녀석이었다.
- 가벡. 네 총엔 소음기가 없으니 뒤로 물러서라. 칼콘, 민우 따라와.
지훈을 필두로 일행이 웅크린 채 앞으로 나아갔다.
원래대로였다면 가시 돋친 식물들을 전부 잘라내며 가야 했지만, 지금은 소음 상 그럴 수 없었다.
거치적거리는 풀과 나무들을 최대한 걷어내며 전진했다.
어느 정도 다가가자 비각성자인 칼콘과 민우의 귀에도 고블린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기다려.”
고블린들은 털 달린 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산적처럼 보였다. 게다가 광원을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눈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 쏠까?
- 기다려. 너랑 난 각자 좌우로 흩어지고, 민우는 거기서 대기해.
스윽, 스윽, 스윽.
둘이 움직이며 작은 소리가 났지만 바람에 묻혔다.
셋 다 자리를 잡자 칼콘과 민우가 지시를 기다렸다.
지훈은 칼콘과 민우에게 오른쪽 녀석을 쏘라고 지시했다.
- 대기.
왼 손을 들어 쫙 핀 후.
- 발포.
주먹을 꽉 쥐었다.
퓨퓨퓨퓨퓽퓽!
퓨퓨퓽! 퓨퓨퓽!
푝!
두 고블린이 풀썩 쓰러졌다.
민우는 풀 오토 그대로 연사했고, 칼콘은 점사로 두 번 끊어 쐈다. 반면 지훈은 단 발로 정확하게 고블린의 머리를 맞췄다.
쓰러진 걸 확인하자마자 지훈이 달려 나가, 쓰러져 있던 고블린들을 확인 사살했다.
아무런 반응 없는 게 일격에 즉사한 듯싶었다.
지훈이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했어.”
“감사합니다.”
“근데 앞으론 총알 아껴. 될 수 있으면 점사나 단발로 쏴.”
상황을 정리하고 있자니 뒤에서 가벡이 다가왔다.
“솜씨 좋군.”
“겨우 이 정도로 놀랐다간 머지않아 심장마비로 죽을걸.”
농을 건네자 웃음이 돌아왔다.
“군락까지 얼마나 남았지?”
“얼마 남지 않았다. 10분 정도.”
시체를 숨기는 것 보다 발각되기 전에 본진을 터는 게 나아 보였다. 일행은 시체를 내버려 두고 전진했다.
연녹색을 띈 기분 나쁜 강을 건너, 문명의 손길이 분명한 나무다리를 건넜다.
이후 다시 길이 아닌 숲으로 이동했다. 드문드문 농작지가 보였지만 일을 하는 고블린은 보이질 않았다.
“근데 고블린들은 덫을 놓지 않은 모양이군?”
차를 타고 오다가 지뢰를 밟았던 게 떠올랐다.
그 덕에 전면 오른쪽 크랭크축이 작살이 났고, 왼쪽 프레임과 문은 전부 찌그러졌다.
‘배상하려면 돈 장난 아니게 깨지겠네. 빌어먹을.’
“아니. 전부 내가 보고 피해온 거다.”
가벡은 가슴을 쫙 펴곤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여태까지 오며 지훈과 칼콘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올가미 덫부터 꼬챙이, 낙석 온갖 종류의 함정이 산재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뢰가 없었던 것일까?
‘아무리 내가 각성했다고 한들, 덫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앞으로 대인전투가 예상될 땐 덫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지훈이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겐포 부족의 군락에 도착했다.
☆ ☆ ☆
겐포 부족 군락은 굉장히 독특했다.
집들이 전부 작았는데 꼭 놀이터 장난감 집 같았다.
건축 양식은 버그베어와 달리 나무보단 식물을 더 선호하는 듯 집 자제가 거의 다 식물 줄기로 지어진 것 같았다.
- 진입한다.
- 알겠다.
밝은 대낮.
시간은 약 오후 1~2시.
인간에게 있어선 한참 행동할 시간이었지만, 야행성 종족에게 있어선 가장 깊이 잠들 시간이었다.
햇빛이 쨍쨍한 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이 묘했다.
- 족장의 집은 어디지?
- 군락 중앙에 있다. 20분 정도 이동해야 해.
털과 굳은살 가득한 손가락이 타 건물보다 높게 올라간 건물을 가리켰다.
- 저기 먼저 가지.
- 안 돼. 일단 부상병들 쉼터 먼저 친다.
거래와는 다른 내용에 지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쉬와 지훈 사이에 있던 거래는 ‘겐포의 목을 가져오라’ 였지 ‘겐포 부족을 말살하라’가 아니었다.
- 거긴 왜?
- 완치되면 다시 총을 들 놈들이다. 지금 없애야 한다.
- 개소리 집어치워. 그건 너네 사정이지, 내 알 바 아니다.
- 거부권은 없다. 가야 해.
가벡이 으르렁거렸다.
부족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니, 강력한 아군이 있는 지금 적의 뿌리를 뽑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건 버그베어 얘기고, 지훈 일행은 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 이 전쟁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가벡과 지훈 사이에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갔다.
부스럭.
저벅 저벅, 저벅.
갑자기 바로 옆에 있던 움막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왔고, 서로를 헐뜯던 가벡과 지훈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오줌….”
고블린은 졸린 눈을 부비며 움막 구석으로 향했다.
딱 지훈이 있는 쪽이었다.
일행이 눈만 굴려 고블린을 쳐다봤다.
어린 녀석인지 아기처럼 배가 툭 튀어나왔고, 성체 고블린에 비해 팔 다리가 짧은 녀석이었다.
어린 고블린은 성큼성큼 걸어 지훈 바로 앞 까지 다가왔다.
일행과 어린 고블린의 거리는 1M.
싸늘했다.
‘죽여야 하나?’
도망가기엔 이미 너무 깊은 곳 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저 녀석이 일행을 발견하고 비명이라도 질렀다간 전면전이 벌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침이라 눈이 어두운지, 어린 고블린이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쉬이 -
조르르….
어린 고블린은 움푹 팬 구덩이에 볼일을 보곤, 대충 흙을 덮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찰나….
빠직.
가벡이 바닥에 있던 나뭇가지를 밟았다.
어린 고블린의 고개가 일행에게로 돈다.
어린 고블린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을 찌푸린다.
지훈은 왼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칼콘이 MP5를 고블린에게 겨눴다.
“뭐지?”
어린 고블린이 눈을 비빈다.
지훈의 손이 파르르 털린다.
주먹을 쥘 준비를 한다.
칼콘의 손가락 역시 고민한다.
가벡이 놀라서 날뛰는 숨을 참는다.
“잘못 봤나. 에잇-취!”
어린 고블린이 재채기를 했다.
어린 고블린이 등을 돌려 움막으로 향했다.
어린 고블린이 사라졌다.
- 푸하!
- 위험했어.
- 다행이다… 다행이야.
- 소리 낸 새끼 누구야!
지훈이 눈을 부라리자 가벡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 이 개새끼야. 줄초상 날 뻔 했잖아!
- 미안하군.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부상자를 처리하고 가는 게 옳았지만, 그러기엔 뒷맛이 썼다.
이블 포인트는 물론이고, 의뢰와 상관없는 자들은 죽이는 동시에,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 집어치워. 우린 부상자 죽일 생각 없으니까, 하고 싶으면 겐포 목 따고 나서 너 혼자 해. 알겠냐?
가벡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고집을 부렸다간 쓸 데 없는 위협만 늘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 그럼 바로 겐포에게 가겠다.
가는 도중 몇몇 고블린을 만나긴 했지만 발각되진 않았다.
군락은 굉장히 넓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민간인 뿐. 그가쉬 말대로 병력은 대부분 전선에 있는 모양이었다.
겐포 족장의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이었을까?
순찰을 도는 고블린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