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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26화 (26/173)

<2권에서 계속>

2권

<--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다.-->

포로들은 군락 외곽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돌과 쇠로 만든 조악한 건물이었으나, 사람 몇 가두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여기다.”

지훈은 감옥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사람이 셋 있었는데, 모두 겁을 잔뜩 먹었는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쟤들 왜 저래. 아무 짓도 안한 거 맞아?”

가벡이 감옥지기를 눈으로 흘겼다.

“골긱이 밤에 암컷을 건드리려고 했지만, 제가 막았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정말입니다!”

“그르르!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제가 막았….”

“처음부터 못하게 잘 봤어야지!”

빡 소리가 나며 감옥지기의 얼굴이 돌아갔다.

‘다행히 시도는 있었지만 결과는 없었군.’

시도만으로 트라우마가 생기기엔 충분했겠지만, 도중에 막혔다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가벡에게 두드려 맞는 감옥지기를 무시하고 감옥 안으로 말을 걸었다.

“이봐 거기. 괜찮소?”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 않았다.

상태가 퍽 좋지 않아 보였다.

“구하러 왔소. 얘기 좀 합시다.”

고개를 숙였던 여자 둘이 창살 앞으로 들러붙었다. 반면 남자는 몸이 좋지 않은지 누워서 신음소리만 내뱉었다.

“사, 사람? 사람이에요? 살려주세요. 제발!”

“죽고 싶지 않아요. 뭐든 할게요.”

“일단 진정 좀 하시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한숨을 푹 내쉬곤, 뒤에 있던 민우를 불렀다.

“야, 초코바랑 칼로리바 내놔.”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조끼에 넣는 거 다 봤어 새끼야. 빨리 내놔.”

“조난당했을 때 먹으려고 챙긴 거란 말이에요.”

참 쓸 데 없는 부분에서 준비가 투철했다.

“개소리 집어치워. 네가 우리 버리고 도망가지 않는 이상은 조난 따위 안 당한다.”

혹여 당했다고 한들 저런 물건 없어도 아사보단 짐승이나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게 빨랐다.

지훈은 음식을 창살 너머로 건네줬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여자들은 순식간에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인간들의 음식을 먹었으니,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조금은 진정이 됐으리라.

“다 먹었으면 이제 뭔 일 당했는지 들어나 봅시다.”

교수 말대로 포로들은 전부 조교였다.

지질학을 전공했고, 신금속을 찾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경비 같이 있었다며. 걔네는 어쩌고?”

“버그베어들이 나오자마자 전부 도망 쳤어요…. 이길 수 없다고….”

하필 골라도 저런 놈 골랐을까 싶기도 했지만, 비각성자 기준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보수도 살아야 받을 수 있는데 죽어서야 의미가 없었다.

경비 이름이라도 알아두려고 묻자 대답이 뒤에서 돌아왔다.

“모두 죽였다. 대답은 입 세 개로도 충분히 뽑는다.”

도망자다운 최후였다.

“학자라고 설명은 했소?”

“했는데 계속 저희를 믿을 수 없다고만….”

그도 그럴 게 조교의 배낭에서 지도가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상주인구가 적은 가시산맥 지도는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갖고 있는 자라곤 몇 달에 한 번씩 드나드는 행상인과 각 부락 지도자들 정도가 다였다.

이 이유로 버그베어들은 조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도대체 지도는 어디서 구한 건데?”

“리뱃에 있는 버그베어에게서 구했어요. 옛날에 지도장이였다고 말했다고요!”

지훈이 그벡을 쳐다봤다.

“다 맞는 말 같은데 왜 계속 잡아두는 거지? 이들은 무고한 사람들이다.”

“나한테 물어봐야 알 수 없다. 그가쉬 님의 선택이다.”

다시 포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서 얘기 해보겠소. 조금만 더 기다리쇼.”

“가지 마세요. 제발! 제발요… 살려주세요….”

“내가 여기 있어봐야 당신들이 거 있는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야. 금방 해결하고 오지.”

등 뒤로 포로들의 절규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확인은 끝났나?”

그가쉬는 두르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내가 장담하지. 저들은 첩자가 아니다. 학자다.”

예상했던 말인 듯 그가쉬는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이건 뭐지? 우리 부락의 위치가 그려져 있다.”

“리뱃에 있는 버그베어에게서 구했다고 들었다.”

“거짓말. 우리 부락에 지도장이는 단 한 명밖에 없어!”

“그럼 저들이 어떻게 지도를 갖고 있지?”

“고블린이 줬겠지. 그러니 고블린들의 스파이라는 거다.”

말이 통하질 않는다. 벽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좋다. 그럼 우리가 리뱃에 가서 그 지도장이라는 녀석을 찾아오지. 그럼 전부 해결되는 것 아닌가?”

“아니. 믿을 수 없다. 혹여 지도장이라는 녀석이 있다고 해도 그 녀석이 고블린과 한패일 수도 있잖아?”

의심이 의심을 낳는다고 했던가.

살아남기 위해 매사에 의심을 깔아두는 것 까진 좋았지만, 그 정도가 심해보였다.

‘편집증 걸린 새끼.’

더 얘기해 봐야 시간 낭비일 것 같아 다른 제안을 꺼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두당 천 주마. 넘겨라.”

“팔라는 거로군?”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다.”

“싫다면?”

“이유나 듣고 싶군.”

“인간의 돈 따위 여기선 휴지조각과 다를 바 없다.”

가끔씩 행상인이 오간다고 한들, 물물거래를 할 뿐이지 돈을 주고받진 않았다.

돈을 갖고 있다면 거래에 쓸 순 있겠지만, 화폐 단위를 모르는 그가쉬 클랜 쪽에선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분명 바가지나 쓰겠지.

날카로운 갑론을박이 약 10분.

한 치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에 화딱지가 났다.

결국 일행은 머리를 환기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형님, 잠시 얘기 좀 하시죠.”

민우는 주변을 훑더니 일행을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그냥 강제로 뺏죠.”

“기껏 여기까지 와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가쉬 클랜 측에 각성자가 얼마나 많을지 몰랐다.

혹여 그 수가 적다면 강행돌파가 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에 누가 죽을지 몰랐다.

포로가 죽는다면 보수를 잃는 게 다였지만 사망자가 칼콘이나 민우가 될 수도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칼콘도 어이가 없었는지 민우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다 다 죽어. 여기 인구만 해도 200이 넘는데 그걸 뚫고 가자고?”

“문지기랑 간수만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밤에 기습하면 가능할 겁니다.”

때마침 셋 다 총기에 소음기가 붙어있긴 했다.

“칼콘. 아는 사람 있다며, 괜찮아?”

“한다면 따라는 가겠지만… 불편해.”

“밤에 기습하죠.”

“됐어. 벌써부터 그런 생각하긴 이르다.”

민우는 자기 생각이 거절당하자 고개를 푹 숙였다.

만드라고라 때 아무것도 한 게 없었기에 이번엔 도움이 되려는 마음에서 꺼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여지는 남겨두자.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나고 해도 늦지 않아.”

돌아가자 그가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귀가 서있는 것을 보아 중요한 얘기를 할 것 같았다.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포로가 잡혀있는 이유는 전쟁 때문이지 않던가. 너희가 아군이라는 걸 증명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 말이지?”

“겐포 족장의 목을 가져와라.”

겐포는 버그베어와 전쟁 중인 고블린 부족이었다.

두 종족의 무력차가 있으니 적어도 숫자가 1.5배 이상 되지 않는 이상에야 전쟁에 응해줄 리 없었다.

어림잡아도 고블린의 숫자는 300이상. 부족 한가운데로 쳐들어가서 족장의 목을 가져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헛소리 집어치워!”

말도 안 돼는 제안에 지훈이 탁자를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가 방 안에 날카롭게 튀었다.

“불가능한 조건도 아니다. 지금 겐포의 전사들은 모두 전선에 있다. 전선을 빙 돌아 후방으로 진입하면 군락에 무혈입성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직접 가지 왜 우릴 보내지?”

그가쉬는 잠시 침묵했다.

“우리 부족에 남은 각성자는 이제 가벡 하나다. 반면 겐포 쪽은 적어도 다섯 이상 남은 것 같더군.”

얘기를 들어보니 가벡은 고블린들이 우회타격을 할 거란 소식을 듣고 매복하던 중이라고 했다.

“그 다섯도 거의 다 전선에 있다. 군락에는 부상자와 여자밖에 남아있질 않아.”

찝찝했다.

겨우 용병일 때문에 남의 전쟁에 끼어드는 것도 그랬고, 허접해 보이는 전략도 전부 말이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셋은 다시 공터로 나와 말을 주고받았다.

“찝찝해.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배신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여긴 하나라는데 굳이 각성자 다섯이나 있는 고블린한테 갈 필요가 있어요?”

타당한 의견이었다.

그가쉬 말에 의하면 현재 클랜 내 각성자는 가벡 하나다.

가벡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고, 들고 있는 총도 샷건 하나가 다였다.

반면 지훈의 무기는 빈토레즈. F급 아티펙트를 종잇장처럼 관통하는 물건이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중거리에서 저격한다면 가벡은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문제가 많다.’

첫째로, 버그베어는 오크처럼 다크비전(밤눈)을 가진 종족이었다. 지훈이야 그나마 경험이 있지만, 칼콘과 민우의 경우 잠입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현재 칼콘의 장비는 갑옷이었는데, 움직일 때 마다 너무 큰 소음을 발생시켰다.

‘포로 하나가 반병신이라 데려가려면 무조건 칼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럼 소음은 어쩌지?’

소음을 위해 갑옷을 벗겼다가 잠입에 실패하면, 총에 대한 방비가 전무했다.

그렇다고 민우 하나 데리고 가자니 못마땅했다.

부상당한 포로는 누가 업는단 말인가?

둘째로, 이동 수단이었다.

현재 렌트한 SUV는 지뢰 때문에 앞쪽 크랭크가 작살나서 버려두고 온 상태가 아니던가. 걸어서 도망가야 했다.

버그베어들의 말을 탈취할 순 있겠으나, 문제는 승마였다.

지훈은 켄타우르스 말곤 말 따위 본 적도 없었고,

칼콘 역시 보병 출신이라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민우는…

셋째는 이블 포인트였다.

문을 열어 준 상대의 등에 칼을 박는다?

명백한 배신이었다. 이런 짓 했다간 포인트가 몇이나 오를지 짐작할 수 없었다.

현재 포인트는 72.

만약 포인트가 18 이상 오른다면 죽게 된다.

포로를 구했으니 어느 정도 상쇄될 수도 있고, 식인을 하는 종족 특성상 버그베어를 죽여도 포인트가 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결과를 알 수 없으니 꺼림칙했다.

그 외 칼콘과의 관계악화나, 포로 처형 등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어려운 조건이었다.

‘썅.’

한숨에 짜증을 담아 내뱉었다.

“난 차라리 고블린 쪽에 잠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칼콘의 의견 역시 타당했다.

첫째로, 그가쉬의 말에 의하면 현재 겐포 측 각성자는 대부분 전선에 나가있다고 했다.

군락 내에 들어간다면 손쉬운 싸움이 될 터였다.

둘째로, 이블 포인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물론 남의 전쟁에 제 3자가 끼어들어 깽판을 놓는 셈이니 조금 정도는 오르겠지만, 인명구출이라는 동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 될 터였다.

셋째로, 고블린은 약한 종족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한들, 고블린은 버그베어와 비교해 굉장히 약한 종족이었다. 게다가 이쪽은 강력한 각성자(지훈)가 있음은 물론 장비까지 출중한 상황이다.

경비 몇 정도는 방해가 되질 않았다.

그가쉬와 겐포, 단순 비교로는 후자 조건이 좋았다.

“둘 다 매력적인 의견이긴 한데, 잠시 생각 좀 더 해보자.”

가까운 벽에 기대 담배를 물었다.

‘아예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손해가 막심했으나 분명 가능한 방법이었다.

첫째로, 그가쉬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첩자라고 생각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죽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살려뒀을까.

애초에 거래를 위한 카드로 남겨뒀을 수도 있었다.

둘째로, 일을 완료해도 저쪽에서 배신할지도 몰랐다.

현재 버그베어와 인간 사이엔 종족동맹이 없다.

정부나 조직 단위로 나서서 박살내면 모를까, 개인 간 다툼에는 그 어떤 외교, 정치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곧 그가쉬가 단 물만 빼먹고 배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했다.

‘그냥 돌아갈까?’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손해가 되는 선택지였다.

이 의뢰를 위해 갑옷이 아닌 방탄복을 구입했음은 물론, 오는 길에 차까지 박살냈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려면 걸어가거나, 핸드폰으로 구조대를 불러야 했다.

‘3명 구조면… 대충 2000만 원인가.’

거기다 장비 값, 렌터카 보험, 배상금 등 기타 잡비까지 포함하면 돈이 거의 억 단위로 날아간다.

만약 여기에 포로를 버리고 갔다는 명분으로 이블 포인트까지 오른다면?

최악의 수였다. 포기하는 건 안됐다.

담배 필터를 씹으며 욕설을 내뱉길 몇 분.

“겐포 쪽을 친다. 차라리 그 쪽이 나아 보여.”

“아쉽지만 형님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잘 생각했어, 지훈. 이쪽이 뒤탈 없고 좋아 보여.”

결국 겐포 부족을 습격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물론 그가쉬, 네가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마냥 움직여 줄 생각은 없다. 이쪽도 그에 합당한 조건을 내걸어야겠어.’

만약 이후 배신을 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 때는 행동에 대한 명분이 생기니, 배신에 대한 끔찍한 악몽을 선사해 주면 됐다.

아마 클랜의 핵심 인물인 그가쉬와 가벡만 처리해도 충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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