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산맥으로 향하다. -->
고민 결과 차량은 장갑이 붙어있는 SUV로 정해졌다.
현재 목적지는 두 종족 사이에 국지전이 발생하는 장소였다. 일반 차량 끌고 갔다간 벌집이 될 수도 있었다.
“길은 알아?”
분명 칼콘이 스쳐 지나듯 아는 얼굴이 있다고 했었다.
“러시아 쪽 고속도로 타다 리뱃으로 나가서 가시산맥으로 올라가야 해.”
현재 한국 개척지와 러시아 개척지 사이의 거리는 고속도로로 24시간 정도 밟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 넓디넓은 고속도로 사이엔 여러 휴게소와 톨게이트가 있었는데, 티그림과 리뱃은 그 중 하나였다.
“그냥 오프로드로 가지 왜 고속도로 타요? 비싸잖아요.”
“우와. 대단하다.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게 말이다. 헌터들은 다 머저린가보다, 비싼 돈 내고 고속도로 타고. 그렇지?”
지훈과 칼콘이 동시에 과장된 몸짓으로 픽 웃었다.
“비, 비꼬시는 거죠?”
“당연하지.”
아무리 개척지 주변이 정리됐다지만, 그건 ‘치명적인 위협 요소’만 배제해 놨다는 말이었다.
온갖 알 수 없는 동식물과, 동맹이 체결되지 않은 이종족, 강도 등 수 없이 많은 위험이 득실거렸다.
“가다가 켄타우로스 강도 만나면 그냥 죽는 거야.”
그 중 제일 위험한 게 바로 켄타우로스 강도였다.
운전수를 고용해 트럭을 몰고 다니는데, 트럭에 타고 있다가 목표가 보이면 우르르 내려서 활과 창을 던져댔다.
맨 다리로 70~80km로 달리며 계속 쫓아오니 걸렸다 하면 죽었다고 봐야했다.
“종족 동맹은요?”
“걔네는 씨족 단위로 움직여서 종족 대표가 없어.”
몇몇 씨족은 가까운 개척지 혹은 도시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그 동맹이 지켜지는지는 미지수였다.
“그냥 고속도로 타야겠네요.”
괜히 다들 비싼 돈 내가며 고속도로 타는 게 아니었다.
“수다는 그만 떨어. 도착하려면 4시간 정도 남았는데 좀 쉬고 있으라고.”
칼콘은 엑셀에 발을 얹으며 말했다.
부르릉! 덜컹!
“아, 운전 좀 살살해!”
칼콘이 운전을 가라로 배워서인지 차가 심하게 요동쳤다.
“아냐. 원래 말도, 차도 좀 흔들려야 제 맛이라고!”
더욱 가속하는 칼콘을 보며, 지훈은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로 손을 가져갔다.
아직 꽃다운 인생 다 펴보지도 못했는데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죽고 싶진 않기 때문이었다.
☆ ☆ ☆
리뱃은 광산 도시였다.
거주 인구가 만 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나, 자원을 채취하는 장소이니만큼 활기가 넘쳤다. 일행은 이곳에 잠시 내려 볼 일을 본 후 다시 길에 올랐다.
이번엔 고속도로가 아닌 비포장도로였다. 아직 개척이 진행되지 않은 곳엔 도로가 없기 때문이었다.
덜컹! 덜컹!
창문 밖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민우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안 남았어. 참아.”
☆ ☆ ☆
3시간 정도 더 달리자 일행은 가시산맥 앞에 도착했다.
이름대로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가시가 잔뜩 돋친 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저길 들어가자고요? 옷 다 찢어지겠는데?”
“버그베어들 다니는 샛길 있어. 그 쪽으로 가자.”
칼콘은 산 둘레를 타고 빙 돌았다.
금세 바위가 X자로 교차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늘과 나무들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지만 가까이 가보니 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널찍한 길이 보였다.
“이 쪽으로 쭉 가면 그가쉬 클랜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칼콘은 바로 샛길로 차를 몰았다.
누군가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다.
☆ ☆ ☆
치직.
“샛길 출구. 인간 물건으로 보이는 차량 발견.”
치지직 - 치직.
“인원은?”
치직.
“알 수 없음. 무장 차량 한 대. 최대 6명.”
치지직 - 치직.
“지뢰 매설 지역까지 가도록 대기. 이후엔 명령에 따르라.”
치직.
“알겠음.”
☆ ☆ ☆
타-앙
집중해야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총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그 소리에 점점 전쟁터로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근데 샛길이면 누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냐. 보통 클랜 입구에 문지기가 있었어.”
보통은 그랬다.
전시 말고.
쾅!
폭음과 함께 차가 반 바퀴 돌았고,
쿵!
뒤집어졌다.
비명 지를 새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위력으로 보아 대전차 지뢰가 아닌 대인지뢰라는 사실 정도일까?
“씨발. 뭐야!”
안전벨트를 하고 있던 지훈만 충격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칼콘과 민우는 폭발 당시 천장에 머리를 박았는지, 둘 다 늘어져 있었다.
“일어나, 기절하면 뒤진다고!”
흔들어 깨워봤으나 일어나질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려는 찰나….
덜컹!
차문이 덜컥 열리더니 털이 수북한 손이 보였다.
“으허억!”
손이 민우를 끌고 갔고, 다음으로 칼콘을 끄집어냈다.
그 사이 지훈은 안전벨트를 해제한 뒤 곧바로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꺼어?”
곰 같은 뾰족한 귀에 앞으로 툭 튀어나온 하관에 비정상 적으로 발달한 승모근이 특징인 종족, 버그베어가 보였다.
“저 인간 잡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까운 버그베어가 달려들었다.
못이 잔뜩 박힌 곤봉을 들고 있었다.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뼈가 가루가 될 것 같았다.
후웅!
‘이런 썅!’
채 자세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곤봉이 떨어졌다.
이대로 있다간 맞을 게 분명했기에 바닥을 굴러 피했다.
쿵!
방금 전 서 있던 곳에 곤봉이 꽂혔다.
지훈은 그 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일어나 글록을 꺼냈다.
“총! 총이다!”
총을 알아보는 걸 보니 일이 쉽게 풀릴 예감이 들었다.
‘어디 야만인 새끼들이 겁도 없이…!’
“총 꺼내!”
물론 주변 버그베어들이 일제히 총 꺼내기 전 까지만.
‘빌어먹을 무기상인 새끼들… 도대체 군소 집단한테 뭐 빨아먹을 게 있다고 총을 팔아!'
속에서 부화가 들끓었다.
“총 내려.”
버그베어 중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말했다.
“개소리 집어 치워.”
“죽이고 싶지 않다. 총 내려.”
“너희나 총 내려, 이 야만인 새끼들아!”
버그베어 대장이 이를 드러내며 킥 하고 웃었다.
“숫자 차이가 이만큼 나는데, 우리가 왜?”
“여기 폭발탄환 들어있다.”
버그베어 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현재 버그베어들은 지훈 일행을 제압하기 위해 바싹 붙어있는 상태였다.
“움직이지 마, 새끼들아!”
덤으로 대화하는 사이 수류탄도 하나 꺼내들었다.
“거짓말. 거기 진짜 폭발탄환이 들어있을까?”
버그베어 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목숨 걸고 도박 한 번 해봐. 그럼 알 수 있을걸?”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현재 지훈은 폭발 반경을 계산하고 있었다.
잘 못 쐈다가 칼콘이나 민우가 휩쓸렸다간 큰일이 나기 때문이었다.
‘일단 바로 앞에 있는 버그베어한테 한 발 쏘고, 밀려나는 사이에 수류탄을 던진다.’
차 위에 정확히 올려놓을 수 있다면, 바닥에 누워있는 칼콘과 민우는 비교적 안전할 터였다.
“진정해. 일단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자고.”
“대화를 원했으면 애초에 매복하지 말았어야, 씨발!”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으므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고 했다.
“형님. 얘 칼콘인데요?”
☆ ☆ ☆
버그베어들은 지훈 일행을 마을로 안내했다.
그가쉬 클랜은 가시산맥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목책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이 마을이라기 보단 요새처럼 보였다.
“미안하다. 아는 사람일 줄 꿈에도 몰랐다.”
“그딴 짓 해놓고 사과 한 마디로 퉁 치게?”
안내하던 버그베어의 얼굴이 살짝 찌그러졌다.
위험한 기류를 눈치 챘는지 칼콘이 끼어들었다.
“에헤헤, 좋게 끝났으면 됐지 뭘 그래. 진정해, 지훈.”
“쯧.”
침을 퉤 하고 뱉자, 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차가 뒤집혔을 때 볼을 씹어서였다.
“그래서 여긴 온 목적이 뭐지? 전쟁 중인 곳에 거래나 관광을 목적으로 오진 않는다.”
“어떤 정신 나간 머저리가 버그베어 군락에 관광을 와? 물건 다 털리고 고기 될 일 있어?”
버그베어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이를 뿌득 갈았다.
“칼콘만 아니었으면 넌 이미 시체가 됐을 거다, 인간.”
지훈 역시 불만이 많았기에 물러서질 않았다.
“말이 기네. 덤벼.”
매고 있던 창을 들자, 버그베어도 투박한 검을 꺼냈다.
“뭐 하는 거야. 지훈, 가벡 그만해!
채 칼콘이 말리기도 전에 둘이 무기를 휘둘렀다.
훙!
투박한 검과 매끄러운 창이 곡선을 그려 부딪쳤다.
깡!
그 결과 버그베어의 칼이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져 버렸다.
결과로 보건데 상대 무기는 일반 물품인 것 같았다.
“아, 아티펙트? 결투에서 아티펙트라니 전사의 긍지도 없는 놈!”
“싸움에 그딴 게 어디 있어. 그래서 더 할 거냐?”
가벡은 허리춤에 있는 아티펙트 단도를 쳐다봤지만, 꺼내진 않았다. 저걸 꺼냈다간 정말 둘 중 하나가 죽을 때 까지 싸워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바쁘니까 송사리 말고 대가리 데려와.”
분노에 가득 찬 가벡을 쳐다보며, 칼콘은 불안한 듯 다리를 떨었다.
☆ ☆ ☆
“그래서, 포로를 찾으러 왔다?”
“정확해. 그게 우리 볼 일이야.”
그가쉬 클랜의 지도자, 그가쉬는 픽 웃었다.
“재미있는 인간이군.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그런 무모한 걸 요구하는 건가?”
“그가쉬 클랜이잖아. 모르고 왔을까?”
현재 인간과 버그베어는 비동맹상태였다.
서로 죽인다고 한들 아무런 외교, 정치적 문제도 없거니와 사이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당히 본거지 한 가운데로 찾아와 포로를 요구한다?
그가쉬로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크라카투스 콘투레 보더워커.”
칼콘은 제 본명이 튀어나오자 바짝 긴장했다.
“으, 응. 왜?”
“아는 얼굴이니 네게 얘기하지. 진짜로 그 목적인가?”
“맞아. 우리 의뢰인이 포로를 데려오랬어.”
고민스러운지 그가쉬의 곰방대에 담뱃잎이 채워졌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다 품에서 시가를 하나 꺼내 건넸다. 저번에 승호에게서 몇 개 가져온 두르였다.
“그런 싸구려보단 이게 나을 것 같군. 피워 봐.”
그가쉬는 오른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치익 - 칙.
후읍- 하아.
두르는 미약한 진정효과를 가진 독한 담배였다.
너무 독해서 겉담배를 하는 게 보통이었음에도, 그가쉬는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맛있군.”
“그래. 이제 좀 얘기할 마음이 들었나?”
“아까 했던 무례한 말들 정도는 잊어주지.”
다시 한 번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민우가 콜록거렸다.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지만, 그건 안 돼. 자기들 말로는 학자라고 하지만 그게 진짠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살아는 있나보지?”
“아직은.”
“상태는 어떻지?”
“고문은 했으나 욕보이진 않았다.”
고문이라는 말에 지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만약 심각한 부상이 동반될 고문이었다면, 이동 중 사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의뢰비 1/3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어떻게 하면 풀어줄 거지?”
“이 전쟁에 상관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우리가 믿을 수 있느냐는 거지.”
원래 의심이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고를 증명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게 당연했다.
“그게 아니면 네가 우리를 도와주거나.”
역시 증명 따윈 안중에도 없었는지, 다른 제안이 뒤따랐다.
‘일이 꼬이는군.’
“포로를 확인해 보고 싶다. 상태에 따라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달라져.”
만약 시간이 걸리는 일을 제시한다면 곤란했다.
의뢰인이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용병을 보내거나, 포로가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대로. 가벡, 안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