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 사용 -->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혹시요!”
나이는 스물 예닐곱 됐을까?
살짝 웨이브 진 그녀의 머리가 미풍에 가볍게 흔들렸다.
바람에 실려 온 샴푸인지, 향수 냄새인지 모를 것. 여자의 냄새는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핏이 잘 맞아 몸매를 부각시키는 블라우스는 마치 순백처럼 하얗고, 반면 검은 색 H라인 스커트는 마치 시선을 빨아들이듯 어두웠다.
“뭐요.”
뭐, 지훈은 예쁘건 말건 관심 없었기에 툭 뱉어냈다.
“마법사세요?”
“내가 마법사면 뭐 하시려고?”
“마법 보여주세요!”
헌팅 왔다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꼭 신기한 걸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랄까?
“지금은 연습하고 있소. 안 돼.”
“보기만 할게요. 저 마법사는 처음 본단 말이에요!”
마법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여자는 아예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눈치였다.
딱히 잘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무시하고 연습을 했다.
‘몇 번 실패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지훈은 백과를 덮고 마법서를 펼쳤다.
대강 앞쪽에 있는 저자 및 목차 같은 지루한 것들은 슥 넘겼다. 지금 필요한 건 도전해 볼 법한 마법이었다.
- 불꽃(ilutulestik) : (파괴계) 손끝에 불꽃을 만들어 낸다. 크기와 온도는 시전자의 능력에 비례한다.
일루→ 툴↑레스↘ 틱↗
형언할 수 없는 난이도를 가진 발음이었다.
“일루 - 툴레스 틱?”
한 세 번 발음했을까. 혀가 시멘트라도 바른 양 뻐근했다.
“실패한 거예요?”
“연습한다고 했잖소. 남는 시간 많나보오?”
“그럭저럭요.”
간접적인 축객령을 보냈지만 여자는 떠나지 않았다.
‘무시하자.’
“일루→ ….”
후웅 -
아까와는 달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식염수 흐르듯 온 몸에 청량한 기운이 흘렀다.
‘이게 뭔… 혹시 마력인가?’
정확했다. 지훈의 몸 안에 있던 마력이 영창과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 사용자의 주문 활동 감지. 증폭 하시겠습니까?
‘그래.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증폭해 봐.’
다시 시작하려는 찰나, 여자가 투덜거렸다.
“왜 하다 말아요?”
“정신 사나우니까, 입 좀 다물고 계쇼.”
중요할 때 끼어드니 무심코 평소 말버릇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여자도 참을성이 강한지 콧소리만 내고 말았다.
‘느긋느긋 해보자.’
“일루→“
우으응!
- 사용자의 주문 활동 감지. 마력을 증폭합니다. 마나 소비가 늘어나니 주의해 주십시오.
반지의 떨림과 함께 혈관 아래 잠들어있던 마력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툴↑“
마치 온 몸의 혈관 사이로 미풍이 부는 것 같았다.
“레스↘“
그 마나들은 전부 손끝으로 이동해…
“틱!↗“
불처럼 뜨거워졌다.
화르르륵!
- 마력이 증가했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마력 : E 등급 (10) = > E 등급 (11) (+1)
“우와!”
난생 처음 보는 마법!
여자와 지훈의 눈동자가 동시에 부풀었다.
‘마, 마법도 된다?’
혹시 될까 싶어 사용해 본 것뿐이었다.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떤 마법이 있는지 잘 알아두기만 해도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이게, 이게 전부 이 반지 덕분이다. 고맙다 아쵸푸므자!’
로또 당첨 따윈 개나 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뻤다.
‘좋아. 그럼… 이제 어떡한다?’
현재 왼 손에 불에 붙어 있었다.
다행히 마법에 사용자 보호까지 있는 건지, 뜨겁진 않았다. 하지만…
- 부, 불난 거 아냐?
- 어떡해?
- 마법 어쩌구 하긴 하던데…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물을 가져가야 할지, 지켜봐야 할지 고민하는 듯싶었다.
‘일단, 끄자.’
방법을 몰랐다.
일단 크기가 작아 오른손으로 덮어봤지만, 손가락 사이로 화염이 솟았다. 원래대로라면 화상을 입어야 했지만, 따뜻하기만 했다.
“안 뜨거워요?”
손을 꾹 누르고 있으니 여자가 걱정스레 물었다.
“딱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후끈한데? 이거 봐요.”
여자가 테이블 위에 있는 티슈를 손에 가져다 대자, 화르륵 하고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화염 속성 때문인지, 내가 이 마법 사용자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한테는 효과가 없나보군.’
결국 커피에 손을 담가 끌까 싶은 찰나 마법이 끝났다.
“정말 신기해요! 저 이런 거 처음 봤어요.”
“나도 처음이니 호들갑 그만 떠쇼. 사람들 다 쳐다보네.”
큰 소리를 냈다는 게 부끄러웠는지, 여자는 얼굴을 붉혔다.
여태 관심이 없어 안 봤지만, 이제 보니 꽤 미녀였다.
연예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나가다 마주치면 뒤 돌아보게 할 정도는 충분할 정도였다.
“미안해요. 마법사는 처음 봐서 구경하고 싶었어요.”
“됐소.”
지훈은 그 말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 보긴 개코가 처음이야. 아까 책 필 때부터 수군거리는 거 다 들렸구만.’
밑바닥 인생을 헤매던 비각성자 시절. 그 어떤 여자도 지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각성했다는 이유로, 마법을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이렇게 달라붙는다?
속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혼자서 빨리 여자를 떼어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남자 진짜 마법산가봐!
- 아,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 그러게 맘먹었으면 빨리 갔어야지, 이 년아.
아까 헌터가 1등 신랑감이네 뭐네 떠들던 여자들이었다.
한 마디로 완전히 헛짚은 거였다.
‘그럼 이 여자는 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여자가 변명했다.
“그냥 옆자리 앉아 있다가, 신기해서 왔어요. 불쾌했으면 미안해요….”
여자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시무룩한 강아지 같아 묘하게 귀여웠다.
지훈은 미안한 마음에 애써 수습하려 했다.
“아,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조금 더 구경해도 돼요?”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여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후 체내 마력이 고갈될 때 까지 여러 마법을 실험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식별’ 마법을 배우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이덴티티의 주문 독점 및 특허로 책에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젠장.’
그렇다고 손해만 본 시간은 아니었다.
실험 결과 알아낸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1 - 지훈의 마력은 화속성에 특화되어 있었다.
신체 변이에도 적혀있듯, 현재 지훈의 몸에는 화속성 마나가 흘렀다. 덕분에 불에 관련 된 마법은 쉽게 쓸 수 있었으나, 반대 속성은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2 - 마법 저항시 체내 마력이 소모된다.
백과를 뒤지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마법 저항시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무분별한 남발은 자제해야 했다. 마력을 다 쓸 경우 탈진의 우려가 있었다.
3 - 지훈이 습득한 마법은 ‘불꽃’, ‘빛’, ‘나무껍질’ 이었다.
마력 부족으로 인해 마법을 주 공격 수단으로 쓸 순 없었다. 이에 지훈은 최대한 강화와 변이 학파를 연습했다.
실제로 포미시드가 보조 마법을 바탕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마법들을 전투 중에도 사용할 수 있을 때 까지 수련해야 한다.’
지훈은 생각을 정리하며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이제 가시려구요?”
“볼 일 끝났소만?”
“가기 전에 할 말 있어요.”
고개만 까닥였다.
“다음에 또 마법 보여줄 수 있으세요? 밥은 제가 살게요.”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제안. 하지만 오해 때문에 괜한 사람에게 모질게 굴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위험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겨우 연락처 교환.
연락해 보고 별로라면 그 때 무시해도 됐다.
“번호 좀 찍어주세요.”
여자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쑥 내밀었다.
‘잘 사는 여잔가?’
슬쩍 집 전화번호를 찍어주니, 여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선 전화네요. 핸드폰 없으세요?”
“보다시피. 문제 있소?”
“마법사라 폰 있을 줄 알았거든요. 다른 사람이 받으면 어떡해요?”
“김지훈. 날 찾으면 될 거요. 반갑소.”
지훈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여자도 씩 웃곤 그 손을 맞잡았다.
“백시연이에요. 반가워요. 다음에 연락할게요.”
☆ ☆ ☆
지훈은 집에 들러서 글록과 탄환들을 챙겼다.
주섬주섬 짐을 만지고 있자니 지현이 들어왔다.
“오자마자 뭘 그렇게 챙겨?”
컴퓨터를 하고 있었기에 그냥 내버려두려니 했는데, 저 쪽에서 먼저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밥 먹었냐.”
“아직. 같이 먹을까 싶어서 기다렸지. 근데 어디 가게?”
“사격장.”
“총 연습하게?”
사격이야 자주 해봤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포미시드와 싸울 때도 횡이동 하며 트릭샷을 성공하지 않았던가.
단지 확인해 볼 게 몇 가지 있었다.
“그렇지 뭐.”
“얼굴 보기가 뭐 그렇게 어려워. 같이 밥 좀 먹고 가.”
밥 먹자는 말에 손을 멈췄다.
“뭐냐, 용돈 필요하냐?”
“아이 씨! 내가 무슨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보여?”
“부정은 못하겠네.”
지현이 빼애액 소리를 질렀다.
“아 몰라. 마음대로 해. 짜증나서 진짜.”
“야. 재밌는 거 보여줄까?”
지현이 잔뜩 화났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한 번 더 놀렸다간 바로 욕을 할 기세였다.
“ilutulestik(불꽃).”
화륵!
손에 불이 붙었다.
“으아아! 뭐야, 괜찮아!?”
“내가 붙인 거야. vabastamine(해제).”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보듯 지현은 멍하니 서있었다.
“나 그거 알아. TV에서 봤어. 마법이지?”
“응. 나 마법 배웠다.”
“대-애-박! 대박! 오빠 진짜 능력자다. 각성자에 마법까지 써? 그런 사람 거의 없잖아! 이제 막 헌팅 길드 취직도 하고 그러는 거야?”
등급이 더 오르면 모를까, 현재로선 길드는 무리였다. 헌팅을 나갈 경우 동료끼리 목숨을 의지해야 할 상황이 많다.
그 와중에 전과가 있다면 믿음보다 의심이 앞서겠지. 아마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뭐 기회가 되면. 아직은 생각 없다.”
“올, 김지훈 출세했네!”
“알면 임금님 모시듯 잘 좀 해라.”
“아이고 임금님. 식사라도 대접해 드릴깝쇼?”
“아니. 독 들었을까봐 못 먹겠다.”
“와. 진짜 말하는 거 봐.”
“됐고, 이리 와봐.”
지훈은 배게 밑에 숨겨뒀던 돈을 꺼내 지현에게 몇 장 건네줬다.
“용돈 해. 여태 아낀다고 고생 많았다. 가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좀 사먹어.”
화낸 게 언제냐는 듯, 지현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라.”
“뭔데?”
50ml짜리 작은 시약병에 녹색끼가 도는 반투명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만드라고라의 체액으로, 민우가 클럽 갈 때 쓴다고 남긴 걸 뺏어온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양산을 위해 물에 희석 및 다른 화학 약품이 첨가되지만, 그냥 먹어도 문제는 없다고 했다.
“약이야. 하루에 딱 한 방울씩만 먹어.”
지현은 바로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봤다.
“어우, 비려. 냄새가 뭐 이래? 피비린내 나는 것 같아.”
“몸에 좋은 거니까 그냥 먹어. 그거 과용하면 절대 안 되니까 많이 먹진 말고.”
과용하면 본래 효과인 흥분효과가 돌지도 몰랐다. 지훈은 동생이 만드라고라의 부작용만 얻길 원했다.
“알겠어. 아 근데 진짜 쓰네.”
“어렵게 구했으니까 그냥 먹어. 넌 진짜 나한테 나중에 감사하다고 절해야 돼, 임마.”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기나 하시죠?”
지훈은 픽 웃곤 장비를 챙겼다.
근래에 들어 농담도 주고받는 모습에 지현의 상태가 많이 나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