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이 창이 뭔데? -->
곰팡이와 화약 냄새. 입구에 잔뜩 쌓인 C4. 기폭기를 주물럭거리는 노인. 모두 그대로였으나, 작게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만 달랐다.
- 티그림 자치구는 영토 내 포미시드가 발생, 토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 … 현상금 사냥꾼에 의해 최초 발견됐으며, 자치구는 해당 헌터에게 감사의 인사 … … ….
“아이고, 여보라. 티그림의 영웅 아이니?”
“됐소. 돈 받고 하는 일에 무슨.”
“요즘 라디오 틀어보면 장난도 아이라. 하루에 두 번씩 나오잖니. 거 영웅 아이면 뭐라 부르겠어.”
“그만하쇼. 듣기 거북하네.”
“포미시드면 마법사도 있었을 텐데 살아 돌아온 게 장해서 그렇다, 야.”
“아무리 핥아봐야 물건 비싸게 줄 생각 없으니 썩 치우쇼. 어울리지도 않는 짓 하는 거 보니 내가 다 섬뜩하네.”
“쓰애끼, 어른한테 말하는 거 보라?”
말은 격한데도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지훈은 슬쩍 들고 온 창을 카운터 너머로 건네줬다.
“웬 쇠꼬챙… 이거 뭐니. 처음 보는 재질인데.”
“포미시드 병정개미가 들고 있던 거요. 대강 부딪혀 보니까 F급 이상인 것 같아서 가져왔소.”
저 창에 죽을 뻔 했다는 얘기는 뺐다.
“오 십. 더는 안 된디.”
“아, 내가 무슨 아직도 그지 깽깽인줄 아쇼? 흥정 안 할 테니 빨리 식별이나 해보시오.”
“거 쓰애끼 계집년도 아닌 게 보채기는. 옜다, 시작한디. Supply hobujõudu(마력 공급).”
부응 -
석중이 끼고 있던 안경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하… 새끼 너 이거 나한테 팔아라.”
설명보다 앞서 팔라는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대체 뭐 길래 그러쇼? 일단 들어나 봅시다.”
“아 들을 거 없고, 내한테 팔란 소리 안들리니?”
“미친 할배가 발정이 났나, 밑도 끝도 없이 뭔 개소리요.”
“판다 하면 알려준디. 값 제대로 쳐주마.”
태도로 보니 엄청난 물건이 나온 모양이었다.
“안 팔 거니까 정력 낭비 그만하고 설명이나 해주쇼.”
[여왕의 은혜]
종류 : 창
등급 : C (마법 부여)
재질 : 마력을 머금은 엘프의 뼈, 포미시드 분비물, 만드라고라 추출액
설명 : 포미시드 근위대에게 주어지는 창. 포미시드 전통에 따라 사냥물의 뼈로 골자를 만들고 그 위에 포미시드 여왕개미의 분비물을 발라 굳혔다. 공생생물에 따라 재질이 달라질 수 있다.
마법 부여 : 거대화, 무기 강화, 마비.
마법이 부여 된 물품입니다. 현재 재질에 함유된 마나로 인해 유지되고 있으나, 마력이 전부 소진되거나 마법 부여자보다 높은 수준의 마법이 간섭될 경우 해제될 수 있습니다.
C급 아티펙트 가격은 어림잡아 5000 이상.
석중의 설명대로라면 정말 엄청난 무기였다.
“뿐만 아이라 이거 맞으면 마비 때문에 훅 간디.”
설마 싶어 손가락에 살짝 찔러봤다. 손바닥 감각 자체가 사라졌다.
“근데 창이면 좀 그렇지 않소? 생명체 아니고서야 쓰기가 애매하잖아.”
관통형 무기의 애환이었다.
만드라고라가 총알을 맞고도 별 타격이 없었다. 이처럼 식물 혹은 비생명체에겐 관통상은 별 볼일 없는 상처였다.
내장을 상하게 만들거나 출혈이 주요 공격 수단이기에 언데드에겐 아예 먹히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이지. C급이면 그냥 휘둘러도 웬만한 칼보다 좋디.”
맞는 말이었다.
창이라도 굳이 찌르는 데만 쓸 필요는 없었다.
단지 찌르는 공격이 제일 효과적일 뿐 단순 휘두르기만 해도 위력 자체는 절륜했다.
“C급이면 이 방탄유리도 한 방에 깨지겠소?”
“그럼, 한 방이지.”
지훈은 창과 유리를 바라보며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지었다.
“목숨 여러 개면 해보라.”
이에 석중은 기폭기로 대답해줬다.
“거 농담 한 번 못하겠네. 여기 돈이나 받으쇼.”
“고맙디. 살아서 담에 보자.”
“할배도 죽지 말고 살아계시오. 그럼 이만.”
C급 아티펙트를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자 주변 시선이 달라보였다. F부터 S까지 있는 등급 중 겨우 C라지만, 실제로 C급 아티펙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몇 안됐다.
E등급 까지는 그럭저럭 많이 볼 수 있었지만, C등급 이상부턴 고등급이라 보기 힘든 이유에서다.
게다가 C등급 헌터도 안전한 일을 우선시 하다 보니 아티펙트 가격 및 유지비를 부담하지 못했다.
- 헌터인가봐.
- 멋지다!
과거에 느꼈던 시선이라곤 무시 혹은 공포 둘 중 하나밖에 없었지만 헌터가 되자 주변 시선이 확 달라졌다.
호감, 부러움, 질투, 시기.
모두 기분 좋은 것들 밖에 없었다.
“어, 저기요!”
한껏 기분 내고 있자니 뒤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요?”
“지나가다 봤는데 괜찮은 분 같아서요. 연락처 좀….”
인생 살며 겪어보지 못한 일에 잠시 당황했다.
지금 입고나온 옷은 물 빠진 청바지에, 후드티.
이성에서 호감을 줄만한 옷차림은 아니었다.
“핸드폰 없소.”
“저기 그럼 혹시 삐삐는….”
“없다니까.”
철벽처럼 우뚝 선 부정에 여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타타타탓!
구두 신고 어찌 그리 빨리 달리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끔씩은 아티펙트도 들고 다니고 그럴까.’
지훈은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진 연애를 할 여유가 없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었다.
‘자, 자. 생각 그만하고 움직이자. 해 지기 전에 마법 물품 상점도 가야한다.’
지훈은 낯익은 가게 앞에 도착했다.
저번에 반지 식별을 위해 찾았던 그 가게였다.
“어서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있던 여직원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얼핏 보기엔 그냥 판매원으로 보였지만, 무려 아이덴티티 정사원이었다. 게다가 미약하게나마 마력 능력도 갖고 있으리라.
‘마력만 갖고 있으면 개나 소나 아이덴티티 취업해대니 마법사 씨가 마르지… 쯧.’
일종의 독점이었다.
아이덴티티는 마법 물품 시장 및 마도학의 선두주자였는데, 조금이라도 마법에 관련 된 인간은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고 고용했다.
그로인해 후발 주자들은 인건비에서 밀려 좋은 인력을 얻지 못했다. 기껏해야 시장 점유율 10% 웃도는 정도였다.
게다가 이공계 기피현상처럼, 마도학자 혹은 마법사 기피 현상도 일어났다.
굳이 룬어네 뭐네 고생해가며 마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아이덴티티에 취업하는 쪽이 훨씬 쉬우니 그럴 수밖에.
이 결과로 아이덴티티는 마법 인력을 독점, 더 나아가 시장을 독점해 마법 물품들을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유통했다.
‘뭔 식별 두루마리 하나가 100만원이나 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뭐 어쩌랴.
일단 지금은 식별 두루마리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식별 센터를 지나쳐 마법서 쪽으로 향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정장을 입고 있던 판매원과 달리, 마법서 코너엔 로브에 고깔모자를 쓴 남자가 서있었다.
“마법서 좀 구해볼까 싶소.”
“룬어는 알고 계신가요?”
룬어는 마법사들의 언어였다.
아직 마도학이 그렇게 발전된 것이 아닌지라 고대의 언어, 용의 언어, 마법용 언어 등 여러 가설이 있었지만 밝혀진 것은 아직 없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기본 조건 중 하나가 룬어 습득.
하지만 지훈은 룬어를 배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국어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룬어를 사용하는 아쵸푸므자와 얘기도 하고, 반지가 알려주는 마법도 전부 다 알아듣지 않았던가.
“대강 할 줄 압니다.”
“그럼 기본부터 탄탄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요즘 만화로 배울 수 있는 쉬운 룬어 시리즈가 유행입니다.”
“필요 없고, 마법서 주시오.”
점원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룬어 좀 한다고 무턱대고 비싼 마법서를 사가는 것 까진 좋았다. 그러고 나서 못 읽겠다고 배 째라 환불로 나오니까 문제였지.
“마법은 전부 룬어라 확실하게 익히고 사시는 게 어떨까요?‘
“Andke mulle raamat(책 내놔).”
설명할 것 없이 바로 룬어를 내뱉었다.
듣기만 했기에 말하는 것 까지 될지는 몰랐지만, 의식하니 술술 나왔다.
“네, 네?”
예상치 못한 룬어에 점원이 버벅거렸다.
깔끔한 성조에 깨끗한 발음. 완벽한 룬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눈앞에 나타난 책은 총 세 종류였다.
마법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마법 백과.
마법을 학파 별로 분류해 놓은 연구서.
실제로 마법을 배울 수 있는 마도서.
“마법 백과랑 마도서 주쇼. 수준은 제일 낮은 걸로.”
룬어를 아니까 흉내는 내 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작동할지는 미지수였다.
마법 저항을 위해 찍은 마력이지만, 그것만 보고 찍기엔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나 확인해 봐야한다.’
☆ ☆ ☆
책을 들고 가까운 카페에 앉았다.
테이블 위엔 대학 전공서적 같은 하드커버 책이 두 권.
마치 대학생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어머 저기 봐… 외마연(외부 마법 연구원) 사람인가봐.
- 연봉 장난 아니라는데 진짜야?
- 기본 1억 6천에 나갈 때 마다 수당 더 받는다며!
- 근데 저 남자 참 괜찮다. 야성미 넘치고.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만 없었다면 말이다.
과거 비각성자였을 땐 못 들었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지금은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 잘 들렸다.
‘각성했다고 다 좋은 건 아니구만. 이거 뭐 동물원 원숭이고 아니고, 쯧.’
테이블 옆에 기대놨던 창을 슬그머니 바닥에 깔았다. 그제야 좀 주변이 조용해 졌다.
아마 아무 무늬 없이 긴 꼬챙이처럼 생긴 외형 때문에 사람들이 스태프로 착각한 것 같았다.
- 요즘 헌터들이 1등 신랑감이잖아. 가서 대쉬해봐!
- 그, 그럴까? 거절하면 어떡해?
- 그냥 오면 되지. 찔러나 봐.
‘여자나 남자나 그게 그거구만.’
안 듣는 척 책을 슥 펼쳤다.
처음 살펴본 건 마법 백과였다.
한글과 룬어가 섞여 있는 걸로 보아 다른 종족의 서적을 번역한 것 같았다.
- 마법은 본디 Vana-võistlused(고대종)의 것으로, 시간과 백열의 신 hahzmoohpohca(하즈무포카)가 처음 엘프에게 üleminek(전이)했다고 구전되고 있다.
- 바버은 룬어를 Brigaadikindral(영창)하여 발현할 수 있고, 수인 혹은 법진 같은 보조 기술 혹은 스태프 같은 도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기에 영창에 실패하거나, 방해받을 경우 tõukejõud(반발력)이 돌아오니 주의하여야 한다.
- 마법에는 강령, 강화, 변이, 소환, 정신, 파괴, 치유의 학파가 있다. 각 학파는 … … … … 하는 특징을 가진다.
‘만약 사용할 수 있다면 강화, 변이, 치유 학파가 제일 유용하겠군.’
백과를 훑고 있으니 책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