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우의 어설픈 설계 -->
눈을 떠보니 어느새 티그림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 살짝 비볐다.
칼콘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고, 민우는 뒷좌석에 앉아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괜찮냐?”
“일어 나셨어요? 어우, 전 아직도 죽겠네요.”
“별 것도 아닌 마법이드만, 겨우 그거 맞고 골골대기는….”
“마법요?”
되묻는 말에 아차 싶었다.
지훈이야 반지가 전부 분석하니 알 수 있었지만, 아마 민우는 뭐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픽 쓰러졌을 거였다.
마법이라는 말에 반문하는 게 당연했다.
이미 말 꺼낸 상태라 얼버무리기도 이상했기에 그냥 내버려뒀다.
“포미시드 마법사가 쓴 마법이야. 몽롱함.”
“형님, 혹시 마법사세요?”
“내가 마법사면 여기서 왜 이 고생을 하겠냐.”
아이덴티티 들어가거나 마법 관련된 편한 일 했겠지.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옛날에 맞아본 적 있어서 알아.”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민우는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칼콘은 어디 갔어?”
“현상금 받으러요.”
현상금이라니?
예상치 못한 단어에 멍하니 있자니 칼콘이 돌아왔다.
“일어났네, 지훈. 들어봐. 이 개새끼가 말이야!”
“아 저기… 그,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칼콘이 씩씩거리는 모습에서 뭔가 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해봐.”
사실 티그림 숲에 있는 만드라고라에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고 했다.
원래 만드라고라는 무리지어 사는 식물이 아닌, 거의 혼자 성장하는 식물이었다.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피와 정액이므로 거의 사형대나 감옥 혹은 사창가 같은 음습한 곳 주변에서 한, 두 줄기 간신히 발견될까 말까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티그림 숲에 만드라고라가 대량 발생함과 동시에 동물들이 씨가 말라 버린 것.
‘꼬라지 보니 포미시드가 죄다 잡아다 만드라고라에 처박았군.’
“그래서 티그림 측에서 생태계 보호를 위해 만드라고라에 현상금을 걸었어요….”
“얘기 들어보니까, 거기서 여럿 죽어 나갔다더라. 딱 보니 이 새끼가 함정 판 거야.”
“아닙니다! 오해에요! 혀, 현상금이 걸려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일인지는 몰랐다구요! 단지 채취가 끝나면 혼자 현상금을 가로채려고만 했어요!”
민우의 계획은 딱 저기까지였다.
헌팅을 하던 팀이 망가졌으니, 퇴직금 및 기타 배상 명목으로 현상금 정도는 혼자 챙겨도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
만드라고라에게 유인해서 죽이거나, 복수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성 꼬라지하고는… 버리고 가잘 때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참 못났다.’
“됐어, 저 녀석도 나란히 뒤질 뻔 했으니까 함정은 아니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현상금도 나눴으니 좋게 끝났네.”
“정말요?”
지훈의 말에 민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중배 밑에서 일할 때는 거친 언사와 폭행에 시달렸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근데 얼마 받았냐?”
“어… 5000만원. 원래 4000인데 포미시드 얘기 하니까 더 줬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아직 만드라고라 체액은 팔지도 않았는데 5000이라니!
목숨 걸고 한 일이었기에 많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떻게 나눌 거야?”
칼콘이 물끄러미 지훈을 쳐다봤다.
“쩝. 너랑 나 각각 2250 민우 넌 500 가져가라. 불만 있냐?”
“없습니다. 저기, 형님….”
“개새끼. 본새 보고 갖다 버리고 오려다 만 걸 다행으로 알아. 그리고 누가 네 형님이야. 말 똑바로 안 해? 콱, 씨.”
“그래서 말입니다. 저 그냥 현상금은 안 받겠습니다. 솔직히 이번엔 제가 한 일도 없고… 속이려고도 했잖아요. 이번엔 체액 팔아서 번 돈만 받겠습니다.”
결심에 가득 찬 표정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듯 했다.
“알면 됐으니까, 그냥 가져가 새끼야. 나중에 안줬다고 지랄하지 말고.”
“저, 정말요?”
“싫으면 말던가.”
몸을 돌리자 진짜 안줄까 급히 돈을 챙기는 민우였다.
“지훈, 나도 똑같은 마음이야. 한 거 없이 받아가긴 싫어. 이 현상금에선 500만 챙길게.”
따지자면 한 건 없었지만, 죽을 고생은 같이 했다.
“괜찮겠냐?”
“네.”
“응.”
“그래. 사실 나 혼자 다 하긴 했지.”
뭐 그건 그거고, 돈은 돈이었기에 남은 현상금은 모두 지훈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후 만드라고라의 체액은 각성자 물품 거래소에 팔았다.
세금이 세게 붙기 때문에 석중이나 시체 구덩이를 통해 팔아보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둘 다 취급 물품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행이 채취한 체액은 총 4L였고, 총 가격은 1억 2천만으로 측정됐다.
헌터들이 괜히 신흥 귀족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님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에 각성자 물품 거래 세금 33%를 떼고 나니 8천 3백만 원. 이를 정확하게 3등분해 각각 2680만원씩 나눠가졌다.
사실 지분으로 따지자면 정산금도 지훈이 8할 넘게 가져가야 옳았지만, 추후 관계 정립을 위해서 정확하게 나눴다.
‘한 번 사냥하고 끝낼 것도 아니잖아.’
[정산 결과]
획득.
만드라고라 현상금 : 5,000만 원.
만드라고라 체액 정산금 : 8,300만 원
지출.
렌트카 대여비 : 50만 원. (지훈 지출)
왕복 버스비 : 30만 원. (각출)
총액.
1억 3,300만 원 획득.
[배분]
[지훈]
현상금 4000만원 + 체액 정산금 2680만원.
총 6680만원 수익.
- 기타 획득물 : 포미시드의 창 [E랭크 이상?]
- 장비 손상 : 폭발 탄환 2발, 케블라 방탄복, 기타 의류
- 부상 : 고막 손상. 내장 용해. 화상. 관통상. (재생됨)
- 능력 : 티어업 14번, 저항 능력치 2 증가, [집중] 이능력 획득.
[칼콘]
현상금 500만원 + 체액 정산금 2680만원
총 3180만원 수익.
- 장비 손상 : 1세대 나이트 비전 왼쪽 렌즈, F랭크 접이식 방패.
- 부상 : 꿈에 대한 후유증.
- 기타 : 방패 빚 500만원은 장비 수리비로 상쇄 됨.
[민우]
현상금 500만원 + 체액 정산금 2680만원.
총 3180만원 수익.
- 부상 : 심한 어지럼증과 현기증.
- 능력 : 약간의 전투경험, 총기 사용법.
“수고들 했다. 집들 들어가고, 다음에 헌팅 때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셋은 각자 해산해 집으로 향했다.
칼콘은 동구 이종족 자치구로,
민우는 서구 임대아파트로,
지훈은 동구 초기 개척지구로 향했다.
칼콘은 획득한 수익 대부분을 저금한 뒤 음식에 많은 돈을 사용했다. 특히 보급용 음식에 학을 뗐는지, 고기와 술이 대부분이었다.
‘이 맛에 돈 벌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잖아.’
민우는 다음 달 월세까지 미리 납부한 뒤, 집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들였다.
위성이 떠있지 않은 세드였기에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정보가 곧 돈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대로 알기만 했어도 위험해 지진 않았을 거야. 지훈 형님은 중배랑 다르다. 믿어도 될 것 같아.’
덤으로 지구로 돌아가는 티켓은 끊지 않았다.
그리고 지훈은….
‘자 이제 돈 좀 써볼까?’
☆ ☆ ☆
돈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매일을 전쟁처럼 살았던 게 엊그제였다. 헌팅 한 번 다녀왔다고 남이 일 년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그냥 들어왔다.
“나왔다.”
“오빠 왔어?”
인기척에 지현이 맨 발로 집밖까지 뛰어나왔다.
하루 꼬박 연락이 없었으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거의 누더기가 된 방탄복이 신경 쓰인 걸까. 몸 여기저기 더듬으며 상처를 살피기까지 했다.
“당연하지.”
신체 재생의 위력이었다.
전투 중 얻은 부상만 나열해도 최소 빈사 혹은 사망이다. 변이가 없었다면 두 번은 죽었어야 했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그래. 다행인 거 아니까 소리 그만 질러. 머리 울린다.”
고막이 덜 재생됐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재생의 부작용으로 피로가 몰려왔기에 소리가 이명마냥 윙윙거렸을 뿐이다.
“알겠어! 밥은 먹었어?”
“아니. 이따 나가서 먹자. 피곤하다.”
속 쓰릴 정도로 허기가 몰려왔지만, 일단은 잠이 먼저였다.
입고 있던 장비를 모조리 쓰레기통에 처박곤 자리에 누웠다.
수리하면 어떻게 다시 입을 순 있겠지만, 이참에 새로 하나 장만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나 잔다. 그리고 이거 오늘자 일당이니까 가서 예금하고 와. 될 수 있으면 카드도 하나 만들어 와라.”
눈을 감자 멀리서 지퍼 여는 소리와 헉 소리가 들렸다.
지현은 도대체 얼마냐고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지훈이 너무 피곤해 보였기에 묻진 않았다.
“대박! 이거 진짜 전부 살 거야?”
대답할 필요도 없었기에 바로 점원에게 배달을 부탁했다.
“32인치 TV하고, 2도어 냉장고, 드럼 세탁기 맞으세요?”
“거기에 컴퓨터랑 미니 라디오 한 대 씩 더.”
전자상가 직원은 주문을 메모하고 씩 웃었다.
“신혼살림 차리시나 봐요?”
듣기 좋으라고 한 농담인데 어째 방향이 빗나갔다.
“이 양반이 엄청 살벌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예?”
“저거랑은 예수, 부처도 같이 못 살 거요.”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저 보소. 오빠한테 야라면서 반말 찍찍 하는 거.”
지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친 매력을 마구잡이로 뿌리는 지훈처럼, 지현 역시 얼굴과 몸매만 놓고 보자면 꽤 미인에 속했다.
문제가 있다면 4차원 성격과 걸레 문 입 정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 년 데려갈 놈은 정말 고생할거다.’
미래의 매제에게 미리 애도했다. 물론 그 놈이 사람 덜 된 놈이라면 애도가 아니라 총알을 먹여 주겠지만 말이다.
집에 가전제품이 도착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옛날에는 불우이웃 돕는 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할 정도로 열악했지만, 큼지막한 TV와 열면 음식이 가득할 것 같은 냉장고가 놓이니 분위기가 확 살았다.
“근데 컴퓨터는 왜 산거야? 어차피 여기 인터넷도 엄청 비싸서 쓰지도 못하잖아.”
“그냥. 오래간만에 오락이나 해보게. 너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사다 해라.”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삶의 무게에 짓눌렸기에, 이 정도 여가는 필요하다 싶은 선택에서였다.
정말 좋아했지만 어렸을 적 외엔 해보지 못한 여가생활에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렀다.
“칼콘, 나와라.”
“오늘? 나 여자 친구랑 약속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여자 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살짝 당황스러웠다.
“뭐야, 언제부터?”
“아마 일주일 전?”
살짝 달력을 훑었다. 일주일 전이면 헌팅을 돌아온 날이다.
도대체 뭘 하면 헌팅 다녀오자마자 여자 친구가 생길까 의문이 솟았다.
“별 건 아니고. 술 먹다가 만났어.”
“뭐하는 술집?”
“나이트클럽? 뭐 있잖아, 밤에 여는 파티장 비슷한 거.”
한 번에 이해됐다. 상대가 인간인지 살짝 궁금했으나 물어보진 않았다.
‘뭐 칼콘이 오크치곤 괜찮은 편이긴 하지.’
키 190 후반에 조각 같은 근육을 가진 칼콘이었다.
오크 특유의 엄니와 들창코도 심하지 않았기에 얼핏 보면 사람 같아 뵈기도 했다.
“슬슬 장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했다.”
“그럼 오늘 말고 글피 안 돼?”
제안을 하면 턱턱 받아왔던 녀석이 3일이나 약속을 미루니 이상했다. 말 잘 듣는 아들이 여자한테 정신 팔린 걸 보는 엄마 같은 기분이랄까?
“그러던가.”
당장 나오라고 하면 오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딱히 급한 일도 아니었고, 좀 더 쉬어도 상관없었다.
‘목숨 걸고 그 짓거리 했는데 이 정도는 쉬어야지.’
얼마나 신경 쓰였으면 잠자다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악몽은 기본이오, 한 동안은 개미만 봐도 경계했었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가벼운 신고식을 치르고 있거니 했다.
‘그러고 보니 창 식별하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식별한다고 해도 팔 장소가 마땅찮았기에 내버려 뒀었다.
지훈은 창을 챙겨들곤 터덜터덜 석중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