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미시드와의 전투 -->
짝! 짝!
있는 힘껏 따귀를 때리자 칼콘이 신음을 내뱉었다.
‘젠장, 지금은 안 될 것 같다. 우민우는!?’
우민우는 아직까지 만드라고라에 묶여있는 상태. 그 역시 목과 입에 개미가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저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았기에 칼콘을 뉘여 놓곤 민우 쪽으로 달렸다.
퍼석! 퍼석! 퍼석! 퍼석!
가는 길에 수없이 많은 개미들이 보였다. 모조리 밟아 죽이며 전진했다.
대강 네 걸음 정도 달렸을까?
휘익 - 쨍!
눈앞이 번쩍인다 싶더니 왼쪽 렌즈가 깨져버렸다.
포미시드가 화살을 날린 것!
하지만 저 개미들이 군대 형식까지 갖춘 문명종족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기에, 뭔가에 부딪쳤거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포미시드들이 바닥에서 화살을 엄청나게 쏴댔지만, 전부 지훈의 전투복을 뚫지 못하고 박히기만 했다.
크기가 작으니 맨살 아니고선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민우에게 다가가 바로 구출해 주려는 찰나, 만드라고라가 먼저 눈치를 채고 비명을 질렀다.
“후읍…!”
- 끄으에에에에에에에에!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 지훈을 때렸다.
“아아악! 이런 개썅!”
엄청난 소리에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라도 터진 듯 심한 이명이 울렸다. 게다가 귀 아래로 진득한 뭔가가 흐르는 게 고막이 나가버린 것 같기도 했다.
반고리관까지 피해를 입어 균형이 무너지려는 찰나….
- 변이 능력에 따라 신체를 재생합니다.
머릿속으로 반지의 목소리가 울리며 귀가 간질거렸다.
2초에 걸쳐 심했던 이명이 점차 작아지고, 넘어지려던 몸 역시 제 자세를 찾았다.
“저번에 스프리건도 그렇고, 요즘 식물새끼들은 참 겁이 없어. 그치?”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지훈에, 만드라고라는 공포와 함께 숨을 들이켰다.
“후읍!”
하지만 지훈도 두 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조종간을 연발로 놓고, 대강 만드라고라의 목을 조준한 뒤
타타타타탕!
“푸시시, 푸시힉“
만드라고라의 목에선 굉음 대신 공기 새는 소리밖에 나질 않았다.
충분히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소리 말고 다른 걸로 공격할 수 있었기에 바로 추가타를 입혀 제압했다.
“정신 차려!”
“난 부자야… 이제 험한 일 안 해도 된다고….”
“이 또라이야, 그러다 뒤진다고!”
사정 봐줄 것 없이 바로 얼굴을 후려쳤다.
힘이 잔뜩 실린 주먹이 민우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뻑!
“끄어어어, 꺽?”
번쩍 눈을 뜬 민우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으나, 일일이 설명해 줄 시간 따위 없었다.
“총 들어! 주변에 뭐 보이는 거 있으면 바로 갈겨!”
- 제 3번 식량 탈취 당했습니다!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지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아직까지 상황 파악 안 돼!?”
“네, 네? 제가 뭐라고….”
“개미부터 털어내고 빨리 총 들라고!”
민우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곤 목에 있는 개미들을 훔쳐냈다.
- 지원 요청! 지원 요청! 끼에엑!
‘개미가 말을 한다?’
잠에서 덜 깼나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다.
분명 개미가 말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바닥에선 굉장히 얇은 화살들이 쉴 세 없이 날아왔고, 그 화살비 사이로 개미 몇 마리가 바지를 타고 올라왔다.
“끄아악!”
갑작스레 볼에서 고통이 느껴져 손바닥으로 감싸니, 개미 한 마리가 버둥거리다 떨어졌다.
물렸나 싶어 쓸어보니, 장난감 같은 칼이 박혀있었다.
‘이런 미친!’
그제야 적이 만드라고라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거 왜 안 나가요!”
반면 민우는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체 어정쩡한 자세로 MP5를 매만지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나발이고 일단 따라 와! 여기 있으면 뒤진다!”
민우 주변을 얼쩡거리던 포미시드를 떼어내곤 지훈은 바로 그를 쑥 당겼다.
“왜요!?”
“개미도 적이야.”
“개미라뇨?”
“닥치고 따라와!”
설명보단 앞서 개미가 가득한 곳을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새까말 정도로 가득한 개미 밭을 벗어나자, 민우는 그제야 바닥을 훑었다.
“포, 포미시드? 어째서!”
“저것도 몬스터야?”
“네, 각 집단의 문명화 정도에 따라서 위험도가 천차만별인 놈들입니다! 빨리 없애야 해요!”
민우가 급히 방아쇠를 당겼으나, 딸깍 소리만 날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이, 이거 고장 난 것 같아요. 어떡해요!”
“조종간, 새끼야. 조종간!”
녀석의 총 세이프티 락을 해제시켰다.
“갈겨!”
타타타타탕!
탕! 탕!
일단 보이는 대로 총을 갈겼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마치 보병부대에게 대전차 탄환을 쏘는 느낌일까?
맞으면 죽긴 하겠지만 포미시드 숫자에 비해 탄환이 너무 부족했다.
“바, 발로 밟아 볼까요?”
“그러다 귀나 코 속으로 들어가면 일 난다!”
“이대로 있다간 죽겠어요. 도망갑시다!”
만드라고라고 나발이고 이대로 있다간 전부 개미 밥 되게 생겼다.
전리품을 앞에 두고 도망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죽으면 모두 물거품 아니던가.
“칼콘 챙겨. 다리 잡고 끌어!”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데려갑니까! 그러다 죽는다고요! 겨우 오크 하나 때문에 다 죽을 순 없어요! 위험 감수하며 챙겨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화가 솟아 민우의 얼굴을 후려쳤다.
“말 그따구로 밖에 못해!? 사람 살리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살리는 거지!”
민우가 작게 읊조린 욕설에서 불만이 언뜻 보였으나, 혼자 가면 죽는다는 걸 알았기에 명령에 따랐다.
그렇게 칼콘의 다리를 하나씩 붙들고 도망가려는 찰나….
- 마법사용 감지.
- 식별 완료.
- Lihased kasvab(거대화). 육체를 크게 부풀린다. 그에 따라 근력이 상승하나, 민첩에 페널티를 받는다.
부우우웅!
광풍과 함께 개미 한 마리가 사람 크기까지 불어났다.
뒷다리 두 개는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남은 네팔에는 각각 석궁과 창을 들고 있었다.
“아, 아니 어떻게…!”
초현실적인 상황에 민우가 입을 떡 벌렸다.
마법이라곤 식별밖에 보질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뭘 처 놀라고 있어! 쏴!”
타타타타탕!
타타탕!
두 개의 총구에서 총알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으나 전부 외골격에 막혀 버렸다.
애초에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종족인데, 각성까지 했으니 저항 수치가 굉장히 높은 까닭이었다.
“그르륵, 끅, 거걱!”
하지만 전부 튕겨낸다 한들 물리적인 힘까지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포미시드는 탄막에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 했다.
“탄 아껴! 사격 멈추면 바로 전진할거야!”
“벌써 다 쐈어요. 재장전!”
“이 새끼가 진짜!”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모습에 짜증이 솟았지만, 지금은 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타탕! 타탕! 타탕!
최대한 사격을 하며 포미시드를 막는 사이 민우의 재장전이 끝났고, 이후 지훈이 재장전을 했다.
하지만 전진을 막을 정도의 미봉책 밖에 되질 않았다.
- 마법사용 감지.
- 식별 완료.
- päevasõidutulede (몽롱함) 대상을 시야를 일그러뜨림.
- 공격적 마나 유입. 저항합니다!
- 마력 수치 7, 저항 성공!
마력 능력을 올려놨기 때문인지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 민우는 아니었다.
“아악! 내 눈!”
갑작스러운 변화에 민우가 몸을 비틀었고, 그와 동시에 연사로 놓여있던 MP5에서 여기저기 총알이 튀었다.
‘이런 미친!’
코 앞 5cm 앞으로 총알이 날아가는 게 느껴지자 온 몸에 털이 곤두섰다.
“정신 차려!”
“앞이, 앞이 안보여요!”
“끼릭! 끽!”
아주 잠깐 동안 탄막을 멈췄을 뿐인데도, 포미시드가 바로 달려들었다.
훅!
날카로운 찌르기!
동물의 뼈로 만든 조악한 창이었지만, 엄청난 힘이 점으로 집중되면 얘기가 달랐다.
핀포인트 일격에 케블라 방탄복 따윈 손쉽게 관통되겠지.
“젠장!”
지훈은 민우를 밀어 넘어뜨리곤, 횡으로 이동했다.
타타탕!
혹여 옆면은 취약할까 싶어 이동 중 견제사격을 했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쉽게 막혀버렸다.
‘어떡하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실수 한 번에 생명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칼콘이 들고 있던 방패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찔러오는 일격에 거리를 두느라 바빴지만, 방패가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훙!
잠시 버벅 거렸을 뿐인데도 그 사이 바로 창이 날아왔다.
이번엔 찌르기가 아닌 휘두르기!
중배의 공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몸 중앙으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것이, 맞았다간 늑골이 그대로 가루가 될 것 같았다.
‘겨우 개미새끼한테 뒤져줄쏘냐!’
지훈은 바로 바닥에 있는 방패를 집어 들곤, 날아오는 창을 팔뚝으로 막았다.
깡!
힘이 얼마나 세던지 옷 안에 있던 강철 보호대가 박살나며 잠시 붕 떴다 내려왔다.
“끼리끽? 끼-끼.”
포미시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태껏 그가 만났던 인간들은 모조리 일격에 두 동강이 났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지훈은 달랐다.
“식량. 너 세다. 전사의 긍지. 나 제대로 한다.”
포미시드의 입에서 어눌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그 사이 지훈은 방패를 고쳐 잡곤 스위치를 눌렀다.
촤라라라락!
잘 말려있던 방패가 쫙 펴지며 몸 대부분을 가렸다.
“식물에 이어 개미냐? 그래, 이제 왜 헌터하는 새끼들이 삑 하면 정신과 입원하거나 마약 빠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
“나. 너. 무슨 말. 모른다.”
못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사이좋게 언어 교류나 하자고 온 게 아니다.
“너희 뭔데 만드라고라랑 붙어있냐?”
“포미시드. 만드라고라. 공생관계. 우리 피 준다. 고기 갖는다. 만드라고라 진물 준다. 서로 좋다.”
왜 숲에 동물이 거의 없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죄다 만드라고라에 먹인 건가.’
이제 정보는 충분했다.
“그래서, 너네는 뭐라고?”
“우리는 자랑스런 포미….”
포미시드는 양 팔을 발려 자랑스럽다는 듯 하늘로 들었다.
그 사이 지훈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Mp5를 들어 올려 최대한 빠르게 조준해….
탕!
“끼에엘에엑!”
포미시드의 한 쪽 눈에서 불투명한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명예도 모른다. 인간. 나. 너 죽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명예 따위는 개나 준 세상이었다. 어찌 개미와 지킬 명예가 남아있을까.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었기에 지훈은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타탕!
훅! 쨍!
외골격에, 방패에 서로의 일격이 막혔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수중에 F급 아티펙트가 있긴 했지만 쓰기 애매했다.
창을 쓰는 상대에게 다가가기도 어렵거니와, 다가가도 공격이 유효할지 미지수였다.
- 마법사용 감지. mürgitus(중독).
- 공격적 마나 유입!
- 저항합니다! 성공!
‘지는 마법사 보조 받으면서 어디 명예를 운운하고 있어!’
욕을 할 새도 없이 바로 창이 찔러 들어왔다.
막았다.
끼기긱!
강력한 찌르기에 잠시 방패가 흔들린 찰나, 포미시드가 들고 있던 석궁을 발사했다.
퓩!
괴상하게 생긴 볼트가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허벅지를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
“끄아….”
훅! 챙!
비명 지를 시간도 주지 않을 생각인지, 포미시드는 남은 두 팔로 쉴 새 없이 창을 휘두름과 동시에 석궁을 장전했다.
‘어떡하지?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허리춤에 있던 글록을 쳐다봤다.
현재 장전된 탄환은 폭발탄환.
타격과 동시에 주변을 쓸어버리는 강력한 폭풍이 발생한다.
분명 포미시드에게도 유용할 테지만, 문제는 1M 이상 거리를 벌리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 상처 부위 이물질 발견. 무시하고 재생 할까요?
안됐다.
그랬다간 움직일 때 마다 볼트가 걸리적거려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터.
타탕! 탕! 타타탕! 탕!
지훈은 방아쇠를 당기며 포미시드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곤, 바로 볼트를 뽑아냈다.
“재생!”
- 변이 능력에 따라 신체를 재생합니다.
볼트가 박혀있던 부분에서 빠르게 새살이 돋아났다.
그나마 재생 능력이 있기에 다행이었다. 만약 저것도 없었다면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최대한 재생 변이를 이용하면서 버텨보… 잠깐만.’
순간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 화염 속성 : 몸 안에 불 속성 마나가 흐르고 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하나, 냉기에 대한 저항력은 감소한다.
생각이 들자 고민은 짧았다.
MP5를 던져버리곤, 허리춤에 있는 글록을 뽑았다.
옳은 선택일까?
칼콘이 폭발 반경에 휩쓸린다면?
불에 저항력이 있다고 폭발 충격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혹시라도 잘못 맞으면?
“후우….”
날숨과 함께 잡생각을 모조리 털어버렸다.
어차피 이대로 시간을 끌어봐야 서서히 죽어갈 뿐이었다.
‘이래 뒤지나 저래 뒤지나 똑같아. 할 건 다 해보고 죽는다!’
정신을 집중했다.
각성으로 재정비된 감각들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치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마치 마법처럼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달려오던 포미시드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고,
주변 환경들은 서서히 뜯겨져 나가듯 사라져 간다.
이윽고.
시야에 포미시드 밖에 보이질 않게 됐을 때.
온 힘을 다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구에서 불과 함께 룬어가 각인 된 탄두가 튀어나갔다.
빠르게 회전하며 주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 총알은…
정확하게 포미시드의 미간에 명중했다.
우우우웅!
그 순간 탄두는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시작하더니
퍼엉!
폭발!
거대화된 포미시드를 중심으로, 지훈은 물론 바닥에 몰려있던 포미시드들까지 모조리 폭발에 휩쓸렸다.
- 마나 폭풍 감지. 엄폐하십시오.
“젠장!”
방패로 온 몸을 가렸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근거리 폭발인지라 차에 치인 듯 하늘을 날았다.
‘성공… 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머리에 정확하게 들리는 말은 있었다.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
- 티어가 올랐….
- 티어….
…
- 이블 포인트가 5 감소했습니다.
- 이능력을 얻었습니다.
☆ ☆ ☆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주변 땅에 불이 붙어있는 걸로 봤을 때 그리 긴 시간은 아닌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지훈의 옷에도 작은 불이 붙어 있었다.
“헉!”
화들짝 놀라 불씨를 털어내고 몸을 살폈다.
옷 여기저기가 화마에 뜯어 먹혀 있었지만, 다행히 몸에 심각한 화상은 없었다.
‘화염 저항 때문인가?’
정확했다.
붉게 달아오르거나 물집이 잡힌 곳은 몇 군데 있었지만 아예 일그러질 정도로 심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주변을 살폈다.
거대화 된 포미시드는 더듬이가 모조리 날아간 체 푹 익어있었고, 녀석을 중심으로 땅이 움푹 파여 있었다.
남은 포미시드들은 대부분 폭발의 후폭풍으로 쓸려나간 것 같았다.
몇몇 녀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소수로는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가볍게 밟아버렸다.
‘칼콘이랑 민우는?’
칼콘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는 모양이었고, 민우는 마법의 여파인지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냐?”
“사, 살려주세요….”
무슨 마법인지 몰랐다면 다급해졌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지 몽롱한 마법 때문에 어지럼증이 심한 것뿐이겠지.
“엄살은 진짜. 안 죽으니까 걱정 마.”
“세상이 빙빙 돌아요. 독… 독 같아요, 이거.”
그나마 독 비슷한 게 내장용해제였지만, 만약 그걸 맞았다면 이미 고인이 됐어야 했다.
“됐다. 그냥 좀 누워있어라.”
신음하는 민우를 뒤로하고 칼콘에게 향했다.
“일어나 임마.”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굉장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표정이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누구는 죽을 똥 싸며 개고생 했는데 어찌 이리 곤히 잔단 말인가?
허벅지를 지그시 밟으니 그제야 끅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티그림, 새끼야. 티그림!”
“카크라는?”
“꿈, 새끼야. 꿈!”
칼콘이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훈은 체감 30년짜리 엄청난 꿈을 꿨다.
아마 저 녀석도 호접지몽마냥 꿈과 현실의 경계가 일그러진 느낌을 받고 있으리라.
“혹시 남은 거 있을지 모르니까, 개미 보이면 죄다 쏴버려. 알겠어?”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손에 총과 방패를 쥐어줬을 뿐이었다.
이후 널브러져 있는 주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포미시드가 썼던 창을 챙겼다.
마치 거대한 뼈를 그대로 깎아 만든 것 같았는데, 꼭 거대한 이쑤시개 같았다.
‘폭발을 견뎌낼 정도라면 분명 좋은 물건일거다.’
식별 스크롤이 없었으므로, 대신 단검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F급. 부서진다 해도 더 좋은 물건을 얻었다는 뜻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깡!
꼭 플라스틱 마냥 단검 날이 둥글게 패여 버렸다.
‘뭐야. E급 이상이라는 건데 방패는 왜 안 뚫린 거지?’
정확하게는 등급보단 과학에 가까운 얘기였다.
창이라는 무기는 끝이 뾰족해 그 점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무기였으나, 칼콘의 방패는 빗면 형태였다.
힘이 집중되기도 전에 미끄러져버리니, 간신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만드라고라를 향했다.
총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완전히 난도질을 해 놨기에 체액이 전부 바닥에 스며든 상태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경미한 상처만 있었을 뿐 상태가 양호했다.
질질 끌어 한 대 모은 뒤 민우에게 물었다.
“저거 이제 어떡하지. 시체 그대로 들고 가?”
“아뇨… 제 가방에 채혈기 있는데… 일단 그걸로 체액을 뽑아주세요.”
가방을 뒤지자 독특하게 생긴 기구가 보였다.
만드라고라에 푹 꽂고 있자니 흡혈귀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팩을 모두 채우고 난 뒤 조각난 만드라고라 파편을 챙겼다.
아직 사용 용도가 밝혀지진 않았으나, 연구재료로 팔면 돈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전리품을 다 챙긴 뒤 남은 둘의 상태를 살폈다.
칼콘은 아직 생생한 꿈의 여파에 정신이 없어 보였고, 민우 역시 움직이질 못했다.
‘구조대 불러야 하나.’
보조 주머니에 꽂혀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비싼 돈을 내야하긴 할 테지만, 분명 그 값이 아깝지 않을 뛰어난 사람들이 온다.
‘아니. 아직은 괜찮을 것 같다. 칼콘한테 잘 얘기해서 이동하자.’
“가자.”
“어, 어딜?”
“집에. 일 했으니까 정산하고 쉬어야지.”
“그래. 그래야지. 어….”
지훈이 손을 내밀자, 칼콘이 그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짐이랑 저 식물 챙겨. 나는 저 자식 업고 가야할 것 같아.”
칼콘은 별 말 없이 만드라고라를 어깨에 얹었다.
“우민우. 걸을 수 있겠냐?”
“아… 안 돼요. 못 걸어요.”
“너 칼콘 위험할 때 뭐라 그랬었더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버리자고 했었다.
민우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버리고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제발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렇게 살지 마라.”
짝!
따귀 때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업을 테니까 최대한 팔로 버텨. 알겠냐?”
“버, 버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사람 구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구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무거우니까 그냥 입 닫고 있어. 등에 토하지 마라.”
- 선행으로 인해 이블 포인트가 1 감소했습니다.
스윽 스윽 하고 칼콘과 지훈이 발을 옮길 때 마다 낙엽 쓸리는 소리가 났다.
가는 길에 딱히 큰일은 벌어지진 않았다.
굶주린 다이어 배져가 나타났지만 보자마자 마력탄환으로 날려버렸다.
짐을 차에 싣고 조수석에 앉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휘몰아쳤다.
“운전 할 줄 알지?”
“면허는 없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
“가자.”
부릉- 드드드드드….
비포장도로를 달렸기에 진동과 소음이 심했지만, 그나마도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눈이 스르륵 감기기 전….
‘맞다. 티어.’
정보 창을 열어 확인해 봤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이블 포인트 : 71 (-6)
등급 : D 등급 9티어 (+14)
보너스 점수 : 14
근력 : E 등급 (15)
민첩 : E 등급 (13)
저항 : F 등급 (8) (+2)
마력 : F 등급 (7)
잠재 : S 등급 (?)
이능 : F 등급 (5) (신규!)
[이능력]
(신규!) 집중 (F랭크) :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극대화 합니다. 사용 시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며, 하나 혹은 여러 대상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얼마간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연속 사용 시 부작용이 있습니다.
‘아까 내가 겪었던 게 이능이었나.’
픽 웃음이 나왔다.
정리하자면…
티어는 무려 14개나 올라 D등급 9티어가 됐고,
이블 포인트는 6이 깎였으며,
단순 경험으로 저항이 2포인트 올랐고,
이능 등급과 이능력이 새로 생겨났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
일단 보너스 점수는 대부분 저항에 투자했고, 나머지는 민첩, 마력, 이능에 골고루 분배했다.
- 반영되었습니다.
민첩 : E 등급 (13) = > E등급 (15) (+2)
저항 : F 등급 (8) = > E 등급 (15) (+7)
마력 : F 등급 (7) = > E 등급 (10) (+3)
이능 : F 등급 (5) = > F 등급 (7) (+2)
저항이야 더할 것도 없이 목숨을 위해서였다.
앞으로 어떤 적을 만날지는 알 순 없었으나, 분명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를 만날지도 몰랐다.
‘실제로 포미시드 각성자는 OTN탄을 전부 튕겨냈다.’
아무리 신금속 탄환 중 최하급이지만, 일반 방탄복 따윈 손쉽게 찢어버리는 탄환이다.
그 탄환으로 생체기 하나 내지 못했다.
물론 인섹토이드라는 특성상 저항 능력치가 타 종족보다 2배 이상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분명 높은 저항을 가진 각성자는 그 존재 자체로도 전차와 같았다.
민첩은 회피를 위한 선택이었다.
만약 민첩 능력치가 낮았다면, 채 방패를 집기도 전에 포미시드의 창에 머리가 박살났을 터였다.
그 외 마력은 마법 저항을 위해서 투자했고, 이능은 혹시 모를 또 다른 이능 혹은 이능력 강화를 위해 투자했다.
‘젠장, 너무 피곤하다.’
능력치 분배를 완료하자마자 짙은 수마가 지훈을 끌어안았다. 견딜 수 없는 피로에 슬쩍 눈을 감자, 의식이 픽 끊어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