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접지몽 -->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게다가 각성자로서의 힘도 가지고 있으니 과연 대적할 자가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도 쉽게 가족을 구했으며,
너무나도 쉽게 부자가 됐다.
현재 지훈의 직책은 세계 가디언 협회의 이사장.
그가 알려준 정보를 통해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했고, 지훈은 그에 걸맞은 명예와 권력을 얻었다.
마치 살아있는 전설이 이러할까?
이 세상에 지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몬스터에 관련 된 사안입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슥 훑어본 결과 아는 몬스터였다.
이에 바로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마법사 그리고 기술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저 몬스터의 이름은 자라탄. 엄청나게 큰 거북이로, 등껍질에 섬을 얹고 다닐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섬에는 생태계까지 형성되어 있죠.”
자라탄은 미래에 미국이 딱 한번 퇴치한 적이 있었다.
본디 온순한 몬스터라 내버려 두면 위험이 되진 않았으나, 이동 경로에 미국의 자원채취 기지가 있었던 것.
이에 미국은 헌터들을 긁어모아 자라탄의 등에 있는 숨구멍을 모두 막아 죽였다.
“핵무기는 소용없습니다. 오염만 될 뿐입니다. 헌터들을 불러 모아 등에 있는 숨구멍을 막고, 올라올 때 마다 재차 공격하면 됩니다.”
“오오, 과연!”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물들이 기립박수를 쏟아냈다.
일반인이라면 평생 얼굴 한 번 볼 수 없는 거장들이었음에도, 지훈은 시크하게 돌아섰다.
동양에서 나타난 현자.
인류의 수호자.
전설. 정점.
이 외에도 지훈을 표현하는 단어는 끝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쉽게 얻은 것은 쉽게 간다고 했던가.
정점에 오르고 나니 모든 게 권태로웠다.
S+등급을 찍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등급도,
항상 떠받들어주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일상도.
모두.
‘지루하다.’
최고급 의자에 몸을 뉘이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근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잘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분명 숲까지 들어갔던 것은 기억이 났다.
‘만약 내가 회귀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흩어져서 시간의 먼지를 듬뿍 머금은 기억의 편린들을 모았다. 마치 직소 퍼즐을 맞추듯, 아주 조금씩 과거의 일이 생각났다.
- 카크라! 그 칼 내려놔!
‘칼콘… 그래 그 녀석 이름이 칼콘이었지.’
처음으로 사귄 이종족 친구이자, 믿음직한 동료였다.
‘식물학자 녀석은 어떻게 됐을까?’
- 저 오크 버리고 가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겁니다.
같이 있던 녀석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았지만, 적어도 혼자 칼콘을 구하러 가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석중도, 시체 구덩이의 사장도 드문드문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지현 생각이 났다.
‘다른 시간에 있는, 내가 없는 지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칼콘은?’
눈앞이 껌껌해졌다.
대답이야 간단했다.
혼자 뛰어간 칼콘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지현도.
죽었을 거다.
“아, 안 돼!”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였거늘,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여태껏 생각도 하지 않은 죄책감을 줄이려는 위선의 눈물은 아니었다.
단지 눈물만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구해야 한다.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돼. 녀석들에겐 내가 필요하다!’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일까?
- 돌아가시겠습니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 정도면 제 2의 인생도 살만큼 살았잖아. 돌아간다. 이제 저 쪽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구하러 가야 할 때다.’
언젠가 들었지만, 잊은 지 한 참 됐던 진동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으으응.
- 저항 하시겠습니까?
“저항한다!”
엄청난 현기증과 함께 세상이 일그러졌다.
☆ ☆ ☆
“우웨에엑!”
구토감이 몰려와 퉤 하고 뱉어냈다.
토사물이었다면 분명 갈색이나 불쾌한 색이여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색이 붉었다.
마치 피처럼.
‘뭐, 뭐야 이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뱉어낸 피를 녹색 여자가 입을 벌린 채 받아먹고 있었다.
“흐억!”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비명이 나왔고, 눈이 핑 돌았다.
큰 소리를 냈기 때문일까?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녹색 여자가 눈을 떴고, 지훈과 녹색 여자의 눈빛이 서로를 가로질렀다.
혐오와 가득 담은 피포식자의 눈과,
놀람을 가득 담은 포식자의 눈이 부딪혔을 때.
비명과 고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끼에에에에엑!”
“으아아아아악!”
그 순간 정말 오래전에. 아니 얼마 전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민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만드라고라가 피랑 정액을 먹고 자라거든요….
‘내가 먹히고 있었던 건가!?’
“저리 꺼져 이 식물새끼야!”
온 몸을 포박하고 있던 줄기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줄기가 모조리 찢겨나갔다.
“기에엑!”
녹색 여자, 아니 만드라고라는 포박에 실패하자 바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죽어!”
지훈이 휘두른 아티펙트에 목이 잘려나갔다.
식물답게 머리가 급소가 아니었는지 버둥거리며 도망치려했지만, 지훈이 바로 올라타서 토막을 내버린 탓에 그럴 수 없었다.
반투명한 체액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반쯤 소화된 지훈의 혈액도 뿜어져 나왔는데, 그 모습이 기괴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지훈은 앞에 있던 만드라고라를 처리하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 으헤헤. 나는 부자야, 나는 부자라고….
- 사랑해 카크라, 이제 두 번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칼콘과 민우 역시 방금 지훈과 똑같은 모습으로 묶여있었다.
‘다 꿈이었다고?’
30년 이상 현실이라고 믿고 살았던 제 2의 삶이 꿈이라니!
뇌가 정전되고, 눈앞은 암전됐지만, 가슴은 뜨겁게 뛰었다.
연료는… 분노였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칼콘과 민우를 구하기 앞서 총기를 찾았지만 어디 갔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분명 정신을 잃기 전 까지만 해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말이다.
‘젠장, 권총으로 상대해야 하나?’
지금 장전되어 있는 탄환은 폭발 탄환이었다. 위력은 절륜하나 만드라고라에 쐈다간 칼콘과 민우가 폭발에 휩쓸릴지도 몰랐다.
고민하고 있길 잠시.
‘왜 내 총이 지 혼자 움직여?’
바닥을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 MP5가 보였다.
정확하게는 개미들이 MP5를 옮기고 있었다.
☆ ☆ ☆
- 보고! 사령관! 제 1번 식량, 깨어났습니다! 만드라고라 사망! 내장 용해제 투입이 완료돼서 대기 병력이 없습니다!
- 보고! 사령관! 제 2번 식량, 내장 용해제 투입 명령을 부탁드립니다!
- 보고! 사령관! 제 3번 식량, 환각 물질 내성이 약합니다! 더 투여하면 치사량입니다!
키가 큰 식물 위에 앉아있던 개미 한 마리가 더듬이를 쉴 세 없이 움직였다.
일반적인 개미라면 헐벗은 몸으로 있어야 했지만, 저 개미는 달랐다. 옷은 당연하고 망원경에 활까지 매고 있었다.
‘어떻게? 제 1번 식량은 내장 융해에 다 녹았을텐데?'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한 건 지훈이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이었기에, 대장 개미는 바로 더듬이를 움직였다.
- 명령! 1중대, 제 1번 식량을 제압.
- 명령! 2중대, 내장 융해제 투입을 유보하고 제 1중대 옆 전투 대기.
- 명령! 3중대, 환각 상태 지켜보며 대기.
대장 개미 아래로 모기 앵앵거리듯 작은 소리들이 쉴 세 없이 들렸다. 듣기엔 너무 먼 거리였으나 상관없었다.
- 1 중대장, 현재 대기 중인 각성자 등급과 무장?
- 보고! C등급 각성자, 현재 C등급 아티펙트를 착용 중입니다.
- 중대는 제압 사격을 실시하고, 빠르게 각성자를 투입.
그들의 이름은 포미시드.
곤충형 종족인 인섹토이드로, 뼈가 없는 단순한 내장기관, 강력한 근육과 외골격으로 이뤄진 개미 종족이었다.
특히 포미시드의 경우 굉장히 독특한 능력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마인드 링크(집단사고)였다.
소리를 통한 언어체계 역시 있으나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이기에 페로몬과 진동을 통해 전 개체가 동시에 의사소통을 하는 것.
그렇기에 크기가 작고 약한 종족이었음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 2 중대장, 현재 마법사 상태?
- 보고! 제 1중대 각성자에게 이동 중! 예상 시간 3분 43초!
- 명령! 마법사는 거대화 마법으로 보조.
대장 포미시드는 명령을 마친 뒤 등에 들고 있던 활을 움켜쥐었다.
목표는 지훈의 나이트 비전이었다.
☆ ☆ ☆
‘바빠 죽겠는데 왜 총을 가져가고 있어!’
총을 집자 개미 여러 마리가 딸려 올라왔다.
자기가 알던 개미들과 미세하게 다른-정확하게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얼핏 보였지만, 지금은 개미 따위에 정신 팔릴 세 없었기에 손으로 쓸어버렸다.
아무리 진화한 곤충, 인섹토이드라고 한들 그래봐야 골자는 개미다. 덩치 차이가 50배는 족히 되는 인간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지훈은 바로 조종간을 점사로 놓곤 칼콘을 묶고 있는 만드라고라에 발사했다.
타타탕!
끼으우엑!
총구가 불을 뿜음과 함께 만드라고라에서 녹색 체액이 튀어 올랐다.
목이 잘려도 움직이던 녀석들이다. 아마 관통상으론 별 효과가 없으리라.
후속타를 위해 바로 달려들어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만드라고라의 자세가 흔들렸고, 이에 지훈은 질풍처럼 바로 다음 일격을 꽂아 넣었다.
훅!
왼 발을 축으로 한 몸무게를 실은 하이킥!
각성으로 인해 엄청나게 증폭된 힘이 그대로 만드라고라 머리로 향했고….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만드라고라가 바닥에 처박혔다.
“일어나 새끼야, 여기서 자면 죽어!”
“아들은 잘 있어? 피는 이어져 있지 않지만 소중한….”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훈도 30년간 자기가 겪었던 일들이 현실이 아닌, 환각이라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칼콘의 목과 입술에 개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특정 부위에만 집중되어 있는 게 이상했기에 지훈은 칼콘의 입술과 목을 거칠게 털어냈다.
“제발 일어나! 여기서 뒤지면 시체도 못 가져간다! 적어도 장례는 치러야 할 거 아냐, 이 돼지 새끼야!”
“나도 사랑해….”
말로 해서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