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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17화 (1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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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콘과 민우의 전등이 동시에 휙 돌아갔다.

“끄르르!”

그곳엔 오소리가 한 마리 있었는데 크기가 호랑이만큼 거대했다.

뿐만 아니라 가죽에 시멘트 같은 비늘이 드문드문 돋아있는 모습이 마치 갑옷처럼 단단해 보였다.

“다이어 배져?”

“쏘지 마세요! 온순한 동물입니다! 아마 자기 구역을 침범 당했다고 생각해서 위협을 하러 온 것 같습니다!”

고로로룩, 호로로룩.

민우는 입으로 떠는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다이어 배져는 잠시 지켜보는 듯 하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저거 고기 맛있는데. 그냥 잡지 그랬어?”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잡는다고 해도 무게 대비 가격도 별로구요.”

가죽은 갑옷을 만드는 재료로 쓸 순 있었으나, 다른 금속 외에도 아티펙트가 많았기에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동을 재개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민우의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뭐야… 여기 누가 먼저 지나갔나본데?”

일행 앞에 누군가 지나간 길이 나타났다.

“자국으로 봐선 사람이 확실하네요. 이상하네, 바람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다 없어질 텐데.”

경쟁자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여기 만드라고라 말고 다른 헌팅 재료가 뭐 있지?”

“약으로 쓸 수 있는 이끼랑 몇몇 야생짐승이 다에요.”

“그럼 만드라고라 정보 아는 다른 사람은?”

뭔가 구린 냄새가 났다.

아무리 지금 민우가 같이 있다고 한들, 배신 여부를 배제할 순 없었다.

만드라고라를 미끼로 함정을 파놨을 수도 있었다.

“기다려 봐. 표시 좀 하자.”

지훈은 가까운 나무 주변 낙엽을 원형 형태로 치운 후, 칼로 나무에 큰 X자 표시를 했다.

“만드라고라 까지 거리는?”

“대충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럼 추적 먼저 한다.”

최대한 경계하며 흔적을 따라 걸었다.

언제라도 습격당할 수 있었기에 전등은 모두 껐고, 민우는 중간에 껴서 지훈의 어깨만 잡고 쫓아왔다.

경계하며 걷느라 힘들었던 시간이 약 30분.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나무에 큰 X자 표시가 보였다. 추적하기 전에 표시했던 흔적이 있던 장소로 돌아온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있던 길 그대로 쭉 따라왔을 뿐인데 왜 같은 장소에 도착한단 말인가?

“지훈, 제대로 보고 걸은 거 맞아?”

“일방향이었다. 샛길 없었어.”

“나이트 비전 때문에 눈 아파서 잘 못 봤겠지. 내가 선두에 설 게.”

칼콘은 우습다는 듯 선두에 서서 방패로 경계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이런… 젠장!”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적어도 네 번 이상.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너, 이 새끼. 장난질 쳤냐?”

민우의 어깨를 잡고 으르렁거렸다.

“아, 아닙니다. 제가 왜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럼 이거 뭔데!”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지면 제일 먼저 고개를 들이 미는 게 바로 의심이었다.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려는 순간….

“카크라. 왜 여기에!?”

칼콘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봐 칼콘, 카크라라니?”

듣지 못한 건지, 대답할 경황이 없었는지는 몰랐다.

“그 칼 내려놔! 내, 내가 그리로 갈게! 그러지 마!”

버석, 버석, 버석, 버석!

칼콘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녀석은 마치 황소처럼 달려 금세 사라져 버렸다.

둘 만 있었다면 끝까지 쫓아갔겠지만, 지금은 짐이 붙은 상태. 쫓아갔다간 민우가 뒤쳐질 게 뻔했다.

‘도대체 뭘 보고 저런 거지?’

칼콘이 달려가는 쪽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 개새끼야! 너 진짜 아무것도 안했어!?”

동기는 충분했다. 안락한 직장을 뺐고, 동료를 죽였으며, 본인의 생명까지 위협했다.

민우의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안했습니다! 두 분 죽으면 저도 살아서 못 나간다고요!”

“그럼 저 새끼 왜 저래, 설명해봐!”

“처음 숲에 들어오면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도 합….”

퍽!

되도 않는 소리에 민우의 가슴을 때렸다.

“억!”

“세드 출신이 숲에 처음 와봤겠냐?”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한 바퀴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단지 시야 아래 뭔가 걸려서 내려보니, 개미가 드글 거렸을 뿐이었다.

‘개미가 뭐 이렇게 많아, 젠장!’

짜증을 담아 개미 무리를 짓밟았다.

퍼석!

“저, 정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요. 잘못됐다고요.”

“누구나 다 아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해결책을 찾아봐!”

“도망가죠. 버리고 가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겁니다.”

“이 새끼가 진짜!”

동료를 버리자는 말에 화가 터졌지만, 때리진 않았다.

사이가 틀어지거나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칼콘부터 찾고 나서 생각한다.”

“둘 다 죽어요! 미친 짓이라고요!”

“네가 저랬어도 구하러 갔을 거다. 닥치고 따라와.”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어차피 혼자 나갈 수도 없었기에 민우는 군 말 없이 쫓아왔다.

“젠장. 개미가 왜 이렇게 많아요?”

“나도 몰라. 동물은 하나도 없는데 개미만 잔뜩 있다.”

경계하며 칼콘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마치 세상이 빠르게 한 바퀴 돈 것 같은 착각.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 잠깐, 잠깐만. 민우야, 쉬었다 가자.”

“응, 오빠.”

“개소리 집어 치워. 오빠라니… 어?”

등 뒤에는 민우가 아닌 지현이 서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무와 낙엽밖에 보이던 어두운 숲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공원이 죽 펼쳐졌다.

“동생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어지러웠다.

호접지몽이 이러할까?

나비가 내 꿈을 꾼 건지, 내가 나비 꿈을 꾼 건지 알 수 없었다. 꼭 백일몽에 휩쓸린 것 마냥 모든 게 모호해졌다.

“어디 아파? 5분 전부터 계속 멍 하니 서있기만 하고….”

“5분이나 됐다고? 그것보다 여긴 또 어디야?”

“아 계속 이상한 소리만 하네. 오래간만에 같이 바람 쐬러 왔잖아. 자꾸 그러면 나 그냥 집에 간다?”

마치 진짜마냥, 지현이 볼을 크게 부풀렸다.

진짜마냥?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구토감이 느껴졌다.

허리를 슬쩍 숙이니 평소에 즐겨 입던 가죽재킷이 보였다.

‘나 분명 무장하고 있지 않았나…?’

맞다.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현기증에 몇 번 더 시달리자 잊어버렸다.

‘모르겠다. 일단은 쉬고 싶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두통이 심해서 신경 쓸 수 없었다.

가까운 벤치에 앉는다.

‘벤치? 어떻게 벤치가 있지? 여긴 숲이잖아.’

숨을 돌린다.

‘숲에 벤치가 있으면 왜 안 되지?’

좀 괜찮아 졌다.

‘그래. 있을 수도 있지. 아무렴 어때.’

“근데 너 꽤 괜찮아 보인다. 안 아파?”

“무슨 소리야. 아프다니?”

“병 걸렸잖아.”

퍽!

농담하지 말라는 듯, 지현이 픽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실제로 지현의 안색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앳된 것이 굉장히 어려 보였다.

꼭 고등학생처럼.

“야… 지금 몇 년도냐?”

“뭘 또 물어봐. 오빠 오늘 진짜 이상하다. 핸드폰 봐.”

핸드폰.

세드로 넘어오며 쓸 일이 없어져 팔아버린 물건.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훈의 주머니엔 스마트폰이 들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핸드폰 액정엔 10년 전 오늘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뭔….’

모든 게 10년 전과 똑같았다.

여동생, 집, 서울, 부모님, 학교.

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어, 어머니. 아버지….”

“얘가 갑자기 왜… 너 어디 아프니?

몬스터 아웃브레이크와 함께 사망한 부모를 다시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가족은 지훈을 걱정하기도, 놀리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죽은 가족을 다시 한 번 봤다는 것. 그 외에 모든 것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몬스터 아웃 브레이크.

부모의 사망.

개척자로서 세드로 이동.

지현이 병에 걸린 것.

뒷골목을 전전하며 더러운 일을 한 것.

그리고 권능의 반지를 얻어 각성한 것 까지.

모조리 털어놓았다.

진지한 어투였으나, 가족들은 그저 웃음기 있는 얼굴로 지훈을 토닥거릴 뿐이었다.

“공부한다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나보구나. 보약이라도 해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지현이 먹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꿈 때문에 그러니?”

“음… 사실 맞아요. 조금 걱정돼서요.”

지현이 빵 터져서 낄낄거렸다.

“내가 병에 왜 걸려. 이렇게 건강한데?”

되도 않는 알통을 자랑하며 웃는 모습이 철없는 10대 소녀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이질 않았다.

‘다행이다… 모두 꿈이라서.’

기억을 훑으니 너무나도 짙은 현실감이 엄습했지만, 가족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너무나도 쉽게 부정됐다.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왠지 잠이 오질 않았다.

뭔가 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침대에 앉아 생각하길 잠시.

지훈은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5월 27일.

포탈이 열리기 하루 전 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포탈은 정확하게 5월 28일 새벽 4시에 열렸었다.

제 1차 몬스터 아웃브레이크라 칭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이에 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차례로 파견해서 저지선을 구축, 방어에 성공한다.

이후 ‘방어에 성공했으니 국민들은 불안해하지 말고 경제활동에 힘쓸 것.’이라는 방송이 흘렀으나….

남아있는 잔당들에 의해 저지선이 파훼되고, 동시에 몬스터 2차 브레이크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 강남구와 관악구가 쑥대밭이 됐다.

‘부모님이 그 때 돌아가셨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어떻게 하지. 도망쳐야 하나?’

제일 좋은 방법이었으나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꿈에서 있던 능력이라도 그래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보! 라고 하면 떠오르던가?’

그 순간!

반지가 없음에도 눈앞에 정보가 떠올랐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종족 : 인간

등급 : E 등급 5티어

근력 : E 등급 (15)

민첩 : E 등급 (13)

저항 : F 등급 (6)

마력 : F 등급 (7)

잠재 : S 등급 (?)

이능 : 감지 실패

[신체 변이]

- 약한 재생 : 신체 변이로 자연 재생력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신진대사가 증가합니다.

- 화염 속성 : 혈액 안에 불 속성 마나가 흐르고 있습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하나, 냉기에 대한 저항력은 감소합니다.

[이능력]

없음.

‘지, 진짜였다고? 그 꿈이?”

확인을 위해 구비해 놨던 악력기를 있는 힘껏 쥐어봤다.

끼이익- 깡!

악력기가 바이스에 끼기라도 한 양 너무나 쉽게 박살났다.

‘꿈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온 건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실제로 포탈이 열린다는 증거가 말이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가족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헌팅?

그 딴 짓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기에 몬스터 아웃브레이크 이후 최단기간에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한 두 기업이 있었다.

‘아이덴티티, 보사.’

아이덴티티는 유명한 식별 기업으로, 영국에 본사가 있었다. 처음엔 인간이 마법을 어떻게 쓰냐며 무시 받았지만, 첫 인간 마법사가 나옴과 동시에 주식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보사는 유명한 헌팅 서포트 기업이었다. 헌터들이 능력치를 측정해 주는 기계를 발명한 것은 물론, 세드에 대한 지식백과를 만든 과학자 집단이었다.

만약 저 두 기업의 주식과, 지훈이 알고 있는 세드에 대한 지식 두 가지를 합친다면…?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다.’

지훈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벽 4시까지 TV 앞에 앉아 있었다.

개그 프로에 웃기도 하고, 영화 감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잠시.

TV 아랫부분에 속보가 떠올랐다.

- 속보! 강남대로에 정체불명의 균열 발생.

바로 채널을 돌리니 공중파 방송들이 모조리 균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똑같다!’

황홀함에 손끝이 저려왔다.

이제 더럽고 치사한 시궁창 인생은 모두 끝났다.

제 2의 인생을 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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