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오늘 갑자기 단속 나와서 이러는 건데? -->
대망의 헌팅 당일!
지현의 안부를 뒤로하고, 늠름한 걸음으로 동구 복합 터미널로 향했다.
“오셨어요?”
“지훈 왔어?”
먼저 도착해 있던 둘이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했다.
민우는 고개를 푹 숙였고, 칼콘을 양 손을 크게 흔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칼콘이 헌팅을 나가기 위한 갑옷을 입고 왔기에 우람한 토마호크는 보이질 않았다.
“버스 예매 했냐?”
“예, 15분 남았습니다.”
“그럼 각자 볼 일 보고 버스에서 타자. 근데 뭐로 했냐?”
“우등으로 했…는데, 좀 더 싼 걸로 바꿀까요?”
아차 싶었는지 말을 더듬는 민우였다.
“뭘 또 바꿔. 잘 했어. 이게 마지막으로 타는 버스일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편하게 가야지“
지훈은 둘을 내버려 두곤 터미널 한 편에 있는 핸드폰 대리점으로 향했다.
“어서옵쇼!”
“선불폰. 구조 요청용이라 10분만 있으면 된다.”
“헌터 분이시구나~ 요즘 잘 나가는 핸드폰 있는데, 이거 어떠세요.”
폰팔이는 한탕 해보려고 마음먹었는지 최신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구조용 선불….”
“요즘에 핸드폰들 구조 요청 잘 됩니다~ 여기저기서 잘 터져요!”
남은 시간이 15분밖에 없는데 직원이 어물쩍거리자 살짝 짜증이 났다.
“귀에 핸드폰 처박았냐. 구조대 호출용 선불폰 달라고.”
“아~ 구조대 호출용 선불폰 찾으시구나! 알겠습니다.”
많이들 쓰는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이 튀어나왔다.
“노기아꺼라 단단해요. 통화도 잘 되고요.”
“얼마?”
“백에 드릴게요.”
마력 충전이 되어있기 때문인지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카드 말고 현찰 때릴 건데 디씨 되냐?”
구십만 원에 핸드폰을 구매하곤 바로 버스로 향했다.
지구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모델이었지만,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바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장갑이 붙어있다는 것과, 앞좌석에 기관총 사수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거였다.
과거 개척시대 초기엔 몬스터 외에도 이웃 개척지와의 국지전이 자주 발생했기에 해둔 조취였다.
현재에 와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습격을 당할 일은 없었지만, 일일이 해제하기엔 예산이 많이 들어 그대로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총기 가지고 계시네요. 허가증 보여주십쇼.”
“이거 그냥 친구 꺼 들어주는 거라니까?”
“허가증 없으면 못 탑니다.”
버스 앞에선 칼콘과 민우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 일이오?”
“일행 분 되십니까?”
“그런데?”
“총기를 소지하고 계시더군요. 본인 말로는 대신 들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만.”
“무거워서 잠시 들어달라고 했는데, 문제라도?”
경찰은 담담한 표정으로 허가증을 요구했기에, 각성자 자격증을 보여줬다.
“문제없습니다만… 근데 지금 본인 총 두 개나 들고 계시네요?”
맞는 말이었다.
지훈은 현재 허리춤에 글록, 어깨엔 MP5를 매고 있었다.
“그게 또 뭐 문제라고 그러오?”
“혼자서 총을 4자루나 쓰시게요?”
“그냥 적당히 하고 갑시다. 거리에서 총질해도 아무 말 없던 양반들이, 왜 오늘 갑자기 단속 나와서 이러는 건데?”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전부 다 내가 쓸 거요. 됐소?”
보통 이쯤하면 못이기는 척 물러섰으나, 이번엔 아니었다. 경찰은 여전히 수상쩍다는 듯 계속해서 질문 공세를 해왔다.
“허가증 없이 총을 들고 다니시는 건 불법이지 말입니다?”
“야! 칼콘, 우민우. 이리와 봐.”
지훈은 쪼르르 달려온 둘에게서 총을 빼앗아 들었다.
“자. 됐지?”
“저기….”
더 이상 대화했다간 버스를 놓칠지도 몰랐다.
‘반지. 여기서 뇌물 주면 이블 포인트 오르냐?’
- 아닙니다. 뇌물수수는 본디 악한 행동이지만, 지금과 같은 경범죄 및 동기에 악의가 없을 경우는 제외됩니다.
결재 떨어졌기에 바로 경찰의 말을 확 끊어버리곤 손에 돈을 쥐어줬다.
“거 게임에서도 그러잖소. 사람은 하루에도 천 가지가 넘는 걸 잊어버린다고. 그러니까 이거 하나 더 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요.”
“이러면 안 됩….”
“나 바쁘니까 비키쇼. 그 쪽 맘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제 딴 사람 잡고 얘기해.”
지훈은 경찰을 휙 밀쳐버리곤 바로 버스에 올라타 버렸다.
부웅!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지훈은 바로 들고 있던 총들을 민우와 칼콘에게 돌려줬다.
“새끼들아. 좀 잘 하자, 응?”
“미안. 총 들고 버스 타는 건 처음이라 그랬어.”
“죄송합니다. 저도 항상 개인 차량만 타고 이동해서….”
“됐어. 티그림 도착하면 바로 차 렌트해서 이동해야 하니까 잠들 자 둬.”
버스 좌석에 몸을 뉘이자 푹신함과 함께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편안했기에 평소라면 바로 잠들었겠지만, 처음으로 나가는 헌팅이다 보니 긴장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장비나 점검해 볼까.’
[장비]
[지훈의 장비]
무기.
과도 모양을 한 투박한 단검 (F급 아티펙트)
글록 19 1정 (마력 탄환 15발 장전. 소음기, 전등 부착)
MP 5 1정 (OTN탄 150발, 조준경, 소염기, 부착)
방어구.
케블라 방탄복 (일반 물품)
전투용 워커 (일반 물품)
철판을 덧댄 팔뚝 보호대 (일반 물품)
1세대 나이트 비전 (칼콘 물건 대여, 일반 물품)
기타.
무전기
구조대 호출용 휴대전화
[칼콘의 장비]
무기.
슬렛지 해머
전투용 단검 (F급 아티펙트)
MP5 1정 (OTN탄 90발)
방어구.
사슬 갑옷 (일반 물품)
녹이 슨 철제 투구 (일반 물품)
가시 달린 그리브와 뾰족한 강철 신발 (일반 물품)
접이식 방패 (중간 크기, F급 아티펙트)
기타.
무전기
전등
[민우의 장비]
무기.
단검 (대여, F급 아티펙트)
MP5 1정 (대여, OTN탄 60발)
방어구.
보호경 (일반 물품)
운동복 (일반 물품)
운동화 (일반 물품)
기타.
전등.
지훈은 일반적은 헌터 같은 차림새였고, 칼콘은 과거 종족전쟁 당시 썼던 무구를 그대로 입었기에 중세시대 야만전사 같아 보였으며, 민우는 그냥 총 든 대학생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괜찮겠지만, 강도를 만난다면 제일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될 수 있으면 민우에게도 방탄복을 입히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무거운 옷을 입고 조금만 달려도 무릎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지훈이 우려를 표하자, 민우는….
- 걱정 마세요, 헌팅 나갈 때 항상 이렇게 나갔어요.
‘그건 5명이서 사주경계 하며 이동할 때나 가능한 얘기고 이 답답한 양반아….’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애송이였기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죽지만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렇기에 지훈은 만약 강도 혹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적을 만날 경우 일단 바닥에 엎드리라고 지시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잠이나 자자.’
눈을 감자 잠시 뭔가 끊기는 느낌이 나는 가 싶더니, 칼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어. 일어나.”
티그림은 굉장히 독특한 도시였다.
크기는 한국의 지방 소도시 정도밖에 되질 않았지만, 중요한 건 티그림의 주인의 엘프였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건축 양식이었다.
철과 시멘트를 주재료로 쓰는 인간과 달리, 엘프들은 나무와 식물을 주재료로 썼다.
갈색과 초록 천지인 게 꼭 숲 속 한가운데에 있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입국 절차 시작하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직원으로 보이는 엘프 두 명이 다가왔다. 초록색 티를 입고 있었는데, 재질이 나뭇잎인 듯 굉장히 오돌토돌했다.
엘프들은 차례로 승객들에게 이상한 마법을 시전 했다.
“Isikukood, võrreldes. (개인 식별, 비교).”
전자 기기보단 마법에 더 친숙한 종족답게 행정에도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귀한 마법사를 뭔 공무원으로 써.’
차례가 지나고, 지훈 앞에 엘프가 다가와 마법을 시전 했다.
- 알 수 없는 마법입니다. 저항할까요?
‘내버려 둬.’
- 사용자님의 마력 능력 가늠 중.
- 식별 가능한 마법입니다. 식별할까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해보라고 답했다.
방금 사용한 마법은 범죄 경력 조회였다. 개인 식별 마법을 사용한 뒤, 그 정보를 다른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 것.
“입국을 환영합니다. 대지의 품에서 편안한 안식되시길.”
별 문제 없이 넘어간 지훈과 달리, 칼콘 앞에서 덜컥 걸려버렸다. 인간이야 종족 동맹이 체결돼 있으니 괜찮지만, 오크와 엘프는 서로 앙숙 사이였던 것.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무력 다툼으로 번질 것 같았기에 지훈이 바로 끼어들었다.
“이거 내 노예야. 내 소유물이라고. 물건도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나?”
다행히 거짓말이 먹혔는지 엘프들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비록 엘프 법전에도 노예는 불법이었으나, 타 종족 문제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종족이 다른 만큼 자칫 잘못하면 정치, 외교 문제로도 번질 수 있었기에 다들 조심하는 편이었다.
입국을 완료한 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와중에 슬쩍 칼콘에게 말을 걸어봤다.
“그냥 넘어가려고 한 말 인거 알지?”
“응, 알아. 그리고 난 너한테 목숨을 빚졌으니까 갚을 때 까지 노예가 되 줄 수 있어.”
“그럴 필요까진 없어. 불편해.”
셋은 바로 SUV 한 대를 렌트해 티그림 숲으로 향했다. 거기까지 가는 교통편도 없거니와, 헌팅을 끝내고 획득물을 옮길 차량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헌팅용 렌트는 위험도 굉장히 높아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헌팅이 실패하면 손해가 막심하다고 생각하니, 슬쩍 긴장됐다.
“얼마나 남았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앞에 숲 보이세요?”
지평선 따라 늘어진 하늘 사이에 초록색 덩어리가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작아 보였던 숲이었는데, 정작 가까이 다가가니 그 높이가 상상을 초월했다.
‘뭐 저렇게 높아?’
어렸을 적 TV에서나 봤을 법할 정도로 엄청났다. 한국에서 봤던 숲과 나무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의 권능을 시기하도 한 양 구름을 뚫을 듯 높게 뻗은 나무들이 마치 신전의 기둥들처럼 무질서하게 박혀있었고, 바닥에는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낙엽과 이끼밖에 보이질 않았다.
“미친놈아, 이렇게 클 거란 얘기는 안했잖아!”
“원시림이라 원래 좀 커요.”
이게 조금 큰 정도라면 그냥 큰 숲은 얼마나 거대할까?
지금도 이미 숲 내부는 햇빛이 들지 않아 밤처럼 깜깜했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경계가 마치 들어가면 위험한 곳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숲에 들어갈수록 굉장히 어두워 졌기에 일행은 바로 전등을 켰다.
“칼콘, 뭐 해? 배터리 없어?”
“난 다 보여.”
야행성 종족인 오크인지라 밤눈이 밝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칼콘이 전등을 켜지 않으면 나머지 둘이 보이지 않았기에, 지훈은 켜라고 귀띔해줬다.
지훈도 이제부턴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바로 나이트 비전을 작동했다.
삐이 - 삑!
기계음과 함께 눈앞에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어두웠을 땐 마치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 한 광경이었으나, 앞이 다 보이자 의외로 별 거 없었다.
‘그냥 평지에 나무만 잔뜩 있네. 별로 위험할 것도 없겠는데?’
나무가 너무 커서 햇빛을 전부 가려버리니 작은 식물들이 자랄 수 없었고, 그 말은 생태계 자체가 비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됐다.
정강이 높이까지 오는 낙엽을 쓸어내며 걷길 잠시.
부스럭!
우측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