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팅 밑준비 -->
서구.
개척 초기에 지어진 동구와 달리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되어 서울처럼 깔끔한 외관이었다.
땅이 넓은 만큼 위로 높게 솟은 빌딩은 적었지만, 그래도 동구에 비해선 스카이라인이 엄청나게 높았다.
지훈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각성자 등록 먼저 했다.
등록은 한국 각성자 연합에서 했는데, 과연 신시대의 귀족이라 불리는 각성자를 위한 건물답게 엄청나게 웅장했다.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마법이랑 기계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기능 차이는 없었다.
단지 가격과 절차가 약간 다를 뿐이었다.
혹자는 마법으로 검사를 할 경우 낮은 확률로 마력 능력이 개방될지도 모른다는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으나, 말 그대로 헛소리였다.
“기계로 합시다. 그 쪽이 더 싸네.”
“우측에 보이시는 검사실로 가시면 됩니다.”
검사실은 마치 회사 보건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과거엔 CT까지 찍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절차가 있었으나, 이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별다른 조취 없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로 보이는 남자가 지훈에게 물약을 건넸다.
“마력 알레르기 있나요?”
“그게 뭐요?”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절차상 묻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쭉 원 샷 하세요.”
물약을 쭉 들이켰다.
콧물 맛이 났다.
- 상황 분석.
- 음용을 통한 미약한 변이계 마나 주입 감지.
- 저항할까요?
그러고 보면 저번에 아쵸푸므자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니, 하지 마. 근데 저항은 또 뭐야?’
반지의 설명에 따르면 각성 제어 기능 외에도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몇몇 기능이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마법 저항으로 수준 낮은 마법은 저항할 수 있었다.
마법저항 아티펙트.
실제로 구입하려면 수천만 원은 호가하는 물건이었다.
‘이거 엄청난 물건이구만.’
“검사 하겠습니다.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앉아있으니 의사가 리더기 같은 물건으로 지훈을 위 아래로 훑었다. 그 모습이 꼭 바코드를 찍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삐 - 삑.
의사는 감지기에 적힌 정보를 쳐다보다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고장 났나?”
짜증스런 손길이 감지기를 퍽퍽 때렸다.
“다시 한 번 해볼게요.”
삐 - 삑.
“이상하네… 이거 이런 수치가 나올 리가 없는데.”
몇 번이나 반복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잠시 보실래요?”
의사가 지훈에게 감지기를 건네줬다.
“그거 보사(BOSA)에서 만든 각성자 능력 감지깁니다. 근데 보니까 딴 건 다 괜찮은데 잠재 등급이 이상하게 오류가 뜨네요.”
[정보]
등급 : E 등급
근력 : E 등급
민첩 : E 등급
저항 : F 등급
마력 : F 등급
잠재 : 오류
이능 : 없음
감지기에는 반지와 달리 개괄적인 능력치만 나타나 있었다. 덤으로 이블 포인트도 없었고 말이다.
“이거 뭡니까? 등급만 나오고 실 능력치는 안 나오네?”
“농담도 참. 사람이 어떻게 능력치를 봅니까? 티어야 CT 찍어서 정밀검사 때리면 알지만, 능력치는 뭔 짓거리를 해도 못 봐요.”
그럼 도대체 반지를 통해 본 건 뭐란 말인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어쨌든. 잠재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E등급으로 넣겠습니다. 괜찮죠?”
어차피 서류에 E등급이라 적힌다고, 실제로 S등급인 게 떨어지진 않았기에 그냥 그러라고 했다.
의사는 감지기 내용을 그대로 옮긴 종이를 인쇄해 줬다.
“그거 들고 처음 오셨던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각성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헌팅 되세요.”
직원이 웃으며 각성자 자격증을 건네줬다.
휘황찬란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주민등록증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살짝 김이 샜다.
‘자 그럼 이제 약속장소로 돌아가 볼까.’
나가는 길에 아이덴티티 측 헤드헌터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마도학자 혹은 현장 연구원이 될 생각 없냐고 물었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전과 때문에 하지도 못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칼콘과 민우가 도착해 있었다.
서구에 나온다고 둘 다 옷에 힘을 준 상태였다.
특히 칼콘이 압권이었는데, 쫙 달라붙는 나시에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특히 사타구니에 툭 튀어나온 중앙이 압권이었다.
‘저 놈은 뭔 고간에 미사일을 달고 있어!’
저번에 사우나에서 봤음에도, 볼 때 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사이즈였다.
뭐 어쨌든 감탄은 감탄이고, 쪽은 쪽이었다.
“미친놈아, 그 체격에 뭔 스키니진을 입어!”
“보니까 인간들 다 이렇게 입던데, 뭐가 문제야?”
그거야 마른 남자들이나 입는 거지, 말근육 말벅지의 거구는 예외였다.
“집에서 나올 때 주변 사람들이 안 쳐다보든?”
“엄청나게 쳐다봤지.”
“왜 그랬을 것 같냐.”
“내가 너무 잘생겨서?”
“나가 죽어라, 새끼야. 죽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칼콘의 우람한 실루엣을 보고 ‘우어~’ 하며 지나갔다.
당장 칼콘을 돌려보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예방 접종은 가까운 병원에서 했다.
가볍게 물약 하나와 주사 한 방으로 끝났다.
꽤 비싼 가격에 칼콘이 투덜거렸으나, 앞으로 헌팅 자주 다닐 거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넌 안하냐?”
“이미 해서 괜찮아요.”
몇 번 다녀봤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다음으론 쇼핑을 위해 아티펙트 거래소에 들어갔다.
칼콘은 자기가 이런 곳에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마치 읍내 처음 놀러 온 아이마냥 눈을 빛냈다.
“그럼 필요한 물건이나 사러 가 볼까.”
현재 예산은 1700만원.
굉장히 빠듯했지만 그래도 목숨을 구해줄지 모르는 장비였기에 아끼지 않고 쓸 예정이었다.
현재 수중에 있는 아티펙트는 3개.
중배 일행이 쓰던 나이프였는데, 아마 F급으로 보였다.
‘일단 이 세 자루는 전부 나눠주자.’
암시장에 내다 팔아도 한 자루에 300은 그냥 나가는 물건이었으나, 일행에게도 무기가 필요했다.
특히 근접전을 선호하는 칼콘에게 있어 아티펙트는 필수였고, 만약에라도 관통상에 저항이 있는 적을 만났을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민우에게도 한 자루 주는 건 아깝긴 했으나, 그래도 이동 중 안내역이 죽어버리면 곤란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제일 급한 건 방어구였다.
중배 일행이 쓰던 방탄복이 있었으나 케블라로 만들어 진 거라 아티펙트에 그냥 관통됐다.
게다가 마력 부여가 됐거나 신금속으로 만들어진 탄환을 쓰는 상대가 있다면 안 입느니만 못한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얼맙니까?”
지훈은 그나마 싸 보이는 조끼형 방어구를 물어봤다.
“요즘 세일해서 1993만원에 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헌팅 나갈 거면 이만한 제품이 없죠, 가벼우니까요!”
무게부터 시작해서 총알은 그냥 막는다느니, 온갖 설명이 이어졌지만 바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환장하네.’
여섯 명이나 되는 팀을 이끌던 중배도 아티펙트 방어구를 입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방어구는 포기하고 무기 쪽으로 갔다.
“아티펙트도 뚫는 탄환이 있습니다! 마력 탄환도 취급해요!”
마력 탄환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어서오십쇼! 뭘 찾으십니까?”
“가격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
주인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알려줬다.
기본적으로 금속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제일 싼 탄환은 F등급 방어구까지 관통하는 오스테나이트 탄환이었다.
강도가 굉장히 높아 관통력은 높았으나, 탄성이 약해 쉽게 깨지는 탄이었다.
반면 마력 탄환은 가격이 엄청났다.
마력이 통하는 금속으로 만들었음은 물론, 마법공정까지 거치니 가격이 천정부지였다. 폭발, 산성, 관통 탄환 등 매력적인 건 많았으니 역시 이쪽도 가격이 문제였다.
“9mm 오스테나이트 탄으로 박스 하나 주쇼. 그리고 폭발 탄환은 15발.”
카운터 위로 탄환들이 올라왔다.
오스테나이트(OTN) 탄은 붉은 색 박스에 담겨있는 게 여타 다른 탄환들과 비슷해 보였다. 반면 마력 탄환은 총알 주변에 이상한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조심하라는 충고대로 탄환을 조심스럽게 예비 탄창에 집어넣었다.
그 외에 뭘 살까 감이 오지 않아 고민하자, 민우가 슬쩍 끼어들어 화염 방사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귀띔을 했다.
“아냐, 저건 너무 무거워. 연료 값 감당하기도 힘들고.”
총기 역시 딱히 구입할 건 없었다.
총 쪽 아티펙트라고 하면 일반 탄환에 마력을 부여할 수 있는 총기가 몇 있긴 했지만… 그런 물건은 서울 전세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괜히 마력탄만 따로 빼서 파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MP5있으니까 총은 따로 필요 없겠네.’
쇼핑을 끝내고 나가려니 칼콘이 소매를 잡았다.
“왜.”
“저거 살까.”
시선을 물건에 고정하고 말하는 모습이, 장난감에 매료 된 소년 같아 보였다.
‘뭐 길래 또 저래.’
보충제 같은 물건도 파나 싶어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방패가 보였다. 헌팅용인지 스위치 하나로 퍼졌다 접혔다 할 수 있는 편리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저번에 석중네 방패 들어보니까 정말 좋더라고. 저거 사자.”
혹한 모습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주인이 바로 끼어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대강 요약하자면 F급 아티펙트로, 높은 충격 흡수력을 가진 제품이란 내용이었다.
“네 돈이니까 맘대로 해.”
“그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칼콘이 바로 가격을 물었다.
“1600 이지 말입니다.”
칼콘이 가진 돈보다 오백만 원 정도 비싼가격이었다.
그냥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고양이마냥 눈을 빛내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줬다.
“너 저번에 받은 정산금 어쨌어?”
“고기 먹은 거 외상 값 줬지?”
“또라이 새끼. 이번 일 끝내고 네 몫에서 뗄 거야.”
“그래, 그래. 괜찮아.”
칼콘은 방패가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쇼핑을 끝낸 뒤 거래소 밖.
셋은 내일 만날 약속을 하곤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