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드라고라의 용도 -->
대강 자고 일어나니 오후 5시.
뭔가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가볍게 요기를 하곤 전화기를 들었다.
‘돈 벌면 휴대폰도 사야겠다.’
항상 휴대폰 없이 유선 전화만 사용하다 보니 너무 불편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집, 옷, 음식, 헌팅 장비 등 살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참 불편한 환경에서 잘도 살았네.’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수화기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뚜~ 뚜르르- 뚜~
“여보세요?”
“나다.”
지훈은 평소 버릇이 나가 아차 싶었다.
“네가 누군데요?”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이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덤으로 기분이 나빴는지 거슬리는 말투다.
‘새끼가?’
이에 지훈 역시 질 나쁜 장난기가 솟았다.
“누굴 것 같냐?”
“비싼 전화비 감당하며 장난전화 질 할 여유 있으면, 가서 딸이나 치고 디비 자라.”
지훈은 씩 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 봐라?’
익명성이라는 것은 참 대단했다.
확실히 직접 대면하고 얘기할 때와-물론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긴 했지만, 전화로 얘기할 때 태도가 천지차이였다.
“하이고, 우민우 씨. 집에 가니까 없던 용기가 생기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그려.”
“어…? 어? 누, 누구십니까?”
실명이 언급되자 민우가 움찔거렸다.
“내가 연락 한다고 했냐, 안했냐.”
“여, 연락 올 곳이 좀 많아서… 누, 누구세요?”
“김지훈, 새끼야. 김지훈!”
수화기 너머로 컥 소리가 났다.
아마 놀라서 덜컥거렸나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형님. 요즘 하도 장난전화가 많이 와서….”
“그냥 연락 받나 확인 차 전화했다. 뭐하냐?”
민우는 만들어 놨던 도감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헌팅 계획 짜야하니까 나와.”
“어 - 어. 벌써요?”
“문제 있냐?”
“아뇨,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
혹 허튼짓 꾸미는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떠올랐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나와.”
“저, 이번 약속 중요….”
“시체 구덩이. 7시. 안 오면 죽는다.”
민우에게 시체 구덩이가 어디냐는 질문이 돌아왔지만, 대답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시체 구덩이 앞에는 언젠가 봤던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저번에 관광 왔던 젊은이들이었는데, 지금 떠나는지 주인이 배웅을 해주고 있었다. 지훈은 그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다 주인에게 다가갔다.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뒤통수에 차가운 느낌과 함께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더 다가간다. 너 죽는다. 용건?”
어눌한 한국어와 나무껍질 비비는 것 같은 음성을 보아, 보디가드로 붙어있다던 스프리건 같았다.
“지인이다, 이 반쪽짜리 식물 새끼야. 내 대가리에서 당장 총 치워.”
시야 한편에서 주인이 손부채질을 하는 것과 동시에 뒤통수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느낌이 사라졌다.
“요즘 식물들은 사람한테 총도 겨누고, 세상 참 미쳐 돌아가. 그치?”
주인은 계집마냥 홀홀 웃으며 지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반가워~ 지훈. 오늘은 또 무슨 일?”
“한 잔 하러 왔지 뭐. 안에 룸 빈 곳 있어?”
“여자, 비즈니스, 검투. 셋 중 어느 거?”
검투라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거 아직도 해? 겁도 없군.”
“요즘 단속 안 나오잖아~ 그리고 보는 맛도 쏠쏠하고.”
“사채 쓴 멍청한 새끼들 잡아다가 싸움질시키는 게 재미있다고? 나도 병신새끼 인생에 마침표 찍어 주는 건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머? 험한 일 도맡아 하는 지훈이가 그런 말 하니까 섹시하네. 역시 겝모에가 매력이라니까.”
마치 상품 보듯 슥 훑는 주인의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
“됐고, 비즈니스 룸으로 하나. 술은 커스랑 예거.”
“들어와.”
안내를 받아 룸 안으로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어우러진 방이었다.
고급스러운 소파에 몸을 묻고 있자니, 얼마 후 민우와 칼콘이 도착했다.
“뭐 그렇게 뻘줌하게 서있어? 앉아.”
어째야 할 줄 모르는 민우를 턱짓으로 가리키자, 녀석은 그제야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런 고급 룸은 처음인지 눈알만 굴려 주변을 모습이 퍽 어수룩해 보였다.
“이런 룸은 비싸지 않습니까…?”
“주인이랑 안면 있어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민우 말대로 제 가격 주고 빌렸다면 몇 백은 족히 나갈 자리였지만, 과거 연이 있어 싼 가격에 빌릴 수 있었다.
게다가 초저녁이라 아직 본격적인 장사 시작 전이니 잠깐 빌려줘도 상관없다는 눈치였기도 했고 말이다.
“한 잔?”
낯선 분위기 속에서 토끼마냥 신경 곤두세우고 있는 민우가 안쓰러웠기에, 대충 예거에 에너지 드링크를 말아 권했다.
“제, 제가 술이 약해서요.”
혹여 독이라도 들었을까 싶어 의심하는 눈치였다.
“분위기 깨지 말고, 그냥 처먹어.”
민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든 뒤 살짝 홀짝였다.
‘마, 맛있다!’
양주라기에 독하고 쓸 줄 알았거늘, 에너지 드링크가 섞여 달달했다.
칼콘은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같이 일하게 된 게 대수라고. 그나저나 지훈, 그거 기억 나? 저번에 같이 일했던 꼬맹이가 펑굴 사냥에서 포자 마시고 머리 터진 거 말이야.”
어투는 픽픽 웃는 주제 말속에 뼈가 있었다.
아마 새로 들어온 녀석이 신경 쓰여서 겁이라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서열을 확실히 하고 싶던가.
펑굴은 스프리건 같은 반인반초 종족으로 움직이는 버섯이었다. 움직임이 느려 안전해 보이지만, 무색무취의 포자를 뿜어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내장이 모조리 박살날 수도 있는 무서운 녀석이었다.
“겁은 적당히 줘. 그나저나 잘들 지냈어?”
지훈이 칼콘에게도 예거밤을 한 잔 말아주며 물었다.
셋 사이에 어색하기도, 과격하기도 한 안부가 지나갔다.
“다시 한 번 반갑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적이었지만, 이젠 아군이니까 잘 해보자. 건배.”
- 건배!
“자 그럼 이제 술도 들어갔겠다, 그 사업 얘기나 들어보자. 만드라고라가 뭔데?”
“최근 스프리건이나, 펑굴같은 반인반목, 반인반초 생물들이 발견되면서… 식물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해 졌죠. 만드라고라 역시 비슷한 맥락….”
학명 만드라고라, 비명초로 불리는 이 물건은 식물인지 동물인지 헷갈려 많은 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인 녀석이었다.
펑굴이나 스프리건처럼 활발히 움직이진 않으니 식물 같기도 했고, 또 다른 면으로 보면 동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봐 학자양반. 우린 강의나 들으러 온 게 아냐. 그래서 그게 뭐냐고.”
“미약 재료로 쓰입니다.”
“미약? 그게 뭔데?”
“흐, 흥분제요….”
만드라고라가 비싸게 거래된다는 사실이었다.
“비아그라 비슷한 거?”
“비슷한데, 여성용이에요…. 유선을 자극해서 가슴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어서 남자는 잘 쓰질 않거든요.”
가슴!
왜 비싼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수술 없이 천연 추출물만으로도 가슴이 커진다?
그것도 부작용 없이 말이다.
‘내가 여자라면 꼭 산다!’
근래에 들어 왠지 가슴 큰 여자들이 많이 보인다 싶었는데 이유가 저거였던 걸까?
“그 외에도 음몽, 야한 꿈을 꿀 수 있다고 해서 항우울제로도 사용하는 등 버릴 곳 하나 없는 좋은 식물이에요.”
“가슴 커진다는 시점에서 얘기 끝났어. 항우울제 그딴 게 뭐가 중요해.”
칼콘이 ‘젖이래, 젖’ 하며 낄낄대며 웃었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비싼 건데? 양식 안 돼?”
분명 비싸다면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게 만드라고라가 동물 피랑 정액을 먹고 자라거든요….”
뿐만 아니라 굉장히 예민한 식물이라 토질과 수질 외에도 세드의 햇빛 아래가 아니면 자라지 않는 것은 물론, 공격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서 파종이 불가능했다.
“좋아. 그럼 설명은 그만하고. 그래서 그게 어디 있는데?”
민우는 헛기침을 하곤, 사과를 테이블 중앙에 올려놨다.
“이게 지금 서울 개척지입니다.”
다음은 포도를 하나 집어서 사과 서북쪽에 올려놨다.
“이게 대만 개척지구요. 더 가면 자살 숲이 있죠.”
“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거길 들어가자고?”
칼콘이 학을 떼며 짜증을 부렸다.
자 살숲은 대만 개척지 서쪽에 있는 숲으로 지형이 거칠고 나무들이 전부 일그러져 있어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이었다. 까닭에 자살하러 가기 딱 좋은 숲이라고 해서 자살 숲이라 불렸다.
“아, 아뇨. 자살 숲에도 만드라고라가 서식지가 있지만… 거긴 안 가요. 저희가 갈 곳은 동쪽입니다.”
민우가 들고 있던 컵이 사과 동쪽에 떨어졌다.
자살 숲에 빙 둘러싸인 대만 개척지 밖에 없는 휑한 서쪽과 달리, 동족은 얘기가 달랐다. 엄청나게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 평야 안에 온갖 곳들이 가득했다.
“저희가 갈 곳은 바로 티그림 숲입니다.”
처음 듣는 지명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가 어딘데?”
“러시아 개척지 방향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티그림 톨게이트로 빠져나오면 됩니다.”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면 거리가 꽤 멀다는 뜻.
‘차가 필요하겠군.’
지금까진 서울 개척지나 가까운 대만 개척지 정도만 오가며 일을 처리했던지라, 굳이 유지비 많이 드는 차까지 구입해 놓진 않은 상태였다.
‘일단 지금은 렌트하거나 대중교통 타고, 수익 괜찮다 싶으면 차도 한 대 사자.’
본격적인 헌팅을 다니려면 차는 필수였다. 보통 개척지 같은 도시 주변은 청소가 완료된 터라 적어도 2~3시간은 나가야 돈 될 만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차 걱정을 하던 지훈과 달리, 칼콘은 다른 문제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티그림이면 엘프 거주지잖아. 게다가 요즘 트리엔트가 나온다는 얘기도 있어.”
표면적으론 현재 엘프와 종족 동맹이 맺어졌다지만, 물 밑으로 인신매매가 판을 쳤기 때문에 두 종족간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인간 도시에 엘프가 나돌아 다니지 않는 것처럼, 인간 역시 될 수 있으면 타 종족 도시 주변에 얼씬거리는 것을 꺼려했다.
“게다가 난 오크라서 엘프랑은 비동맹 상태라고.”
“만드라고라 서식지는 엘프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트리엔트도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실제로 본 사람도 없고요.”
쓸 데 없는 불안이라는 듯, 민우가 변론했다.
“위험해.”
“성공한다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겁니다.”
칼콘과 민우의 눈이 동시에 지훈에게로 향했다.
누구 의견이 옳은지 선택해 달라는 것 같았다.
‘겨우 약초 캐러 가는 데 별 일 있겠어?’
위험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발을 빼면 그만이었다.
“가자. 어차피 이 짓거리 하면서 위험한건 매번 똑같잖아?”
“훌륭한 선택입니다.”
이후 테이블 위로 개괄적인 전략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동은 대중교통 혹은 렌트를 이용하면 됐기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중요한 건 바로 장비였다.
채집이야 민우가 쓰던 장비를 사용하면 됐지만, 티그림 숲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이었기에 예방접종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혹시 몬스터나 강도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 무기 및 방어구도 필요했고 말이다.
“그럼 출발은 모레로 잡고, 내일은 예방 접종이랑 장비 구해야 하니까 서구 역에서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