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2화 (12/173)

<-- 아이고 이게 누구야? -->

“위치는?”

“에이~ 알 거 다 아는 사람끼리 왜이래. 안 돼.”

“이번에도 길잡이 따라 가라고? 말이 길잡이지 걔네가 우리 털어먹을지 어떻게 알아?”

실실 웃던 주인의 표정이 굳었다.

“지훈, 나 못 믿어?”

“뭔 소리야.”

“내가 부리는 사람을 못 믿으면, 나도 못 믿는 거야.”

“계약직이라며. 통수 까고 토낄 수도 있잖아.”

“정규직 승진했어.”

“빌어먹을. 그래서 오늘 언제?”

“오후 9시. 도착하면 10시 쯤 될 거야.”

지훈은 알겠다고 말하곤 지갑에서 40만원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삯이야. 넣어 둬.”

“나랑 칼콘. 둘 다 탈건데?”

“다음에 일 생기면 그때나 좀 도와줘.”

혀를 차며 돈을 쭉 밀었다.

언더 다크 일은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다.

찝찝한 건 둘째 치고, 이젠 이블 포인트까지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질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강도짓 하는 양아치나 중배 건을 봤을 때, 포인트 등락 판정이 조금 느슨한 걸로 보이긴 했다.

하지만 오르는 순간 생명이 위험한 건 사실이었기에, 심장 쫄깃해져가며 굳이 나서서 더러운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평생 안 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고 여태 일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그래.”

“그럼 사양 않지. 맥주나 한 잔 먹고 싶군. 그 뭐야, 저번에 먹었던 골든 하플링 맥주는 얼마지?”

주인은 씩 웃으며 손가락 2개를 들어 보였다.

“썩을, 무슨 고급 식당 한 끼 가격이네.”

“아니. 거기다 숫자 하나 더.”

지훈은 입으로 된소리를 내뱉곤, 주인에게 전화 한 통만 빌리겠다고 말했다.

뚜르르- 뚜르르- 뚜….

“여보세요.”

“나다. 암시장 오늘이랜다. 9시에 출발이라니까 빨리 와.”

“시체 구덩이?”

“기다리지.”

맥주 몇 병 홀짝이고 있자니 칼콘이 도착했다.

“시간 됐네. 안내해 줄게. 우페스, 이 두 분 좀 시장으로 보내 드려.”

퍽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안내를 따라가자, 커다란 공터에 관광용 버스 두 대가 서있었다.

“이름?”

“김지훈, 크라카투스 콘투레 보더워커.”

우페스는 뭔가 끄적끄적 적더니 명찰 두 개를 건네줬다.

각각 20과 21이라고 적혀 있었다.

“잃어버리지 마. 시장에서 그거 없으면 가디언이나 경찰 쪽 스파이로 보고 바로 죽일 거야.”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풍경을 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창문이 모두 암지로 가려져있어 그럴 수 없었다.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의자에 몸을 뉘여 깬지 잠든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내길 얼마.

“도착! 다들 내려.”

버스에서 내리자 웬 이상한 사람들이 다가와 명단과 방문객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했다.

뒤가 구린 인물을 걸러내는 절차 같았다.

“설명 시작한다, 다들 주목!”

조금 직급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에 따르면 암시장은 크게 두 장소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언더 다크가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상점들로 가격은 꽤 비싸지면 상질의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고,

다른 하나는 암시장을 찾은 사람들끼리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자유 시장이었다.

“언제 와도 신기하단 말이야.”

칼콘은 마치 도시에 처음 온 어린아이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럴 법도 한 게 눈앞에는 대형 마트만한 커다란 천막이 쳐져있었고, 그 둘레를 따라 굉장히 많은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너무 둘러보지 마. 파리 꼬인다.”

“알겠어.”

긴 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외관과 달리 쾌적한 환경이 펼쳐졌다. 지훈은 적당히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직매장 안가?”

“거기로 가 봐야 비싸게도 안쳐줘. 될 수 있으면 물물교환 할 거야.”

누가 범죄조직 아니랄까봐 언더다크는 살 때는 무지막지하게 싸게 사면서 팔 때는 굉장히 비싼 가격으로 팔아 폭리를 취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유 시장에서 물건을 팔려면 일정 비용을 이용료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물물교환으로 거래하고 싶었다.

- 수제 총알 팝니다. 걸리지 않고 잘 나가요. 추적당할 일 없으니까 암살에 쓰기 좋습니다!

- 까트 팜! 물물교환 OK!

- 절임 과일 팝니다. 설탕 사과도 있어요.

칼콘은 딴 물건엔 관심이 하나도 없다가, 설탕이라는 말에 바로 걸음을 멈췄다.

“뭐하냐?”

“나 저거 먹을래.”

칼콘이 눈을 반짝거리며 꼬챙이에 꽂힌 사과를 쳐다봤다. 반들반들 빛나는 게, 설탕 옷을 입혀놓은 것 같았다.

“애도 아니고 뭐 저런 걸 먹어.”

“근육 키운다고 매일 밥 같지도 않은 음식만 먹었어. 이 정도는 먹어도 돼.”

칼콘은 커다란 몸을 옮겨 바로 사과를 구입했다. 그깟 사과 하나 얼마나 할까 싶었지만, 가격은 4만원. 엄청났다.

와작.

칼콘은 아주 조그마한 조각까지 전부 음미하고 싶었는지, 소가 여물 되새김질 하듯 오래오래 씹었다.

“맛있냐?”

“안 줄 거야.”

“그딴 거 줘도 안 먹….”

순간 지훈의 머리에 지현이 스쳤다.

올 때 멜로나.

“절임 과일 얼마요? 저기 통에 밀봉 된 녀석으로.”

“오 잘 고르셨습니다. 저거 복숭아죠, 설탕에 잘 절여놓은 거라 맛이 좋습니다!”

“방부제 들어갔소?”

“에이… 돈이 어디 있어서 그런 걸 넣습니까. 그냥 설탕이랑 과일 밖에 없습니다. 아마 조금 발효 되서 쓴 맛이 나긴 할 겁니다.”

지훈은 대금을 치르고 절임 과일을 구입했다.

“솔직히 말해, 너도 먹고 싶었지?”

“내가 먹을 거 아니다.”

“인간은 참 거짓말을 잘해.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 불알이 떨어진다고 믿어서 거짓말 따윈 안 하는데 말이지.”

“자꾸 헛소리하는데, 불알에 워커 한 번 박혀봐야 정신 차리지?”

“낄낄! 부끄럼쟁이네.”

둘은 여기저기 돌며 많은 물건을 구입했다.

칼콘은 주로 헬스 용품을 구입했고, 지훈은 약간의 탄환과 지현의 약을 구입했다.

“나는 일단 꼭 사가야 할 물건은 거의 다 구입했다. 너는 뭐 더 살 거 있나?”

“저번에 썼던 방패 같은걸 사고 싶은데, 비싸. 돈 빌려달라면 빌려 줄 거야?”

“아니.”

“쳇.”

칼콘이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럼 그냥 구경이나 하다… 맞다. 지나가다 엘프 고기 봤어. 그거 먹자.”

엘프 고기라는 말에 얼굴이 구겨졌다.

“그걸 꼭 지금 먹어야겠냐?”

“불법이라 여기 아니면 못 먹잖아.”

맞는 말이었다.

현재 인간-엘프 사이엔 종족 동맹이 채결된 상태였으므로, 두 종족 간 노예거래나 식인 같은 행동을 할 경우 공권력의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양지 얘기. 음지는 달랐다.

“너도 먹을래? 원하면 내가 살게.”

“딱히.”

“그래, 가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훈이 아무리 각성자가 됐다고 한들, 이 위험천만한 암시장에 혼자 다녔다간 돈 포함 입고 있는 옷까지 다 털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중배도 각성자인데 총 맞고 죽지 않았던가.

‘쯧, 최대한 빨리 저항 능력치를 올려야지.’

아마 E랭크만 되도 권총탄에 일격사 하진 않으리라.

“엘프 꼬치, 30 만원. 맥주도 팔아요. 맛 좋으니 먹고 가세요.”

엘프라는 단어와 음식을 뜻하는 꼬치라는 단어가 합쳐지자 굉장히 불쾌한 어감을 만들었음에도, 풍겨오는 냄새는 매우 구수해 지나다니는 이들의 배덕한 마음을 자극했다.

“꼬치 2개! 맥주는 커스!”

칼콘은 꼬치가 나오자마자 바로 입에 집어넣곤, 연거푸 맥주를 목 뒤로 넘겼다.

“크아! 맛있어!”

“미친 새끼.”

“거기 손님. 엘프 한 번도 안 먹어 봤죠? 정말 맛이 좋습니다! 먹어보면 얘기가 다르다니까요?”

“꺼져.”

마치 목 앞에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섬뜩한 살기에, 노점상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돌아갔다.

“왜 그렇게 예민해. 인간들도 개, 돼지, 소 잘 먹잖아.”

어떻게 엘프를 가축과 비교한단 말인가?

순간 어이가 없어졌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일일이 따지기엔 문화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오크는 식인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여기는 종족으로, 장례 절차만 해도 그랬다. 그들은 시신을 식장(食葬)하는데, 죽은 동료를 먹음으로써 하나가 되어 같이 살아간다고 믿었다.

“됐으니까 빨리 처먹기나 해. 넌 내가 뒈져도 내 시체 씹어 먹을 놈이다.”

“네가 우리 쪽 장례 절차에 동의한다면, 죽어서도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줄 순 있지?”

“사양하지. 그러니 제발 빨리 그것 좀 없애. 보고만 있어도 토할 것 같군.”

칼콘은 고개를 끄덕이곤 큰 입에 꼬치를 모조리 집어넣곤, 우악스러운 입으로 맥주 500CC를 그대로 털어 넣었다.

볼 일이 모두 끝났기에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암시장이 오전 6시에 닫히기에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것저것 살펴볼 건 많았기에 지루하진 않았다.

“같이 한 탕 할 동료를 구한다!”

누군가는 범죄를 같이 저지를 동료를 구했고,

“사람 좀 죽여줘! 보수는 후불이야!”

또 다른 누군가는 청부 살인을 원했으며,

“폐품업자 모집합니다. 위험한 일은 아니고, 분쟁지구에서 시체만 뒤지면 됩니다.”

저런 군상들이 꼭 인력시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홍등가였다.

거기엔 암시장에서 한 탕 하기 위해 출장을 온 여자들이 많았는데, 아예 가슴을 드러내고 호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번에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엘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아름다운 엘프는 당연하고, 심지어 오크나 놀 같은 이종족도 섞여 있었다.

칼콘은 이것저것 흥미가 동하는 눈치였지만, 지훈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 새끼야. 왜 날 쳐다봐. 난 안해.”

☆ ☆ ☆

지훈은 벽에 기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사실 한국에선 매춘이 불법이었으나, 이제 그 법도 굉장히 모호해졌다. 애초에 세드 쪽 종족들은 매춘이 불법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까닭에 교류 초기에 정치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종족 쪽 상단은 당연하다는 듯 매춘 사업을 했으나, 인간 쪽에 제품을 유통하지 못하니 불공정 거래라는 얘기를 꺼낸 것.

결과적으로 한국은 자국 영토와 개척지 내에서만 매춘을 금지했고, 그 외 다른 영토에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면에선 원정녀 양산 법안이라며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지만, 그나마도 많은 사건에 묻혀 금방 잊혀 버렸다.

‘그러고 보면 참 애매하단 말이지.’

어차피 할 생각도 없었으나, 살짝 생각에 잠겨봤다.

한국에서는 매춘이 불법이고,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에 속했다. 하지만 굳이 세드까지 올 것도 없이, 호주 같은 나라만 가도 매춘이 합법이다.

인간 사이에도 국가에 매춘에 대한 입장이 나뉘는데, 이걸 종족 수준으로 넓히면 복잡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매춘을 하면 이블 포인트가 오를까?’

호기심에 던진 질문임에도 반지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 관점에 따라 선악의 문제가 달라지는 경우, 객관적인 도덕적 관념에 따라 증감이 결정됩니다. 해당 문제의 경우엔 깎이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누가 봐도 나쁜 짓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를 반대로 하면 누가 봐도 선한 행동이 아닌 이상에야 포인트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거기에, 관리하기 애 좀 먹을 것 같았다.

담배를 물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자니, 칼콘이 돌아왔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가자.”

조금 걸으니 눈요기를 할 수 있는 홍등가도 금세 끝.

다시 일반적인 암시장의 모습이 펼쳐졌다.

“두르 급매! 말린 것도 있고 추출액도 있습니다. 원하시면 세놉도 있어요. 세놉 팔… 헉!”

갑자기 장사하던 남자 하나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사람은 보통 시야 내에 급격한 움직임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쫓으므로, 지훈 역시 고개를 돌렸다.

'뭐 보면 안 될 사람이라도 봤나, 왜 저래.'

3초짜리 싸구려 관심도 잠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지훈이 멈칫거렸다.

아는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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