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시장 -->
가게로 돌아가자 분노의 화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그 놈 물건이오.”
카운터 너머로 아이스박스를 건넸다.
석중은 씩씩거리며 안을 확인했다.
“그 놈 물건 맞나.”
“지구 보내서 조직검사 해보던가.”
“아니, 됐다. 네가 한 일이니 맞겠지.”
석중은 조금 기다리라고 말한 뒤 웬 식기를 가져왔다.
“흠? 지금 뭐하는 거요“
“조용히 기다리라. 내 지금 중요한 일 하는 거 안보이니?”
도대체 식기를 가져오는 게 왜 중요한지는 몰랐으나, 석중 눈에서 광기가 흘러나왔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저런 눈을 한 사람을 건드려봐야 좋을 거 하나 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이 씹쓰애끼, 이 물건으로 내 계집을 건들일라 했다 이기지?”
차갑게 식은 중배의 물건이 식기 위로 올라간 뒤….
지훈은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더러운 치정싸움의 말로군.’
오크 무리에 섞여 자라 웬만큼 비위가 강했던 칼콘도 비위가 상해 그 모습을 지켜보질 못했다.
“수고했디. 여기 돈 받아라.”
석중은 복수를 끝내자마자 바로 카운터 너머로 돈다발을 건넸다.
오만 원 권 네 뭉치. 딱 이 천만 원이었다.
“할배. 애들 털면서 나온 무기가 있는데, 그것도 좀 팔고 싶소만, 가능 하겠소?”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새끼들 물건을 나한테 팔겠다? 딴 놈 알아봐라. 내는 그 물건 건들기도 싫다.”
“아티펙트는 어떻소?”
“됐다.”
결국 지훈은 입맛만 다셨다.
마땅한 장물아비가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는 사람이 싫다는데 어찌 팔겠는가.
“근데 어렵진 않았누? 아무리 그 쓰애끼가 개차반이라지만 실력 좀 있을 텐데.”
“그걸 아는 인간이 그딴 짓 시키오?”
“느이께이, 잘 할 줄 알았으이 시켰디. 가서 디져불 놈이었으면 시키지도 않았으.”
“됐소. 말을 맙시다.”
지훈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할배. 나 이제 이쪽 일 손 뗄 것 같소.”
“그게 뭔 소리니?”
“각성했수다.”
반지 애기는 뺐다.
아무리 가깝다지만 거래 관계였다.
사람 각성시켜주는 반지 같은 얘길 꺼냈다간 말보다 총알 먼저 날아 올 가능성도 무시 할 수 없었다.
“축하한디. 니 이제 인생 폈구나.”
여태껏 오래 거래해서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석정은 별 말 없이 수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각성자는 음지쪽 일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기도 하거니와, 정부에서 각성자 범죄를 굉장히 엄격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정말 큰 돈 아니고서야 양지 쪽 일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제 볼 일 없겠고마. 시킬라케도 돈 때문에 못 쓴디. 쓰애끼, 공짜로 함 해주므 내 불러줄 요량은 있디.”
“하이고, 미쳤다고 목숨 걸고 하는 짓거리 공짜로 해주오? 왜 양놈 영화에 나오는 미친놈도 그러지 않소. 잘 하는 건 공짜로 해주지 말라고.”
낄낄거리는 소리가 카운터 너머로 들려왔다.
“그럼 이제 언더 다크루 가겠구나?”
언더 다크.
시체 구덩이에서 한 번 들었던 이름이었다.
언더 다크는 가디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세드 전역에 넓게 퍼져있는 범세계적인 범죄 조직을 뜻했다.
처음엔 작은 조직이었으나, 세드에서 온갖 마약과 불법적인 물품들을 밀매하며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거서 일하면 벌이는 엄청 짭짤하다고 들었디.”
“그 놈들이랑은 일 못하오.”
비록 지훈이 나름대로 악한이라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자기 나름대로 철칙을 지키며 살았다. 사회의 법망을 무시하는 만큼 삐끗하면 망나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으론 아이나 여자는 될 수 있으면 건들지 않는다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언더다크는 달랐다.
엘프 거래를 위해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모조리 잡아들이는 등.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놈들이었다.
뭐 어차피 이젠 하고 싶어도 이블 포인트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냥 내 팀이나 꾸려볼까 싶소.”
“어려운 길 갈라 하는고. 몫 나누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 뭐 네 선택이니 됐다. 꼴리는 대로 해라.”
지훈은 석중에게 목례하곤, 칼콘에게 몫을 나눠줬다.
“뭐야, 천? 평소랑 배당이 다른데?”
칼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대로라면 7:3으로 나눴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은 너 없었으면 아마 처리 못했을 걸. 일 한 만큼 줬으니까 그냥 가져가라.”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스테로이드랑 단백질 필요했는데 잘 됐어.”
칼콘은 기분 좋은 듯 씩 웃었다. 살짝 올라간 입술 아래로 날카로운 엄니가 살짝 빛났다.
“그나저나 아는 거래상 있어?”
가져온 무기들을 처리해야 했다.
수중에 있는 총기만 6정이고, 아티펙트도 세 개 있었다.
될 수 있으면 방어구까지 모조리 챙겨오고 싶었지만, 부피 때문에 그냥 한 벌씩 입고 오고 말았다.
“음. 암시장 정도?”
지훈이 살짝 표정을 굳혔다.
암시장은 위에서 언급됐던 언더다크 운영하는 불법적인 거래공간으로, 많은 장물 및 불법적인 물건들이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지훈은 대부분 석중하고만 거래했기 때문에 자주 가보진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키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값 비싼 아티펙트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지훈은 알겠다고 말했다.
“근데 장날은 알아?”
“내가 한 번 알아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헤어져 각자 집으로 향했다.
[정산 결과]
획득.
중배 살인 청부 대금 : 2,000만 원.
중배 일행 금고 저장금: 1,000만 원.
케블라 방탄복 2벌.
F급 아티펙트 단검 3 자루
기타 총기.
지출 : 없음.
총액.
3,000만 원 획득.
[배분]
[지훈]
현금 1,500만 원 수익.
- 장비 손상 : 없음.
- 부상 : 없음
- 능력 : 티어업 1번. 이블포인트 4 증가.
잔고. 1,720만 원.
[칼콘]
현금 1,500만 원 수익.
- 장비 손상 : 없음
- 부상 : 없음
- 능력 : 대인전투 경험 약간.
☆ ☆ ☆
다음날 날 오후.
지훈은 지현과 함께 오래간만에 외출을 했다.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사치였겠지만, 어제 받은 보수가 짭짤했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최근에 쌓인 묵은 감정들을 털어낼 기분 전환도 필요했고 말이다.
지현이 스테이크처럼 생긴 음식을 씹으며 말했다.
“그거 다진 버섯이야. 엘프들이 단백질 대용으로 키우는 식물인데, 맛이 꼭 고기 같지?”
“응! 이거 진짜 맛있다. 나 이런 거 처음 먹어 봐!”
“많이 먹어.”
“근데 이런 거 엄청 비싸지 않아?”
비싸다. 그것도 엄청.
그렇지 않아도 지구의 바다 및 하늘이 잔류 몬스터로 막히면서 식량 인플레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테이크?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돈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큰돈을 벌어온 거야?”
“몰라도 돼.”
지현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끔 정신 나간 짓거리를 저지를 땐 전부 다 때려 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생은 동생이었다.
식사 후, 지훈은 식대 50만원을 깔끔하게 현찰로 꼬라박고 가까운 상가로 향했다.
지현에게 옷 몇 벌 사 입히기 위해서였다.
“예쁜데?”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아. 볼품없지 않아?”
“딱히. 원래 여자는 마른 게 예뻐.”
칭찬에 기분이 좋았는지 지현이 헤죽 웃었다.
병 이후 몇 번 보지 못했던 웃음에 마음속에서 뭔가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쇼핑 다음으론 영화를 봤고, 오는 길에 지현이 갖고 싶어 하던 휴대용 라디오도 하나 사줬다.
“아, 진짜 재밌었다! 진짜 매일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어!”
지훈은 집에 오는 길에 까르르 웃는 지현을 어딘가 서글프게 쳐다봤다.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자주 해줄게.'
아직까진 약이네, 월세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서 지훈의 물건은 못 샀지만 좀 참기로 했다. 어차피 앞으로 들어올 돈은 많았다.
'나한텐 이 반지가 있으니까 걱정 없다.'
지훈은 반지를 쓰다듬으며 표면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었다.
-권능을 당신의 손안에.
지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집 도착하자마자 어디 가?”
“시체 구덩이.”
“술 마시게?”
“아니,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또 뭔데? 맨날 뭐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고.”
표정이 불편한 게 위험한 일 하러 가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오늘은 집에서 푹 쉬어라.”
“알겠어.”
“까트나 마약도 하지 말고.”
“안 해!”
불만스러웠는지 지현은 볼에 바람을 불어넣곤 흥 소리를 냈다.
저런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소녀인데, 가끔씩 사고를 쳐대니 퍽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약 먹으면 괜찮아. TV 보면서 기다릴 테니까 일찍 와.”
“늦을지도 몰라. 기다리지 마.”
“알겠어~ 올 때 멜로나.”
멜로나.
단종 된지 꽤 된 얼음과자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구경도 못해봤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까 싶어 암시장 다녀오는 길에 씹을 거리나 좀 사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지훈은 다시 시체 구덩이를 찾았다.
붐, 붐, 붐, 붐, 뜨든!
저번과 달리 무슨 변덕인지 가게 안에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소위 클럽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무슨 클럽 음악이야?”
투덜대는 말에 주인이 픽 웃으며 답했다.
“이번에 내 조카가 이쪽으로 관광 왔거든. 그래서 파티 열어줬지.”
- 하하하!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 야, 원 샷 시키지 마! 꼴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나 다를까 술집 구석에서 젊은 남녀가 초저녁부터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보니까 갓 스물쯤 돼 보이는데, 너무 내버려 두는 거 아냐?”
슬쩍 주변을 훑었다.
지훈 말고도 파티를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중엔 기회만 된다면 강도로 돌변할 이도 몇 있어 보였다.
“믿음직한 보디가드를 하나 붙여뒀으니까 걱정하지 마.”
주인은 턱짓으로 구석에 기대고 있는 인영을 가리켰다.
중세시대 수도승마냥 온 몸에 로브를 둘러썼음은 물론. 살짝 드러난 팔과 다리는 전부 붕대로 감고 있었는데, 매우 얇아서 툭 치면 부리질 것 같았다.
“스프리건? 저딴 희귀 종족이 왜 이딴 데 있어?”
스프리건은 반인반목으로 굉장히 독특한 종족이었다. 얇고 긴 육체는 대부분 목질화 되어 있으나, 식물처럼 생긴 외형과 달리 속도가 매우 빠른 종족이었다.
과거 종족동맹 전.
곧 화기가 보급되지 않았을 시기엔 백병전에 어울리지 않는 육체 때문에 약소종족이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타 종족보다 1.5배는 더 빠른 스피드로 움직이며 총을 쏴재끼니, 저항 수치가 웬만큼 높은 각성자가 아니고서야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가 됐다.
“언더 다크 쪽에서 붙은 호위인데 좀 빌려줬지. 그나저나 무슨 일? 이 시간부터 한가하게 술이나 땡기러 온 건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누가 이 쪽 사람 아니랄까봐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혔다.
“이번 암시장 언제 열려?”
“오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것 참 우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