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카운트다운. -->
지훈과 칼콘은 아지트에 바싹 달라붙었다.
- 바로 들어간다. 준비 해.
지훈의 위치는 창문 바로 야래였고, 칼콘은 아지트 입구 옆에 서있었다.
- 창문으로 섬광탄 깔 테니까, 터지면 바로 문 열고 돌입해. 알겠어?
- 그래.
- 나는 이쪽에서 엄호하지. 만약 엄폐하는 녀석 있으면 수류탄도 던질 테니 제대로 막아라.
- 걱정 마.
지훈이 슬며시 창문 안을 살폈다.
다들 장비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쨍!
소총 개머리판으로 유리창을 깬 뒤 바로 섬광탄을 창문 안으로 집어던졌다. 이후 눈은 감고 입은 쫙 벌리며 엎드렸다.
“이런 썅!?”
안에서 욕설이 들려오기도 잠시.
펑!
욕설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치환됐고,
쾅!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바로 칼콘이 진입했다.
타타타탕!
섬광탄에 피해를 입지 않은 몇몇이 칼콘을 향해 지향사격을 했지만 전부 방패에 막혀버렸다.
“난 이래서 인간들이 만든 도구가 너무 좋아!”
칼콘은 모든 총알을 방패로 막아낸 뒤, 들고 있던 해머로 바닥을 뒹구는 남자를 찍어버렸다.
“경현아!”
그걸 본 다른 녀석이 연사로 칼콘을 드르륵 긁었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방패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으그극!”
아무리 힘 센 칼콘이라도, 이대로라면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터.
지훈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곤 조준 사격으로 사격 중인 남자의 머리를 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픽 쓰러졌다.
- 이블 포인트가 2 올랐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76입니다.
‘썅!’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음에도 심장이 옥죄듯 답답했다.
예상보다 적은 수치가 올랐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일단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죽음에 성큼 다가갔다는 뜻이었다.
“김지훈. 너지 이 새끼야! 네가 이러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냐?”
중배가 엄폐물 뒤에 숨어서 소리를 질렀다.
“눈치 빠른 양반, 벌써 알아챘네. 그럼 뭐하나, 이제 곧 뒈질 텐데.”
“이 개새끼가!”
조악한 협박엔 대답해 줄 가치가 없었다.
지훈은 칼콘에게 물러나란 수신호를 보내곤 바로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다.
팅!
청명한 소리와 함께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하나, 둘.’
당장이라도 수류탄이 터질 것 같아 온몸의 털이 곤두섰지만 참았다. 바로 던졌다간 저쪽에서 도로 줍어다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
툭. 토르르르….
수류탄이 엄폐물 뒤로 굴러갔다.
사람 죽이는 무기라기엔 너무 얌전한 소리였다.
그렇다고 무시했다간 순식간에 육편이 될 게 분명했기에, 중배는 바로 다른 엄폐물을 향해 달렸다.
역시 각성자 답게 엄청난 속도! 하지만 엄폐물 뒤에 있던 다른 녀석은 채 반응하지 못하고 폭사했다.
콰앙!
-이블 포인트가 2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78입니다.
타타탓!
지훈은 그런 중배를 잡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아쉽게도 그가 지나간 자리에 탄흔을 만드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재장전! 칼콘, 들어가!”
지훈이 탄창을 갈며 소리치자, 그 사이 한 명을 더 피떡으로 만든 칼콘이 방패를 앞세우며 중배에게 달려들었다.
진퇴양난!
엄폐물에 있다간 방패를 앞세운 칼콘의 해머에 작살이 날 테고, 밖으로 나가면 재장전을 마친 지훈에게 벌집이 될 터였다.
결국 중배는 잠시 고민하다 뒤에 있는 창문을 깨고 그대로 도망쳤다.
쨍!
“저 성가신 새끼가!”
지훈은 나이트 비전을 눌러 쓰며 아지트 건너편으로 전력 질주했다.
도착하니 저 멀리 중배가 뛰어가는 게 보였다.
'그냥 가게 둘 순 없지.'
지훈은 총을 들어 중배를 겨냥했다.
평소였다면 어두운 시야와 거친 숨 때문에 조준이 어려웠겠지만, 각성의 여파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정신을 집중하자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가늠좌와,
미세하게 떨리는 가늠쇠를 정확하게 맞추곤,
호흡을 멈춘 뒤….
탕!
명중.
잘 달리던 인영이 풀썩 쓰러졌다.
총을 내리고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칼콘이 창문 너머로 물었다.
“뭐야. 저거 쓰러졌네. 잡은 거야?”
“그래. 넌 남아있는 놈 처리하고 시체들 모아놔. 저 녀석은 내가 처리하지.”
“알겠어.”
칼콘을 뒤로하곤 중배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하는 소리가 마치 도살자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사, 살려줘….”
허벅지에 총을 맞은 중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게 왜 하필 그 여자를 건든 거요? 발기도 안 되는 양반이 물고 빠는 젖병이 뭐 그리 좋다고. 쯧.”
“지, 지훈아…. 내 말 들어봐, 그 년이 먼저 나 공사 치려고 했어! 그건 정당방위였다고.”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중요한건 그 쪽이 석중 할배 계집을 죽였다는 거요.”
“난 아무것도 몰랐어. 제발 살려줘. 내가 할배한테 직접 얘기할게. 응?”
살고 싶은 욕망일까?
중배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기어왔다.
“그만하쇼. 마지막 유언을 그런 허접한 말로 채울 거요? 아무리 싸구려 인생이라지만 갈 땐 멋있게 가야지.”
“지훈아… 기억해 봐, 우리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같이 까트 씹으면서 시시덕거렸잖아. 기억 안 나?”
마치 버둥거리는 벌레마냥 중배가 계속 기어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살려달라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렇게 어느 정도 가까워 졌을 무렵.
“넌 날 보자마자 쐈어야 했다고, 이 좆방새야!”
중배가 순식간에 일어나 달려들었다!
비록 상처 때문에 오래 행동하진 못하겠지만, 누군가를 기습하기엔 충분할 정도였다.
훅!
날카로운 단도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다!
일반인이었다면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분수를 뿜었을 기습! 하지만 지훈도 이제 각성자였다.
저런 일격에 맞아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젠장!”
날아오는 단검을 바로 개머리판으로 막았다.
선명한 희비교차!
중배의 눈엔 짙은 좌절감이 드리웠고, 지훈의 얼굴엔 안도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배는 바로 이어진 지훈의 주먹에 풀썩 쓰러졌다.
“아, 아니 어떻게….”
“내가 각성자가 됐을 거란 생각은 못해봤소?”
“말도 안 돼. 어떻게 네가…!”
“영양가 없는 대화 그만 합시다. 유언은 그 쯤 하쇼. 옛 정 생각해서 들어주려고 했는데, 사람이 질리네.”
“잠까….”
탕.
중배의 몸이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끝까지 쓰레기로 살다 가는 구만. 그러니까 네가 3류 취급 받는 거요.”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만 남았다.
‘죽였으면 충분하지 물건은 도대체 왜 가져오라 난리야.’
지훈은 쓰러진 중배의 몸을 훑어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축 늘어진 흑산도 지렁이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남자 물건을 감상하는 취미는 없었기에, 바로 칼을 박아 넣었다.
왠지 모르게 사타구니가 아려오는 건 왤까?
작업을 마친 뒤 지훈은 중배의 물건을 쓰레기 버리듯 바로 아이스박스에 처박았다.
‘빌어먹을, 기분 진짜 더럽네.’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자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이블 포인트가 오를 거란 예상과 달리, 티어가 올랐다는 얘기였다.
‘뭐야, 죽였는데 왜 이블 포인트는 그대로도 티어가 올라?’
살짝 궁금증을 비추자 반지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 방금 그 자는 악인이었기에 이블 포인트 변동이 없었습니다. 해당 반지 기준 이블 포인트가 80 이상인 인간은 살해해도 포인트 증감이 없습니다.
악인은 죽여도 페널티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훈은 이어서 중배의 팀원을 죽였을 때에는 왜 포인트가 올랐냐고 물었다.
- 그 자들은 이블 포인트가 70대 후반이었습니다. 거기다 거래로 인한 암살이라는 동기까지 합쳐져, 사람 한 명당 2포인트가 감소했습니다.
‘결국 4포인트 오른 건가. 그나마 다행이군. 그럼 티어를 확인해 볼까.’
[정보]
이블 포인트 : 78 (+4)
등급 : E 등급 5티어 (+1)
보너스 점수 : 1
근력 : E 등급 (15)
민첩 : E 등급 (13)
저항 : F 등급 (5)
마력 : F 등급 (7)
잠재 : S 등급 (?)
이능 : 감지 실패
현재로써 제일 필요해 보이는 능력은 저항이었다.
여러 경험으로 육체적인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방어력을 키워야 했다. 아무리 날고 긴다한들, 총 한 방 맞고 죽어서야 의미가 없지 않던가.
‘실제로 중배도 총 맞고 죽었잖아. 저항에 투자하자.’
- 저항 : F등급 (5) = > F등급 (6)
능력 배분을 마치자 멀리서 칼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오고 뭐해?”
“아무것도. 지금 가지.”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기에 바로 아이스박스를 챙겨 칼콘에게로 향했다.
☆ ☆ ☆
아지트엔 시체 네 구와 겁에 질린 한 남자가 있었다.
아까 중배에게 대들었던 식물학자였다.
“뭐야, 저거 왜 살아있어?”
“저, 저는 싸울 줄 모릅니다. 그냥 식물학을 전공한 학생일 뿐입니다!”
“라길래 살려뒀어.”
지훈이 고개를 끄덕이곤 식물학자를 쳐다봤다.
“아하. 그래서 너는 쟤들이랑 일 안했냐?”
“저, 저는 시키는 것만 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어요! 그, 그리고 약 배합할 때도 분명 치사량이라고 얘기 해줬는데….”
“그만.”
“저 녀석이 제 말 안 듣고… 꺽!”
뻑!
지훈이 들고 있던 권총으로 식물학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녀석은 바닥에 머리를 찧곤 어린애마냥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너 몇 살이냐.”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돈 많이 준다고 그래서, 학비 벌어야 해서….”
“몇 살.”
“정말 이런 일 하는 사람일 줄….”
뻑!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지훈이 식물학자의 볼을 부여잡았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몇 살.”
“스, 스물넷입니다.”
지현과 동갑이었다.
아마 대학을 휴학하고 세드로 넘어온 모양이리라. 문득 지훈은 자기가 처음 세드로 넘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꿈, 희망, 성공.
딱 저 식물학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쯧… 쓸 데 없는 감상을.'
“돈 얼마나 모았냐?”
“천이백만 원 모았습니다!”
요즘 시대에 큰돈은 아니지만 몇 학기 학비 대기엔 충분한 정도였다.
'어떡한다?'
마음 같아선 후에 뒷목 잡을 일 없이 처리하는 게 좋았지만, 문제는 이블 포인트였다.
'그만 두자. 지금도 포인트 모자란데'
칼콘이 죽인 녀석들에 대해선 이블 포인트가 오르지 않았으니, 제 3자를 시키면 또 모를 테지만… 혹여 청부살인이네 뭐네 하며 포인트가 쑥 올라버릴지도 몰랐다.
“충분히 벌었네. 살려 줄 테니까 내일 당장 지구로 꺼져. 앞으로 내 눈에 보이면 죽는다. 알겠냐?”
식물학자가 감사의 말을 흘리며 넙죽 엎드렸다.
“아, 가기 전에. 얘네 장비랑 비상금 어디다 숨겼는지 아냐?”
식물학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었지만, 냉큼 정보를 뱉어냈다. 어차피 자기가 갖고 가기엔 너무 위험한 물품이거니와, 불어도 보복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꺼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물학자는 전력으로 도망쳤다.
사타구니가 축축하니 오줌을 지린 것 같았다.
정보대로 아지트 벽 한 부분을 뜯어내자 숨겨져 있던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자식 키패드와 다이얼이 함께 들어가 있는 금고였는데, 퍽 단단해 보였다.
“칼콘, 너 이거 딸 줄 아냐?”
칼콘은 금고로 다가가 몇 번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세드 출신인지라 이런 전자식 금고는 처음 보는 모양이다.
“딸 줄 아는 녀석은 알아.”
“지금 연락 돼?”
“아니. 그 녀석 서구에 살아.”
“기다릴 시간 없어. 그냥 까자.”
칼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금고는 애초에 외부로부터 특정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그러니 쇠지레나 소총용 납탄으로 무슨 짓을 해도 열 수 없을 터였다.
“우리한텐 요술봉이 있잖아. 안 그래?”
RPG. 우스갯소리로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리는 물건.
“진심이야? 안에 있는 거 다 박살날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냥 버리고 가면 되지. 그냥 가나 버리나 똑같잖아?”
지훈과 칼콘은 먼저 시체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수거해 밖으로 나갔다.
MP5와 K2 몇 정과 방탄복. 그리고 F급으로 보이는 아티펙트 3개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딱히 새 거 구입하지 않아도 되겠어. 이제 기타 기기만 사면된다.’
둘은 아지트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명중률을 위해선 가까운 곳에서 쏘는 게 좋았지만, 좁은 아지트 안에서 그 딴 기행을 했다간 바로 요단강을 건너기 딱 좋았다.
“여기가 딱 적당하겠네. 그거 줘 봐.”
지훈은 RPG를 건네받곤, 창문 너머로 있는 금고에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푸스-으우응 - 콰앙!
결과는 깔끔하게 명중.
RPG 탄두가 창문을 넘어 금고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아지트 안에 있던 창문이 모조리 작살나며 시뻘건 화염이 뿜어져 나왔는데, 10M나 떨어져 있음에도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제대로 틀어박힌 만큼 금고엔 마치 괴물이 뜯어먹기라도 한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어디보자, 뭐가 들어있을까.”
과격한 방법으로 열었기 때문에 입구 주변에 있던 돈들은 거의 다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대충 실한 녀석들만 챙겨 담으니 대충 천만 원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