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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9화 (9/173)

<-- 미친 사냥개와 발기도 안 되는 남자 -->

둘은 석중의 제안을 승낙하기 위해 다시 가게를 찾았다.

입구에 쌓인 C4와 곰팡이 냄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지만, 카운터 안에 있는 석중은 아니었다.

석중이 고개를 숙인 체 숨 대신 분노를 내뿜고 있었다.

“할배. 표정이 뭐 그리 사나워. 뭔 일 있소?”

“왔니. 이 와서 앉아라.”

지훈이 카운터 앞에 가서 앉았다.

“그래서 오늘 시킬 일은 뭐요?”

“그래… 일 하나 있었지. 근데 그거 말고 급한 처리해야 할 일 생겼다. 니 김중배 알제.”

뜬금없는 이름에서 위험한 냄새가 났다.

김중배는 이 개척지에서 헌터 팀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듯, 헌터들은 대부분 길드나 기업 형식의 팀에 들어가 많은 인원들이 함께 움직였다. 소규모로 행동해 봐야 위험하거니와, 수익도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기업에 들어갈 수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제 팀을 꾸려나가기도 했다.

중배는 후자였는데, 그 주제에 겁도 많아 몬스터나 아티펙트 헌팅보단 식재료나 약초 혹은 폐품이나 주우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알다마다. 매일 까트나 씹는 놈이 왜.”

“그 놈 처리해라.”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지훈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수준이 낮다 해도 분명 한 팀의 리더다.

약초 따위나 주우러 다닌다 한들, 혹시 모를 강도에 대비해 기본적인 무력은 갖추고 있다.

“왜.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니?”

“헛소리 그만하쇼. 내가 어떻게 그 놈들 죽이란 말이오?”

“입을 털던, 딴 놈이랑 거래를 하던, 목을 따던 맘대로 해라. 그 녀석 물건만 가져오면 된다.”

“누가 방법을 물었소? 싸움이 안 되잖아, 싸움이.”

일단 숫자부터가 적었다.

지훈 쪽은 둘, 저쪽은 여섯이다.

거기다 이쪽은 각성자가 하나, 저쪽은 넷.

아무리 등급 낮은 각성자가 현대화기에 저항력이 없어 총 맞으면 죽는다지만, 그래도 각성자다.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육편이 된다.

“왜 안 돼? 해보기나 했니? 어차피 그 새끼도 총 맞으면 뒤진디.”

“얘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뭔 일인데 그러는 거요?”

중배는 잠시 침묵하며 곰방대를 물었다.

“미친 사냥개한테 이유도 필요하나?”

미친 사냥개.

아는 사람만 아는 지훈의 별명이었다.

한 번 맡은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일을 마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명분 없이 사람 죽이면 나는 어쩌라고? 걔랑 사업하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적어도 그럴싸한 이유 하난 필요하지 않겠소? 그리고 가디언이랑 경찰은 또 어쩌고?”

말이 약초지 세드에서 돈 되는 약초는 열에 아홉 마약이다. 죽일 경우 유통책이나 기타 동료에게 보복이 왔다.

“그 쓰-애끼가 나한테 모욕감을 줬다.”

석중의 곰방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평소 여유롭게 농이나 건네던 것과 거리가 있는 모습에서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지수 얘기요?”

지수는 석중이 애지중지 하는 첩으로 술집에서 일하며 2차도 간혹 나가는 접대부였는데, 소문이 좋지 못한 여자였다.

“맞다. 그 년 뒤져뿟디.”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중배 새끼가 약쳐서 어떻게 하려고 했나본데, 배합 실패해서 애가 가삤다. 들어보이 시체는 개 먹이로 줬다 하드마.”

“그래서 그 놈을 죽여 달라?”

“죽이고 나서, 증거로 그 새끼 물건 가져와라.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지저분한 치정 싸움.

지훈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칼콘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슬며시 다가와 이번 건은 맡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속삭였다.

“할배. 화난 건 알겠는데. 걔네 잘못 건들면 내가 죽소. 뒤처리는 어쩌라고?”

“약속하지. 너랑 네 동생 그리고 오크 나부랭이도 이번 건이랑은 관계없게 만들어 준디.”

“쯧. 알겠소. 여태껏 본 정이 있어서 어떻게 하긴 하겠는데… 대금은?”

석중이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였다.

“두 장?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요?”

“이 천. 죽이기만 하면 천, 그 새끼 부랄짝 가져오면 천 더 준디.”

칼콘과 지훈이 멈췄다.

한 건에 이천!

목숨 걸고 일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오백 언저리라는 것을 봤을 때, 위험 대비 엄청난 돈이 아닐 수 없었다.

고민됐다.

저 정도 돈이면 헌팅에 나갈 기본적인 물품은 물론이오, 한동안 지현의 약 값이나 월세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블 포인트였다.

현재 포인트는 74.

죽음까지 딱 16 남았다.

'빌어먹을…'

평소에 지훈이 소일거리를 해서 버는 돈은 100 언저리. 관따기 같은 좋은 일을 물었을 때나 300 정도 벌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일을 포기한다면 얼마나 더 지금처럼 지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저번에 아쵸푸므자를 죽였을 때 포인트가 3 올랐다. 중배 일행은 여섯. 단순 계산으로 모두 죽이면 18인가.'

혼자 죽이면 18. 하지만 이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 칼콘이 대강 둘 정도는 처리할 터였다.

마음속으로 목숨과 돈, 시간 사이로 아찔한 외줄타기가 벌어졌다.

‘정신 차려라 김지훈. 언제까지 남이 싸지른 똥이나 치우면서 살 테냐. 마지막으로 한 탕 크게 뛰고 손 씻자. 조심하면 어떻게든 포인트를 맞출 수 있을 거다.’

결론은 돈과 시간으로 정해졌다.

“하지.”

“잘 생각했디.”

합이 맞자 얘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지훈은 지금 가진 장비로는 중배를 제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장비를 요청했고, 석중 역시 동의했기에 무료로 장비를 빌려줬다.

지훈은 석중이 건네 준 장비를 슥 훑으며 점검했다.

[장비]

[지훈의 장비]

단검.

글록 19 권총 1정.

소음기와 심박 탐지기가 부착된 K2 소총 1정. (대여)

세열 수류탄, 섬광탄 각 1개. (증여)

2세대 나이트 비전. (대여)

[칼콘의 장비]

슬랫지 해머.

진압(방탄) 방패 (대여)

RPG 1발 (대여)

그리고 1세대 나이트 비전.

“준비 됐니?”

“거의 다. 뭐 마지막으로 해줄 말 있소?”

“죽이고 나서 꼭 물건 가져오라.”

“걱정 붙들어 매쇼.”

지훈은 K2 소총을 들고 가게 밖으로 향했다.

“가자.”

☆ ☆ ☆

“이런 썅!”

중배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앞에 있던 의자를 발로 차버렸다. 의자가 벽에 부딪쳐 박살이 나버렸다.

“형, 진정해. 몰랐잖아. 석중 할배한테 잘 말 하면….”

“돌았냐? 그 사이코 새끼 성격 몰라!?”

중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겉으로 보기에 석중은 뒷골목에서 잡화나 파는 괴짜 노인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외모와 달리 그는 이 개척지에서 한 끝발하는 거물이었다.

비록 여타 다른 도시를 지배하는 거대 조직에 비하면 약했지만, 중요한 건 석중은 혼자 뒷골목을 주무를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로지 주둥이와 수완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 개인적인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약했다.

하지만 그에겐 다들 치를 떠는 해결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미친 사냥개라 불리는 지훈이었다.

'분명 온다. 기다리면 죽어!'

온 몸이 떨렸다.

정면으로 붙으면 당연 중배 쪽이 이길 테지만, 지훈도 돌지 않은 이상에야 분명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기습을 해 올 터.

‘자다가 총 맞거나, 독 먹고 어이없게 뒈질 바에는…!’

“먼저 친다.”

난잡하던 방 안에 바로 조용해졌다.

다들 중배 입에서 나온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석중 할배 죽이면 이 도시에서 발붙일 곳 하나도 없을 텐데… 진심이야?”

“어차피 안 죽이면 우리가 죽는다.”

침묵하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중배 팀에서 길잡이 겸 짐꾼을 하는 남자였다.

“이봐, 그건 네 얘기고. 계집애 죽인건 넌데 내가 왜 죽어?”

“이 새끼가? 같은 팀이네 뭐네 할 땐 언제고 위험해지니까 꼬리 마는 거냐?”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번엔 전투와는 거리가 먼 식물학자였는데, 주로 향정신성 약초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중배 형님, 죄송하지만 저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의리도 중요하지만, 제 목숨도 중요해요. 저는 학비 벌려고 여기 온 거지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팀이라 한들 돈으로 뭉친 관계.

사소한 의리면 모를까, 목숨까지 지켜줄 사이는 아니다.

중배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혼자서는 절대 석중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골골거리며 다 죽어가는 놈들 거둬줬더니, 이제 와서 배신을 해!?”

“무슨 소리야. 그 정도는 아니었….”

“닥쳐!”

탕!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짐꾼이 풀썩 쓰러졌다.

“자, 잘 들어. 우린 같은 팀이야! 살 땐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알겠냐!?”

“전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게….”

중배가 식물학자에게 권총을 들이댔다.

식물학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래요. 가, 같이 움직여야죠! 그래야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장비 챙겨. 당장 그 녀석 치러 간다.”

그 말을 신호로 모두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중배의 아지트에서 가까운 풀 숲.

탕!

칼콘이 총 소리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방향으로 보건데 중배의 아지트에서 난 소리였다.

가벼운 불안감이 스쳤다. 보통 사격은 야외에서 하지, 실내에선 될 수 있으면 쏘지 않는다.

'내분인가?'

지훈은 중배의 아지트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 … 팀이야! 살 땐 … 죽어도 같이 ….

-… … 그런 뜻으로 말 ….

-장비 챙겨 … 사이코… 치러 간다.

다른 소음에 섞여 정확하진 않았지만 중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각성자가 되며 신체 감각이 날카로워진 까닭이었다.

'뭐야 이거? 근데 잠깐. 치러 간다고?'

궁금증도 잠시. 지훈은 다시 아지트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다른 소리가 옅어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아지트에서 뭔가 물건 챙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칼콘. 저 녀석들 석중 할배 치러 갈 모양이다.”

“지금?”

“그래. 보니까 내분도 일어났던 모양이군.”

지훈은 자기 총 위에 달려있던 심박 감지기를 보여줬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여섯 개였던 게, 총소리를 기점으로 다섯 개가 됐다.

“개활지에서 맞붙으면 위험해. 기습해야 하지 않을까?”

칼콘이 등에 매고 있는 RPG를 매만졌다.

지금 다들 아지트에 모여 있으니, 예쁘게 한 방 꽂아주면 혼비백산할 게 분명했다.

“RPG는 안 돼. 확실하지가 않아. 쏘고 나서 제압하러 들어갔다가 도리어 기습을 당하면 골치 아프다고.”

“아쉽네.”

칼콘이 입맛을 다셨다.

“한 놈 한 놈으로 가자.”

“알겠어.”

지훈과 칼콘은 아지트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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