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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6화 (6/173)

<-- 그을음 냄새가 나는 여자 -->

지훈은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주인에게 목례하곤 가까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웬 겁 없는 젊은 커플이 공원 구석에서 찐한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도대체 그 빨간 양키는 누구고, 뭐하는 년이야?’

지훈은 앞이 막막해져 담배를 물었다.

이후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찾았지만 놓고 왔는지 주머니를 전부 뒤져봐도 없었다.

‘젠장,’

담배를 꺾으려는 순간 웬 불 하나가 슥 다가왔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불을 붙인 뒤 고맙다고 목례를 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담배 안 필거야?”

왜냐하면….

불이 라이터가 아닌 손가락 끝에서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안녕, 김지훈. 권능의 반지의 두 번째 주인.”

붉은 머리, 왼쪽 얼굴에 화상 가득한 미녀가 보였다.

‘이런 썅…’

화상만 아니었다면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지금도 얼굴과 화상 사이에 묘한 괴리가 있어 뒤틀린 매력이 뿜어져 나왔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정쩡한 침묵 사이로 담배만 탔다.

“안 피나보네.”

여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불이 사라졌다.

‘마법사?’

몇 가지 도구만 있다면 일반인도 손가락에 불붙이는 기행을 할 순 있겠지만, 정신 나간 놈 아니고서야 그딴 짓 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 마법사가 여기 있지?’

마법사는 굉장히 귀한 존재였다.

애초에 재능과 노력이 동시에 만족돼야만 될 수 있는 게 마법사였다.

게다가 혹여 됐다 한들 공부만 한 샌님이 대부분이라, 식별 전문 기업인 아이덴티티에 취직을 하거나 마도학자가 괴는 게 보통이었다.

앉아서 돈 편히 벌수 있는데 굳이 포탈을 넘어 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위험천만한 세드로 넘어온다?

위험천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백에 구십이었다.

“누구쇼?”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몸을 돌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끔 준비했다.

“일부러 묻는 거야?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 재미있는 양반이네. 모르니까 묻지 알면 왜 묻나?”

공원 주변을 훑었다.

혹 목격자라도 있으면 과격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이런 미친. 물고 빨고 하던 연놈들은 어디로 갔어?’

이제 공원에 남은 사람은 지훈과 여자 단 둘.

곧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진짜 몰라?”

“양키랑은 연이 없어서 말이오. 마약 거래 할 때 한 번 보긴 했는데, 그 때도 서로 총질한 사이라 좋은 사이는 아니지.”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Neli naljakas mees. (재미있는 남자네.)“

러시아 어처럼 뚝뚝 끊기고 된소리가 많이 들어간 말.

언젠가 들어 본 언어였다.

‘반지가 말했던 언어랑… 똑같다?’

부정하고 싶어도 빼도 박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다.

설마 했던 의심이 불길한 확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튀어야 하나?’

일단 여자는 몸이 쫙 맞는 스키니진과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기를 숨길 공간이 없는 의복이니 총기류는 가지고 있지 않겠지.

하지만 문제는 저 여자가 마법사라는 거였다. 전력으로 도망친다 한들 무슨 방법으로 공격해 올 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정식으로 소개하지. 반가워, 나는 아쵸푸므자야.”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쪽은 지금 지훈이 이 반지를 도굴을 통해 얻었다는 것을 아는 상태.

지금은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한들 얼마 못 가 전투가 벌어질게 분명했다.

마법사와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진다.

뭘 해도 진다.

말할 것도 없었다.

‘기습해야 된다!’

지훈은 주머니에 넣은 상태 그대로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퓨퓨퓨퓩!

쟈켓 주머니가 찢어지며 순식간에 총알이 쏟아졌다.

“아?”

아쵸푸므자가 슬쩍 고개를 내려 복부를 쳐다봤다.

“곱게 뒈져 줄 생각 없다, 이 빌어먹을 마법사 새끼야!”

지훈은 멍 하니 서있는 아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그리곤 나무토막처럼 쓰러진 아쵸의 머리와 목, 복부에 순서대로 남은 총알을 모조리 박아 넣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타타탓!

지훈은 바로 도망쳤다.

방금 살폈을 때 목격자는 없었으니 최대한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날 요량이었다.

몇 걸음이나 달렸을까?

문득 뒤에서 사람 일어나는 것 같은 불길한 소리와 함께….

“süüde(발화).”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 이블 포인트가 3점 올랐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75입니다. 생명 소거까지 15점 남았습니다.

☆ ☆ ☆

- Seeon tõesti huvitav inimene. Ei hirmu.

(신선한 친구네. 재밌어.)

몽롱한 정신 사이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동굴에서 말하듯 울림이 심했으나 듣는 데에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

‘빌어먹을. 방금 뭐였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현재 지훈은 방금처럼 벤치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꿈이었나?’

꿈이어야 했다.

온 몸에 불이 붙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다 쓰러졌다.

꿈이 아니고서야 어찌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나…. 더럽게 재수 없는 꿈을 꾸네. 젠장.’

시쳇말로 몸이 아플 때는 약을 먹고, 정신이 아플 때는 담배를 펴야 한다고 했다.

지훈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후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찾았지만, 놓고 왔는지 주머니를 전부 뒤져봐도….

“여기. 불.”

눈앞으로 불이 슥 다가왔다.

“어이구, 고맙….”

때 마침 불이 나타나 한 입 빨려다가…

문득 엄청나게 섬뜩한 기시감을 느꼈다.

- süüde(발화).

시선조차 피하고 싶을 정도로 큰 공포가 밀려왔으나, 사람의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좇게 만들었다.

“안녕?”

아쵸와 지훈의 눈이 마주쳤다.

목이 잘린 닭과 대화하는 기분이 이럴까?

죽은 인간이 말을 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소름끼쳤다.

“이런 개 썅!”

그 공포는 바로 행동을 유발했고, 지훈은 다시 한 번 권총을 난사했다.

이번엔 확인 사살을 할 것도 없이 달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süüde(발화).”

☆ ☆ ☆

☆ ☆ ☆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몇 번이나 어그러졌을까?

적어도 한 손 가득 세어봐야 할 정도 됐을 때가 돼서야 지훈은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씨발…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제 대화를 할 마음이 조금 생겼어?”

지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욕을 잔뜩 해주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머리가 너무 아파 와서 그럴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했더라… 그래. 반지 처음 꼈을 때 무슨 말 들었는지 기억 않나?”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모르는 언어였다. 처음엔 환청인줄 알았어.”

“그래서 안 뺀 거구나. 어쩔 수 없었네.”

아쵸푸므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가 끼고 있는 반지는 너를 위한 물건이 아니야. 그건 알고 있지?”

정확하게 들은 적은 없었지만, 정황상 짐작은 했다.

“그래서… 나를 죽일 건가?”

“딱히. 권곽도 이미 죽었으니까 상관없어. 난 단지 몇 가지 알려주려고 왔을 뿐이야. 그 반지가 뭐하는 물건인지 알아?”

“권능의 반지. 각성 제어 기능이 있다.”

“정확해. 그럼 악인이 쓰면 죽는다는 것도 알겠네?”

“뭐?”

정신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정보 창에 분명 이블 포인트라는 게 있긴 했었다.

“다행히 제 때 왔나보네. insormatsioon(정보).”

정보라는 말에 반지가 공명을 시작하더니, 허공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종족 : 인간

이블 포인트 : 75

등급 : F 등급 1티어

근력 : F 등급 (10)

민첩 : E 등급 (11)

저항 : F 등급 (0)

잠재 : S 등급 (??)

마력 : 감지 실패

이능 : 감지 실패

[신체 변이]

없음.

[이능력]

없음.

“Evil on juba 75 punkti? Ohtlikud(이블 포인트가 벌써 75? 위험한데).”

“이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해줄 순 없나?”

“Mis sa räägid. Kõik andmed on juba sisestatud keeles oleks? (이미 언어 정보는 전부 들어가 있을 텐데?)“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어떻게 네 말을….”

지훈은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분명 소리로는 모르는 언어를 들었음에도, 원래 그 뜻을 알고 있었던 것 마냥 머리에서 해석이 됐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블 포인트가 도대체 뭐지? 등급과 능력치는 많이 들었지만 저건 처음 보는 내용이다.”

아쵸는 잠시 볼을 긁적거렸다.

“간단하게 말해줄게. 이블 포인트는 네 선악을 알려주는 잣대야. 저게 90이 넘는 순간 넌 죽어.”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 내용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현재 포인트는 75. 죽음까지 겨우 15밖에 남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럼 도대체 뭘 하고 먹고 살라는 거지?'

앞길이 막막했다.

보통 사람들은 각성자가 되면 헌팅 길드나 연구원이 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훈은 그럴 수 없었다.

바로 전과 때문이었다.

언더 다크가 생겨난 이후 각성자 범죄가 판을 쳤기 때문에, 전과가 있는 사람은 양지에서 단체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돈을 벌기 위해선 혼자 팀을 꾸려 사냥을 나가야 했지만, 그러려면 초기 자본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했다.

도대체 그 돈은 어떻게 번단 말인가?

이블 포인트만 아니었다면 눈 딱 감고 언더 다크 쪽 더러운 일 한 번 하면 됐지만, 이제와선 그럴 수도 없게 됐다.

“잠재 능력은 대단하네. S등급 이라니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말이야.”

심각한 지훈과 달리, 아쵸프무자는 마치 품평하듯 정보를 슥 훑었다.

“그럴 리가. 물음표 찍혀 있으니 단순 오류겠지.”

지훈 얼굴에 조소가 걸렸다.

행운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S등급이라니.

믿기 힘들었다.

“S랭크 맞아. 무슨 이유에서든 드러나질 않는 거지.”

지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저 말은 곧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말을 의미했다.

“뭐 어때. 확인해 보면 되지.”

그녀의 손이 지훈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맞다. 좀 따끔할 거야.”

“뭔 짓을 할 생….”

그러고 보면 처음 반지를 낄 때도 그랬었다.

약간 ‘따끔’할 수 있다고.

- 인위적인 마나 주입 감지.

- 사용자 보호를 위한 주문 역계산 실시.

- 실패!

- 격통에 대비하십시오.

“으어우으윽!!”

온 몸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 상황 분석.

- 강력한 변이계 마나.

- 신체, 정신 혹은 영혼에 오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 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조금만 참아봐. 아마 곧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이 빌어 먹을… 갈보년이…!”

지훈은 온 몸에 핏줄을 세운 체 금방이라도 아쵸를 씹어 먹을 듯 쳐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인….

- 티어가 올랐습니다. 확….

- 티어가 올랐습니다….

- 티어가 올랐….

- 티어….

- 신체가 변이됐습니다.

- 신체가 변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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