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재 능력 S등급 -->
저주 받은 아티펙트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반지를 살짝 건드리자 가벼운 고통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 Püüab kokku panna kasutaja keha. Palun oodake. Praegune ehitus määr 80.
(사용자의 신체를 재구성 하는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현재 구성률 80%)
뚝뚝 끊기고 된소리가 많이 들어간 게 러시아어 같기도, 오크어 같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건가?’
설마 싶어 다시 한 번 만졌다.
아까 들렸던 얘기가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들려왔다.
이로써 지훈은 확신했다. 저 반지에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
지훈은 최대한 빨리 걸음을 옮겼다.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식별 스크롤 좀 사고 싶은데.”
“요즘 새로 나온 충전식 있는데, 그건 어떠세요?”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편리한 것으로 따지자면 충전식 기계가 훨씬 좋지만, 가격이 미친 듯이 비쌌다.
저런 고가의 물건들은 제대로 아티펙트 헌팅 혹은 레이드를 다니는 녀석들이나 쓸 수 있었다.
“그냥 일회용으로 주쇼.”
“한 번 식별하시는 거면 매장 내에서도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쪽이 가격은 더 저렴하십니다, 고객님.”
점원이 잘못된 높임말을 쓰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필요 없으니까. 일회용 스크롤 달라고.”
결국 일회용 스크롤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젠장. 더럽게 비싸네.”
지훈은 손에 들린 스크롤을 내려다봤다.
한낱 종이일 뿐인데도 가격이 100만원도 넘었다.
점원 말대로 매장 내에서 식별을 받았다면 돈을 아낄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전 주인이 각인 같은걸 해놨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쇠고랑 찰 수도 있었다.
아티펙트 절도는 중범죄였다.
“좋아, 도대체 뭐하는 물건인지 알아나 보자고. 식별.”
지훈이 스크롤을 확 펼치며 반지에 정신을 집중하자 정보가 떠올랐다.
아니, 떠올라야 했다.
[감정 실패]
“뭐?”
감정 실패라니.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상식을 벗어난 일에 지훈이 멍 하니 있는 사이 스크롤은 마치 분해되듯 서서히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일당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아, 안 돼! 감정도 못했는데 왜 없어져!”
공기 중에 흩어지는 스크롤을 잡으려 애써 손을 휘둘렀지만 헛수고였다.
패잔병마냥 허공만 쳐다보길 잠시.
멍한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 Füüsiline ümberkorraldamine lõpule. (신체 재구성 완료)
- Sisesta keeles teavet oma aju. (사용자의 뇌에 언어 정보를 입력합니다)
- Sul võib nõelamine vähe. (조금 따끔할 수 있습니다.)
인생 조지는 건 진짜 한 방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머릿속에 ‘저주, 죽음, 좀비, 여동생, 장례’ 같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뛰어다니기도 잠깐. 마치 누가 머리에 못이라도 박는 것 같은 편두통이 느껴졌다.
“억!”
- 구동 완료.
머리를 매만지던 지훈의 손이 멈칫거렸다. 여태껏 모르는 언어만 들려오다 처음으로 아는 언어가 들렸던 까닭이었다.
‘구동이라니. 뭔 소리야?’
- 본 물품은 사용자의 각성을 촉진 및 성장을 도와주는 반지입니다.
내용 둘 째 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요즘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아닐까란 생각이었다.
‘각성을 도와준다고? 그딴 게 어디 있어. 그런 물건 있었으면 개나 소나 헌터 한다고 나댔겠지.’
매우 달콤한 얘기였지만, 삶의 모진 풍파에 잔뜩 담금질 된 지훈에게 있어서 저 소리는 환청 그 이상 그 이하로 밖에 들리질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각성자가 되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운이 억세게 좋아서 자연 각성을 하던가, 약물 혹은 마법으로 강제 각성을 하던가.
게다가 후자는 확률은 낮은 주제 사람 수명은 엄청나게 깎아먹었기에 없는 방법이라고 봐야 옳았다. 총 맞지 않은 이상에야 제 목숨 걸고 확률놀음 할 놈이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각성 후에도 성장을 도와준다?
그런 편리한 것,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빨리 빼자. 이번에도 안 빠지면 바로 저주를 해제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지훈은 손가락을 뽑아버릴 기세로 반지를 잡았다.
- 해제 하시겠습니까?
‘그래, 제발 빠져라!’
그렇게 생각하며 반지를 쑥 당겼다.
어제와 달리 너무나도 쉽게 쏙 하고 빠졌다.
‘뭐야?’
이상했다.
어젯밤엔 미동도 하지 않던 반지가 어찌 이렇게 쉽게 빠진단 말인가.
지훈은 아까 뭔가 생각하면 대답이 들려오던 것을 감안, 속으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진짜 환청이라면 반지에 상관없이 들릴 거였다.
뭔가 대답이 나올만한 질문을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내려다봤다.
- 권능을 당신의 손안에
어젯밤에 봤을 때는 모르는 언어였다.
‘설마?’
애써 불안한 감정을 누르며 다시 한 번 반지를 껴봤다.
- 사용자 인식. 약간 따끔할 수 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누가 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지나갔다.
- 적합한 사용자. 권능의 반지 구동 완료.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환청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각성을 도와주는 거라고? 아무런 손해 없이?’
-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정보를 전송합니다.
- 눈이 따끔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십시오.
‘잠까….’
“악!”
채 말리기도 전에 눈에 주사바늘이 꽂힌 것 같은 고통이 스쳤다.
[정보]
이름 : 김지훈
종족 : 인간
이블 포인트 : 72
이블 포인트 칭호 : 무법자
등급 : F 등급 1티어
근력 : F 등급 (10)
민첩 : E 등급 (11)
저항 : F 등급 (0)
잠재 : S 등급 (??)
마력 : 감지 실패
이능 : 감지 실패
[신체 변이]
없음.
[이능력]
없음.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잠재 능력이 S인 것은 둘째 치고, 지훈이 각성자가 됐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내가 각성했다고?’
평소에 그렇게나 되길 원했던 각성자였지만 실제로 되고 보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꿈과 희망이 넘치던 과거엔 매일 같이 각성자가 되길 염원하며 각성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결과는 항상 음성이었다.
근데 이제 와서 아무런 기미도 없이 각성자가 됐다?
굉장히 솔깃한 말이지만 믿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일단 저주 받은 아티펙트는 아닌 건가?’
- 해당 물품은 저주받지 않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어제 겪었던 그건 뭔데?’
- 사용자가 각성자가 아닐 경우 강제 각성을 위한 신체 재구성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어디서 약을 팔아. 도중에 빼지지도 않던데.'
- 육체를 재구성 하는 도중 반지를 빼면 육체가 오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야, 강제 각성이야? 강제 각성이면 수명이 줄잖아.’
- 방법에 차이가 있기에 해당 방법은 줄지 않습니다. 설명을 원하신다면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소모 시간은 약 2시간입니다.
‘됐어, 그만 둬.’
질문을 던질 때 마다 바로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참 묘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며 꿈과 희망 따윈 스스로 씹어 먹어 버린 지훈이었거늘, 그런 그의 눈에서 조그마한 희망이 싹텄다.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이었으나, 지금은 그 작은 변화만으로도 몸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제대로 확인 해보자.'
마음에 짐이 줄었기에 훨씬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보건소였다.
“뭘 도와 드릴까요?”
“각성 검사를 하고 싶은데.”
자세한 각성 검사는 병원 혹은 마법사들에게 받아야 하지만 간단한 방법도 있었다.
소위 인바디라 불리는 체성분 검사였다.
인바디는 인체에 미세한 전기를 흘려 육체의 성분을 파악하는 기계로 주로 헬스클럽에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간단한 각성자 검사에도 쓰였다.
“맨발로 올라가서 손잡이 잡고 계세요.”
지훈은 손잡이를 잡고 기다렸다.
가벼운 전류가 흐르는 게 분명한데도 고통이나 이질감 따윈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띠-띠디디. 띠~
“운동 같은 거 자주 하세요?”
애매한 질문이었다.
직업상 담넘기, 삽질, 칼질, 싸움 같은 건 자주 했으나 저런 걸 운동으로 봐야 할까?
“그냥 적당히 합니다. 맘먹고 하는 건 아니고.”
“각성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하?”
지훈은 어이가 없어져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각성했다는 것 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그렇게나 듣고 싶은 말이었음에도, 실제로 들어보니 어안만 벙벙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지도 않은 복권이 당첨됐다고 들은 느낌일까?
“그거 잠깐 줘보쇼.”
믿을 수 없었기에 결과표를 훑어봤다.
다른 건 모두 정상이었으나, 근밀도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로 기록되어 있었다.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등급에 따라 신체 능력에 보너스를 받는데, 그 중 당연히 근력도 있었기에 각성시 이렇게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오?”
“정상이에요. 조금 많이 놀라셨나보네요.”
보건소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잔 건네줬다.
멍하게 앉아 커피나 홀짝이며 인바디 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짙은 현실감이 엄습했다.
‘이거… 진짜다!’
꿈에 그리던 각성자가 됐다.
비록 등급이 F인지라 이능을 부리거나, 맨몸으로 총알을 튕겨내는 기행은 하지 못했지만, 썩어도 준치였다.
제일 낮은 등급의 각성자라고 해도 일반인에 비해서 신체 등급은 월등히 강력했다.
시험해 보기 위해 커피 스푼을 살짝 구부려보자, 무슨 엿가락마냥 손쉽게 구부러졌다. 하지만 힘이 강해졌다고 체력까지 강해진 건 아니었는지, 살짝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