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별 -->
가로등 불빛 하나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드문드문 켜있는 기름 랜턴만이 이 장소에 사람이 드나든다는 것을 알려줬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문득 여자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오빠, 쉬고 가세요. 숏 열다섯, 긴 밤 스물이에요.”
창녀인지 속이 비치는 옷에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여느 뒷골목에나 있을 흔한 호객이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여자가 엘프라는 것 정도였다.
본디 숲과 미의 종족으로 추앙받는 엘프였으나 그것도 전설이나 신화 속 얘기에 나왔을 때 얘기였다.
치안이 불안정한 이 시대에 있어, 뒷골목 엘프에 대한 취급은 상품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됐다.
이종 간 식인행위 및 성매매가 성행하자 정부는 이러한 범죄행위를 무겁게 처벌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림자 속 실상은 이랬다.
“이종교배 관심 없다.”
“열 장에 드릴게요. 입으로도 해줄게요. 얼굴에….”
“꺼져.”
“제발요… 저 할당 못 채우면 맞아요. 도와주세요.”
잠시 멈춰 엘프의 얼굴을 훑었다. 어두워서 잘 가늠되지 않았으나, 갓 성년이 된 듯 어려 보였다.
“딴 놈 알아봐.”
“제발… 꺅!”
나오던 말이 뚝 끊어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보다 못한 칼콘이 엘프를 밀쳐 벽에 몰아넣은 거였다.
“꺼지라는 소리 안 들려?”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죽이지 마세요….”
“그 큰 귀가 거치적거리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조금만 잘라내면 앞으로 잘 들을 수 있을 거야.”
칼콘이 작게 으르렁 거렸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버릴 것 같았다.
“이 새끼! 너 뭐야!”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방석집 경비 같았는데, 화기가 아닌 냉병기를 찬 모습에서 각성자라는 느낌이 묻어났다.
“칼콘, 그만.”
칼콘이 얌전히 뒤로 물러섰다.
“별 일 아니오.”
이쪽과 달리 경비에겐 별 일이 맞는 건지 으레 위협적인 몸짓으로 다가왔다.
“돈 내놔. 저 년 건드렸지?”
“무슨 소리 하는 거요?”
“네 애완 돼지가 여자 더럽혔잖아. 배상하라고.”
돼지라는 말에 칼콘이 허리춤에 있던 흉기로 손을 옮겼지만, 지훈이 슬쩍 손만 들어 제지했다.
“별 일도 아닌데 그냥 갑시다? 서로 피곤해지지 말고.”
“너 돌았냐? 남에 물건 더럽혔으면 배상을 해야 할 거 아냐. 가긴 어딜 가.”
저주 받은 아티펙트 때문에 기분 더러운데, 같잖은 놈이 시비를 걸어대니 짜증이 솟았다.
“존대 써줘 가며 좋게 해결하자고 할 때, 그냥 가자.”
단지 고개를 비틀고 쳐다볼 뿐이거늘, 지훈의 눈에선 형언할 수 없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언제 총과 칼이 날아들지 모르는 날카로운 침묵이 3초.
경비 쪽이 먼저 꼬리를 말았다. 어쭙잖은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앞으로 조심하고 다녀!”
‘시시한 새끼.’
지훈은 경비를 뒤로하곤 한 가게로 들어갔다.
표지판에 ‘잡화. 아티펙트도 취급.’ 이라고 적혀있었다.
☆ ☆ ☆
퀴퀴한 곰팡이 냄새, 입구에 잔뜩 쌓인 C4 그리고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카운터가 인상적인 가게였다.
카운터 안에는 노인 하나가 기폭기로 보이는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허튼짓을 했다간 화끈한 축객령을 내려 줄 것 같아 섬뜩해 보였다.
노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방문객을 쳐다봤다.
“지훈이니? 그 못생긴 낯짝 뭐한다고 또 들이밀러 왔니. 저 치우라, 토 나온디.”
출신을 가늠할 수 없는 기괴한 사투리였다.
“잘 계셨수, 석중 할배. 아티펙트 좀 처리하러 왔소.”
이에 지훈은 존대도, 반말도 아닌 것 같은 비꼬는 투로 답했다.
“아티펙트? 새끼 또 관 땄니?”
“남 이사 알 바 뭐요. 돈 받고 물건이나 사면되지.”
“또라이 새끼. 그렇게 캔 커피 따먹듯 관 픽픽 따재끼민 네 목도 쥐도 새도 모르게 따이는 기야. 조심 좀 하고 살아라, 이 거지발싸개 같은 쓰애-끼야.”
“장물아비 혓바닥이 뭐 그렇게 길어. 내 경험상 입 함부로 놀리면 오래들 못 살던데. 어떻게 생각하쇼?”
“하이고, 우리 미친 사냥개 지훈이. 썩은 고기만 처먹더니 드디어 맛이 간 게지? 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디. 내 저승길 동무 좀 되어 볼 테냐?”
석중이 픽 웃으며 기폭기를 주물럭거렸다.
“농담 몇 번 하다 뼈도 못 추리겠네. 잘 지내셨소?”
둘 사이에 욕설 섞인 과격한 안부가 오갔다.
“그 쯤 하면 됐디. 계집애마냥 서로 핥아주는 건 고마하고, 이제 물건이나 보자.”
칼콘이 카운터 너머로 아까 도굴한 물건을 건네줬다.
“Supply hobujõudu(마력 공급).”
석중이 기묘한 말을 중얼거리자,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이 은은한 빛으로 일렁거렸다.
“몽둥이 F, 도끼 E급. 식별비 포함 두 개 합쳐서 오 백.”
“하, 너무 싼 거 아니요?”
“싫으면 딴 놈 알아보라.”
“쯧, 더러워서.”
지훈이 혀를 찼다.
“그리고 이 반지도 좀 식별해 주쇼.”
지훈은 자기 팔을 강화유리 너머로 쑥 내밀었다.
꼭 혈압 측정기 쓰는 것 같은 자세였다.
“그 디런 손은 왜 내밀어. 혹 반지 안 벗겨지니?”
“뭔 수를 써도 안 벗겨집디다. 이거 혹시 저주받은 거요? 얼핏 듣기론 그런 게 있다던데.”
“재수 옴팡지게 없으면 그렇디.”
석중이 반지를 슥 훑어봤다.
“식별 안 돼. 이거 아티펙트 맞니?”
“아, 자세히 좀 봐 봐요. 대충 보지 말고.”
“전혀 안 보인디. 둘 중 하나겠고마. 이 안경으로 볼 수 없는 B급 이상 이던가, 아티펙트가 아니던가.”
노인은 잡고 있던 지훈의 팔을 묶어버리곤 이내 망치를 하나 가져왔다.
“잠깐, 잠깐만. 그거 아티펙트 조질 때 쓰는 거 아니요? 그걸 지금 왜 가져와!”
“안 보이는 걸 어쩌누. 그럼 때리 봐야지.”
“부서지면 내 손가락도 같이 아작 나는 거잖아, 이 미친 노인네야!”
지훈이 발광했지만 이미 고정된 상태.
꼼짝없이 맞아야 할 처지였다.
“가만있으라. 엄한 곳 맞으면 뼈 조진디.”
펄떡이는 생선 대가리 치듯 석중의 망치가 반지에 찍혔다.
깡!
“아아아악!”
“호오? 이보래이.”
다행히 지훈의 손가락은 무사했다.
동시에 반지 역시 무사하다는 말이었다.
“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뭐 먼저 들을래?”
“미국 짭새 흉내 그만두고, 빨리 알려주기나 하쇼.”
좋은 소식은 저 반지가 B급 이상의 아티펙트란 사실이었고, 나쁜 소식은 그 반지에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나중에 제대로 스크롤 사서 식별해 보라.”
식별 스크롤은 싸게 잡아도 100만원.
수입이 비정규적인 지훈에게는 부담되는 돈이었다.
“그래서 돈은 어떻게 줘. 평소처럼? 아니면 전부 현찰.”
“까트 섞어서 주쇼. 피는 거 말고 씹는 거 위주로.”
강화유리 너머로 쟁반이 돌아왔다. 오만 원 권 한 뭉치와, 담배 몇 개비. 이름 모를 식물 줄기 한 단이 들어 있었다.
지훈은 물건을 챙기곤 칼콘에게 몫을 나눠줬다.
“고마워. 다음 일은 언제야?”
“일 생기면 나중에 전화하지.”
“나중에 전화할 것 없이.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오라. 아는 땅굴잽이가 용병 필요하다 했디.”
땅굴잽이는 밀수업자를 뜻하는 은어였다.
“물건 뭔데?”
“양아치들 물고 빨고 하는 거 뭐 있깄니. 까트지.”
“알겠소, 할배. 그럼 다음에 봅시다.”
폭약과 곰팡이 냄새를 뒤로했다.
☆ ☆ ☆
지훈의 집은 개척시대 초기에 지어진 조립식 주택이었다.
지어졌을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꼭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이어붙인 것 마냥 초라해 보였다.
끼이익.
문을 열자 외관만큼 조촐한 실내가 펼쳐졌다.
부엌에는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고, 벽에는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기름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지금 몇 신데 이제 와?”
방 안에서 초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의 여동생, 지현이었다.
“일 하고 왔어.”
“지랄하네. 무슨 일을 새벽에 해. 뭐하고 왔어?”
“시비 걸지 마라. 나 지금 피곤하다.”
지현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동생은 아파서 골골대는데, 매일 밤 싸돌아다니기나 하고!”
“일 다녀왔다고 했다.”
야밤에 중노동은 물론, 아티펙트 때문에 격통에 시달린 터라 몸은 걸레요 마음은 녹초인 상태.
쓸 대 없는 싸움으로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현은 아니었는지 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일 하는데 왜 돈이 안 들어 와! 솔직히 말해, 또 도박했지? 그래. 여동생은 죽어 가는데, 하나 있는 오빠는 밖에 나돌아 다니면서 계집질이랑 도박이나 하고 다니네. 집 꼬라지 잘 돌아간다, 진짜!”
뭔가 반박하고 싶은 사실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지훈은 그냥 길게 한 숨만 내뱉고 말았다.
지현도 원래부터 저런 성격은 아니었다.
개척지에 갓 넘어왔을 때만 해도 굉장히 활달하고, 생활력 넘치는 멋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남자 잘못 만나면서부터 인생이 고꾸라진 것뿐이었다.
지현의 남자친구는 소위 ‘헌터’라 불리는 각성자로, 아티펙트 헌팅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싹싹하고 벌이도 좋아 지훈도 내심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병이었다.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헌팅을 나가기에 앞서 헌터용 예방접종을 받는다. 지구와 다른 세드(포탈 너머)에서 있을 병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현이 받은 예방접종은 단순 개척자용.
결국 지현은 남자친구에게 듣도 보도 못한 병에 옮았다.
지현이 쓰러졌고, 모아놓은 돈은 치료비로 다 나갔지만 병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거기다 남자친구란 녀석은 병문안 한 번 오질 않았고, 이때다 싶었는지 바로 새로운 여자를 만났다.
결국 화를 참다못한 지훈이 그 놈을 찾아가 배에 칼을 박아 넣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가슴 속 고이고이 품어줬던 꿈과 희망이 순식간에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훈은 옥살이를 했고, 출소 후엔 전과자 낙인 때문에 제대로 된 일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남은 일자리라곤 뒷골목에 널린 더러운 일들 뿐.
하지만 지현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질 않았다.
병과 고통으로 약해진 마음에 가벼운 죄책감이라도 얹으면 당장이라도 자살할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약은 먹었냐?”
“안 먹었어. 약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꼬박꼬박 먹다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해? 죽겠지. 그래, 넌 내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지? 솔직히 꼬박꼬박 돈 나가는 거 짜증나잖아. 너 도박하고, 계집질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못하니까!”
도박, 여자.
지훈이 뒷골목 일을 처음 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몇 번 했으나, 끊은 지 한참 된 것들이었다.
“에휴. 됐고, 이거나 펴라.”
지훈이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들었다.
대금 대신 받은 담배였다.
“말 돌리지… 뭐야, 그거 까트야?”
“그래. 너 편해질까 싶어서 오늘 일 갔다 오는 길에 조금 얻어왔다.”
지현은 마치 맹금류처럼 담배를 낚아챘다.
틱. 틱. 화르륵.
마치 급하게 약 복용하는 환자마냥 지현이 담배를 깊게 빨았다.
“아, 으아….”
“좀 덜 아파?”
“아… 어. 괜찮아.”
지현은 멍 한 얼굴로 답하곤 바로 관심을 담배로 돌렸다.
까트는 진정과 진통효과를 주는 마약성 약초였다.
여타 다른 향정신성 약품과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었으나,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불법인 물건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 얘기.
시골에서 양귀비가 돌듯, 원산지인 세드에선 테이블 아래로 자주 오가는 물품이었다.
“그리고 이건 생활비로 써.”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훈은 반쯤 맛이 간 지현을 쳐다봤다.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 뭔가 찌꺼기가 가득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술비는 물론이오, 약 값 대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나마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밖에 없었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라. 까트 줄기도 있으니까, 힘들면 좀 씹고.”
“아, 알겠어.”
지현은 까트라는 말에 반응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곤 바로 밖으로 향했다.
‘이쯤이면 아티펙트 상점도 문을 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