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능의 반지 -->
야심한 밤, 공동묘지.
남자 둘이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다.
“망 잘 봐.”
“걱정 마.”
야시경을 끼고 있는 오크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칼콘.
지금 삽질을 하고 있는 지훈의 친구였다.
“경비는 어쨌어?”
지훈이 삽을 땅에 박아 넣으며 물었다.
구덩이가 깊은 게 거의 다 된 것 같았다.
“재워뒀어.”
“얌전하게, 아니면 과격하게.”
“전자. 후자는 시체가 남잖아.”
“네가? 전통적인 방법을 따를 줄 알았는데 말이지.”
“편견이야. 종족이 호전적이라고 모든 개체가 그런 건 아니라고.”
“그거 말고. 방법 새끼야, 방법. 네 주먹 한 방이면 반병신 될 텐데 어떻게 재웠냐고.”
칼콘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블로우 건을 보여줬다.
소위 독침이라 불리는 물건으로, 입으로 불어서 침을 날리는 물건이었다. 아마 저 물건이라면 아무런 피해 없이 재울 수 있었으리라.
우직!
얘기하는 사이 관에 삽이 틀어박혔다.
불쾌한 냄새와 함께 반 쯤 썩은 시체가 나타났다.
대부분 저런 시체를 보면 얼굴을 찌푸리기 마련이지만, 지훈은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물건 좀 빌려갈게.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아티펙트 보여?”
지금 둘이 하는 행동은 아티펙트 헌팅이었다.
아티펙트 헌팅은 보통 괴수 출현 지역이나 오염 지대에서 했지만, 너무 위험한 까닭에 종종 이렇게 남의 유품을 터는 사람도 있었다.
지훈이 시체를 뒤적여 아티펙트로 보이는 곤봉을 집었다.
“식별용 아티펙트 줘봐.”
칼콘이 지훈에게 투박해 보이는 단검을 건넸다.
“이거 몇 급?”
“E급이야.”
지훈은 듣자마자 바로 곤봉에 단검을 갖다 박았다.
깡!
둔기와 날붙이가 부딪치면 거의 후자 쪽 이가 상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곤봉에만 작은 상처가 생겼고, 단검은 멀쩡했다.
“곤봉, F급.”
방금 둘이 한 행동은 아티펙트 식별이었다.
본디 식별은 마법을 통해 해야 했지만 문제는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그렇기에 몇몇 가난한 헌터나 일반인들은 아티펙트 등급에 따라 성능이 향상된다는 점을 노려,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부딪혀보기’였다.
시체가 가진 모든 물품에 단검을 갖다 박길 몇 번. 모든 아이템을 식별해 볼 수 있었다. 결과는 F급 2개였다.
“누가 F급 각성자 아니랄까봐, 물건도 싼 것 들고 다니네. 쯧.”
“그럼 등급 높은 녀석 파보면 되지 않을까?”
“달린 혓바닥이라고 개소리 찍찍 싸는 거 보니 너도 명줄 긴 놈은 못되겠다.”
칼콘 말대로 효율만 보면 등급 높은 각성자의 무덤을 파는 게 더 좋았다. 능력이 좋았던 만큼 물건도 좋은 걸 썼을 테니 분명 좋은 아티펙트가 묻혀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D급 이상은 가격이 비싸서 같이 묻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파내도 귀찮은 일이 생길게 분명했다.
바로 보복이었다.
“가디언이 무서워서 그래?”
“짭새 흉내 내는 놈들이 뭐가 무서워. 걔네는 별 거 아냐.”
가디언이란 대 각성범죄 전문 치안단체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만성 인력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태였다. 이런 사소한 범죄는 대부분 손대는 척만 하다 그만둬 버린다.
지인은 달랐다.
소중한 친구의 무덤이 뒤집혔는데, 가만있을 인간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무덤 주인 능력이 좋은 만큼 그 동료들도 뛰어날 터.
그런 녀석들이 눈 까뒤집고 달려든다?
곤란했다.
“자, 다음 무덤 파볼… 흠?”
바로 다음 무덤으로 이동해 삽을 꽂으려는 찰나 지훈이 멈칫거렸다.
‘뭐 저리 낡았어?’
언제 매장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낡은 무덤이었다.
“칼콘, 묘비에 적힌 글씨 보여?”
“너무 오래 돼서 안 보여.”
고민됐다.
‘주변에 다 E급 F급만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놈이 튀어나오겠어?’
푹!
다 파니 거의 다 썩어있는 나무 관이 나왔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안에 있는 시체도 백골이 되어 있었다.
반면 물건은 별 거 없었다.
시체가 입은 옷도 모험 복장이 아닌 예복이었고, 아티펙트로 보이는 물건도 들고 있는 칼 하나가 전부였다.
세공이 잔뜩 들어가 꽤나 값나가 보이는 물건이었다.
‘어디 한 번 볼까.’
지훈이 곧장 칼을 주워 단도에 부딪쳤다.
깡!
겉모습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부러져 버렸다.
“어, 뭐야. 일반인 아니야?”
“헛수고했군.”
지훈은 짜증을 담아 침을 내뱉곤, 거친 손으로 백골을 헤집었다. 고생을 했으니 뭐든 돈 되는 물건은 죄다 가져갈 심산이었다.
일단 반으로 부러진 검을 주웠다. 꿩 대신 닭이라고, 보석이라도 뽑아다 팔면 될 터였다.
그 다음으로 백골이 끼고 있던 반지를 집었다.
표면에 이상한 언어가 음각되어 있었다.
'뭐라고 적혀있는 거야?'
- Võimsus su käed (권능을 당신의 손안에)
전혀 모르는 언어였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마치 시야가 점멸되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주변 사물이 일그러지며 이내 반지밖에 보이질 않게 됐다.
'껴… 볼까?'
꿈속을 유영하듯 몽롱한 속에 반지를 끼웠다.
우-응!
소리굽쇠 같은 공명음과 함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 Kasutaja teadlikkust. Sul võib nõelamine vähe.
(사용자 인식. 약간 따끔할 수 있습니다.)
지훈은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나 오크어 몰라. 한글로 말해.”
“응?”
돌아보자, 칼콘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어?”
“전혀.”
지훈은 칼콘이 실없는 장난을 쳤을 거라 생각했다.
딱 다음 목소리가 들리기 전 까지만 말이다.
- Kohtuotsus. Tundmatu kasutaja.
Ring ah chyopu meuja Vaim kontrollida ring avaldub Jumala seogwon Kwok. Kui soovite kanda loata isik või annetuse näitavad, et see võib olla suur kahjuks.
(판정. 알 수 없는 사용자.)
(본 반지는 아쵸푸므자 님께서 서권곽 님께 선물한 각성 제어 반지입니다. 허락 혹은 증여 없이 착용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 Tagasivooluklapp verd teisi kõrvaltoimeid identiteedi kaotust jne Pange tähele, et seal võib olla kahjulikud südame seiskumise. Kui sa ei taha tõmmata ring.
(사용자 각성 인식. 미각성. 각성을 위해 신체를 재구성 합니다. 부작용으로 혈액 역류, 심정지, 도덕성 결여, 정체성 상실, 영혼 발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반지를 빼 주십시오.)
- kolm, kaks, üks.
(셋, 둘, 하나.)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음에도, 지훈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이 상황이 짜증만 날 뿐이었다.
“되도 않는 장난 그만 하…… 꺽!”
우-으으으응!
공명음과 함께 끔찍한 격통이 휘몰아쳤다.
혈관에 쇳물을 부은 것처럼,
심장을 망치로 내리찍는 것처럼,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휘젓는 것처럼,
누군가 척추에 스턴건을 지진 것처럼,
마치 온 몸이 부서졌다 재조립 되는 것만 같았다.
“사, 살… 꺽!”
고통스러우면 시간이 길게 늘어진다고 했던가?
일 초가 영원을 향해 달리는 것 마냥 시간이 늘어지고, 고통 외의 모든 감각은 발화되어 사라졌다.
오로지 통각만 남은 고통의 시간!
그렇게 지옥 같은 5분이 지나자 고통이 서서히 옅어지며 이내 묘한 이질감만 남았다.
“지훈! 괜찮아?”
대답할 정신도 없이 온 몸을 훑었다.
다행히 어디 망가진 곳은 없어 보였다.
세상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지훈도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이 반지 뭐하는 물건이야?'
당장 빼내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피부에 눌어붙은 양 떨어지질 않았다.
“지훈?”
불안한 칼콘의 마음속에 문득 유령 몬스터에 대해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술집에서 대충 귀동냥 한 지식이라 정확하진 않았지만, 사람에게 빙의한다고 했었다.
굉장히 까다로운 공격 방법과 다르게 그 유령을 대처하는 방법은 간단했는데, 빙의 된 사람을 두들기면 됐다.
칼콘이 주먹을 꽉 쥐었다.
높은 신진대사와 덩치를 위해 수명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한 종족. 오크의 주먹이다.
샌드백 따위도 쉽게 박살내니 대충 힘 조절해서 배에 한 방 꽂아주면 될 것 같았다.
“날 용서해, 지훈. 다 널 위한거야!”
칼콘이 왼발을 내딛으며 그 반동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훅 하고 날아드는 게, 한 번 맞았다간 그대로 조부님 존안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미친!?’
지훈은 주먹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몸을 비틀었다. 배 앞으로 무슨 대포 같은 팔이 쑥 날아갔다.
“미친놈아, 지금 뭐하는 거야!”
“내 이름이 뭐야?”
“칼콘, 새끼야. 칼콘!”
“다행이야. 난 네가 유령에 쓰인 줄 알았어.”
지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칼콘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곤 반지로 손을 옮겼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빠지질 않았다.
‘설마 이거 저주받은 물건인가?’
듣기론 몇 몇 저주받은 아티펙트는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었다.
머리가 굳어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하자.”
“이제 시작했는데 왜?”
“이 반지 저주 같은 것 같다. 안 빠져.”
“내가 한 번 빼볼게.”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칼콘이 손을 뻗었다.
엄청난 힘에 저항하길 잠시.
이대로 뒀다간 손가락이 뽑힐 것 같아 그만뒀다.
“일단 이거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아.”
“겨우 3달 만에 들어왔는데, 벌써 나가?”
“그래서. 내가 뒤지든 말든 상관없다?”
칼콘의 얼굴에서 여과 없는 불만이 흘렀으나, 토를 달진 않았다.
어차피 결정권은 지훈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둘은 공동묘지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몸은 좀 괜찮아?”
“이 정도로 죽을 거였으면, 벌써 골백번 넘게 죽었다.”
“괜찮아 보이네. 근데 이제 어쩔 거야? 해산, 아니면 식별?”
“식별 먼저.”
둘은 소위 말하는 '뒷골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