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과몰입공금]
테오도르는 남녀가 엉켜 있는 자신의 그림을 노려보았다. 생각할수록 라티시아가 괘씸했다. 쾌락에 취해서 박아달라고 애원하다니. 그것도 자신 앞에서. 이미 전날 수없이 관계를 가졌는지 질구에서 뭉텅뭉텅 흘러나오던 정액 덩어리가 떠올라 더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개 같은 년, 아니 개만도 못한 년! 어디 내 앞에서도 그 따위로 엉덩일 흔들어보시지! 이 음란한 년아!”
그의 벌건 낯처럼 달아오른 성기 끝에서 희부연 액체가 새어나왔다. 테오도르는 그것을 쥐고 무작정 흔들었다. 공작한테 꿰뚫린 라티시아의 보지 위에 다시 한번 제 정액을 뿌릴 생각을 하니 미칠 정도로 흥분됐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눈이 돌아가도록 좋은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좋을까.
“라티, 누구 게 더 맛있어? 응? 하아….”
공작과 앞뒤로 라티시아를 나눠 박는 장면을 상상하자 등줄기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칼리드나스와 나란히!
“으윽!”
테오도르는 그만 사정해버렸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희박하긴, 아예 제로다, 제로.’
테오도르는 피식피식 웃으며 한 걸음 더 그림 앞으로 다가섰다. 개처럼 엎드려 공작에게 박히고 있는 그림 속 라티시아의 벌어진 입에 정액이 떨어지고 있는 끄트머리를 비볐다. 사정의 여운이 한층 배가 되었다.
어차피 젖은 부분은 물감으로 덮으면 감쪽같을 테니 테오도르는 마음껏 성기를 문질러댔다. 생각해보니 이 또한 멋진 일이었다. 공작은 오롯이 자신만의 그림인 줄 알고 감상하겠지만 실상 라티시아가 물고 있는 건 이 테오도르 뷔테르의 정수란 말이다….
정말이지 꿈보다 더 꿈 같았다. 그예 다시, 테오도르의 성기가 통통하게 부풀었다. 그때, 진짜로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 언제…!”
별생각 없이 뒤를 돌아본 테오도르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공작이 말없이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 본데, 내가 방해가 됐나.”
공작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어서 테오도르는 더욱 오싹해졌다. 조금 전 짜릿한 전율이 흘렀던 등줄기에 차디찬 절망이 해일처럼 차올랐다.
안드레아는 아무렇지 않게 그림으로 다가갔다. 테오도르가 정액을 문질렀던 그 그림이었다. 유하르에게 일전에 들은 바 있어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막상 그것도 좆이라고 잡고 흔들어대는 꼴을 보니 기분이 더럽긴 매한가지였다.
“그림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해 찾아왔다.”
고작 하루다. 그것도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전날 밤 스케치를 완성한 그림에 무슨 진전이 있을까.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테오도르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빠른 시일 내에 채색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채색?”
피식, 웃으며 되물은 공작이 검을 빼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이 테오도르가 싸놓은 정액 위에 정확히 꽂혔다.
“이것도 채색의 일부인가?”
“그, 그건….”
테오도르는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내려진 하의를 수습하지 못한 채였다.
조르르륵.
가느다란 오줌 줄기가 테오도르의 사타구니와 바지를 적셨다. 바닥이 흥건해지도록 테오도르는 하얗게 질린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잘도 이런 짓을 해서 담력이 큰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림 속 여체의 굴곡을 눈으로 훑던 안드레아는 꽂혀 있는 검을 그대로 길게 그었다. 팽팽한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형편없는 쓰레기.”
테오도르는 회복 불가능으로 망가진 그림을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너덜너덜해진 캔버스는 꼭 그의 앞날을 보여주는 전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완전히 둘로 갈라놓은 공작의 시퍼런 두 눈이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네 잘못은 알고 있겠지.”
얼이 빠진 테오도르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심정으론 잘못 따위 없다고 우기고 싶었다. 하지만 서슬 퍼런 공작의 위세에 눌려 입도 떼지 못했다.
잘못을 인정하든 안 하든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막연히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공포가 테오도르를 엄습했다. 점차 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예감이…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선택해라. 테오도르 뷔테르.”
번쩍이는 검날이 테오도르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빨간 핏물이 검을 따라 일자로 길게 스며 나왔다. 이어 아래쪽으로 이동한 검이 귀두를 가볍게 베었다. 예리한 통증에 테오도르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윽!”
선택하라니, 무엇을? 무엇이라 한들 어떻게 하나를 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하나를 고르는 순간 그것이 잘려나갈 것은 자명했다. 테오도르는 공작 앞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자비를…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심드렁한 반응뿐이었다.
“네가 택하지 않으면 내가 임의로 정하겠다.”
안드레아가 팔을 치켜들었다. 검도 위로 따라 올라왔다. 테오도르의 목 언저리에.
이대로라면 죽는다.
완전히 겁에 질려서, 테오도르는 도리질 치며 검을 잡고 매달렸다. 날에 베인 손바닥에서 피가 넘쳐흐르는 것도 모르고, 그저 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안드레아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테오도르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테오도르에 의해 잡아당겨진 검 끝이 양다리의 중심부로 향했다.
“잘 선택했다. 최소한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은 있으니. 사실 네가 손을 택했으면 바로 목을 날리려 했거든.”
안드레아의 눈매가 보기 좋게 휘었다. 소년처럼 싱그러운 미소여서, 순간 테오도르는 공작이 화를 푼 게 아닌가 착각했다.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뭐 하고 있지? 설마 내가 네 물건에 직접 손을 대라는 건 아니겠지.”
방금 전의 미소는 환상이었나 싶게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안드레아가 검으로 테오도르의 시든 성기를 툭툭 건드렸다. 벌벌 떨면서, 테오도르는 순순히 성기를 쥐어 올렸다. 스스로도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이성을 앞질렀다.
음경 밑에 달랑 매달린 고환은 긴장으로 올라붙어 있었다. 잘 벼려진 검이 매끄럽게 음경과 음낭 사이를 갈랐다. 주먹 크기의 살덩이가 몸에서 분리되어 툭, 떨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마구잡이로 솟구치는 피처럼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악! 아아아악!”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 마구잡이로 구르던 테오도르는, 눈앞의 벌건 핏덩이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자마자 혼절해버렸다.
의식을 잃었던 테오도르는 담배 냄새에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자세 그대로였다. 다만 피가 멎어 있고 희미하게 살이 익은 냄새가 공기 중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지혈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무언가를 확인하듯 허벅지를 비볐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느낌만 났다. 불에 지져진 통증보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상실감이 테오도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뒤늦게 악에 받친 테오도르가 고함쳤다.
“나한테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알아?”
“네가 뭔데.”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안드레아가 되물었다. 반박할 거리를 찾던 테오도르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분노가 가신 자리에 다시금 격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몸서리치던 테오도르의 눈에 찢긴 그림이 들어왔다.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그림 속 라티시아는 눈을 감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증오를 가득 담아 그림 속 가증스러운 노예를 노려보았다. 생각해보면 저 계집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저년만 아니었으면, 저 망할 년만…!’
저주를 퍼붓던 테오도르는 문득 공작이 왜 아침부터 저를 찾아왔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얼마나 진행됐는지 보기 위해서라고? 그거야말로 웃기지도 않는 핑계였다. 아직 빅터의 소식도, 그동안 은밀히 감시당한 것도 모르는 테오도르지만 짐작만큼은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했다.
공작은 신경이 쓰였던 거다. 그림 속 인물, 라티시아에게.
비로소 약점을 찾은 것 같아, 테오도르는 상체를 틀어 공작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걸 알면 라티시아가 뭐라고 할까?”
그림에 대고 자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음낭을 잘라낼 정도로 그 계집에게 푹 빠져 있으니만큼 분명 자신을 해한 것을 후회하겠지. 테오도르 뷔테르는 라티시아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왜곡된 우월감에 사로잡힌 테오도르가 이번만큼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평생 당신을 증오할걸!”
그러나 공작의 반응은 테오도르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안드레아는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내 것인데.”
“…….”
“벌리고, 박아 달라 조르고, 울고 신음하고. 다 내 밑에선데.”
싫증나면 언제든 그만둘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같잖은 테오도르의 협박이 생각보다 더욱 같잖아서, 안드레아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금껏 잘도 라티시아를 이용해놓고 불리해지니 앞에 내세우는 꼴이 가소롭기만 하다.
이런 녀석을 살려둬서 뭐에 쓸까.
안드레아는 잠시 고심했다. 그냥 목을 날리는 게 좋았을걸. 그럼 그가 아끼는 검이 수고스럽게 흉측한 음낭 따위를 베는 일은 없었을 텐데.
“누가, 누가 모를 줄 알아? 그 잘난 노예 계집 몸뚱어리 한번 가져보겠다고 내 이름 파는 거.”
안드레아의 속도 모르고 테오도르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찍찍대며 발악했다. 평소 라티시아에게 지껄였던 내용 그대로를. 어떻게든 눈앞의 남자에게 자그마한 상처라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지. 라티의 마음은 영원히 내 거니까! 당신은 평생 얻을 수 없을걸!”
오판이었나. 멋대로 내지른 직후 테오도르는 흠칫 떨었다. 쓸데없는 소릴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공작이 검을 다시금 빼어들자 이미 겪은 공포가 다시금 물밀듯 들이닥쳤다. 맥없이 소변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역한 공기에 지린내가 섞이자 안드레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네 말이 맞다, 테오도르 뷔테르.”
“자, 잘못….”
“그러니 목숨만은 살려두지. 계속 네 이름을 팔아야 하니까.”
무거운 검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비명이 테오도르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테오도르는 피가 철철 쏟아지는 두 눈을 감싸고 웅크려 벌벌벌 떨었다. 절망에 짓눌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차차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불면이 옮는 병도 아닐 텐데, 벌써 며칠째 라티시아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이상스레 가슴이 뛰었다. 테오도르가 자취를 감춘 그날부터 시작된 증세였다.
아무리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테오도르 비슷한 것도 마주치지 못했다. 끝없이 이어진 산책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조금은 신기했다. 어떻게 이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도 쉽게 마주쳤는지.
공작저 내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넓고 복잡한 데다가 대부분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라티시아는 마음껏 테오도르를 찾으러 돌아다닐 수 없었다. 게다가 공작저의 하인들은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했기에 라티시아는 누구에게 테오도르의 소식을 물을 수도 없었다. 단 한 사람, 안드레아 칼리드나스를 제외하고.
“주인님, 저, 테오도르가 보이지 않아요.”
“종종 친구들과 어울려 한잔 걸치는 것 같던데.”
큰맘 먹고 긴장해 물었건만, 돌아온 대답은 힘이 빠질 정도로 가벼웠다.
“주인님….”
턱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라티시아는 순순히 응했다. 공작의 기분을 맞추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입 안을 헤집는 혀를 부드럽게 빨아 당기고, 얽어대자 문득 고개를 뗀 공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따라 적극적인 이유가 있나?”
“그냥….”
다른 꿍꿍이가 있는 속내를 간파당한 것 같아 라티시아는 얼굴을 붉혔다. 마음을 숨기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대답 대신 라티시아는 한층 대담하게 공작의 목을 그러안고 먼저 입술을 맞췄다. 더 묻는 법 없이, 안드레아는 라티시아의 입술을 물고 달콤한 혀를 탐했다.
“으응….”
작은 신음에 별다른 전희 없이 한쪽 무릎 뒤를 잡아 어깨에 걸친 안드레아가 허리를 그대로 푸욱 밀어 넣었다.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 입구와 달리 아직 안은 뻑뻑했다.
“아읏!”
짧게 신음하던 라티시아는 그럼에도 걸쳐지지 않은 다리를 안드레아의 허리에 감아 제 쪽으로 눌러 그가 깊이 들어오도록 도왔다. 테오도르 뷔테르가 사라지고 나선 줄곧 이런 식이었다.
안드레아는 사양 않고 단단한 음경에 여린 살이 마구잡이로 쓸리는 감각을 즐겼다. 가장 깊은 곳이 녹녹하게 풀어지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 맞춰진 몸이었다. 오직 그만을 받아들이고 그만을 위한 몸.
멈추지 않고 찍어대자 라티시아의 허리가 둥글게 휘었다. 요령 있게 움직임을 맞추려는 깜찍한 시도는 엉덩이를 잡아 벌리며 슬쩍 들어 올린 안드레아의 양손에 의해 무산됐다. 허리가 반쯤 들린 채, 라티시아는 안드레아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흔들렸다.
“아, 아아, 주인님, 너무…!”
쾌감과 둔통, 그 어디쯤의 강렬한 감각을 버티지 못하고 라티시아가 몸부림쳤다. 뾰족하게 모아진 눈썹, 붉게 물든 눈가, 흐려진 초점, 가쁜 숨을 토해내는 벌어진 입술, 상기된 뺨. 일그러진 얼굴도 꽤 볼만하다.
“아읏, 흣!”
일부러 안을 쿵쿵 찧자 끝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아오른 낯이 엉망이 되도록 젖게 만든 안드레아가 한쪽 뺨의 눈물을 닦아내며 요구했다.
“웃어봐.”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계집이었다. 거짓말도 못하고, 표정을 억지로 꾸미지도 못한다. 이미 몇 번 웃어보라 했다가 원망하는 시선만 받지 않았나. 그래도 이번만큼은 라티시아가 따를 것을 알았다. 테오도르의 안부가 제게 달린 이번만큼은.
슬쩍 몸을 물리자 애액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그것을 대강 훑어 그녀의 뺨에 문지르며 안드레아가 재차 요구했다.
“웃어야지, 라티시아. 이렇게 좋아하면서. 음?”
얼떨떨해하던 라티시아의 입술이 어색한 모양새로 씰룩였다. 이 상황에서 웃으라니, 이해가 되지 않아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멈추었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라티시아와 달리, 공작의 푸른 두 눈은 흔들림이 없이 그녀의 낯에 고정되어 있었다. 웃지 않는 그녀를 벌주듯이 안을 거침없이 찍어 눌렀다.
“읏, 아, 흐읏….”
라티시아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입꼬리를 당겨보려 노력했다. 의외로 입매가 쉽게 들렸다.
“흐으, 주인님, 아학…!”
이렇게 웃으면 되냐는 질문은 거센 추삽질에 묻혔다. 그래도 라티시아는 어떻게든 미소를 유지하려 애썼다. 신음을 토할 때마다 벌어진 입술 때문에 언뜻언뜻 활짝 만개한 웃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만족한 안드레아가 씩, 마주 웃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공작의 비위를 맞추려 억지로 표정을 지어낸 것뿐인데, 공작이 웃으며 시선을 맞춰오자 꼭 스스로 기뻐서 웃는 것처럼 라티시아의 가슴이 들떴다. 두근두근, 조급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의 떨림이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전해졌다. 찡한 울림을 느끼며 라티시아가 파드득 골반을 틀었다.
“아, 응! 아앙! 주인님!”
허벅지 안쪽이 잘게 경련했다. 안드레아의 것을 뿌리 끝까지 집어삼킨 내부가 쥐어짜듯 수축했다. 라티시아의 절정이 그대로 전해져 안드레아를 드높은 파고로 이끌었다. 후으, 긴 숨을 내쉰 안드레아가 라티시아의 안에 열기를 풀어냈다. 라티시아의 좁은 내부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할 때마다 울컥, 울컥, 쏟아내는 느낌이 좋았다.
“아예 끊어먹지 그래, 응?”
유난히 길었던 라티시아의 흥분이 잦아들자 안드레아가 아쉬운 듯 허리를 잘게 털며 그녀를 놀렸다. 쾌락의 여운에 잠겨 있던 라티시아가 괴롭게 흐느꼈다. 머리의 어딘가가 고장 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작이 빠져나가는 게 이토록 허전할 리 없다.
좋았다. 분명 좋았다. 단순한 쾌감이 아니라, 정말, 그가 안아주는 게 좋았다. 함께 호흡하고, 동시에 절정에 오른 순간이 벅차게 좋았다.
‘왜?’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처음 의지와는 달리 어느 순간 테오도르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던 라티시아는 자괴감에 휩싸여 입술을 앙다물었다. 관계 후에 라티시아가 고집스럽게 구는 일은 항상 있던 일이라, 다행히도 공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잠깐일 거야.’
라티시아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관계 중에 웃어보라는, 괴상한 일을 시키니까. 숨이 넘어갈 것처럼 정신없는 와중에 그런 짓을 해야 하니까, 어디고 어긋나는 게 당연했다.
이제 보니 고장이 난 건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었다. 라티시아는 아직도 두근대는 가슴을 두 주먹으로 꾹 누르곤, 혹여나 이런 속내를 들킬까 부러 단단히 웅크렸다.
그러고선 억지로 테오도르를 떠올렸다. 테오도르, 테오도르.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며 테오도르에 대한 걱정을 이어나가려 애썼다. 라티시아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차차 떨림이 진정되었다. 안정을 되찾자 보다 상황이 명료해졌다. 라티시아는 다 무시하고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유일한 의미였던 단 하나만을.
“주인님, 부탁이 있어요.”
“말해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공작이 여상하게 대답했다.
“테오도르의 작업실에 가보고 싶어요.”
“좋을 대로.”
이번에도 맥 빠질 정도로 흔쾌한 답이 들려왔다.
“지금 바로… 가도 되나요?”
“물론.”
공작은 친히 테오도르의 작업실로 라티시아를 안내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작업실에 도착한 라티시아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없어.’
분명 벽난로도 따스하고, 바로 방금 전까지 사용했던 듯 붓이며 물감이 어질러져 있는데,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증발해버린 것처럼.
“어? 이건….”
두리번거리던 라티시아는 찢어진 그림을 발견했다. 엎드린 자신과 몸을 겹친 공작을 그린 스케치는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리다 괴로워서 도망이라도 간 것일까. 아님 공작의 말대로 기분 전환을 위해 외출한 걸까. 여러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어느 것 하나 그럴싸하지 않았다.
결국 라티시아는 이곳을 찾기 전보다 더 찝찝해진 기분으로 문을 나서야만 했다.
‘나중에….’
다시 한번 혼자서 이곳을 찾아와야지, 다짐하며 라티시아는 열심히 길을 눈에 익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