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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88화 (외전 완결) (488/488)

외전 79. 유지유

“왜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가 왔을까?”

여자 코스프레하던 변태 새끼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상대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예지몽은 내 능력이었냐? 아니면 네 수작이었냐?”

“편한 대로 생각하면 될 듯.”

이 새끼는 뭘까. 일단 말투가 까칠했다. 꿈이랑은 달랐다. 텔레파시랑도.

얼굴은 표정 변화가 없었고 무미건조해 보였다.

말투가 좀 엿 같은 걸 제하면.

무슨 종이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호리호리한 정강이, 정말 로우킥 갈기고 싶게 생긴 그런 종이 인형.

“여긴 내가 만든 공간이다.”

놈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 좀 해 봤구나. 잘했네.”

순백의 땅, 바닥은 탄탄한 고무 매트 같은 거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 따위도 없다. 그냥 희끄무레한 뭔가가 있을 뿐.

그러니까 아마도 공간을 분리해서 유리시킨 것일 거다.

제힘을 이용해 무슨 짓을 했겠지.

소원만 빌면 다 된다는데.

“전 세계 여자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래서 대뜸 말해 보니.

“뭐?”

“그냥 해 본 말이다.”

소원을 빌면 이뤄지나 실험해 봤다.

내가 미랑을 두고 다른 여자를 바란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남자라면 한 번쯤 이런 꿈도 꿀 만하잖아.

모든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그런 세상이라니.

크, 판타지스럽네.

“어딘가 얼이 빠져 보이는데.”

상대가 말하고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자 다시 상대가 고개를 좌우로 기웃기웃 움직이더니 또 물었다.

“뭘 믿고 혼자 왔는데?”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

“날 믿고?”

“미쳤구나.”

바라고 이뤄지는 힘, 그게 통 궁금하긴 했다.

“그거 무제한 아니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추측되니.

그러니 아버지도 지구전 하겠다고 덤비려고 한 거고.

무표정한 놈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설명까지 이어 나갔다.

“간절함이 필수, 진심 어린 간절함 같은 건 갖기가 어렵거든. 그래서 훈련했어. 간절하게 바라는 거, 반복하다 보니 되긴 했다. 가령 이런 거다.”

말을 잠시 멈춘 놈이 입을 열었는데 이제까지와는 목소리도, 톤도, 어조까지도 전부 다 달랐다.

“네 손가락이 부러졌으면 좋겠다.”

청아한 음성이 울리고.

우득.

실제 내 오른쪽 검지가 부러졌다.

아팠다.

뼈가 부러졌는데 안 아프면 이상한 거다.

“간절함이라.”

내가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놈이 간절하게 바라는 건 뭘까.

중얼거리고 내가 입을 다물자, 종이 인형 놈이 재차 입을 연다.

“인류 멸망 같은 걸 빌려면 시간이 필요해.”

말하며 놈이 빙그레 웃었다.

“아프지?”

그리고 묻는다.

“말이라고 하냐?”

생 손가락이 갑자기 부러졌는데, 염동 결계도, 뇌안도 필요가 없는 힘이다.

아버지라면 이렇게 안 당했을까?

부러지라고 해도 그 굳센 손가락이 부러질까?

모르지, 아버지와 교주는 붙어 봐야 승패를 가릴 수 있는 사이다.

하지만 난 다르다.

세상에는 천적이란 게 있다.

“세상에는 천적이란 게 있거든.”

생각과 동시에 말하며 난 능력을 해방했다.

내 능력의 이름은.

‘무향의 공간.’

염동, 뇌안, 신속, 비행, 확성.

다섯 개의 능력을 개안하는 사이 얻어 낸 여섯 번째 능력이다.

때론 어떤 초능은 상대의 능력에 완전한 반대편에 서 있을 수 있다.

“뭐?”

“미안하게 됐는데, 내 결혼식을 위해 넌 좀 맞아야겠다.”

“바보구나. 너.”

놈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 그래, 그럴 거야.

세상에는 천적이라는 게 있다니까

.성큼성큼 다가가자, 놈이 손을 뻗었다.

“다리, 부러져.”

목소리에 간절함이 담기긴 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능 에너지를 기반으로 발동하는 힘.

그런데 지금 날 중심으로 반경 20m 이내는 능력 발동 금지다.

이게 내 여섯 번째 능력이자, 숨겨 둔 한 수.

‘초능 억제’다.

물론 나도 능력을 못 쓰긴 하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랑 어머니, 삼촌,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이거 왜 안 돼?”

“체력부터 길러라.”

그 말대로 했다. 어릴 때부터 난 훈련을 받았고 그게 그리 괴롭지도 않았다.

다들 하니까.

어떻게 보면 아동 학대 같지만.

정작 당한 난 즐거웠다. 싸움도 재밌었고 맨몸 격투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는 말도 듣고 그랬으니까.

턱.

다가선 내가 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싸움은 좀 하냐.”

말과 함께 보디블로 한 방.

뻑!

순수하게 육체의 대화를 나눌 시간이 도래했다.

꺽!

한 방에 허리가 꺾인 놈이 입에서 신물을 게워 냈다.

이놈은 대단한 능력자일 터였다.

사람 머리에 뿔도 솟게 하고.

뭐, 인류 멸망시키고 크리쳐와 인류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인류를 만들 그럴 계획도 있었을 것이다.

“괜찮아?”

말하며 손가락을 잡고 역으로 비틀어 주니.

“끼에에엑!”

새된 비명을 내지른다. 많이 아픈가 보다.

쓰러진 놈의 머리통을 가볍게 사커킥으로 한 방.

발등으로 정확히 콧잔등을 후린 덕에.

쩍!

코뼈가 부러졌다.

“꺽.”

맞은 애가 바닥을 뒹굴었다.

아니, 얘 왜 이렇게 싸움을 못 하냐.

“에효, 이거 약한 애 괴롭히는 것 같아서 가슴 아프긴 한데.”

어쩌겠나, 능력 상성이 이런 걸.

짝.

뺨 한 번 후려치고 난 물었다.

“더 할래?”

물론 상대 의사를 존중해 줄 순 없었다.

“미안, 더 하자.”

사지를 부러뜨리고 턱을 바스러뜨리고.

갖가지 작업을 한 뒤에 난 말했다.

“공간 풀어, 새끼야.”

일방적 폭력 앞에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손만 들어도 말을 잘 듣게 된다.

슉.

“이거 까만 것도 네 거냐?”

손들며 묻자, 덜덜 떨리는 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파르르 떨리는 눈에 어린 건 공포,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공포심이 깃든 눈이었다.

유리된 흰 공간이 사라지고 주변에 어둠도 슬슬 걷혔다.

어둠이 걷히자, 어디선가 계속 튀어나오던 이종 괴물의 습격도 멈췄다.

까만 어둠 자체가 괴물 생성용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 손에 적의 수뇌를 붙든 내가 외쳤다.

“미랑아! 나 왔다!”

짧은 침묵.

남은 크리쳐를 소탕하던 이들의 시선이 모이고.

어머니가 읊조렸다.

“저 새끼, 키워 준 은혜는 어디다 팔아먹고.”

뭐, 어머니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아들 키워 놓으면 소용없는 거죠.

어쨌든 특수종 세상의 싸움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에필로그

“그만 살고 싶었거든요. 빌어서 이뤄지는 게 제 뜻인지, 아니면 빌어먹을 과학자 아버지가 심어 둔 세뇌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감옥에 갇힌 교주가 카메라에 대고 말한다. 자아를 잊은 자는 자살을 바랐으나.

“탈옥? 탈옥은 안 할 겁니다. 더 맞고 싶지도 않고.”

얼마나 얻어터지면 저렇게 되는 건지.

“그냥 여기서 살게 해 주세요. 유온신? 아니, 그 이름은 꺼내지 마시죠.”

말과 함께 덜덜 몸을 떤다. 놔두면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세상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연구 가치가 높았으니까.

* * *

싸움이 시작됐고 끝났으나.

일반인에게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조용히 지나갔단 소리다.

난 특수종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한 3년간은 세상이 조용했다. 이계는 그대로였고 난 졸업 후 노페이스 팀을 운영하다가 팀과 남기주 아저씨가 통째로 NS에 입사했다.

왜냐고 누군가 묻긴 했는데.

“좋은 회사 놔두고 왜 밖에서 고생합니까?”

라고 답했다.

아니, 내가 재벌 2세에 이게 곧 내 회사가 될 텐데 굳이 고생을 왜?

아, 장인어른은 내 결혼을 허락했다.

미랑이가 마음이 넘어왔으니 당연한 거다.

결혼식 사회는 유신이 봤고.

구스타프와 장옥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와서 밥을 잔뜩 처먹고 갔다.

그날은 진탕 마시고 놀긴 했다.

미랑의 저주는 초능에서 파생된 주문이라며 뭐 복잡하네 뭐네 했는데.

외할머니가 연구해서 해제해 줬다.

외할머니가 최고였다.

결혼하기 전 3년간 연애를 했는데.

위기가 몇 번 있긴 했다.

“그래서? 그럼, 로니랑 사귀지, 그랬어?”

내가 어디서 잘못한 걸까.

로니 칭찬을 너무했나? 아니 한 번밖에 안 한 것 같은데.

미랑이 갑자기 삐졌다.

마음 넉넉하던 나의 미랑은 사귀고 나서 두 달 만에 변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삐졌다.

이유? 나도 모르지.

그래서 두어 번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 관두자.”

흔한 연인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잘못했다고 하고.

다툰 후 미랑이 먼저 찾아오면.

“이 새끼가, 배가 불러 가지고!”

어머니가 날 두드려 팼다.

남의 집 귀한 딸 함부로 대하지 말란 거였다.

아니, 어머니 저도 남의 집 귀한 아들인데요.

“넌 내 자식이니까, 좀 맞아도 되고.”

조용하던 특수종 세상이지만, 가끔 사고가 있긴 했다.

마법 연맹의 누가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이계를 지배하겠다며 마법 왕국을 건립했고.

내가 그 왕국의 국왕을 만나서 싸워야 했다.

“아저씨, 그 외모 때문에 세상 비하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마법 왕국이라고 이상한 거 만들고 주문으로 막 여자 잡아 오고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왕이란 놈은 능력은 좋은데, 사상이 불순한 새끼였다.

매혹 주문으로 자꾸 미녀 집단을 만들려고 했다. 전부 제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던가.

하여간 미친 새끼.

“시발, 넌 몰라. 넌 내 마음 몰라.”

응,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얼굴을 두드려 팼는데.

그와 싸우며 어머니가 내 몸에 새긴 마법 일부를 보여 주기도 했다.

별 건 아니고.

무향의 공간이랑 비슷한 건데.

내 몸을 반경으로 일정 범위 안쪽으로 주문 발동을 제한하는 그런 주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기 중에 퍼진 마나를 극도로 억제하는 그런 스펠이란다.

하여간 그렇게 두들겨 패서 마법 왕국 사건도 끝내고.

3년째에 미랑과 결혼하게 된 거다.

“축하해, 두 번째 자리는 나한테 넘겨줄 거지?”

로니가 식장에 와서 저딴 소리를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삭막해지긴 했는데.

뭐, 농담이었다.

로니도 몇 년 있다가 올드포스의 유명한 인사와 결혼했으니까.

장옥은 어쩌다 보니 인기가 치솟았는데.

특유의 순수한 웃음이 치명적인 매력으로 여성들에게 호감을 샀다.

그게 계기가 되어 그는 연예인이 됐으나, 결혼은 소꿉친구랑 했다.

“저한테 여자는 얘뿐이거든요.”

한결같은 새끼다.

구스타프는 본국으로 돌아가 학원 사업을 벌였다.

특수종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조기 교육 학원이라던가.

애가 돈독이 올랐다.

이후로도 난 계속 잘 먹고 잘 지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건강하셨고.

간간이 터지는 사건은 아버지나 내가 나설 것도 없이 해결되기도 했다.

언라이벌 식스는 어느새 언라이벌 일레븐이 됐다.

언라이벌이란 이름을 빼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미랑은 전보다 웃음이 늘었다.

장모님, 한때는 고모였던 마리 장모님은 걱정이 많았다.

“나도 실험체여서 아이 갖기 쉽지 않았는데.”

미랑이 태어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던가.

하긴, 그러니 장인어른이 아직도 난리지.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는 오히려 한 번도 안 싸웠고.

사이는 무척 좋았다.

금슬이 너무 좋아서 아이를 연년생으로 셋이나 낳았다.

“출산율이 문제니까. 우리 셋만 더 낳자.”

이렇게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기도 했다.

다음이 쌍둥이였고 결국 막둥이까지 낳았으니까.

“이제, 그만.”

미랑이 더는 출산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할 건 안 한 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이가 무척 좋았으니.

시간은 계속 흘렀다.

아버지가 이제 늙다리 취급을 받게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중봉 삼촌은 티벳 어딘가에서 홀로 여행하다 실종됐다.

참, 그 사람 갈 때도 유령처럼 간다.

그러다 다시 살아 돌아올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시간이 흘렀고.

내 아이, 그러니까 첫째가 열여덟이 되던 해.

“끄아아아!”

아이가 각성했다. 변신족으로.

“아파요. 아빠.”

말과 달리 애는 덤덤했다.

그러고는 아이가 스물이 되었을 때 불멸자로도 각성했고.

“혼혈? 할아버지 피를 물려…….”

그러던 아이가 스물하나에 초능을 썼고, 마법 재능도 탁월했다.

이거 왜 이래?

우습게도 첫째 빼고는 다들 그런 쪽 재능은 없는데, 첫째의 재능만 미쳐 날뛰었다.

규격 외 혈통이란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미랑아, 우리 애 참.”

“알아서 잘 크겠네.”

걱정은 접어 뒀다.

서른도 안 돼서 할아버지인 세최특이랑 맞먹는 애를 어쩌겠나.

유지유.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유지유인 내 첫째 딸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특수종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 제 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죠?”

어느 날 아버지를 만나 물으니.

“너나 어디 나가서 맞아 죽지 않을 걱정 해라.”

아버지가 그리 답하셨다.

그 말이 맞았다.

미모면 미모, 능력이면 능력.

내 딸은 역대급 세계 최강의 혈통을 물려받아 버렸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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