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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86화 (486/488)

외전 77. 확답이 필요했기에

“조져.”

화가 난 장인어른이 말하고.

정가의 호위대가 움직였다.

순혈 정가가 어떤 곳인가.

불멸, 순혈.

두 개의 단어로 자신을 증명하는 명가 중의 명가다.

불멸특수대 화림을 이끄는 정호남 사장과 더불어 현존하는 최강의 불멸자라 불리는 이가 바로 눈앞의 장인어른이었고.

팅.

장인어른이 허공에 손을 털자, 상대와 접촉하는 순간 레이저 칼날을 뿜어내는 표창이 날았다.

날아간 표창의 숫자는 넷.

상대, 로이더의 리더는 훕 하고 숨을 내뱉더니 몸을 부풀렸다.

그러자 근육이 풍선처럼 빵빵해졌다.

마치 변신족의 강체를 보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그 강도가 짐작되는, 보통 단단해 보이는 몸뚱이가 아니다.

카가가각!

광학병기의 핵심인, 레이저 블레이드가 근육 갑옷을 가른다. 동시에 불똥이 튀고 빛이 산란했다.

이건 뭐야.

근육 갑옷 위로 보기 좋은 선이 몇 개 그어지긴 했지만.

자르진 못했다. 고작 근육 따위가 무엇이든 갈라 버린다는 레이저 칼날을 견뎌 낸 거다.

레이저 칼날이 근육을 못 잘라?

저 자식도 괴물이네.

“출력 높인다.”

제 무기가 막히는 걸 보면서도 장인어른은 덤덤히 말했고.

로이더의 리더는 푹 하고 콧김을 뿜더니, 땅을 찼다.

펑!

속도는 근력과 비례한다고 했던가.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아니,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다.

순혈급 변신족의 대쉬와 비슷했다.

난 정가의 호위 중 하나가 피떡이 돼서 나가떨어지는 걸 상상했다.

눈앞에 저런 괴물이 달려들면 보통은 그렇게 되는 건데, 그게 맞는데.

드드드득!

로이더의 리더가 멈췄다. 아니, 잡혔다.

“끊어 봐, 새끼야. 안 갈리면 끝인 줄 아나.”

장인어른이 말했다.

저건 언제 준비한 거지? 불멸의 싸움은 준비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그 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레이저 그물이다. 방출되는 레이저를 엮어 만든 그물이라니.

출력량을 조절해서 유지하는 것만 해도 세기의 발견 급일 텐데.

그걸 상용화해서 쓴다고?

아니지, 그게 아니다.

불멸자의 감각을 기반으로 에너지 출력량을 동일하게 맞춘 거다.

그걸 위해 필요한 기어.

세심하게 조정 가능한 레이저 방출기.

그걸 토대로 여덟의 호위가 사방에 줄기를 뿜어내 그물을 형성한 거다.

순혈, 그것도 서로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춘 불멸자 팀만이 가능한 그런 묘기였다.

어쨌든 로이더의 리더가 잡혔고.

“이 씨이입!”

그는 화를 냈다.

불같은 분노와 더불어 몸이 점점 더 불어나더니.

어깨 위로 무슨 뿔이 쑥 솟았다.

뭐야, 추방자라고 해도 인간 아니었나.

“내 딸 안 보냐?”

짧은 틈, 장인어른이 으르렁거렸다.

이 양반은 불멸자라며 변신족의 살기를 뿌리네.

“보고 있어요.”

난 답하고 돌아섰다.

내가 미랑을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얘는 불멸자다.

그러니까 겨우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는 거다.

난 뒤로 물러나 미랑을 살폈다.

오른쪽 어깨에 뭔가 관통한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불멸자.

쉬이 쓰러지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상처가 낫질 않았다.

이거 왜 이래.

“저주야, 안 풀려.”

내가 앞에 정신 팔린 사이, 후방에서 다가온 추수미 선배가 말했다.

안 풀려? 왜?

난 이 정신 없는 판에서 생각했다.

저주를 머금은 총탄?

아무리 봐도 어깨는 총상 자국인데?

“안 풀린다. 내가 수십 년을 연구해 만든 거니까.”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놀라서 염력을 방출하려다 멈췄다.

주문의 냄새가 물씬 풍겼으니.

시선을 돌리자, 뇌안에 얼핏 걸리는 게 있었다.

특수종 세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라고 해야 할까.

주문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 마법사였다.

“마스터 필립이다.”

놈이 말했으나, 이름 따윈 귀에 안 들어왔다.

추방자 무리는 뭐 단체로 다 실험체 출신인가.

이 작자도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형 실패한 것 같은데, 재수술받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물었다.

광대뼈에 불쑥 뿔이 솟아 있고 이마에는 피뢰침 같은 걸 꽂았다.

이마의 피뢰침도 뿔의 한 종류이긴 한데 얇고 가느다랗고 불규칙한 형태로 비틀렸다.

어린아이가 진흙으로 만든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유니콘의 뿔이다. 내 마력의 원천이지.”

내 눈길의 방향을 읽었는지, 놈이 말했다.

“유니콘?”

그런 크리쳐는 듣도 보도 못했다.

“왜? 너희들이 아는 세상에 전부인 것 같나? 우물 안 개구리들.”

필립이라는 성형실패자가 말하고.

난 몸을 일으켰다.

“저주를 푸는 방법에는 보통 세 가지 있지. 하나는 주문 주체자가 푸는 것, 둘은 주문 주체자를 죽이는 것, 마지막 셋은 그보다 월등한 능력자가 풀어주는 것. 혹시 내 모친이 누군지 알아?”

“스펠 유저 강혜민.”

마스터 필립이란 놈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걸 알면서도 여유를 부리네.

어떻게 봐도 마스터란 작자는 여유작작이었다.

걸음에도, 손짓에도, 행동에도.

“개수작을 계속 부리네.”

내 뒤에서 추수미 선배가 말했다. 서늘한 감각이 뒤통수에 닿는다. 살벌한 말과 함께 한 걸음.

난 진즉에 뇌안을 발동하고 있을뿐더러.

주문은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내가 마법에 당하는 걸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모친께서 준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터의 왕이 언라이벌 식스를 막고. 재앙급 크리쳐 수백 마리가 튀어나오는 건 네 애비와 어미가 막겠지. 로이더의 리더가 겨우 정가에 잡힌 건 황당하지만, 어쨌든, 그럼 난 누가 막겠나?”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이건가.

얘 진짜 오만한데.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추수미 선배의 옆, 로니가 붙고.

“나도 끼워 줘!”

언제 온 건지, 도라엘 선배도 합류.

거기에 나도 있다.

난 상대를 보며 어머니가 준 선물에 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거 써도 되나 싶긴 한데.

어머니가 위험하면 언제든 쓰라고 했으니.

그렇게 마이스터, 마도과학의 집결체의 머리에 유니콘의 음경 같은 걸 심은 새끼에게 새로운 성형의 길을 열어 주려 했는데.

마스터란 양반이 먼저 움직였다.

쑤우욱!

아, 시발, 깜짝이야.

이건 또 뭐야.

옆구리에서 팔이 두 개 더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네 개의 손이 수인을 맺고.

그의 머리 위쪽 허공에서 총구가 불쑥 튀어나왔다.

뇌안으로 보는데 에너지가 급격하게 치솟는 것도 보였다.

레벨로 말하기 어려운 극점으로 치솟는 에너지다.

티디디디디딩!

곧 총구에서 에너지가 집결된 무언가가 비처럼 쏟아졌고.

“갤럭시 필드.”

뒤에서 추수미 선배가 결계를 열었다.

“하나도 맞지 마라. 맞으면 디버프 걸려.”

명확한 선배의 말에 다들 제각각 알아서 막았다.

난 염동 결계를 펼치고 로니를 도우려고 봤는데.

어?

“미안.”

로니가 읊조리며 손을 떨치자, 허공에 방어막이 생겼다.

기어도 아니고 순수 자신의 힘이다. 불멸자가 방어막을 펼쳐?

아니지.

“나 불멸과 초능, 둘 다 특기야.”

아.

로니, 이 앙큼한 친구가 비장의 수단을 숨겼다. 사과는 이제까지 숨겨서 미안하다는 소리였고.

도라엘 선배는 냉큼 내 뒤로 피했다.

“징그러워, 저거.”

변신족의 동체 시력은 상대가 쏘아 내는 게 뭔지 보이는 것 같았다.

내 결계에 푹 하고 박히는 걸 보니 나도 보이긴 했다.

이거 씹.

벌레였다.

탄 자체가 벌레여서 결계에 제 머리를 들이밀고 이빨로 갉아 내려고 발악했다.

이런 게 우리 미랑이 어깨를 관통한 거야?

아니, 관통해서 다행인가.

풀썩.

그 타이밍에, 뒤에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랑이었다.

“정미랑!”

나도 모르게 입에서 큰소리가 났다.

“내가 막아.”

로니가 말하며 전면을 막아 줬다. 마이스터의 마스터란 놈은 여전히 제가 만든 벌레 탄만 날렸다.

간간이 이쪽에서도 레이저 사출 장치로 레이저를 쏘아 내지만.

광각 결계를 펼쳤는지, 주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난 뒤로 돌아 미랑을 품에 안았다.

머리를 무릎에 올리고 동공을 살폈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통증은 참아 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무는 것도.

“아파?”

짧은 물음에 미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아프네.”

“약은?”

“꽂았어.”

불멸자는 드럭 칵테일을 쓴다. 이런저런 약으로 신체 능력도 올리고 예민함을 더 살리기도 했다.

진통 효과가 있는 것도 당연히 챙겼을 것이다.

이미 그런 종류의 약을 썼단 얘기였고.

그런데도 이만한 통증이라.

어디 보자.

어머니가 저 멀리 위에 계시는데, 마이스터의 마스터란 성형실패자의 말대로 신나게 싸우는 중이시다.

크림슨 드래곤이란 놈이 벌써 네 마리째 나오는 것 같고.

아버지도 바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짧은 사이, 눈을 깜빡였는데, 다시 눈을 뜨니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순백의 세계가 펼쳐지고 예지몽에서 봤던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 몸에 내가 만든 게 들어갔어, 그건 못 없애.”

다시 눈을 깜빡이니, 본래의 상태다. 순백의 세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뭐야, 이건.

텔레파시?

그걸 이런 수준으로 내보낸다고?

이게 가능한가?

안 될 것 같은데.

살벌함을 넘어서 괴이한 수준의 능력이었다.

여기 방사된 에너지 종류가 수십이다.

이런 걸 뚫고 텔레파시 주파수를 맞춰?

텔레파시도 일종의 라디오 주파수 같은 게 필요하다. 사람마다 정신에서 나오는 주파수를 보고, 제 뜻을 전하는 건데.

그걸 이렇게 한다고?

아무래도 광신병자의 교주란 놈이 얘 같은데.

별짓을 다 할 줄 아는구나.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다.

“나 아무래도 죽나 본데.”

미랑이 말했다.

“안 죽어.”

곧바로 답하고 왼손으로 귀 옆을 눌러 통신을 발동.

“아직도 안 왔어요?”

내 물음에 대답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툭.

성형실패자인 마스터란 놈은 벌레탄을 쏘는 것만 할 줄 아는지, 계속 같은 짓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 뭔가 떨어졌다.

그러자 마스터 필립의 정수리에서 빛이 뿜어졌다.

거기에도 눈을 심어 두고 석화 광선을 뿜어낸 거였다.

뇌안으로 그 흐름을 보고 있는데.

위에서 나타난 사람이 셋, 아니 넷으로 갈라졌다.

완벽한 기척 흩날리기에 이은 기척 속이기.

유령과도 몸놀림에 마스터란 놈도 숫제 상대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사이 유령, 팬텀 중봉 삼촌의 손이 움직였다.

훙.

무게감 없는 광선검이 최대 출력으로 놈의 몸을 반으로 가른다.

두두두두둥!

광각 결계가 반응해 또다시 빛이 산란했다. 사방으로 빛의 에너지가 방출됐다.

“막히는군.”

그와 동시에 덤덤한 목소리.

이중봉, 팬텀, 큰삼촌이 어느새 뒤로 물러난 채였다.

그게 끝도 아니었다.

중봉 삼촌이 비운 자리로.

“이것도 버티나 보자.”

목소리와 함께다.

꽝!

묵직한 충격이 놈의 광각 결계를 후렸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후려치는 일격.

할머니였다.

그 위로 백린검이 떨어져 내렸다.

이건 할아버지의 커스터마이징 무기다.

촤아악.

광각 결계가 녹는다.

“누가 내 손자 건드리래?”

분노를 머금은 화끈한 일격이 광각 결계를 후려 가르니.

마스터란 놈이 급히 주문을 발동.

공간을 가르고 저 옆에서 나타났다.

순간적인 판단에 이은 고속 순간 이동 주문이다.

“잡았다.”

그곳에는 주일호와 장가희 커플이 있었다.

내가 도와 달라고 한마디 해서 모인 이들이었다. 애교와 찡찡을 좀 섞은 말에 모인 이들.

이제는 은퇴해서 한가로이 쉬던 사람들.

다만, 쉬기에는 실력이 너무 출중한 위인들이기도 했다.

언라이벌 식스도 넘보지 못할 경험과 능력의 총화.

거기에.

“아니, 여긴 왜 왔어요?”

꽝!

폭음이 뒤따라오며 주변을 쓸어버리는 존재가 땅에 떨어졌다.

떨어지며 임팩트에서 나온 에너지가 한쪽 면을 쓸었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크리쳐 무리가 그 한 방에 사라지고.

“손주가 오라면 오는 거지.”

“암.”

“불러서.”

“놀러.”

각자 개성 있는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 손주는?”

“연애 중이네요.”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날 바라봤다. 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숨을 한 번 고르고 미랑을 내려다봤다.

“정미랑.”

“왜?”

통증을 참아 내는 미간.

이거 나 좀 마음 아프네.

그럼, 이제 어쩌지.

아버지가 다 쓸어버리길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나서야 하나.

조금 전 텔레파시로 얘기했듯이, 걔를 처리하면 미랑이 나을까?

그럼, 시간을 끌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이어지다가 미랑의 얼굴을 눈에 담고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광신병자 교주 잡으면 나랑 결혼하는 거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

나도 그런 판이니.

나 왜 갑자기 이런 말 했냐.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놈의 결혼, 고백, 프러포즈 때문에 심란하단 말이다.

그러니까 혹여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뛰어들 참인데.

확답을 받고 싶었다.

욕심이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지금부터 그런 거다. 인간은 이기적인 거로 결론 내겠다.

그러니 나도 그렇다. 나도 이기적으로 해야겠다.

잡생각이 들던 사이다. 날 빤히 보던 미랑이 입이 열린다.

아주 천천히 주변 모든 것을 잊고 그녀의 입과 나,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느리게 움직이는 입술.

“그래.”

아, 허락?

이건 그린 라이트 중에서도 진녹색이다.

그러니까.

“그럼. 아빠, 그 친구 잡으러 다녀올게요.”

내 말에 아버지의 고개가 갸웃했다.

“뭘?”

“교주인지, 고자인지 하는 그 친구요.”

이 싸움의 배후, 그러니까 마지막 적이라는 놈이 광신병자 교주인데, 그걸 아들이 잡겠다니, 황당할 따름이시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나 아니면 그거 못 잡을 것 같거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적임이었다.

문제는 그 새끼 앞까지 다다르는 거지.

그건 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알아서 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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