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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85화 (485/488)

외전 76. 졸라 재밌겠네

콰득.

근육이 터지고 줄무늬가 생기며 전신에서 힘이 흘러넘친다. 세포 하나하나에 새로운 기운,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이후는 변신할 때마다 욕구 불만에 시달렸다.

힘이 오른 만큼, 욕구가 치솟았다.

다 부수고 싶다. 전부 찢어발기고 싶었다. 손톱으로 쿡 찔러서 쭉 찢으면 될 것 같은데.

말랑한 살을 잘라 내고 썰어 내면 어때서?

사람은 왜 죽이면 안 돼?

저건 왜 죽이면 안 돼

?자르고 부수고 터트리고 싶은데?

‘그럼 뒈지게 맞아 죽을 테니까.’

간신히 이성의 끈 하나를 유지하며 눈을 뜬다.

스읍 하고 내뱉는 호흡에 파란 증기가 섞였다.

본능을 통제하는 것, 그게 이후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변신족으로 각성한 사람 중 일부는 여전히 본능을 통제하지 못한다.

문제가 될 게 뻔한 그런 특수종은 평생 시설에 갇혀 지내야 했다.

인권을 무시한 처사가 아니냐고?

‘아니지.’

애초에 그렇게까지 통제가 안 되면 약물을 투여받고 변신족의 힘을 포기하면 되니까.

NS의 통제 시설은 변신족의 힘을 컨트롤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폭력과 교육, 약물이 섞인 방식이었다.

“난 너희가 나가서 사람을 죽이는 꼴 못 본다.”

이동훈의 말이다. 원장이자, 책임자.

동훈이 만든 보육원에서 자란 이후는 세상을 알았다. 변신족으로 살아갈 세상이다.

통제되지 않은 변신족이 세상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가.

죽거나, 죽인다.

그게 전부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신이 된다.

이후는 병신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세최특.’

그는 본능의 통제에 세최특의 이미지를 썼다.

정확히는 그에게 죽는 이미지를.

두들겨 맞는 이미지를 그려 내고.

거기에 온신의 이름도 빌렸다.

처음에는 세최특의 아들이라 좋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너도 날 죽여 줄 수 있겠지?’

그럼 나 자신을 조금 놔 버려도 되지 않을까.

이후는 보통 본능을 최대한 억제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놔 버렸다.

눈앞이 새빨갛게 변한다. 주변 모든 것을 찢어발겨도 되는가?

‘몰라, 시발.’

이후는 날뛰었다.

손톱을 뻗었다. 무지막지한 근력을 바탕으로 한 할퀴기가 오렌지 급 괴물의 뺨을 할퀴고 찢었다.

부왁!

피가 솟는다. 그 핏줄기를 뚫고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머리통을 깨부순 주먹질이다.

이 크리쳐 이름이 뭐더라?

모른다. 까먹었다.

대가리가 새의 그것을 닮았고 몸은 근육질이었다.

뒈지면 그냥 고깃덩이일 뿐이다.

이후는 다시 다음을 찾아 내달렸다.

손을 뻗고 발로 찬다. 손톱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물어뜯기도 했다.

생채기가 생기는 건 무시했다.

치명상만 피하면 그만이었다.

앞에 있는 모든 건 적, 고로 전부 찢어발겨도 되는 것들.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무지막지한 힘이 솟는다. 욕망에 게이지가 있다면 그래프를 뚫고 올라가 버린 느낌.

희열, 쾌락.

이후는 본능이 주는 마약에 취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퍽- 하고 주먹질이 벽에 막혔다.

‘왜 막혀?’

이제껏 질주하던 그의 발도 덩달아 멈췄다.

콰득- 하고 땅을 밟은 몸이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크리쳐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던 그의 앞을 막은 것.

“크르르.”

침을 질질 흘리는 검은 털의 네발 달린 짐승이었다.

보통 크리쳐와 다른 건, 이마에 마름모꼴의 문양이 박혔고 눈은 새하얗게 빛났는데.

놈의 앞, 무형의 방벽이 보였다.

염력 야수.

색으로 등급을 나누는 크리쳐 위에 흑백의 유니크가 있다면.

그 위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

나타나는 것만으로 이계에 지어 둔 인프라를 비롯해 모든 인력이 철수하고 언라이벌 식스 이상을 불러야만 하는 존재들.

재앙, 디재스터 급의 크리쳐다.

“카아아아!”

놈이 괴성을 지르자, 괴성에 맞춰 염동력의 창이 날아들었다.

이후는 흔들리는 공기의 결을 느꼈고, 몸을 좌우로 흔들어 염동력의 창을 피했다.

퍼벙!

그의 뒤로 무슨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땅이 패고 흙이 치솟았고.

이후의 눈깔은 더 팩 돌았다.

‘막아?’

찢어발긴다. 욕망의 숨결을 토해 내는 야수가 내달렸다.

* * *

난 뇌안으로 이후를 쭉 따라갔다.

폭발적으로 치솟는 변신족 에너지가 언라이벌 식스 못지않았다.

아니, 들쭉날쭉할 때 보니까 언라이벌 식스보다 높아질 때도 있는데.

고로 저것도 괴물 새끼란 거다.

그러니까 지금 이후는 미쳐 날뛰고 있었다.

뻥 하고 땅을 박차고 뛰는데, 내 눈에는 제대로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에너지 흔적만 잔상으로 남아 그가 한 일을 알려 줬다.

주먹을 내지른 곳에 흐릿하게 남은 파란 줄기, 그 끝에 남은 건 오렌지 급 크리쳐의 사체뿐.

버드 헤드가 그렇게 죽고.

아울 베어도 죽는다.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한 짐승도 죽어 나가고.

전대의 괴물이라 볼 수 있는 펜싱 아머가 나타나자.

이후는 크리쳐의 삐죽한 칼날을 몸으로 받아 내는 듯하다가 사라지더니, 놈의 아래에서 나타났다.

아래에서 위로 세 줄기로 그어진 손톱이 콰가각 하며 괴물을 세로로 쪼갰다.

누가 보면 종잇장인 줄.

“이후 선배,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뒤에서 미랑이 읊조렸다.

그녀는 전장 전체를 보면서도 개인의 움직임도 체크했다.

실상 지금 전장의 흐름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다만, 그녀 혼자만 하는 일은 아니다.

반대쪽에서는 미호 이모가 하고 있을 테니.

전장을 바라보는 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후가 저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란다.

그만큼 흥분했단 건가.

“본능 통제를 안 해서 생기는 일인 것 같은데, 뭘 믿고 저러는 걸까.”

미랑이 읊조렸다. 뭔가 아는 게 있어 보여 물어봤더니, 이후에 관해 쉼 없이 털어놨다.

미랑은 이후를 자세히도 알았다.

다만, 이제 질투는 없다.

저자는 내 배다른 형제가 되었으니.

본능 통제.

그걸 놔 버리면 터지는 에너지.

믿는 게 없으면 저리하지 않는다는 것.

그를 믿는바.

“나야?”

“아마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이후가 그토록 믿는 게 나라니까.

본능 통제에 실패해서 저기서 눈깔이 더 돌면 제압해야 하는 거다.

뭐, 그 전에 일단 크리쳐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 같은데.

“아.”

로니다. 이후와 곳곳을 주시하던 그녀도 미랑 못지않게 레이더 역할에 충실했다.

“재앙급.”

그녀가 읊조렸다. 시선은 이후 쪽.

따라가 보니, 보였다.

유니크급은 아버지 시절에나 대단한 괴물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다른 놈들이 차지했으니.

재앙, 나타나는 것만으로 이 땅을 시끄럽게 만들 놈들이다.

천재지변에 비견되는 괴물.

그중 첫 번째였다.

무제한의 염동력을 뿜어내는 괴물.

염동력의 만티코어였다.

야수형 크리쳐.

타고난 기동성과 더불어 말도 안 되는 출력의 염동력이다.

상대하는 방법? 놈보다 빠르고 강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아버지라도 나서면 모를까.

근데 염동의 만티코어가 끝도 아니었다.

“위.”

오우야. 청룡이야? 저거?

벼락을 치는 괴물이다. 어찌 보면 내 상극이다.

전격과 광학 병기를 무시하는 놈이다.

어둠 속에서 긴 꼬리를 털고 나온 괴물은 8m가 넘는 대형 뱀이었다. 그것도 하늘을 나는 뱀.

그걸 우리는 용이라고 부르긴 합니다만.

“크림슨 드래곤.”

로니의 말이 이어졌다.

크리쳐가 계속 나왔다.

재앙급 괴물이라 불리는 것들이 줄지어 쏙쏙 쏟아진다.

염동의 만티코어, 벼락의 청룡, 지옥 불을 뿜는 진홍빛용, 칼날 바람의 쇳덩이, 스펠 유저의 리치 등등.

학교에서 배운 재앙급 크리쳐가 다 나왔다.

동창회야? 동문회야?

너희 왜 다 나오니.

이건 나조차도 황당했다.

“재밌네.”

그런데 어느새 아버지가 뒤에 서서 말하고.

“그러게.”

어머니도 함께였다.

언라이벌 식스는 각자 자리에서 싸우는 중이었다.

그들도 전부 재앙급 크리쳐의 동창회를 보고 혀를 내두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우직! 콰득!

우리 눈깔 돌아간 의형제 이후가 염동의 만티코어의 머리통을 잡아서 바닥에 내리꽂은 뒤, 무릎으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저 만티코어가 왜 무섭더라?

아, 기동성.

발이 무섭게 빠르고 사이사이 염동력을 쓰는 거 때문에 정말 무시무시한 재앙이라고 했었다.

저러면서 지치질 않거든.

그걸 이후가 잡아 버렸다.

“쟤 좀 치는구나.”

결국, 아버지 입에서 인정하는 소리가 나왔다.

어둠 너머, 재앙급 크리쳐 밑으로 오렌지 급 괴물과 유니크 급 괴물이 군대처럼 밀려들었다.

우리가 시작한 전쟁인데, 적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뭔가를 마구잡이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저기.”

로니가 손가락을 들었다.

크리쳐가 모여든 곳 밑이다.

“이터, 로이더, 마이스터의 지도자께서 다 모이셨네.”

대놓고 헌터로 활동하진 않지만, 어쨌든 전 세계 정보를 취합해서 알고 있긴 한 아버지다.

그러니 한눈에 상대를 알아보기도 하신 거다.

이터의 왕, 로이더의 리더, 마이스터의 마스터.

추방자 무리 중 최강이라는 것들.

그제야 상황이 꽤 심각하다고 받아들였다.

이거 잘못하면 골로 가겠네.

내가 부스터로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으려나.

“근데 저것들이 왜 서로 물어뜯질 않을까요?”

크리쳐란 그런 존재였다. 힘을 합쳐서 싸우기에는 각자 개성이 너무 강한 괴물들.

각 행성에 흩어져 사는 것들.

그런 것들이 저리 뭉쳐?

하물며 재앙급까지?

이 광경이 꿈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둘 중 하나지.”

아버지는 신경도 안 쓰는 말투였다. 크리쳐 따위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그런 말투다.

“하나, 우리가 크리쳐를 잘못 알았다. 둘, 광신병자의 교주가 수작을 부렸다.”

어째 후자에 무게가 실리긴 하네.

“일단 쟤들부터 처리해 보자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에 신뢰가 절로 생겼다.

재앙급?

아이고, 어서 오시지요.

그대들이 규격 외 크리쳐라지요?

하지만 여긴 오리지널이 있거든요.

아버지는 언제나 NS, 규격 외의 존재로 군림했으니.

그렇게 20년.

그동안 놀고먹지도 않았다. 내가 보는 아버지는 언제나 같았다.

언젠가 왜 그렇게 하시냐 물었던 적이 있다.

“이제 인베이더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크고 두터워 원망하던 날이었던가.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던 나날들이다.

아버지의 말투는 지금과 비슷했다. 덤덤했고 대수롭지 않았다.

“혹시 누가 수작 부렸는데, 지면 열 받으니까.”

정말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언제나 등을 보여 줘야 하기에 생긴 책무.

아버지는 책무를 어깨에 얹었다.

어릴 때처럼 철없이 놀던 시절은 끝났다.

눈을 빛낸 아버지가 읊조렸다.

“졸라 재밌겠네.”

……철없던 게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웃으며 나섰다.

“하하하하하!”

실제로 저렇게 웃음을 터트렸다. 달리며 변하고 푸른 줄무늬가 생긴 흑호로 변하고.

어깨 위에 어머니가 올라섰다.

그대로 내달리자, 허공에 검은 선이 그어지고.

재앙급 괴물 앞에 진짜 재앙이 당도했으니.

풍.

이후는 에너지 여파라도 눈에 보였는데.

아버지는 얼마나 깔끔하게 에너지를 수습하시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내 눈에 보인 건, 청룡의 목이 따인 것과.

하늘 위로 파란 피가 사방에 뿌려진 것.

그 뒤 지옥 불의 드래곤의 머리 위에 어느새 어머니가 올라섰고.

그대로 밑으로 내리친 주먹에 용의 머리통에 수박만 한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재앙급이란 말이 부끄러운 최후가 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시작됐다.

오크는 몸풀기였다.

그건 상대도 이쪽도 마찬가지.

두두두두!

기생 병기를 어떤 식으로 업그레이드하셨는지, 핏발 선 탄을 기관총처럼 갈기시는 아버지와.

그 뒤에서 어머니가 손을 흔들자, 사방에서 공기가 일렁이며 충격파가 터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이 재앙 급 괴물 수십 마리를 묶어 냈다.

괜히 아버지가 저 자리에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승리를 가늠한 순간.

그런 순간이었다.

언라이벌 식스조차도 긴장감을 조금 풀어냈을 때.

퓽.

작은 소리와 함께.

“아.”

미랑의 신음이 들렸다.

어?

난 아까부터 날 포함 미랑, 로니를 감싼 염동 결계를 쳐 둔 상태였다.

그게 뚫렸다.

“하나 잡았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미랑을 잡은 놈을 지나쳐 어느새 바짝 다가온 놈이었다. 전신에 힘줄이 튀어나와 보기 흉한 외모.

눈깔이 빨갛다. 동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디붉은 눈이다.

무엇보다 반사적으로 뇌안으로 보니.

언라이벌 식스보다 높다.

레벨 측정 불가의 괴물인데.

크기와 농도만 보자면 언라이벌 식스 둘을 합친 거였다.

“젯!”

곁에 있던 구스타프가 반사적으로 묵직한 염력을 선사했다.

뇌안으로 보였다. 구스타프라 만든 무형의 기운이 그를 밀어내는데.

상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뻗는다.

그 손이 겨우 한 뼘 거리 앞으로 다가왔다.

“어딜.”

그와 동시에 들리는 타인의 목소리.익

숙한 목소리이자, 여기서 들을 줄 몰랐던 목소리.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상대의 팔을 붙들더니, 관절을 역으로 꺾으려 했다.

상대는 버텼다. 힘줄이 불끈 솟더니, 그대로 손을 뿌리친다.

근데 그조차 노렸다는 듯, 아래에서 위로 빛이 번쩍 터졌다.

섬광이다.

팽하고 회전하며 빛을 뿌리는 칼날.

커스터마이징 병기였다.

사아악.

광학 병기가 적의 코끝을 베고.

놈이 뒤로 성큼 물러난다.

“이 새끼가, 내 딸 안 지켜?”

“장인어른?”

장인어른이었다. 그러니까 순혈 정가의 가주.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가 금세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시방새가.”

근육질 괴물, 로이더의 리더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코끝이 잘려 피가 흘렀는데, 금세 멎어 버리는 괴물.

곧 둘의 눈이 마주치고.

정가의 괴물이라 불리는 호위대가 속속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 딸을 건드려?”

그곳에는 차가운 분노를 터트리는 특수종, 딸 바보 콘테스트가 있다면 단연코 세계 챔피언이 될 남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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