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3. 선공하는 법
우리 아파트 단지 안, 공터에 사람이 모였다.
회의실도 아니고 공터라니, 물론 그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공간 격리.”
아버지가 말하자 NS 소속 서넛이 나와서 손을 뻗었고, 둥 하고 주변에 엷은 유리막 같은 게 생겼다.
만지면 말캉거리는 게 젤리 같기도 했다.
막 너머가 흐릿해 보이는 걸 보면 시각 차단은 당연하고.
소리도 막을 것이다.
순식간에 만든 비상 회의 시설인 거다.
아버지 쪽, 그러니까 NS에서는 동훈 삼촌, 미남 이모, 요한 삼촌, 귀태 삼촌, 미호 이모까지 왔고.
노 페이스 팀에서도 많진 않은데 내 팀이니 사람이 붙었다.
다만.
로니와 미랑이 기주 아저씨까진 이해가 가는데.
추수미 선배?
이후?
“여긴 왜 온 겁니까?”
이후에게 물으니.
“오고 싶으니까.”
이 새끼는 정말 꼴리는 대로 사는 새끼구나.
추수미 선배는 묻기도 전에 답했다.
“한번 만나 보고 싶었거든.”
말하면서 새빨간 혀로 입술을 핥는다. 먹이를 앞둔 맹수와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이 선배는 왜 이러는 걸까. 어디가 아픈 걸까?
주로 뇌에 고장이 나면 사람이 이럴 수 있는데.
추수미 선배의 시선은 한쪽에 꽂혀 있었다.
내 어머니 쪽이다.
강혜민 여사께서는 아버지와 뭐라 속닥거리는 중이었는데.
그러다 대뜸 내 쪽을 보고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추수미 선배를 향한 말이다.
“아가, 눈 깔지?”
아, 역시 우리 엄마.
대사가 살아 있잖아.
“아, 실제로 너무 뵙고 싶었거든요.”
“너구나. 네 개 연맹이 모여서 나 따라 하겠다고 만든 꼬맹이가?”
추수미는 연맹 넷이 모여 만든 스펠 유저다. 비밀이라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아서라. 궁둥짝 맞는다.”
아니, 둘 사이에 이야기뿐 아니라 뭔가 다른 게 섞인 것도 같은데.
어머니의 말에 추수미 선배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뒤로 물러나고.
“푸하.”
선배가 숨을 크게 내쉬더니 날 보고 말했다.
“정말 멋있지 않니?”
“네?”
“멋있다고.”
이건 약간 내가 미랑이 보는 눈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벌써 사랑에 빠졌는데?
왜 왔나 싶었더니, 우리 엄마 보러 온 건가.
이후는 더 했다. 이 새끼는 내 아버지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 눈빛에 어린 야생의 살기가 옆에서 봐도 느껴질 정도로다.
“애들이 혈기가 넘치네.”
그걸 본 동훈 삼촌이 말하고.
그런 동훈 삼촌과 기주 아저씨가 아는 얼굴인지라, 서로 눈으로 인사를 나눴다.
서로 각자의 얼굴을 보며 묘한 기류가 흐르자.
“아들.”
아버지가 날 불렀다.
“네.”
총총 걸어서 다가가니, 아버지가 물었다.
“네 팀 애들 왜 저러냐?”
“그러게요.”
나도 진중하게 답했다.
“됐다.”
다들 들었겠지만, 아버지는 신경도 안 썼다.
어쩔 건데, 내가 세최특인데.
이런 기세를 풀풀 풍기시네.
그러더니 이후의 살기를 정말 상큼하게 무시했다.
그러니 이후가 숫제 침을 흘릴 것처럼 입을 벌린다.
이 새끼 진짜 약 처먹고 왔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스트레스다.
그래서 미랑에게 다가갔다.
“음, 잘 지냈지?”
“헤어진 지 이틀도 안 지났어.”
“아, 그런가?”
오래된 것 같단 말이다.
어색했다. 그 어느 때보다 어색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메웠다.
“생각은 좀 해 봄?”
“아직.”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차갑지.
“연애질은 나중에 하고 일.”
아버지가 그런 나를 나무랐다.
아니, 아버지.
사실 세상 망하는 것도 망하는 건데, 아들 혼삿길이 망하는 것도 중요한 거 아닙니까.
물론 세상이 엿 되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 뒤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회의 비슷한 것.
난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지켜봤다.
솔직히 말하면, 로니와 미랑이 기주 아저씨가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다시금 되새긴 광경이었을 뿐이다.
거기에 추수미 선배도 나름 두뇌파였고.
내 꿈에 관해 먼저 얘기하긴 했는데, 이미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난 아버지가 사이사이 해 준 얘기에 쏙 빠져들기도 했다.
정확히는 아버지와 블라인드 페이쓰, 광신병자 교주와의 만남 이야기다.
* * *
그건 깊은 어둠, 아니 그것보다 문제가 되는 어떤 거였다.
임팩트, 이제는 업그레이드를 넘어 괴물 같은 출력을 내는 몽둥이 형태의 산탄 막대를 든 광익은 저 밑에서 자신을 빤히 보는 ‘그것’과 마주쳤다.
인간인가 아닌가.
팔다리가 있고 눈깔, 코, 입까지 있는 걸 보면 사람은 맞다.
예민한 불멸자의 감각으로 바라보니 상대에게서 희미하게 인간이 보이는 특유의 기운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인간 같지가 않은가.
육감과 직감이 그렇게 말한다. 다만, 맹신할 수 없는 게 바로 직감이다. 그럼 어떻게 했나.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인간이면 어떻고 크리쳐면 어떤가.
광익은 그렇게 했고.
다시금 상대를 바라봤다.
둘이 눈이 다시 마주치고.
“해 볼래요?”
상대가 먼저 도발했다. 도발하는 상대를 그냥 둬야 할까.
아니, 그런 적이 없는데.
세최특.
세계 최강 특수종이란 이면에는 세최또란 별명도 있다.
일단 아가리를 찢고 시작해 볼까?
그리 생각한 뒤다. 기생 기어를 발동, 1초 이내 생긴 저격 라이플을 쐈다.
퉁!
피를 머금어 날아간 탄환은 광학 병기 이상의 파괴력이었다.
그리고 그게 펑 하고 막혔다.
‘갤럭시 필드?’
아니, 비슷하지만 다르다.
“절대 결계라는 건데요. 투사체 무기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상대가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게 있는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하는 건가.
이상한 년인데.
아니, 여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성별은 전혀 모르겠다.
광익은 그대로 기생 라이플을 넣고 임팩트를 휘둘렀다. 슈트 대신 발에 달아 둔 분사 장치가 무게 중심에 따라 움직였다.
붕. 쿠웅!
에너지를 분출하며 고속 돌진.
임팩트가 절대 결계란 놈을 때렸다.
훙.
소리는 없었다. 아니, 소리가 둘을 놔두고 사방으로 멀리 퍼졌다.
두-우우우우우우우웅.
뱃고동 소리 같은 게 둘을 중심으로 퍼졌다.
광익은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팩트에 충전된 에너지가 한 번에 가득해졌으니까.
이런 적이 몇 번이나 있더라?
유니크 레벨이나 재해급이라는 크리쳐를 상대할 때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임팩트가 에너지가 차오르긴 했고 에너지도 방출했으나.
결론만 말하면 눈앞의 아리까리한 상대와 끝까지 싸우진 못했다.
정확히는 한 대도 못 때렸다.
“여기까지 하시죠.”
뭘 더 해 볼까 하는데 상대가 먼저 제안했다.
광익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서 변신하고 숨겨 둔 거 다 꺼내면 어떻게 될까.
뒤에서 대기하는 아내가 위험하다는 거다.
지금도 혼자 뒤로 조금 처진 거로 화가 잔뜩 나 있는데.
여기서 사고라도 나 봐라.
이제는 다시 안 떨어지려고 할 거다.
‘그건 좀.’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1초도 안 떨어지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럴까?”
말하며 광익은 생각했다. 그동안 상대해 본 인베이더가 몇인가.
크리쳐는 또 몇인가.
테러리스트를 포함 추방자를 상대한 것까지 세면.
이건 뭐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광익은 인정했다.
‘최고로 까다롭긴 하네.’
지금 만난 적이 가장 난해하다고.
블라인드 페이쓰의 교주라고 했던가.
모든 추방자를 이끄는 우두머리다.
크리쳐의 찬탈이란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고.
찬탈 사건 당시 광익은 교주라는 저 괴물만 쫓아다닌 셈이었다.
‘허탕이네.’
지금은 안 되겠다.
다음, 다른 장소에서.
그때는 전력을 다 쏟아부을 것이다. 변신과 가진 기어를 다 쓸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할지 보고 싶었다.
초능인지 마법인지, 저 존재가 보인 능력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그런다고 안 죽는 건 아니겠지.’
불멸자를 죽이는 법.
상대를 포기하게 만드는 거다.
저것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온 거였다.
* * *
여기 주요 쟁점은 두 개였다.
하나, 광신병자의 교주다.
“추정 능력은 공간 장악. 어지간한 특수종이라면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압력에 짜부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삼은 게 언라이벌 식스 크로커다일이고요?”
로니가 묻고.
“응, 나 그 친구 본 적 있거든.”
아버지가 답했다.
교주의 능력이 측정 불가란 거다.
규격 외의 괴물이었다.
“사람인지, 크리쳐인지도 모른다고 하셨고.”
로니가 중얼거렸다.
두 번째 쟁점도 남았다.
내 꿈이다.
“온신은 다양한 능력을 갖췄어요. 그리고 지금 상태를 보면 아직 ‘발현 중’이라고 봅니다.”
초능 특수종의 각성이 한 번에 끝나는 사람이 있지만, 천천히 깨어나는 타입도 있다.
그게 나란 거다.
지금은 비행 능력에 예지몽까지 가져갔으나.
예지몽이, 이게 일회성인지, 지속성인지는 모른다.
한 번의 꿈으로 끝나는 특수종도 흔치 않으니.
“대대로 규격 외로구먼.”
그걸 본 동훈 삼촌이 이리 말하기도 했다.
“멸망한다. 추측하기에 시작은 세최특의 죽음이다. 여기까지는 명징하죠.”
로니는 외국인인데 한국말, 그것도 어려운 단어를 잘도 썼다.
“그럼, 우리가 할 일도 명확하군요.”
세최특의 다음 행보에 맞춰 움직이는 것.
“애들 잘 컸네.”
그걸 본 미호 이모가 중얼거렸다.
“다음 대가 밝아.”
“언라이벌 식스라는 애새끼들 봤을 때는 좀 그랬는데.”
다들 한마디씩이다.
그러니까 전대의 영웅이란 양반들이 말이다.
아버지의 친우분이자, 나는 개인적으로는 삼촌 이모 하시는 분들이다.
현존하는 특수종 최강 전력 중 일부가 여기에 다 모인 셈이긴 했다.
그리고 이들 중 머리 쓰는 거로 첫손 꼽히는 이들이 모였고.
몇 가지의 의견이 오갔고.
난 귀 기울여 듣다가 말했다.
“선공하는 법이요.”
어릴 때 아버지의 지인이신, 일호 할아버지와 가희 할머니에게 교육받곤 했다.
두 분이 가르쳐 주신 건 기본적인 용병술인데.
“너 머리가 좋네, 아빠랑 다르게.”
“얘 아빠는 몸 믿고 나대는 편이지.”
음, 날 앞에 두고 서슴없이 아버지를 까는 분들이셨지.
나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버지가 몸 믿고 막 덤비는 경향이 있으시니까.
“뭐?”
어쨌든 내가 꺼낸 말에 모두가 날 바라보기에 말했다.
“상대가 뒤돌아볼 때 해라.”
상대가 보지 못할 때, 후려치란 소리다.
“……맞는 말인데, 음.”
로니가 먼저 반응했고.
미호 이모도 동의했다.
어머니는 되물었다.
“아들. 머리 쓸 줄 모르지 않았어?”
라고.
“씁니다. 필요하면 쓰죠.”
내 입이 절로 열렸다. 아니,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건지.
“부모님을 안 닮아서 다행이구나.”
미호 이모가 말했다. 그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막 활발하게 뇌세포를 활용하는 타입은 아니시긴 하지.
“그럼?”
미랑의 입이 열렸다. 묻는 말에 난 답했다.
“상대가 세최특 하나를 원한다면 우리는 뭐, 종합 선물 세트를 주는 거지.”
예지몽이란 걸 꾸자마자 떠오른 거다.
언제나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
그걸 먼저 걸 순 없는가.
아버지가 혼자 가려고 했다면 길이 있단 소리니까.
선제공격할 수 있잖아.
아버지는 고심하지 않았다.
본래 그런 분이다.
“사람은 최대한 안 죽는 쪽으로.”
허락이 떨어졌다.
세최특, 현존하는 최강의 특수종의 말이었다.
일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됐는데.
이 모든 일의 제반 사항을 동훈 삼촌과.
“제가요?”
“노 페이스 팀 숨겨서 이 정도로 키운 수완이면 충분하지.”
기주 아저씨가 했다.
고생하라고 등을 두드려 주니, 울상이 돼서 끌려갔다.
일단 그렇게 일단락됐다고 생각하는데.
준비에 고작 사흘도 안 쓰고 움직였다.
대군이었다.
아버지가 모두를 이끌고 간 곳은 북한산 인근이었다.
그 밑에 크게 터널이 보였는데.
그 앞을 막은 팀이 있었다.
NS 소속이네.
공간 결계를 치던 이들이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보고 반갑게 인사.
사장 아들 보고도 눈인사.
결계를 해제하자, 터널 안쪽에서 휘이잉 하고 찬 바람이 들어왔다.
“게이트다.”
“생긴 게 특이하네요.”
어쩌다 보니 아버지와 어깨를 맞댄 나다.
우리 뒤로 언라이벌 식스가 다 왔는데도 내가 이 자리다.
“가시죠.”
노 페이스 팀이 이제 이 정도는 된다는 거였다.
내가 말했고.
아버지가 먼저 발을 뗐다.
* * *
블라인드 페이쓰의 주인은 제 공간을 침입한 이들을 느꼈다.
제 팔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 알듯이.
그녀는 촉각으로 알아챘고.
눈을 떴다.
“무슨 일이?”
그녀 앞에 이터의 왕, 로이더의 리더, 마이스터의 마스터가 모인 채였다.
“준비하세요. 전쟁입니다.”
교주는 말하며 생각했다.
‘한 방 먹었어.’
예상치 못한 싸움이다.
그래서 달라질 건 없었다.
준비가 끝났으니, 찬탈이라 불리는 전투는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으니.
“디재스터 급을 쓰는 걸 허락하시는 겁니까?”
이터의 왕이 물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였다.
“그러세요.”
교주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추방자의 우두머리도 전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