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2. 예지몽이건 뭔데?
왜 갑자기 비행기가 떨어지냐고.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사이, 비행기가 훙 하고 공기를 밀어내 앞으로 꿍 떨어졌다.
뻥!
바로 옆에 비스듬한 돌덩이 따위가 보여 그 뒤에 등을 붙이자.
꽝!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내가 등을 기댄 돌을 드드드드 밀어냈다.
“뭐냐.”
꿈인데, 더럽게 리얼했다. 황당해서 몸을 추스르니, 내가 기댄 돌덩이가 뭔지 보였다.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겉면에 빨간 벽돌 따위가 있는 반쯤 부서진 벽, 아니 작은 빌딩 따위가 부서져야 볼 법한 그런 벽 일부다.
이게 왜 여기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꿈에 들어와 눈을 부시게 한 빛 대신이다.
까-아아아아!
저기 하늘 위, 머리 위로 날개가 네 장 달린 괴물이 날고.
시선을 돌리자 무너진 인류의 인프라가 보였다.
부러진 소화전에 시선이 닿았고.
바로 옆에 개박살 난 빌딩도 보였다.
내연 기관이 터졌는지 불에 그슬려 검게 변색한 차량 일부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끄럭.”
거기에 바닥이 널브러진 인간, 아니 특수종이다.
머리통이 늑대의 그것과 닮았다.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날 바라봤다.
“아저씨 괜찮아요?”
“시-밤, 여자야 나.”
아, 여자구나. 너무 수인화가 강하게 되어 있어서 못 알아봤지, 뭐야.
“세상에 이게 왜 이렇게 됐대요?”
“너, 너, 뭐냐?”
음?
그렇게 물어봐도 할 말이 없는걸.
이거 진실을 밝혀도 되는 걸까.
“사실 이건 제 꿈입니다.”
“시발, 미친 새끼, 너도 아웃사이더구나.”
“전 인싸인데요?”
여자라고 자신을 밝힌 변신족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주둥이를 닫았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허리 뒤쪽을 뭔가가 관통했는지, 보기 흉한 상처가 보였다.
그것도 피가 왈칵 쏟아져서 대강 봐서 추측한 거지만.
이거야 원, 제대로 살펴보기도 힘들다. 피를 너무 흘렸고 그중 일부가 굳었다.
꿈인데 상처를 헤집으며 구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그런데 꿈치고는 진짜 현실감이 죽여주긴 했다.
홀로그램이랑 현실 증강을 섞은 VR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그런 현실감이다.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외침 따위가 들렸다.
거기에 섞인 소음도.
투두두두두!
둥! 둥! 꽝! 쩡!
“씹어 먹을 광각 결계!”
“저 개새끼들!”
“추방자를 죽여라!”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뭐지, 왜 또 갑자기 선명하게 들리냐?
묘한 기분에 내 손을 바라보자, 피부가 반투명해져 있었다.
이쯤이면 한쪽에서 크리쳐 켈베로스가 한 무더기 쏟아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완전 개꿈 오브 개꿈이잖아.
“아닌데, 그런 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옆에서 누가 속삭였다.
아니, 속삭였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닿지 않을 거리, 대략 내 걸음으로 다섯 발짝 너머에 희고 긴 머리를 가진 사람이 보였다.
뿌연 피부에 선명한 검은 눈동자.
빨간 입술까지.
어떻게 보면 섬뜩하고 어떻게 보면 매력적인 그런 외모였다.
이중성, 그래 이중적인 느낌이 드는 얼굴이다.
하늘하늘한 흰 천으로 몸을 감쌌는데.
체구는 호리호리해 보였다.
특히나 저 다리.
로우킥 한 방이면 부러질 것 같긴 한데.
“그런 거 아니야.”
어쨌든 뽀얀 얼굴의 여자애? 여자애로 추정되는 애가 말했고, 난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뭔데.”
“예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애가 사라졌고.
내 눈에 세상이 들어왔다. 머릿속으로, 뇌로, 직접 누가 들어와서 새겼다.
정보다.
세상은 한순간 망했다.
어떻게?
세최특이 죽었다. 어떻게 죽었나.
추방자 무리와 크리쳐 연합으로 이계의 한 귀퉁이에서.
결과만 보인다. 과정이 보이진 않았다.
이후, 어머니가 분노해서 싸웠다.
NS를 이끌고 인류 전체를 이끌고.
모든 홀이 닫히며 하나의 문이 생겼다.
그 문을 헬 게이트라고 불렀다.
뉴욕 상부에서 뜬 헬 게이트.
어느새 내가 그 헬 게이트 위에 있었다. 뉴욕, 다 부서져서 대도시의 흔적만 남은 곳의 위.
그곳을 향해 인류는 나아갔다. 질 수 없으므로.
“내가 무패의 크로커다일이다!”
그도 죽었다.
언라이벌 식스로 추정되는 이들도.
그리고 내가 알던 모든 이들도.
노 페이스 팀도, 이후도, 미랑도, 가족도, 친구도, 삼촌도, 이모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전부.
왜 죽었지?
묘하다. 이건 분명 꿈인데,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순전한 직감이었다.
“맞아. 그럼 안 돼.”
어디선가 목소리만 들렸다.
분명 처녀 귀신 코스프레하는 또라이가 하는 말일 터였다.
“시발, 어디냐?”
“이건 예지, 미래의 단편, 변하지 않는 미래.”
이것 봐라? 내 말을 씹네, 그려.
눈을 감고 뜬다. 뇌안을 발동한다. 아니, 안 된다.
사이오닉 에너지가, 염동력을 발동하게 해 준 그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다.
‘엿 같네.’
그리 마음먹고 밑을 보는데.
“온신아, 오지 마.”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위를, 정확히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날 보고 하는 말씀이었다.
주변이 뉴욕에서 어느새 서울로 바뀌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오지 마. 유온신, 오면 죽인다.”
어머니가 중얼거리고.
죽은 미랑의 모습이 머릿속을 헤집는 것을 끝으로.
쨍하며 꿈이 깨졌다. 말 그대로 조각나 깨졌다.
깨진 조각 사이, 난 홀로 오롯이 서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세상의 이면에 들어온 그런 기분.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그런 기분.
어릴 때 아버지가 출입을 엄금한 기어 보관소로 몰래 들어간 그런 기분.
금기를 어긴 기분이다.
그 뒤 눈을 감았다가 뜨니, 세상이 흐려졌다.
내 몸이 뒤로 밀려나 자연스럽게 눕게 됐고.
흐려진 세상의 반은 내 방이 됐고.
나머지 반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서서히 내 방의 풍경으로 채워졌다.
누운 상태에서 눈만 뜨고 일 분.
“엿 같은 꿈인데.”
그제야 혼잣말이 나왔다.
식은땀을 흠뻑 흘렸다.
이게 그냥 엿 같은 꿈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예지?
그럼, 미래에서는 모두 망하고 죽는다고.
아니, 시발.
이걸 믿으라고?
그 처녀귀신 코스프레는 뭔데.
진짜 이게 다 뭐지.
꿈을 깰 때, 차라리 눈을 깜빡이며 깼으면 꿈이겠거니 하겠는데.
이렇게 깰 수도 있는 거였나? 꿈도? 잠도?
“하.”
일단 털어 내고 생각부터 해 보자.
그냥 생각 말고.
아는 걸 정리해 보자고.
스치듯 보긴 했으나.
볼 건 다 본 것 같으니.
그럼, 여기에 단서도 있지 않겠나. 세상에 왜 그렇게 엿 같이 망했는지.
“짜증 나네.”
부모님 포함, 모두가 죽는 광경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세상에 홀로 유리된 기분, 구경꾼이 된 기분.그게 싫었다. 아버지의 그늘에 갇힌 나는 그런 삶을 살 것 같았다.
최악의 트라우마를 콕 찔린 기분이 들었다.
이미 본 걸 지울 순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잊고 넘겨야지 뭐.
이미 한번 해 본 일 아닌가, 세최특의 아들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힐 때.
그리 대강 넘긴 뒤, 생각했다.
부서진 건물, 뉴욕과 서울에 오간 시차.
처음 오지 말라고 말하던 어머니와 이후 오면 죽이겠다는 어머니의 복장, 분명 달랐다.
그러니까 장소가 변한 게 아니라 문이 하나 더 열린 거다.
뉴욕은 어땠지? 서울은 어땠지?
주변 모든 건 어땠지?
아웃사이더, 추방자.
‘크리쳐와 함께.’
그들이 이세계로 넘어왔다. 하지만 새로운 홀이 열리지 않는 이상, 그게 가능한가.
아니 가능하지.
어디 한군데 탈탈 털리면 그쪽에서 나올 순 있지.
인류가 그런 대비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만약 상대가 그보다 더한 전력을 뿜어내면?
예상치 못한 일격이라면?
팽팽 머리가 돌아갔다.
아직 해가 쨍쨍한 낮이었다. 하지만 난 홀로 검고 어두운 쪽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숨었던 그때의 그 방.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
굳이 자고 일어나야 하나?
먹는 거 귀찮다. 움직이기 귀찮다.
그 시절, 정말 뭐든 다 하기 싫어서 생각만 했다. 머리만 굴렸다.
만약 내가 불멸자였다면 뭐가 달랐을까.
아니, 내가 변신족이었다면 어땠을까?
주문에 관한 체질이라도 물려받아야 했는데.
아쉽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무뎌졌다.
그때의 나처럼 생각을 거듭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
“아빠는 왜 따로 있었지?”
“뭐?”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마침 그 타이밍에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엄마랑 매일 붙어 다니잖아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은 함께였다.
어떤 위험한 곳에 가더라도 페어를 이루고 다니시는 분들이다.
어머니의 말로는 아버지를 혼자 두면 바람이 난다고 하지만.
금실이 좋아 저러는 거라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 다 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혼자 이계에 가서 죽었나.
“혹시 혼자 어디 다녀올 일정 있어요?”
그 말에 아버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가 돌아왔다.
“음?”
“그, 제가 초능 특수종인데, 미래 예지를 본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아버지 뒤에서 어머니도 고개를 내밀었다.
“미래는 가변성이다. 초능 특수종이 됐다고 멍청해진 건 아니지, 아들? 혹시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헛소리 뱉는 거니?”
둘 다 의심할 법한 소리긴 한데.
“아니, 근데 되게 찝찝하긴 하네.”
어머니가 말을 잇고.
“얘기나 들어 보자고.”
아버지가 팔짱을 끼며 이어 말했다. 문틀에 기댄 채다. 아버지는 언제나 여유가 넘쳤다. 그게 가진 무력 덕분인지, 아니면 본래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해 봐라.”
“혼자 일정 잡으신 거 있습니까?”
그렇게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 * *
아들의 물음에 광익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혼자 간다고 하면 혜민이 난리 칠 게 분명해서 생각만 했는데.
오롯이 생각만 했으니, 누가 알 수는 없다.
어떤 마인드 리더도 자기 머릿속을 읽을 순 없으니까. 훔쳐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니.
괜히 세최특이자, 이 시대 최후의 특수종이 아니란 거다.
“그런 거 없는데.”
혜민이 말하고, 광익은 턱을 쓰다듬는 자세 그대로 답했다.
“있다면?”
“가지 마세요.”
대뜸?
“이유는?”
어느새 아버지가 아니라 세최특이자, NS의 오너로서 묻고 있었다.
“가면 죽습니다.”
“어떻게?”
“몰라요.”
이건 뭘까. 예지를 ‘죽는다’ 세 글자만 인식하는 경우는 없다.
어떻게든 장면을 머릿속에 쑤셔 박기 마련인데.
아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자니, 모른단다.
거짓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알려 주세요. 다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생각 중에 대뜸 아들이 말했다. 그리 말하는 아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타올랐고 진지했다.
이건 또 뭔가.
아들이 어느새 이렇게 컸나.
한 번쯤은 맡겨도 될까?
하지만 전부 말하면 안 될 텐데.
“너!”
그때, 혜민이 폭발했다.
“혼자 가려고 했지!”
눈치는 귀신이네.
광익은 생각하며 혜민을 제압했다. 몇 방 맞아 주고 손을 잡고 틀어 백 허그를 해 버렸다.
“위험하다고 나 빼놓고 가려고 한 거지? 이거 놔라.”
“기다려 봐, 아들 얘기 먼저 들어 보자고.”
광익의 바로 앞, 온신의 눈은 아직 빛나고 있었다.
* * *
이게 예지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아버지만 살리면 뭔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나.
“아버지 이름으로 언라이벌 식스든 뭐든 다 모을 수 있죠? 추방자 잡는 헌터도?”
끄덕.
“다 모으시죠.”
“왜?”
“혼자서 가지 말고 다 같이 가시죠.”
“음?”
“만약 적이 함정을 팠는데 거기로 혼자가 아니라 떡하니 다 같이 가면 어떨까요?”
“다 같이 죽겠지. 그런 곳이니까.”
아버지는 냉소적이었다. 이거 설득이 안 먹히겠는데.
그런데 당장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고.
난 애초에 이런 쪽으로 머리를 쓰는 타입도 아닌데.
그럼 어쩌겠나.
“설명해 주세요. 왜 다 죽어요? 언라이벌 식스 무시 발언은 잘 들었고, 거기가 어딘지 말해 보시죠.”
노 페이스 팀원 대하듯 하는 수밖에.
내가 알아야 뭘 할 거 아닌가.
아버지는 웃음기 하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가려고 했던 곳, 그곳의 위험성.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그러니까 혼자 가서 작정하고 싸우면 이길 거 같은데, 그 확률이 100%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는 거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아버지가 누구인가, 현시대의 질서를 성립한 위인이다. 당장 ‘세최특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땠을까?’라는 책도 있다.
비관적 미래를 그린 암울한 소설 같은 거였다.
그걸 수필집이라고 내는 미친 새끼가 있다는 것에 표현의 자유의 대단함을 느낄 뿐.
그런 아버지가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무척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제 목을 긁고 어머니를 푹 끌어안고 말하고 있으니.
추방자 무리의 왕.
진정한 그들을 이끄는 특수종 때문이라는데.
난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걔 생긴 게 좀 묘한가요? 흰색 천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그제야 아버지 눈빛도 변했다.
예지란 미래를 보는 눈.
염병, 하다 하다 인류 멸망까지 보는 눈이 생겼다.
초능이 풍년일세.
그리고 말하면서 깨달은 건데, 아예 새로운 능력도 생겼다.
이건 뭐 어디에 쓸까 싶지만. 어딘가에는 쓰겠지, 뭐.
“우리 진지하게 작전 구상을 해 봐야겠는데. 혜민아, 다 들어오라고 해. 최미남까지.”
“응.”
“그리고 너도 네 팀 모아라.”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전화를 들었다.
“기주 아저씨? 팀 전체 소집해 주세요.”
내 꿈에서 시작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미랑이가 던진 실연의 상처를 회복하기도 전, 난 새로운 일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