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0. 내 새끼 대신, 이 새끼.
크리쳐의 찬탈.
특수종 세상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학자 수십이 입을 모아 크리쳐의 위험성을 말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반인에게는 그리 큰 위협이 아니었어도.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수틀리면 다시 게이트가 열리고 인베이더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크리쳐도 뭉쳐서 병력을 꾸릴 수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제2의 인베이더 사태가 되지 않는다고 어찌 자신하십니까.”
고작 이십 년, 인베이더와 블랙홀의 공포가 아직 인류의 뇌리에 남은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역사라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부족해, 과거가 된 시간이기에.
“이 일은 위험을 알리는 그런 신호탄이 되, 네? 뭐라고요?”
이계의 위험성에 대해 한창 떠들던 학자가 제 귀에 떠들던 조교의 말에 고개를 팩 돌렸다.
네모나고 긴 테이블에 앉은 학자만 여럿이다.
그들의 눈이 말을 하던 이와 조교의 얼굴을 향했다.
조교는 주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속삭이기 바빴다.
“뭐?”
속닥속닥.
크리쳐의 찬탈은 인류의 위기라는 것, 조금 전까지 학자끼리 나누던 이야기가 대부분 이와 같은 내용이다.
그러던 중 조교의 속닥거림을 보며 그들은 새로운 위험을 감지했다.
더 큰 일이 났구나.
아찔함이 전신을 짓눌렀다.
늙은 박사 한 명은 오줌이 마려웠다.
조교에게 한참 귀 기울이던 학장이 입을 열었다.
“공격할 수단이 있으면 뭐 합니까, 적의 위치조차 모르는데, 몰랐는데, 그랬는데.”
학장이 갑자기 말끝을 흐린다.
주장의 힘이 옅어진다. 그럴 만했다.
들려온 소식은 연신 적을 박살 냈다는 말뿐이었으니까.
“일부 특수종 팀이 이계에 진입해 크리쳐 집결지를 탐색 후, 찾아내서 부수고 있답니다.”
“……네?”
“어떻게요?”
“말이 됩니까?”
탁월한 불멸자 팀도 크리쳐가 집결지를 못 찾아서 때리는 대로 맞고만 있었는데.
아니, 우연히 몇 군데는 찾았지만, 이 개 같은 크리쳐들은 인류를 공격할 때가 아니면 점조직이라도 되는 것처럼 흩어져 있었다.
하나를 부쉈다고 끝이 아니란 거다.
그러니까 지금 저 말이 현실이 되려면 크리쳐가 모인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도라도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추적이 가능한 인재가 있던지.
“나도 모르죠.”
학장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럴 만했다.
그들이 위기라고 생각했던 크리쳐의 찬탈이 끝나 가는 중이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가 그랬답니까?”
“노 페이스 팀이랍니다.”
그들이 있었다.
* * *
검은 황무지와 비슷한 상황에 돌입한 땅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작정하고 움직여야지 뭘.
난 그렇게 했다.
다친 사람이나 지친 사람은 빼고 새로운 팀원으로 교체하고.
“나도 싸우고 싶다!”
남은 동기나 선후배가 연신 그리 말하고 있었다.
다들 피가 끓나 보다.
이동하는 사이, 도라엘 선배와 추수미 선배도 합류했다.
“우리 없는 사이 재미있게 놀았다며?”
합류한 도라엘 선배의 말이다.
“그렇게 됐네요.”
로니가 받아 주며 둘이 속닥이는 걸 보고, 난 기주 아저씨를 바라봤다.
이동 수단이 필요하고.
그걸 구하려면 누군가의 발에는 땀이 나야 하고.
그 누군가는 남기주 아저씨가 되어야 하고.
이 모든 걸 눈빛 한 번으로 얘기하니.
“헬기로는 안 되겠다.”
기주 아저씨의 입이 열렸다.
헬기로는 부담스러운 인원이긴 했다. 서른 명쯤 됐으니까.
“같이 다니자.”
거기에 안 그래도 필요한 전력이 붙었다.
무패의 크로커다일이다.
“그러시죠.”
검은 황무지 내부로 진입한 크로커다일 팀은 다섯이었지만, 이동 수단을 기다리는 사이 이쪽도 인원이 늘었다.
스무 명쯤 된 거다.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기주 아저씨 수완이 좋다고 해서 이만한 인원을 나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러자 유일 부대의 강명찬이란 사람이 나섰다.
“그건, 우리가 해결해 주지.”
검은 황무지 내부에서 있었던 일이 그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긴 했던 모양이다.
무척 적극적이었다.
그리 구한 이동 수단.
VTOL,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신형 비행기다.
“헬기보다 다섯 배는 빠를 거다.”
최신형 비행기였다.
기다려서 뭐 하나, 곧바로 타고 움직였다.
다음 목적지는 전라도 전주였다.
그곳에 사이오닉 협회 소유의 이계가 있는데.
현시점에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곳이라고 했던가.
이계 명칭은 칼날산.
평지는 거의 없고 삐죽삐죽한 강철 칼날 따위가 산을 이루는 곳.
나무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여긴 전부 삐죽하고 날카롭다.
그래서 문제냐고?
그럴 리가.
이계 진입한 뒤, 적응까지 삼십 분.
놀라운 건 크로커다일 팀도 적응 시간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거다.
“언라이벌 식스란 별명이 괜히 붙었겠냐?”
보고 놀라자, 크로커다일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뇌안으로 측정 불가가 뜨는 사람이다.
이후 난 부스터를 발동했다.
과하게 쓰면 곧바로 침대행이지만, 지금이야 뒤를 받쳐 주는 사람도 많고.
비행기 내부에 의료 시설이 있는 걸 봤다.
강명찬이란 군인이 의사까지 딸려 줬다. 의사야, 뭐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긴 했다만.
팀원으로 이삭 형도 붙었으니까.
“난 이제까지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 제 멘탈 치유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삭 형의 자신감을 그리 채워 주며 데려왔다.
“……그랬냐.”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밀어 버려.”
불도저를 이계까지 끌고 올 수 없다면 특수종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
칼날산에 숨어서 덤비는 놈들은 어디서 서유기라도 탐독했는지, 머리에 이상한 띠를 두른 전신 쇳덩이 원숭이다.
쇳덩이 주제에 날래서 잡기 어려운 놈들이 칼날산에 숨어서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쇳덩이 돌을 던져 대니.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롭나.
그래서 염동력자 수십 명이 모여 칼날산맥을 밀어 버렸다.
조금 과한 면이 없긴 했다만.
“나머지는.”
“알아서 하마.”
크로커다일이 낄낄 웃으며 크리쳐를 정리했다.
국내 이계를 이런 방식으로 네 개를 정리했다.
멈출 때마다 비행기 급유를 하고 다음에는 국외로 나섰다.
여기저기 요청이 들어왔다고 기주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서 정리하라고 할까?”
“아니요, 가죠. 뭐.”
능력이 되니, 좀 나서서 하면 어떤가.
딱히 위험도 없고.
“삼촌, 저 휴가 좀 길게 줘야 할 것 같아요. 당장 필리핀 쪽에 일이 있다고 해서.”
“그래라.”
중봉 삼촌은 시원시원했다.
그렇게 동남아 일대와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을 찍고 돌아오니.
“노 페이스 티이이임!”
국위 선양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우리 팀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거다.
그리고 난 카메라와 사람이 잔뜩 모인 곳, 그 한가운데에 있는 단상 위에 올랐다.
“힘들어서 이제 좀 쉬러 가렵니다.”
진심이었다. 이 양반들아 아무리 환호가 좋아도 우리 피로도도 생각해 줘야지.
물론 그런 것치고는 전신에 상처 하나 없긴 하다만.
“아직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으십니까?”
날 향한 마이크와 물음, 사방에서 쏟아지는 홀로그램 영사기들.
난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가면 아직 쓰고 있었네.
너무 편해서 쓴 줄도 몰랐다.
그대로 홀로그램 가면 송출 에너지를 차단.
그러자 내 얼굴이 드러났다.
“……어?”
이제 얼굴을 가려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은 것 같으니.
사실 알 사람은 다 아는 것도 같고.
애초에 길게 숨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제 이름은 유온신, 노 페이스 팀의 리더입니다.”
그 한마디로 좌중을 침묵하게 한 뒤.
“제 소원은 미랑이랑 결혼해서 오순도순 사는 겁니다.”
목표를 밝히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 버렸다.
안에 타자, 기다리던 미랑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짓이야?”
그녀가 묻는다.
무슨 짓은, 이 정도 했으면 이제 허락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지.
기남이 삼촌도 더는 반대 못 할걸.
마리 고모는 애초에 반대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전 세계가 주목할 때 말해야 했다.
이 여자가 내 여자라고. 찜했다고.
미랑의 기분이 조금 틀어진 것 같지만.
이건 나중에 수습하면 된다.
“하여간 미친놈은 달라.”
크로커다일이 깔깔 웃었고.
로니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 크리쳐 대군의 반격은 팀 하나가 미친 짓을 해서 때려 막아 버렸다.
물론, 전부 우리 팀이 막은 건 아니다.
언라이벌 식스가 곳곳에서 활약했고.
NS도 나섰으며, 올드포스, 엑스큐라시, 협회, 연맹까지.
전부가 노력한 일이나.
주목은 우리가 제일 받았다.
그럴 만했다.
우리는 언라이벌 식스 팀 다섯 개를 합친 것보다 일을 더 했거든.
“재밌었다.”
크로커다일은 계속 낄낄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또 봐요.”
“그러자고.”
그리 헤어져 돌아가는 길, 기주 아저씨에게 전화가 연신 울렸다.
“야아, 야아,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진짜 우는 것 같았다.
“왜요?”
“네 아빠나 엄마도 이제 아는 거 아니냐, 그럼 나 죽어.”
“안 죽어요.”
“뭐?”
“죽도록 패도 죽이진 않아요.”
“……뭐, 이 새끼야?”
진심인데.
그리고 아마 별말 없으실 거다.
중봉이 삼촌이 알았으면 이미 알고 계실 테니까.
알 사람은 다 아는 것 같더라니까.
“레베카.”
“네.”
손목을 통해 울리는 목소리, 나의 친구인 AI.
“부모님한테 언제 말했냐?”
레베카는 AI, 주인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으나.
드물게도 레베카는 침묵을 고수했다.
“포맷해서 팔아 버릴 거야.”
“어쩔 수 없었어요. 마스터, 이게 프로그래밍된 게 있단 말이에요.”
그래, 누굴 탓하겠나.
힘없는 AI를 괴롭히진 말아야지.
* * *
“와, 저건 나도 어떻게 못 하겠는데?”
다른 이들이 한창 크리쳐 군대와 싸울 때, 광익은 아내와 별개의 작전을 수립해 움직였다.
“저건 주문으로도 감당이 안 돼.”
혜민도 말을 덧붙였다.
검은 땅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땅도, 주변도 전부 까맣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땅.
이계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곳.
중력도 부족하고 산소도 부족해 움직이기 까다로운 곳에 ‘그게’ 있었다.
크리쳐가 난리를 피운 이유.
추방자가 이리 뭉쳐서 싸울 수 있는 이유다.
‘어지간하면 처리하고 싶긴 한데.’
광익은 생각하며 머리를 긁었다.
이건 뭐랄까, 특수종의 카운터 펀치 같은 거였다.
특히나 혈통을 진하게 이어받을수록 불리할 것이다.
‘초능도 가까이 가다간 뒈질 것 같고.’
광익은 몇 개의 대안을 떠올렸다.
가능할 것도 같긴 한데.
반쯤 목숨을 걸어야 하긴 했다.
“이상한 거 생각하지?”
눈치가 비상한 혜민이 옆구리를 꼬집는다.
전투 슈트를 입고 있지 않은 덕에 그녀의 슈트 손가락이 옆구리를 세차게 비틀 수 있었다.
“야, 아파.”
“강체가 아프긴.”
변신체, 흑호로 사방을 둘러본 광익은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제대로 하려면 전력 보존도 해야 했고.
“근데 우리 아들 아무 일도 없겠지?”
“별걱정을.”
부모 마음이란 거다.
둘은 온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썼다.
당연히 노 페이스 팀도 알았다.
처음에는 혜민의 눈이 뒤집히긴 했다.
“그걸 왜!”
“하지 말라고 해야지!”
“이 새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 데려올 거야!”
그걸 광익이 말렸다.
부모 품을 떠나 날고 싶다고 하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말리고 싶진 않았다.
다만, 너무 위험하지만 않게 조절하려고 알아보기만 했는데.
‘이거 참.’
아들 새끼가 숫제 괴물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 않나.
그럴 만도 했다.
탁월한, 정말 탁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초능 능력자였으니.
특히나 월광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강체를 뚫겠어.’
작정하면 그럴 것이다.
새삼 광익은 부모님이 떠올랐다.
자기가 특수종 회사에 들어가고 난리를 치는 사이,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하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놔둘 수밖에 없는.
“괜히 부모님께 미안해지네.”
“아우, 우리 아들이잖아.”
혜민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한때는 참으로 아파 다루기 힘든 아들이었으나.
어느새 철이 들어 멀쩡해진 아들이 되었고.
이제는 특수종 세상에 자신만큼이나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기는 중이었다.
그게 퍽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이번에 돌아가면 술이나 한잔해야겠네.’
광익은 생각하며 혜민을 달래 주었다.
어쨌든 지금은.
“가자.”
문제를 남겨 둔 채로 돌아설 차례다. 저걸 죽이거나 상대할 방법은 생각 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 * *
이런저런 일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
“야, 너.”
유신이 날 반겼다.
“밥이나 줘.”
“일 없어, 새캬.”
말만 그러고 잘만 챙겨 주긴 했다.
어깻살을 수비드 방식으로 익혀 간장에 조린 장조림이 메인이었다.
맛있었다.
그렇게 이틀쯤 사관학교에서 휴식을 핑계로 개겼다.
우습게도 이틀 동안 부모님도 기남이 삼촌도 누구도 날 찾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뒤.
“누구보다 빨랐구나.”
중봉 삼촌이 전교생을 모은 뒤 날 불렀다.
기다리던 일.
처음 노 페이스 팀을 만든 이유.
내가 입학한 이유이자 목표다.
홀로그램으로 송출된 단상 위다.
“졸업을 축하한다.”
삼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학년에 입성하자마자 조기 졸업.
이제껏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최고의 아웃풋이었다.
졸업 파티가 있었고.
우리는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이번 전투로 죽은 사람이 여럿이었으나.
교내에 희생자는 없었다.
이게 운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반박하겠다.
위험을 감지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짠 사람 덕분이지.
“덕분이다.”
로니에게 술을 건네며 말하자.
“미랑 선배랑 결혼할 거야?”
“응?”
“확실해?”
“응?”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뭐?”
“나는 어때?”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나, 기다리던 질문이기도 했기에.
“미안하다.”
적당히 넘겨야 했다.
로니는 이때도 웃었다. 참 속이 넓은 친구다.
그리고 친구로 남아 주기도 했다.
어색한 공기는 없다.
난 졸업 파티가 끝난 직후, 집이 아니라 미랑의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장인어른이라 부를 순간이 왔으니.
“이, 이, 이.”
기남이 삼촌은 날 보더니 얼마나 기쁜지 얼굴이 빨개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날 반겨 줬다.
“너무 반갑죠?”
그래서 물으니.
“이 새끼! 이 새끼!”
내 새끼 대신, 이 새끼를 찾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