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78화 (478/488)

외전 69. 같이 뺑이 좀 칩시다.

스펠버그가 죽으면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가.미랑은 이기는 싸움을 그렸다.

거기에 자신의 역할도 있었다.

스펠버그를 죽이자, 검은 야수 무리의 전신을 가렸던 광각필드가 걷혔다.

즉, 굳이 접근전을 강요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음 액션을 취하기 직전이다.

“널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농담임이 분명한 온신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누굴 걱정하는 건가?”

그 말에 이후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말했다.

저게 다른 사람에게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말에 담긴 뜻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고.

다만, 그 말에 온신은 달리 반응하긴 했다.

“내가 내 미래의 아내를 걱정하는데?”

이후의 말을 도발로 받아들였다.

이후는 눈치를 어머니 뱃속에 두고 태어난 놈인지라.

그걸 또 모르고.

“아니다. 안 해도 된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했지만.

그걸 들은 온신은 이후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없어지는 온신은 당장 싸우고 싶다는 거니까.

미랑은 그 또한 잘 알았다.

그래서 이 둘을 지켜보는 게 재밌는 거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미랑은 온신을 달랬다.

애초에 여기서 온신이 빠지면 전술 자체가 무너지는 판이다.

그걸 자신도 알고 온신도 안다.

“아오, 진짜.”

온신이 물러나고.

광각필드가 벗겨지기 전까지 이후가 몰아치는 라인에서 버티던 미랑이 발을 멈췄다.

카오!

날랜 곰을 닮은 검은 야수 무리의 한가운데, 사방에서 손톱과 날카로운 송곳니와 더불어 노린내를 풍기는 야수 무리가 쏟아졌다.

아무리 잘 만든 전투 슈트라고 해도 모든 충격을 다 해소할 순 없는 법.

그러니까 본래라면 위험한 순간이지만.

‘타이밍.’

미랑은 머릿속에서 시간을 쟀다.

타고난 예민함을 갖춘 불멸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 읽고 예측한 타이밍 안쪽이다.

물론 타이밍이 어긋났다면 더 버틸 수단도 충분했고.

퉁.

슈트의 양쪽 허벅지 바깥, 홀스터가 열리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들어간 미랑의 손에 총기 손잡이가 잡혔다.

쭉 뽑아내자, 긴 총신이 드러났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형태의 총기, 리볼버다.

보통보다 긴 총신은 은빛이었고, 총신을 따라 세로로 길게 그어진 금빛 선이 검은 황무지를 비추는 햇볕을 반사했다.

반짝거리는 리볼버의 총구가 좌우를 겨눈다.

미랑은 양팔을 벌린 채로 숨을 들이마시며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1초 내외의 짧은 시간.

달려드는 검은 야수의 위치를 인지한 미랑이 손에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둥!

겉보기만 리볼버였다.

총구 앞, 에너지가 뭉치더니 빛무리를 쏟아 냈다.

광학 병기의 위용이 어김없이 드러나기 시작.

우르르 몰려오던 검은 야수 십수 마리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 안에서 피와 내장 따위가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당연히도 몸에 구멍이 서너 개씩 뚫렸으니, 검은 야수의 생명력이 아무리 질기다고 해도 살 순 없었다.

퍽퍽 쓰러지는 놈들 가운데, 미랑은 쉬지 않았다.

연신 총탄을 소모했고.

곧 리볼버의 실린더를 비웠다.

좌르륵하고 탄환 형태의 에너지 저장고가 우수수 떨어졌다.

탄환 형태 저장고 하나에 레이저 탄 여섯 발이다.

실린더를 비운 미랑은 능숙하게 새로운 탄을 채워 넣었다.

스피드 로더를 활용해 모든 걸 몇 초 내로 뚝딱 끝났다.

미랑은 다시금 야수를 학살하기 시작했고.

그 타이밍에 끔찍한 외침이 터진 거다.

크허허허헝!

듣자마자 오금이 저리는, 전신 근육이 수축이 되며 바짝 긴장하게 하는 그런 괴성이다.

유니크 급, 블랙&화이트로 통칭하는 무채색 등급의 크리쳐.

훈련받은 미랑도 움찔했다.

거리감이 꽤 있는 편인데도 이런데, 그 타깃이 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미랑의 시선이 위로 솟았다. 하늘 위에 떠서 스펠버그를 신나게 학살하던 온신과 구스타프다.

그들 머리 위로 인간보다 세 배는 큰 덩치가 빛을 등지며 떠오른 것도 보였다.

미랑의 예민한 감각이 온신이 반으로 쪼개진 장면을 한발 앞서 보여 줬다.

* * *

뻥!

바닥을 찬 유니크 몬스터가 하늘을 난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날 향해 냅다 점프한 거다.

괴성에 인지가 녹아들어, 불알이 바짝 쪼그라들었나.

전신 근육이 굳었나?

아니, 그럴 일은 없다.

어릴 때부터 쟤보다 무서운 살기에 익숙해졌기에.

“끕.”

반면 구스타프는 멈췄다.

몇 마리 남지 않은 스펠버그를 짓누르던 압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부스터를 껐다 켜며 오지염동탄을 날리던 난 곧바로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위에서 밑으로 손에 든 걸 휘두르는 놈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손에 든 게 내리꽂힌다.

도끼? 그딴 게 보였던 것도 같았다.

내 동체 시력으로는 놈이 휘두르는 게 뭔지 정확히 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빨랐다.

하지만 이게 무슨 경우인지.

시간을 쪼갠 틈.

난 괴물과 눈을 마주쳤다.

새카만 눈깔과 붉은자위가 선명하다.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우리 둘 사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은 안 하진 않았지만.

날고 있기에 자연히 얻어 낸 시간이다. 난 그걸 십분 활용해 허공에 염력을 짜깁기해 전용 방어막을 생성했다.

은하수 필드와 맞먹는 실뜨기 염동 방패다.

꽈-앙!

폭음이 터졌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드드드드득.

방벽을 밀어내며 도끼날이 그 위를 긁어내지만.

내가 실험해 본바, 레이저 사출 병기도 막는 강도에.

괴력을 지닌 변신족도 못 뚫어 내는 방어막이기에.

“만나서 반갑다. 뒤통수는 괜찮니?”

이리 말을 걸 틈도 있었다.

방어막과 도끼를 사이에 둔 친근한 인사다.

공중에 뜬 채로 버티던 놈의 몸이 하락했다.

하늘을 나는 재주는 없어 보였다.

휘릭 하고 제비를 돌 듯 몸을 돌려 균형을 잡은 놈이 쿵 하고 두 발로 바닥에 내려섰다.

황무지 흙바닥의 검은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가 내려앉았다.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자식이로다.

그사이 야수 무리가 반이 줄었다.

와, 아무리 소수 정예라지만, 대차게 잘 싸우는군.

나도 밑으로 내려왔다.

그때까지 발발 떨던 구스타프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런 걸 달고 싸울 순 없는 노릇이다.

“너, 왜 괜찮아?”

달달 떨며 구스타프가 물었다.

“난, 뭐.”

익숙하다니까.

손을 떨어 대는 구스타프가 곧 자세를 바로 했다.

“후우, 후우.”

라마즈 호흡법으로 대강 마음도 추스르는 중이고.

꽝꽝!

저 뒤로 새로 사귄 변신족 친구도 폭음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야, 너!”

크로커다일, 차유환이다.

근데 저 양반은 몇 살이나 됐을까.

겉보기에는 어려 보이는데.

“이 새끼, 난놈이네.”

말투를 들어 보면 삼십 대는 넘은 것 같기도 하고.

“너 죽으면 세최특한테 뭐라고 말을 전해야 하나 고민했다.”

“설마요.”

대강 답했다.

크헝!

미간에 흰 털이 난 검은 야수가 또 하울링을 터트렸고.

나와 크로커다일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저거부터 처리해야 할 듯한데.”

“그건 그렇지.”

본래라면 유니크급 몬스터가 어떤 위용을 뽐내는가.

한때, 그러니까 과거 인베이더가 출몰하던 시절에는 거의 재앙급 괴물이라고 했지만.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

크리쳐의 시대가 되었고 그들을 상대하고 죽이는 법을 인간은 너무도 많이 익혔고 개발했고 적용했으니.

그리고 그 모든 선두에 언라이벌 식스가 있었다.

“가즈아!”

나이를 증명하는 기합과 함께 크로커다일이 발을 떼고.

이후가 그 외침에 반응.

나와 이후, 크로커다일, 검은 늑대까지 넷이나 단숨에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상황이 웃긴 게.넷 다 유니크 몬스터 하나쯤은 상대할 법한 이들이란 거다.

그런 이들 넷이 뭉쳤으니.

퍽! 빡! 쩍!

“찢어져라.”

“터져라.”

“깨져라.”

싸움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가 선두로 놈이 날린 도끼를 주먹으로 후려쳐 튕겨 내고.

어느새 놈의 뒤에서 나타난 흑표범의 초고온 손톱이 놈의 등을 찢었다.

부부북!

“꺽!”

기묘한 비명과 함께 검은 야수가 휘두른 주먹은 크로커다일이 받아 냈다.

손바닥으로 주먹을 받아 내는데,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다.

충격 완화 장치라도 달린 몸뚱인가.

그러자 야수가 본능에 따라 하울링을 터트렸고.

귀가 아팠다.

이후 내가 염동력을 활용, 실험의 장에 진입했다.

찢어도 보고 터트려도 보고 깨도 봤는데.

가장 효율적인 건 역시 염동나선탄이었다.

순간 부스터로 모은 에너지를 뭉친다. 순간적이지만, 측정 불가급으로 모인 에너지를 장옥을 보며 익힌 한점에 모으고.

쏴 버리면 될 일이다.

이름하여 뇌전 염동나선탄.

이름이 좀 길어서 뇌전 나선탄이라고 부르는 걸 적의 머리통에 먹여 줬다.

생명체 형태의 크리쳐는 머리통이 터지면 죽는다.

당연했다.

그렇게 죽였다.

퍽 하고 수박 터지듯 피와 뇌수가 튀고 검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쉽네.”

구경하던 미랑이 말했고.

“그러게요.”

같이 보던 장옥이 덧붙였으며.

다가온 둘을 힐끗 보는 사이, 크로커다일 팀원들도 하나둘 곁으로 붙었다.

“이제 돌아가면 되는 겁니까?”

“몸이 덜 풀렸는데?”

난 죽은 유니크급 크리쳐를 두고 크로커다일을 바라봤다.

이 기회에 여길 정리하고 싶은데.

그러면 소수 정예 팀 하나로 움직이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물며 여기 드러누운 놈, 유니크급 몬스터 아닌가.

이런 놈이 몇이나 더 있을까.

최소 한두 마리는 더 있겠지?

그럼, 지금 얘를 해치우는 데 얼마나 걸렸지?

십 분?

효율적이다.

“장옥아, 피크 몇 개 남았냐?”

“서른 개쯤요?”

쟤는 저걸 왜 서른 개씩 들고 다니는 걸까.

슬쩍 보니까 일반 제품도 아니고 특수강으로 제조한 거던데, 손에 익으니 던지기 좋아서 그런가.

하여간 제 냄새가 묻은 피크 서른 개다.

“한 마리 붙여 놨지?”

유니크 몬스터가 죽자 남은 놈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한 놈에게 피크를 꽂아 뒀냐는 질문이다.

“네, 뭐, 혹시 몰라서.”

맹해 보이는 것과 달리 장옥은 머리 회전이 빠르다.

음, 고개를 끄덕인 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크로커다일에게 물었다.

“같이 뺑이 좀 칩시다.”

제안이자, 부탁이었고 유혹이었다.

솔직히 이거 재밌었잖아.

희열이 있었잖아.

“너, 마음에 드는데?”

과격한 돌격을 사랑하는 언라이벌 식스는 그리 합류했고.

그날 우리 팀은 검은 황무지를 평정했다.

만난 크리쳐 무리만 열여섯 개.

더럽게도 많더라.

남은 놈들이 또 규합해서 올 순 있겠지만.

이제 그리 위협은 안 될 것이다.

스펠버그와 이레귤러로 보이는 크리쳐는 보는 족족 죽이고 왔으니.

그렇게 전신에 피 칠갑하고 황무지 게이트로 돌아오니.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하는 일을 전부 알려 줄 필요는 없지만.

외부 작전을 나간 셈이니, 미랑이 전부 보고했고.

그 보고를 들은 NS 소속 지휘관은 남은 이들에게 우리의 활약을 전부 밝혀 버렸다.

한 번의 전투로 떨어진 사기를 단숨에 끌어 올리려는 목적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자기 자신도 감탄했다는 거였다.

“진짜, 팬이 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이게 날 만난 지휘관의 말이었으니까.

우어어어!

“사랑해요. 노 페이스 팀!”

괴성의 변신족이 외치고.

“안 돼, 난 임자 있어!”

그 외침을 내가 받아쳤다.

신이 난 그들을 보며 난 바깥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다.

단숨에 전장을 뒤엎어, 전장을 뒤집은 팀.

그 중심에 본래라면 언라이벌 식스가 있어야 했을 테지만.

“양보하마. 이번에는 네가 한 게 맞지.”

크로커다일이 깔끔하게 양보.

대규모 함성의 주인공이 된 난 그대로 게이트를 나갔다.

“여긴 이겼지만.”

그리고 기다리던 기주 아저씨께 들은 소식이다.

검은 황무지 외에 세차게 깨진 곳이 많다는 거다.

놈들은 이계를 제집 삼아 덤비는 데 여기는 방어를 최우선으로 삼으니.

“다른 곳에 다리 좀 놔줘요.”

“응?”

“노 페이스 팀이 간다고.”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고.

우리 팀은 그게 가능한 팀이었다.

어떤 곳을 가든 몇 시간 이내로 적응하며.

장옥을 통해 한 번의 전투로 적의 본거지를 메뚜기 뛰듯 뛰어 잡아낼 수 있다.

“돈도 두둑이 받고, 명성도 두둑이 받아 냅시다.”

이제야 보였다.

조기 졸업이.

또한 미랑과 함께하는 미래의 삶도.

“지친 애들 놔두고 교체해.”

미랑한테 말했다. 어느새 이런 지시가 자연스러워졌기에.

“네.”

미랑이 대외적으로 리더를 존중하는 답을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짜릿함을 느꼈다.

미랑에게 이런저런 코스튬을 입혀 보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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