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7. 그렇다고
“열둘? 그거로 막았다고?”
언라이벌 식스.
상위 여섯 개 팀 중 한 곳의 리더가 물었다.
하던 일을 마친 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전장이라고 판단되어 온 곳이 검은 황무지였다.
그리 도착해 피해 보고를 듣는데, 의외로 적다. 아니, A-10 지역은 포기했다며.
그런데 왜 사망자가 고작 열둘이야.
“노 페이스 팀?”
간이로 세워 둔 천막 밑에 또 간이 의자에 앉은 채로 홀로그램 전략 지도를 보며 하는 말이다.
본래 이곳의 지휘관으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NS에서 파견 나온 작전 지휘관이다.
“네, 그 팀입니다. 최근에 급부상한.”
빈말이 아니다. 지휘관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A-10 구역이 무너졌다면 그곳에서 시작된 균열이 전체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거길 막아서 다 살았지.’
노 페이스 팀이 아니어도 전부 죽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막긴 했을 것이나.
사망자 숫자가 열둘이 아니라 백이십이 될 확률이 높았겠지.
“인상적인데.”
언라이벌 식스, 차세대 최고라는 여섯 중 하나다.
무패의 크로커다일, 차유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 ‘이상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검은 황무지만 전장이 아니란 거다.
크리쳐의 찬탈은 전 세계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이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유환은 올드 포스의 요청으로 막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 처리하고 급히 돌아온 길이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좀 늦긴 했다.
물론 믿을 만한 구석도 있었다. 한국에는 무려 그 유명한 ‘NS’가 있지 않나.
유환은 NS의 저력을 조금은 알았다. 회사가 가진 인프라와 인적 자원의 탄탄함을 말이다.
어쨌든 노 페이스 팀에 대해 들은 유환은 흥미가 생겼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얼굴이나 한번 볼까.”
천막 홀로그램에 그림자가 생긴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두고 유환이 밖으로 나섰다.
정말로 상대 얼굴이 궁금한 참이었다.
자기가 없는 사이, 전장을 정리한 놈이니.
밖으로 나서는 유환의 등을 보던 NS 소속 지휘관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 새끼,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그렇다고 따지기엔, 유환은 너무 사나운 상대였다.
* * *
“대장.”
유환이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던 팀 크로커다일의 일원이 다가왔다.
눈앞을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른 남자 부하다.
검은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늑대 변신족이었다.
유환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았다면 유환만큼이나 이름을 날렸을 놈이기도 한 위인이고.
“노 페이스 팀 애들 구경 갈래?”
유환이 걸으며 물었다. 검은 늑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붙고.
“그렇게 대뜸 가시는 겁니까? 그쪽도 휴식 중인데.”
지휘관이 뒤따라 나와 묻는다.
여러모로 곤란해 보였다.
유환은 그의 곤란함을 덜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보고 기다리라고?”
언라이벌 식스가 누구인가.
그 칭호를 고스톱이나 해서 딴 건 아니란 거다.
막을 수 있는가?
세최특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는 여섯이다.
“아니요.”
지휘관이 포기했다. 말투에서 여실히 느껴졌다. 너 꼴리는 대로 하라는 그런 느낌이다.
“노 페이스 팀 애들 어디냐?”
다시 묻고.
“이쪽입니다.”
NS 소속 지휘관은 안내를 시작했고 유환은 그대로 터벅터벅 걸었다.
곧 얼굴에 가면을 쓴 무리가 보였다.
그중 몇몇이 중얼대며 뭐라 말을 하는 것도 들렸고.
“여기서 이쪽 전력을 일부 돌렸다가 웨이브가 다시 발생하면? 소수 정예로 가야 한다.”
딱딱한 말투의 여자.
불멸자인가?
유환이 코를 씰룩였다. 변신족은 후각이 발달했다. 유환의 경우 냄새 맡는 게 특기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는 냄새로 구분할 줄 알았다.
‘불멸자네.’
특수종은 향이 조금씩 다르니까.
전장의 화약 냄새가 불쾌해 곧 후각을 통제한 유환이 자박자박 걸어서 가면 무리 앞에 섰다.
“누구?”
외측에 서 있던, 가면 하나가 묻는다.
‘누구? 내 얼굴을 모르는구나.’
유환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것들이 언라이벌 식스의 얼굴도 모르다니.
“나, 차유환.”
가면 무리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관학교 1학년은 외부 소식에 둔감한 편이다.
배울 게 많아 하나하나 인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수업과 기타 여러 가지, 특히 SNS를 통해 언라이벌 식스라는 명칭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름까지 알진 못했고.
지금 눈앞의 상대를 보고 언라이벌 식스를 연상하기도 힘들었다.
유환은 키가 작고 순둥순둥해 보이는 눈매를 가졌다.
그 외모가 주는 괴리감이 크로커다일을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 올해 1학년은 유온신 덕택에 대련과 임무 따위로 바빴다.
결론, 가면을 쓴 사관학교의 생도는 상대를 못 알아봤다는 것.
차유환은 그게 웃기면서도 거슬렸다.
“리더가 누구냐?”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노 페이스 팀의 일원이자 온신의 동기도 가면 안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신데?”
더 말을 섞을 필요가 없겠는데.
하고 유환이 생각한 순간.
“언라이벌 식스.”
뒤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받는다. 이쪽도 가면을 쓴 건 마찬가지다.
체형을 보니 여자, 냄새로 구분하니 불멸자다.
‘또 가면.’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뭐 숨길 게 있다고 얼굴을 가린단 말인가.
“리더.”
유환의 짧은 말에 드디어 가면을 쓴 놈 중 하나가 나왔다.
“차유환? 크로커다일?”
무패의 크로커다일, 유환의 이명이다.
이제야 알아보네.
슬슬 유환은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 툭 말을 뱉었다.
“가면 한번 벗어 봐라. 얼굴 보러 왔는데. 누군지는 함구해 주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비밀 엄수는 해 주겠다고.
유환의 말에 가면을 쓴 리더라는 놈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신비주의인데?”
“그래서 안 벗어?”
유환이 재차 묻고 한 걸음 다가가려 하자, 누군가 유환과 리더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너무 가깝다.”
변신족이었다. 보자마자 느껴지는 짜릿한 투기다.
유환의 입꼬리가 더 비틀렸고.
그걸 본 검은 늑대는 내심 걱정이 들었다.
차유환, 무패의 크로커다일은 성격이 그리 부드러운 편이 아니었으니까.
탁.
유환이 막은 상대의 가면을 향해 손을 뻗자, 당연하다는 듯 상대도 손을 들어서 막는다.
그대로.
탁탁탁탁!
둘의 손이 오가기 시작했다.
* * *
얘는 또 왜 이래.
무패의 크로커다일, 언라이벌 식스의 일원이 왔다.
안 그래도 이런 전장에 왜 레벨 높은 특수종이 없나 싶었다.
소수 정예로 움직여야 할 전장인 듯한데.
그런데.
온 놈이 대뜸 가면을 벗으라더니, 이후가 그걸 막고 둘이 다투기 시작했는데.
안 밀리네?
이후가 단숨에 밀리지 않는다.
“넌 또 뭐냐?”
“이후.”
주먹을 교환하는 변신족 둘 사이로 짧은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이후 저건 왜 내 앞을 막더니 싸우는 건지, 아는 사람 없나.
왜 나서서 저러냐.
놔두면 말로 끝날 문제를 크게 키우네.
“검은 늑대, 홍위안이다.”
둘이 다투는 것과 별개로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아는 척을 해 왔다.
대강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다.
세차게 다투던 둘이 뒤로 물러났다.
둘 다 진심은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다.
다만.
“이후라고? 사관학교가 낳은 천재? 너 왜 여기 있냐? 연금술사 밑에 있던 거 아니냐?”
연금술사, 일전에 이후가 소속된 팀을 말함이다.
“나왔습니다.”
공손함은 없지만, 이후가 자연스레 말을 높였다.
“너 되게 쓸 만하네.”
무패의 크로커다일이란 작자가 이어 말했다.
난 차유환이란 언라이벌 식스의 일원을 봤다.
키는 나보다 훨씬 작았다.
잘해야 165cm 정도나 될까.
작고 다부진 체구가 돋보이긴 하나.
동안의 앳된 얼굴, 순둥순둥한 눈매와 더불어 저런 체구를 보고 누가 무패의 크로커다일을 떠올릴까나.
거의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얼굴 한번 보기 되게 비싼 애들이네. 진짜.”
크로커다일이 말하고 다시 날 봤다.
“네가 리더지?”
“네.”
“잘 싸웠다길래 구경 왔다.”
크로커다일의 뒤로 일행 몇이 보였다.
“몇 명이나 데려왔습니까? 본인 포함해서.”
무패의 크로커다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왜 묻냐는 거다.
대답은 검은 늑대 홍위안이 했다.
“다섯.”
겨우 다섯이라 할 순 없으리라.
세최특은,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랑 단둘이 듀오로 다니시니까.
다섯이지만, 일반적인 범주에 넣을 수 없는 다섯일 것이다.
지금 뇌안으로 보는 이 둘의 레벨이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보는 순간 알았다.
이거 승부 장담 못 하겠다고.
이게 바로 언라이벌 식스.
대적자가 없는 여섯의 특수종이다.
저 작은 체구에 무슨 에너지가 가득 찬 듯하니.
그것도 변신족에 강체를 특기로 삼는다고 하지 않았나.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건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아니라.
어쨌든 이들이 여기에 온 건 뭔가를, 특히 싸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온 것일 테고.
나한테는 이들에게 해 볼 만한 제안이 있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갸웃.
크로커다일이 고개를 모로 꺾는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
“크리쳐가 도망가서 어디에 모여 있을까요?”
난 지금 물러난 크리쳐 무리를 추적할 방법이 있었고.
그걸 통해 본래는 본대를 움직여 치자고 했다.
미랑은 그 의견에 막 반대하는 참이었고.
“소수 정예가 맞아.”
미랑이 거듭 그렇게 말했고, 난 그 말에 따르기로 한 참이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게 팀 크로커다일이었다.
“알 바냐?”
순둥순둥한 눈으로 크로커다일이 무심히 답했다.
나 이 새끼 성격 조금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말이나 해 보라는 거다.
답답하게 굴지 말고 본론만 꺼내라는 압박이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먼저 해 주는 게 인지상정.
“추적할 수 있으면 같이 가실?”
소수 정예 팀 둘이면 될 것 같다.
본래는 우리 팀에서 쪼개서 가려고 했지만.
눈앞에 다른 재원이 보이지 않나.
뇌안으로 레벨 측정이 안 되는 변신족이 둘.
둘만 온 것도 아니라고 하니.
“추적?”
그제야 관심을 보인다.
“네. 추적.”
변신족의 후각은 독특하다. 다만, 이제까지 누구도 그걸 쉬이 활용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냄새 좀 잘 맡는 걸 어디에 쓰겠나.
보통 상대의 특질을 냄새로 구분하는 재주를 익히거나.
그 외에는 형태 변환자를 잡거나.
그래도 특정한 구역을 추적하는 진짜 짐승의 후각과는 견줄 수 없기에 딱히 활용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범용성이 떨어지는 활용도가 국한된 능력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장옥에게는 아니었다.
장옥의 특기는 일점 집중.
제힘을 한곳에 모으는 특기를 가졌는데.
그게 후각에도 적용됐다.
장옥이 원하기만 한다면 제 체취가 묻은 물건을 아주 멀리서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보다 이계에서는 더 쉽긴 하죠. 이상한 냄새만 가득하니까, 예시를 들자면, 아니 예시 같은 건 잘 못 들겠고 그냥 할 수 있는데요.”
장옥이 된다고 하니 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러니까 일전 전투에서 크리쳐의 옆구리에 꽂아 둔 게 무엇이었나 하면.
장옥의 체취가 가득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피크다.
맞다, 기타 칠 때 쓰는 그 피크.
왜 피크를 쓰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기념 삼아 모은단다.
제 체취가 듬뿍 묻은 물건이고 작고 잘 안 보이고 숨기기 좋으니.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더없이 적절했기에.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갈 건데.”
“이 새끼 봐라.”
유환, 크로커다일이란 작자의 눈이 빛났다.
눈가 주름을 보면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은 참 앳되다.
“재밌는 새끼잖아. 위안, 애들 추슬러 곧바로 움직여야겠다.”
“네.”
크로커다일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곤 그가 슬쩍 다가오더니 묻는다.
“너 진짜 누구냐?”
아직 외부에는 내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중봉 삼촌이 교내에서 퍼지는 걸 막고 기남 아저씨만 입 다물면 그만이니까.
팀원을 통해서 퍼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 여기까지 안 알려졌을 수도 있고.
언라이벌 식스라고 하면 굉장한 사람들이나.
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전대의 영웅을 삼촌 이모로 삼고 자랐다.
덕분에 뇌안으로 본 상대의 능력에 놀랐음에도 역으로 무덤덤할 수 있었다.
“유온신이요.”
그래서 순순히 답도 해 줬고.
이제 슬슬 알려도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숨길 일도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나, 어디서 들어 봤는데.”
아직은 그저 사관학교 내에서만 유명한 이름이라 하겠다.
그보다는 노 페이스 팀 리더로 더 알려졌겠지.
다만, 이제 이 정도면 기남이 삼촌이 졸업을 허락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니 이름을 밝히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닐 것이다.
“아, 세최특!”
“네, 아들 됩니다.”
“오우, 야.”
크로커다일이 놀랐다.
* * *
검은 야수의 하나로 태어난 크리쳐는 생각했다.
‘난 왜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가.’
먹이는 적고 환경은 까칠하다.
게이트 하나만 넘어서면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아는데도 왜.
검은 야수의 왕은 꿈을 꿨다.
신몽이라 불리는 신의 존재를 여실히 느끼는 꿈이다.
꿈에서 깬 그는 마음먹었다.
이세계를 넘으리라. 세상에 자신을 알리리라.
전쟁을 만들어 낸 유니크 몬스터의 탄생.
그게 검은 황무지 웨이브의 정체이니.
“그래, 그래야지, 아가.”
크리쳐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검은 로브를 두른 작고 가냘픈 존재.
검은 털이 가득 솟은 자기 팔뚝과 비교하자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목.
하지만 어머니야말로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존재이니.
“더 분노하렴, 그리고 더 싸워 주렴.”
어머니의 말이 야수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고개를 든 크리쳐가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검지만, 이마 가운데엔 흰 털이 솟은 괴물.
유니크 급으로 진화한 검은 야수다.
다음 싸움을 위해 야수가 다시금 마음을 먹을 때였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온신의 팀과 유환의 팀이 근처에 도착했고.
“더럽게 많은데?”
크로커다일이 말한다.
“그래서요?”
“그렇다고.”
나란히 선 온신과의 대화다.
숫자가 문제가 될 레벨은 아니었다.
적절한 전략과 무기만 충분하다면 더는 문제가 될 턱이 없을 테니.
검은 야수를 비롯해 크리쳐의 숫자 대략 오백.
전위 부대로 보였다.
그걸 본 온신은 싸움을 준비했다.
그러려고 들어온 땅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