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6. 기대하지 않았던
“시이발!”
현우는 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인지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난감한 상황이었다.
광학 병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이라니.
“뒤로 빠져!”
그렇다고 해서 화기가 먹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화기는 어디까지나 저지하는 게 전부다.
이대로 시간을 끌고 소수정예 타격팀을 만들어 현 상황을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현우도 아는 걸 윗선 지휘관이 모를 리 없지만.
‘그럴 틈이 있어야지.’
없다.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다.
본래 검은 야수를 상대하는 법은 거리를 좁혀 레이저 사출 무기로 갈라 버려야 하는 법인데.
그 전법이 영, 통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꼬인 거다.
“에라이!”
현우는 열이 뻗쳐 소총을 갈겼다.
투다다다!
반동 때문에 총구가 들리는 걸 힘으로 내리누른다. 그리 총탄이 비처럼 쏟아지는데도 야수 무리는 거리를 좁혔다.
우직한 돌진이다.
“변신! 여기 뚫린다!”
그럴 때마다 전선이 뒤로 밀렸다.
그리고 이럴 때면 지휘관이 변신족 팀을 찾았고.
다만, 그것도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으니.
죽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우도 제 묫자리가 여기에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 염병.’
아직 결혼도 못 해 봤는데.
방년 스물여덟.
그동안 잘 버티고 살아왔는데.
허무한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지원은 언제 오는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왜 검은 야수가 광각필드를 두르고 있는 건지.
크리쳐가 왜 이리 몰려오는 건지.
‘어쩌지?’
뒤로 물러나다 보니, 기관총 진지가 바로 뒤다.
더는 물러날 때가 없다는 거다.
“시발, 엿 같네.”
옆에 붙은 이름 모를 변신족의 말이다. 그는 오른팔을 잃고 왼손에 긴 칼을 들고 있었다.
칼날 끝에 스파크가 ‘파지직’ 튀는 걸 보니 일반 무기가 아닌 기어였다.
현우도 저런 무기가 있었다.
레이처 블레이드 두 자루.
지금도 양쪽 허리춤에 얌전히 붙어 있는데.
현재 상대하는 적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위를 가르면 뭐 하나, 허무하게 굴절되며 지나치는걸.
광각필드는 방어막의 일종이지만, 인류에겐 치명적인 무기와 같았다.
죽음이 다가온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순간이다.
검은 야수의 접근 속도가 빨라지고 놈의 몸 위로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필드가 보였다.
광각필드는 주변 모든 빛을 반사시키기에 선명히도 보였다.
‘재수 없네.’
이대로 죽는 것인가.
그 순간이다.
다가오는 야수의 전신을 감싸며 눈부시게 빛나던 것들이 사라졌다.
주현우는 곧바로 반응했다.
긴 시간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의 면목을 보여 줬다.
그대로 허리춤에 있던 광학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툭툭, 양손에 손잡이를 잡은 뒤 스위치를 올린다.
찌이이잉.
레이저 블레이드가 그 빛을 뿜어냈다.
파란 레이저가 산소를 태우며 찌지지지지징 제 존재를 사방에 알렸다.
“으리야!”
기합과 함께 내달린다.
레이저 도살자.
그는 별명 그대로 움직였다.
그는 불멸이나, 변신의 피가 섞인 불멸이었다.
다만 변신은 못 하고 불멸의 재생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레귤러라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건 불멸자의 감각과 변신족의 운동 능력.
세최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두 개의 특질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런 특질 덕분에 NS의 전투 훈련소를 수료하기도 했고.
즉 NS의 전투 가용 인원 중 하나란 거다.
“야 이, 개새들아!”
신난 주현우의 블레이드 두 자루가 전장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일이 주변 곳곳에서 일어났다.
쭝!
허공을 가르는 오렌지빛 광선 한 줄기.
검은 야수의 전신에 광각필드가 사라지자, 전장 형태가 금세 변했다.
전황을 뒤집는 건 무기를 바꾸는 거로 충분했다.
기관총 사수가 과열돼서 김을 폴폴 피워 올리는 묵직한 무게의 기관총 손잡이를 놓고 주머니에서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무기를 꺼내 쐈다.
쭝!
파란 광선이 뻗어 나가며 코앞까지 다가온 검은 야수의 머리통에 구멍을 냈다.
앞으로 세 발, 호신 무기지만 제 역할은 톡톡히 해낼 레이저 피스톨이었다.
전면 변신족 무리도 비슷했다.
“웃차!”
상황 변화를 알아챈 변신족 중 하나가 제 손에 두른 기어를 발동했다.
툭.
웅.
발톱 형태 레이저 사출 무기다.
고양잇과 표범으로 변한 변신족의 손톱이 사방을 그었다.
쭈주주주주주중!
그거로 네 마리의 검은 야수에게 포위되었던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아니, 넘기는 거로 끝나지 않았다. 네 마리를 다 죽였으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변신족은 단순했다.
“다 죽여!”
백수라는 팀이었다. 변신족으로만 이뤄진, 일전의 팀 레드 울프와 비슷한 형태의 팀.
백수의 리더이자, 사자 변신족이 외쳤다.
어지간히 신난 외침이었다.
이제까지 수차례 손톱으로 썰고 두들겨야 죽는 놈들이.
광학 병기가 갖춰지자 쉽게도 썰렸다.
검은 야수의 가죽이 아무리 두꺼운 귀물이라도 해도 인간이 만든 최후의 살상 무기에는 무용했으니.
그들은 원인을 찾기보다 싸움에 집중했다.
그만큼 급박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쪽 일대 점령지를 뺏겼을 정도로.
* * *
스펠 버그의 손에서 주문이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저주인지, 뭔지 모를 무형의 덩어리가 쏟아졌고.
이후 그게 통하지 않자, 뻔한 형태의 주문이 쏟아졌다.
그중 제일 골치 아픈 주문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땅을 얼리네?”
빙판길을 만드는 주문이다. 바닥에 얇은 얼음판을 깔아 버리고 스펠 버그 놈들은 뾰족한 발톱으로 땅을 파며 버틴다.
영리한 놈들이다.
어떤 주문도 통하지 않자,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나.
물론 통하진 않았다.
비틀.
이후가 첫발을 디디며 균형을 잃었으나, 체조 선수라도 되는 듯 빙글 돌더니 재차 뛰기 시작했다.
나사로크는 반대로 신났다.
“생각난다! 고향!”
미친 자식처럼 내달리는데,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인 줄 알았다.
달리는 곰의 속도가 전보다 빠른 듯했다. 숫제 잔상이 남다 못해 허공에 긴 선을 그려 내며 내달리니.
장옥도 무리는 없었다.
변신족의 육체 통제 능력은 이리 뛰어나다.
구스타프와 나와 로니는 그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빙판 문제를 해결했다.
철컥. 팅.
슈트 발바닥에 아이젠을 뽑아냈다. 자잘한 가시가 후두둑 솟은 발바닥이다.
이따위 빙판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다.
변신족 셋이 가장 먼저 스펠 버그 선두와 만났다.
그걸 지켜보는 난 뭐랄까.
시원했다. 속이 뻥 뚫렸다.
꽝!
주먹 한 방에 벌레 한 마리의 머리통이 터지며 녹색 체액을 흩뿌렸다.
레드 등급의 크리쳐는 위험하다. 근접전에 특화된 놈이라면 소수 특수종 부대로 감당해선 안 된다.
특히나 이런 부대급으로 모인 무리라면 더더욱.
생각하는 사이, 장옥이 다가가 벌레의 턱을 앞발을 차올렸다.
기린으로 변한 뒤라, 목이 탄력을 더한 올려 차기다.
역동적인 동작의 끝.
뻑!
벌레의 머리통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쪼개지며 깨졌다.
그걸 보며 난 생각을 이어 갔다.
본래 레드 등급이라면 근접전도 위험해야 하나.
스펠 버그는 주문 특화 크리쳐다.
이렇게 보면 사관 학교 수업에서 배운 게 많다.
크리쳐의 종류와 대처 방법 수업에서 배운 걸 그대로 활용하는 중이다.
주문에 영향만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스펠 버그는 실상 녹색 레벨의 크리쳐와 비슷한 수준이니.
헥사곤 필드 따위를 꺼내 들긴 하지만 선두에 나선 셋은 변신족.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다.
방어막을 깨는 법도 잘 알았다.
한 점에 집중해서 후려치거나 괴력으로 부수거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부수고 때리고 죽였다.
그나저나 검은 황무지는 본래 검은 야수 전용 땅 아니었나?
그리 생각하며 나도 염동탄을 쐈다.
뚜둥!
광각필드 위를 헥사곤 필드로 감쌌네.
마력이란 게 존재하는 한 어지간한 화기나 광학병기로 뚫을 수 없는 방어막이다.
펑 하고 내 염동탄이 막히긴 했으니.
다만, 어디까지나 ‘어지간한’이라는 거다.
그동안의 단련한 것 중 일부를 실전에서 쓸 때였다.
순간 부스터.
파직.
스파크가 튄다. 내 오른팔을 지나 손가락 끝까지.
지지지지지.
뇌전의 에너지가 모이고 염동력으로 에너지를 한데 뭉치게 만드니.
“먹고 뒈져라.”
말과 함께 부스터로 힘을 더한 탄을 쏘아 낸다. 염동력으로 빚은 뇌전의 탄환이다.
파직, 퍽.
뇌전 탄이 헥사곤 필드를 관통하고 그대로 적의 머리통을 으깼다.
이미 대련 중에 깨우친 바.
내 뇌전 탄은 갤럭시 필드 급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
“하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후도 숫자를 셌다.
“여섯.”
“일곱.”
“다섯.”
나사로크와 장옥이 이어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활발한 건 나사로크다.
신났다고 해야 하나.
구스타프는 여러 가지 공격을 시험 중이었다.
바닥을 퍼내는 염동 공격 또는 머리 위에서 내리치는 망치 따위로 크리쳐를 괴롭히는 거다.
그 모든 실험에 의미가 있을 터였다.
사이오닉 에너지가 구스타프의 안광을 빛냈다.
나도 부지런히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부스터를 통한 뇌전 탄환이다.
본래 부스터는 몸에 부담을 주는 기술이다.
다 좋은데 끝나고 나면 휴양이 필수라는 거다.
그걸 보완하기 위한 게 순간 부스터.
아주 잠깐 부스터 스위치를 켰다가 끄는 것이었다. 물론 부단한 훈련으로 몸에 붙여 둔 기술이었으며.
현재의 난 싸움 형태를 바꿀 필요도 있었다.
근접전은 내 특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이미 수차례 전투로 알게 됐으니.
난 지금도 그렇게 움직였다.
내가 원하는 위치와 형태의 싸움이 되도록.
변신족 셋을 방패이자, 선두로 내세우고.
그 뒤를 지키며 탄만 날린다.
앞에는 스펠 버그, 뒤에는 검은 야수가 달려들지만.
거리를 잃지 않는다.
물론 그걸 조절하는 건 로니다.
“뒤에서 야수 온다. 풀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니의 말.
스펠 버그 놈들도 이리 터지고 죽고 나자, 계속해서 야수 무리에 광각필드를 걸어 줄 순 없을 것이다.
이런 무리가 여럿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필드만 풀리면 뭐.
퍼버버벅!
장거리 저격은 어떻게 막을래?
뒤를 쫓던 야수 무리의 머리통에 구멍이 생겼다.
뒤쪽, 노 페이스 팀의 저격조가 활약했으리라.
그들이 손에 쥔 건, 반광학 병기.
현재 지구에서 광학병기보다 더 비싼 무기다.
광학병기보다는 위력은 떨어지지만, 비싸고 묘한 물건이라 하겠다.
그런 무기를 왜 쓰냐고?
일반적으로 레이저 총은 저격이 안 되거든.
근데 반광학 병기는 된다.
에너지 사출 방식은 레일건으로.
탄환은 광자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금속을 활용한다.
3년 전에 개발을 시작해서 시제품이 나오고 이제야 상용화를 할까 말까 한 제품인데.
본래는 돈이 많이 들어 멈춘 연구를 NS의 전폭적인 투자로 재개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게 이거다.
광학 에너지를 머금은 저격 라이플.
뒤쪽 야수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걸 구경하며 우린 다시 움직였다.
이런 스펠 버그 무리가 최소 여섯이니.
“부지런히 가 보자.”
이전 전투에서 부스터를 십분 활용했을 때는 싸움 한번 하고 나면 뒈질 것 같았지만.
지금이야 뭐, 몸이 가벼웠다.
“전면 400m 앞, 2차 목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통신을 통해 미랑의 안내가 들렸다.
목적이 분명하니, 헤맬 필요도 없으리라.
우리는 다시 나아가 스펠 버그 무리 둘을 더 썰었고.
그래도 후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야수 무리의 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며 다시금 스펠 버그 무리 하나를 더 썰었다.
머리통을 부수며 난리를 치자, 그제야 놈들이 뒤로 물러날 기미가 보였다.
“징그럽게도 많네요.”
장옥이 물러나는 놈들을 보고 말했고.
난 그런 장옥에게 물었다.
“했지?”
“네.”
크리쳐의 찬탈.
대규모 크리쳐가 몰려온 전쟁을 말한다.
전투가 시작한 지 이틀.
인류는 모든 전장에서 이기지 못했다.
다만, 패배이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 지역 A-10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난 대승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에 수작을 부렸다.
장옥이 평소에 품고 다니던 물건 하나를 살아남은 야수의 옆구리에 쑤셔 넣은 거다.
멀쩡히 일어난 검은 야수가 그대로 내빼는 걸 본 우리는 뒤로 물러났고.
놈은 본대로 돌아갈 것이다.
크리쳐가 모인 곳으로 말이다.
아무리 봐도 크리쳐의 행태가 인위적으로 보이기에 건 수작이었다.
뭐, 크리쳐 세계에서도 무리를 이끄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지.
정말 흔치 않다.
이곳에 투입된 크리쳐의 종류만 일곱 개다.
A-10 지역에만 검은 야수와 스펠 버그 두 종류고.
검은 황무지는 본래 이런 땅이 아니다.
이러니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지.
그리 전장에 수작도 부리고 작업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 여섯이 가장 먼 곳까지 나갔다.
스펠 버그 놈들이 뒤에 있는 탓이었다.
그리고.
“아, 노 페이스 팀이다.”
“노 페이스 팀.”
“끄으으으아아아아!”
“시발!”
“덕분에 살았다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얼굴 까라! 뽀뽀해 주게!”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이들이 우리를 반겼다.
영 쑥스럽진 않았다.
이런 호응 나쁘진 않다. 그러니까 난 미랑이랑 결혼하려고 여기 있는 건데도.
이런 순간이 정말 나쁘진 않다.
전장 이틀째.
사망자 열둘.
모든 전장에서 기대하지 않던 최소 피해이자, A-10 지역의 웨이브 수비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