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74화 (474/488)

외전 65. 해충 박멸의 시간

A부터 F까지.

인류는 검은 황무지의 땅을 임의로 갈라놨다.

노 페이스 팀이 지원 임무로 지켜야 할 땅은 A-10.

“가자.”

내가 말하는 사이다. 코앞에서 한창 말하던 지휘관이 내 손목을 붙들었다.

“잠깐만.”

“?”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자,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이제 들어 온 지 1시간쯤 된 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아니, 적응 기간이 아직…….”

“괜찮아요. 자, 일합시다.”

난 지휘관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돌아섰다.

임무 배정 담당 지휘관으로 보이던 아저씨가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투명한 페이스 가드 안쪽으로 보이는 동공이 흔들린다.

“이거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건가? 괜찮나? 근데 벌써 적응은 한 것 같긴 한데, 노 페이스 팀 맞나?”

“뭐하냐?”

옆에서 떠드는 로니에게 묻자.

“저 아저씨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 덕인가. 상대의 생각을 진짜 읽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표정을 보고 상태를 짐작하는 거지.

“우린 일이나 하자고.”

지금 할 일, 지원 임무다.

내려받은 지도를 공유하고.

“하, 레베카가 없다면 우리 마스터께서는 아무것도 못 하겠군요.”

오만방자한 AI의 헛소리를 듣고.

부지런히 걸으며 슈트와 장비를 점검했다.

위치에 멈춰 섰다. 정확히 A-10의 후방이다.

“갈겨어어어!”

두두두두두두두!

도착한 A-10 구역은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었다.

검은 황무지, 저 끝 지평선과 알록달록한 크리쳐가 모인 땅이다.다

른 곳과 다른 점이라면?

“화기?”

이후가 먼저 말했다. 냄새와 소리가 먼저 환영하는 곳이다.

화약 냄새와 굉음이 귀를 때린다.

묘한 일이었다.

화기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치안을 위해 지구에서나 쓸 법한 물건이다.

실제 크리쳐를 죽일 때 쓰는 무기가 아니었다.

“상황이 좀 나쁜 것 같은데.”

옆에서 미랑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와 동시에 미랑이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전장 전체를 눈에 담는다.

특기 발현이다.

이제는 현장에서 볼 수 없는 이모의 특기 중 하나를 이어받은 미랑이다.

우미호 이모의 특기, 전장 전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활용하는 것.

그걸 지금 미랑이 하고 있었다.

물론 이모와 다르게 사전 작업이 필요하긴 했기에.

좌우로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고 전황을 파악하기 바쁜 모습이다.

‘우리 미랑이는 도리도리하는 것도 예쁘군.’

“광각필드인 것 같다.”

그사이 로니는 전장 너머를 주시하고는 말했다.

미랑이 횡으로 전장 전체를 인지하며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으니 로니는 종으로 크리쳐의 위험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둘 다 레이더의 역할에 충실했다.

“안 좋네.”

그 말에 내가 답했다.

광각필드.

인류는 크리쳐를 죽이기 위해 광학 병기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고.

그 결과로 어지간한 이들도 레이저 사출 무기 하나 정도는 들고 다니게 됐다.

비싸고 충전에 돈은 많이 들지만, 비장의 한 수로 쓰기도 좋은 무기니.

그런 무기가 이번 전장에서는 흔해 빠질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크리쳐의 찬탈이란 전장이 준 위협이 크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보니 위협 수준이 끔찍한 수준인 것 같기도 했다.

사실상 이런 일, 그러니까 대규모 전장에 어떤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그래 보이니.

게이트 바깥, 지구에 있는 일반인 중 이 광경을 본다면 놀라 까무러칠 것이다.

기자가 본다면 곧바로 특급 뉴스가 될 것이고.

이계라는 특징 덕분에 매스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하다만.

일반적인 전장도 아니고 이계까지 어떻게 기어들어 와서 취재하겠나.

어쨌든 광각필드는 광학 병기에 대응하는 크리쳐의 방패였다.

“주문, 곳곳에 고위 레벨 마법사의 흔적이 보인다.”

로니가 쓴 가면, 눈이라 부를 틈으로 파란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곧 로니의 말이 이어졌다.

“지원하라는 말이 버티라는 말이었나 본데, 현재 전장에서 저지력 외에 병력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레이더 역할을 하는 불멸자 몇이 비슷한 말을 내뱉는다.

“많아. 스펠 크리쳐야.”

“보통의 검은 야수가 아니야. 몸에 광각을 두르고 내달려.”

광각필드는 모든 광학 병기를 무효화 한다.

레이저 사출 무기를 의미 없게 만드는 사실상 최악의 상성을 가진 방어막이다.

최초로 만든 건 마법 연맹.

그걸 어떻게 크리쳐가 쓰는가?

모른다.

한때 연맹을 수차례 족쳐 봤지만, 결론은 그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

아버지가 직접 족치러 가셨다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일어난 일을 연맹의 잘못으로 돌릴 순 없는 노릇이니.

검은 황무지에 나오는 크리쳐는 한 종류다.

레벨은 제각각이지만, 형태는 하나.

검은 야수.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몸과 손발을 달린 괴물이다.

어찌 보면 귀여워 보이기도 하나.

방심하면 사람 멱 따위는 손톱 하나로 따 버리는 크리쳐다.

본래 등급은 파랑인데, 지금은 그보다 높은 등급의 크리쳐도 섞인 듯싶었다.

둥근 손에서 튀어나오는 손톱과 손목과 팔꿈치로 이어지는 팔뚝에서 튀어나오는 칼날을 잘 쓰며.

가진 근력은 변신족급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란 건데.

“광각까지 걸쳐?”

이러니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나.

다만, 문제는 검은 야수뿐만이 아니었으니.

“저쪽.”

천리안이란 별명이 붙은 불멸자 선배가 손가락을 들었다.

최근에 합류한 사람 중, 미랑을 제외한 가장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다른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불멸자다.

“주문의 근원.”

선배는 말을 길게 하는 걸 싫어했다.

그래도 할 말은 다 했다.

“전면에는 광각필드를 두른 검은 야수 부대 덕분에 화기로 시간을 버는 중이고.

천리안 선배의 손가락 끝에는 이 새끼들한테 광각필드를 부여하는 스펠 유저 집단이 있고?”

상황이 강아지 음경 같았다.

그렇다고 ‘위험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건 뭐.”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적어도 노 페이스 팀이라면 괜찮다.

“지원 임무 부여받아 전장 확인, 이후 자체적으로 임무 해석해, 광각필드를 두른 놈들을 요격하기로 한다.”

내가 말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팀이 나아 갈 방향을 말한다. 그게 리더의 할 일이니까.

“여섯, 주문특화 별동대 조직해 지원.”

미랑이 내 말을 받는다.

그 뒤로 몇 명을 선정했다. 선두는 이후, 뒤를 받쳐 주는 건 나사로크와 장옥.

셋의 변신족 뒤로 로니와 구스타프, 내가 함께했다.

여섯이면 됐다.

“나머지는 미랑의 지시에 따라 길을 만들어 주면 되겠네.”

말하는 사이, 난 머릿속으로 전장을 그렸다. 어떤 방식이 가장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

뚜드드드드드드드드!

저 앞에서 기관총을 붙든 특수종의 어깨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리고 그보다 앞에서는 일대의 변신족 팀이 검은 야수를 상대로 근접전을 펼치며 버티는 중이고.

화기의 지원을 못 받는다. 광각병기도 무용하니, 손에 든 도끼나 칼 따위로 야수의 머리통을 쪼개려 했다.

물론 그게 쉬워 보이진 않았다.

죽는 사람?

있다. 적지 않다. 슬쩍 흘겨만 봐도 열은 넘는다.

이들은 버티는 중이었다. 원인이 보여도 해결할 무력이 부족하니.

“간다.”

내 말에 여섯의 별동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는 이후다.

“……어, 어이, 야! 저 미친 새끼들은 뭐야!”

이쪽을 담당하는 지휘관인지 후방 보급 담당관인지, 하여간 이 자리를 지키던 누군가의 외침이 뒤쪽에서 아스라이 멀어졌다.

누가 보면 자살 테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쇼. 이게 다 계획이 있는 거니까.

이후가 속도를 조절했다. 변신족의 대쉬로 달려 버리면 불멸자와 초능은 따라갈 수 없으니.

아, 물론 난 가능하지만.

다들 나처럼 가속을 가진 건 아니니까.

그리 내달리자, 한쪽에서 검은 야수 무리가 뭉텅이로 떨어져 마중을 나왔다.

대략 십수 마리.

“찢는다.”

이후가 먼저다.

달려가며 변신, 보통의 변신족과는 궤가 다른 형태 변환이다.

우두두둑.

근육과 뼈가 뒤틀리며 그대로 줄무늬가 달린 호랑이가 된다.

노란 털에 검은 줄무늬.

이후의 변신 형태는 백두산 호랑이.

뻥, 뻥!

내달리는 발걸음에 검은 흙이 튀고.

잔상이 남으며 적과 조우한다.

타인을 만나면 그러하듯 이후가 악수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발톱이 솟은 발길질이 첫 번째 야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꽝!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야수의 머리통 일부가 깨지며 옆으로 튕겨 나갔다.

무지막지한 괴력이었다.

옆으로 날아간 검은 야수의 몸뚱이가 바닥에 퍽하고 한 번 튕긴 뒤 나뒹굴었다.

그나마 두개골이 수박처럼 터지지 않은 걸 보아, 제 머리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증명한 게 전부였다.

두개골이 깨져 회색빛의 뇌와 조직, 걸쭉한 노란 피를 왕창 흘렸으니.

고로 머리통 꿀밤 한 방에 죽었다.

“구스.”

내 외침에 구스타프가 한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내 무형의 압력이 검은 야수를 붙든다. 염동력만으로 머리통을 터트리려면 무지막지한 힘을 소모해야 한다.

그건 비효율적이므로.

구스타프의 손이 위로 솟았다. 검은 야수를 잡아 위로 띄운 것이다.

정확히는 다른 무리가 모인 곳에 던졌다.

그렇게 두어 놈을 던지고 나도 그 작업을 거들었다.

염력으로 잡아 던지는 작업이다.

이후가 다시 두 놈의 머리통에 제 손자국을 내주고.

그 이후 몰려오는 야수는 뻐버버버벙!

어디선가 날아온 화끈한 탄환이 머리통을 후렸다.

광각필드는 기본적으로 트라이앵글 필드의 변형 판.

다각형의 반사 방어막이 빛을 튕겨 내는 원리라고 수업에서 배웠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총탄은 막는다.

거기에 검은 야수의 가죽 자체도 어지간한 탄환을 막아 내는 귀물(貴物)이니.

지금도 그랬다.

뚫고 들어간 탄환도 검은 야수의 가죽을 꿰뚫진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야수 무리가 주춤했으니.

“달려.”

내 말에 이후가 다시 기준점을 잡고 움직였고.

“우측.”

로니가 길을 인도했다.

페이스 가드 안쪽 무전 통신기를 통해 미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곰 후방.”

그 말에 뒤로 슬쩍 시선을 던지니, 저격 지원을 이겨 내고 가까스로 뒤를 쫓는 검은 야수가 몇 마리가 보였다.

“검은 놈. 뒈진다. 내 손에.”

나사로크가 미랑의 말에 반응, 뒤로 돌아섰다.

곰으로 변한 나사로크다.

뒤로 돌아서며 유연하게 허리를 꺾고 태클하듯 그대로 내달려, 야수 한 마리의 허리를 붙든다.

검은 야수가 제 손으로 나사로크의 등을 후려쳤으나.

꿍!

단단한 가죽이 충격을 튕겨 냈다.

강체, 나사로크가 가진 변신족의 비기다.

나사로크가 그대로 검은 야수를 들어서 밑으로 내리쳤다.

꽝!

머리통부터 바닥에 떨어진 놈이다. 정신이 혼미한 크리쳐를 들고 나사로크가 자이언트 스윙을 돌았다.

붕! 뻑! 뻥! 부우우우웅!

나사로크의 무기가 된 검은 야수 하나로 다른 야수를 후려치는 명장면이 펼쳐졌다.

그리 뚫고 나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이 전장이 유지된 건 얼마나 됐을까.

아니, 유지라기보다는 밀리는 중이었다.

그리 인류 쪽이 밀리게 만든 원인 하나가 지금 눈 앞에 있었다.

사사사사사.

기묘한 울음을 토해 내는 크리쳐 군단 일부다.

“오십 내외.”

적의 규모를 파악한 로니의 말이다.

머리통은 곤충의 그것을 닮았고, 눈은 타원형으로 길었다.

턱 끝에 입의 역할을 할 것 같은 날카로운 집게와 이빨이 보였다.

두 다리와 손이 있는 이족 보행의 형태다.

“스펠 버그 개체, 각각 주문 준비 중.”

가까이 가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였다면.

본래 이곳에 있던 특수종 부대에서 희생을 감수하고 진즉에 이곳을 쳤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도 있었다.

스펠 버그.

곤충형 크리쳐, 등급은 레드, 주문을 사용하는 특이 크리쳐다.

놈들이 분절된 손을 들어 우리 쪽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선두에 있던 이후다.

난 뇌안을 발동했기에 모든 상황이 눈에 선명히 보였다.

곤충의 레벨이 일반 레드 등급보다 월등히 높은 80에 가깝다는 것과.

스펠 버그의 손에서 나온 하얀 빛무리가 주문의 일종이란 것도.

그리고.

이후가 몸을 움직여 스펠을 피하는 것도.

“사아악?”

곤충 괴물 일부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곧 놈들은 전부 손에서 주문 따위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가장 막기 힘들다는 저주 계열의 스펠이라 추측되는 것들로.

그리고 우리는 전부 피했다.

나야, 어릴 때부터 받은 훈련과 더불어 뇌안이 있으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마음으로 피했고.

나머지는 감에 의지했다.

“스펠이라고 다 맞아 줄 거니? 너희는 이제부터 보이지 않는 주문을 피하게 될 거야. 피할 수 있게 만들 거야. 내가.”

추수미 선배를 받은 건 신의 한 수.

선배가 바라보는 주문 세계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확연히 달랐으니.

선배 덕분에 우리의 주력 부대는 주문을 보고 피하는 재주를 익혔다.

보통의 팀은 훈련을 이 정도로 무식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 페이스 팀은 궤가 좀 달랐다.

물론 최강이라는 상위 여섯 개의 팀이라면 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이 자리에 있는 노 페이스 팀뿐이니.

결론만 말하자면.

이 자리에서 스펠로 무장한 크리쳐를 엿 먹일 부대는 우리뿐인 것이다.

“안녕하냐, 벌레들아?”

난 마음을 담아 말하며 염동력을 발동했다.

해충 박멸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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