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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73화 (473/488)

외전 64. 아는 것 같은데

“놀라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먼저 말해 둬야 할 것 같다.”

내 뒤로 구스타프와 미랑, 이후, 로니, 장옥이 섰다.

셋은 노 페이스 팀의 스타팅 멤버.

둘은 최근 팀의 핵심 멤버로 부상한 이들.

그 선두에 선 나다.

전보다 배는 넓어진 대련장 가운데에 서서, 좌중을 둘러봤다.

동기와 선배, 한껏 땀을 흘리던 변신족이 날 쳐다보고.

조용히 앉아 감각을 가다듬던 불멸자가 고개를 든다.

제 능력을 과하게 사용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초능 특수종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고.

주문을 읊던 스펠 유저가 입을 다문다.

“노 페이스 팀의 시작과 팀의 리더가 누구인지 궁금할 것도 같은데,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침묵이 내려앉고.

고요한 바다에 선 그런 기분을 느끼며 난 대련장 벽에 가로세로로 그어진 틈새를 보았다.

갈라진 틈새에 시선을 던진 채, 난 말을 끝맺었다.

“제가 리더입니다.”

그래, 놀라겠지.

그동안 로니가 워낙 날 잘 숨겨 왔으니.

상상도 못 할 정체라고, 놀람에 날 향해 치댈 수도 있다.

다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다.

그리고.

“우핫.”

“그렇군.”

“조금 전 주문에서 뭐가 잘못된 거지?”

“출정은 언제라고?”

다들 각자 할 일에 집중했다.

근력 운동을 하던 이들은 다시 근력 운동을.

트레드밀에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뛰고 있던 이들은 다시금 속도를 높였고.

명상하는 자세로 있던 불멸자는 도로 눈을 감았다.

초능 몇은 제 머리를 툭툭 치며 다시금 능력 발현을 시도.

주문 능력자라 할 수 있는 마법사, 스펠 유저는 제가 한 일의 결괏값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관심이 없네.”

“그게 중요한가?”

내 바로 뒤에서 구스타프가 말하고 미랑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중요한 건 아닌데.

“애들, 왜 안 놀라냐.”

괜히 로니에게 묻자.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대단한 일 아니었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다.

그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여기서 누가 리더를 하겠나.

할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이미 저들은 내가 이 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고.

로니를 비롯한 핵심 멤버를 리더로 생각하는 놈도 있었을 테고.

팀이 만들어지고 나기 전부터 난 모두와 대련했다. 모두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는 내가 잡았다.

내가 리더라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건데.

이제까지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좀 서운한데?

“서운해?”

눈치 빠른 로니가 물었다.

“아니.”

그런 내 어깨를 이후가 툭툭 두드렸다. 이건 설마 위로냐?

가히 불쾌했다.

어쨌든 내 발표는 이렇게 끝났으나, 진짜 중요한 얘기는 여기서 끝낼 일이 아니긴 했다.

“진짜 산이 남았다.”

내가 중얼거렸다. 학교에 말할 때가 온 거다. 내 정체와 내 모든 걸.

아니,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나.

총력을 기울여 막기로 한 거고.

그러니 나도 나서야 할 때다.

역으로 게이트가 열리면 세상이 난리가 날 테니까.

물론 난 세상이 난리 나는 것보다 미랑과의 미래가 중요하다.

다만, 미래에 우리가 지낼 신혼집을 부수고 시작할 순 없는 노릇이니.

신혼집을 지키는 거다. 지구는 내 신혼집이니.

“다녀오마.”

그렇게 전부를 두고 나 홀로 담판을 지으러 나섰다.

목적지는 전대의 영웅 팬텀, 나에게는 큰삼촌인 이중봉 총장 되시겠다.

대거 출정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었다.

* * *

중봉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태반을 알았다.

당연하게도 온신의 일도 알았다.

‘노 페이스 팀이라니.’

자신한테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이계를 넘나들어?

이걸 놔둬야 하나?

꼭 이렇게 길러야 하나?

어릴 때부터 위험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몸뚱이를 단련하는 거라는 부모 덕분에 고생한 아이를?

‘제 몸 하나 지키면 됐지.’

세상을 구할 이유는 없다. 그런 고생을 왜 자처한단 말인가.

복잡한 생각의 끝, 결론은 그거였다. 두고 볼 생각은 없다는 것.

아들과도 같은 온신이 뇌전을 터트려 제 사무실 전력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건 뭐냐?’

괴물의 아들은 괴물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뒤 온신의 능력을 알아본 순간.

중봉은 제 손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라는 광익와 혜민에게 연락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요. 제 그늘에 가려져 마음이 다쳤던 애입니다.”

“애한테 무슨 일 안 생기게 몰래 쫓아다녀 주시면 안 돼요?”

아비의 말과 어미의 말이다.

어미라는 혜민은 정신 상태가 의심되는 발언을 하긴 했다.

이계에 들어가는 걸 어떻게 쫓아다니나.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사관학교 총장이 제 일 내팽개치고 애 뒤를 졸졸 따라다닐 수 있겠냐고.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중봉은 거기서 마음을 접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과보호다.

그리고 현재다.

온신이 자신을 찾아왔다.

“제가 사실 노 페이스 팀 리더입니다. 제가 만든 팀이에요.”

밝히는 진실.

사실 진실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그랬냐?”

그래도 모르는 척, 한 번 해 주고.

“전쟁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뭐라고 답을 해 줘야 할까.

중봉의 고민은 짧았다.

아비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라고 하고.

자신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위험에 던져 넣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아이도 언젠가 홀로 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 아닌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켜 줘야 한다면.

“그렇게 애가 망가졌습니다. 그걸 또 보고 싶진 않네요. 아니, 다 알면서 왜 자꾸 물어요? 거, 눈치 더럽게 없으시네, 불멸자란 양반이.”

광익의 말이 다시 떠오르며 혈압도 같이 오르는 사이.

중봉은 할 말을 정했다.

“그래. 그래라.”

* * *

“그래, 그래라.”

난 중봉 큰삼촌이 화를 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교내에 이상한 단체를 만든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것도 외부 인사를 동원해서 그랬으니.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런데 이건 좀 허무한데.

“그러라고.”

중봉 삼촌이 다시 말하고, 난 물끄러미 삼촌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알고 있었는데.”

“뭐?”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열일곱이었나,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나에게 삼촌은 정말 좋은 친구와 같았다.

굳이 존댓말을 하지 않아도 될 그런 사이였고.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 표정이 툭하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던 그때의 삼촌을 떠올리게 했다.

“다 알았지?”

“아닌데.”

“하.”

알면서 모른 척했어.

어, 그럼, 부모님도?

“아빠랑 엄마도 아는 겁니까?”

중봉 삼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한때 유령이란 별명이 붙은 사람의 표정을 읽을 자신은 없었다.

“알면서, 왜?”

그저 의문만 품을 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냐.”

아버지가 한 말과 거의 다르지 않은 한마디였다.

그래, 이게 뭐가 중요한가.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가.

“공식적으로는 내일 올라가겠지만, 유온신 널 2학년이 아닌 실전 임무가 가능한 4학년으로 월반한다.”

삼촌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실전 그 이상이니.

사실 삼촌이 모르는 게 이상한 거였다.

월광은 어디서 만들었나.

교내 시설에서.

대련은 어디에서 하나.

그 또한 교내다.

레베카가 집에다가 나와 있었던 일을 송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카메라에 잡히고 누군가의 귀에 들어간다.

그럼 그걸 보는 건 누구인가.

알면서도 지켜 준 것이다.

그리고 난 그걸 이미 예측했다.

사실 오늘의 투정을 짧게 말하면 이거였다.

“고마워요, 삼촌.”

그리고 중봉 삼촌은 대답했다.

“고생해라. 꼬맹아.”

어릴 때 하던 말 그대로.

가슴을 간질거리는 무언가를 느끼며 난 돌아서 나섰다.

이제 정말 전장에 나설 차례였으니까.

다음 날, 교내 한복판 아주 큰 홀로그램 공고문이 띄워졌다.

물론 내가 4학년으로 월반한다는 내용이었고.

크리쳐의 찬탈 사건으로 인해 교내 긴급 방학이 시행된다는 얘기였다.

“위험한 거 알지?”

준비를 끝내고 나서는데 로니가 묻는다.

“알지.”

“모르는 것 같은데.”

구스타프도 슬쩍 내 얼굴을 보고 말한다.

“아파요? 형?”

장옥도 나선다.

얘들이 왜 이래.

“괜찮아. 가끔 그래.”

미랑이 말하고, 난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난 가끔 그러는 인간인 거다.

그게 뭔지 알 필요가 뭐가 있나.

난 가끔 그런 인간인 것을.

“난 가끔 이래.”

뭔지도 모르면서 미랑의 말을 따라 인정했다.

이후가 그걸 보더니, 신중하게 물었다.

“치료 안 받아도 되겠나?”

이 새끼는 사람을 무슨 정신병자로 몰아가네.

“무슨 치료?”

“구안와사 같다.”

이건 진짜 무슨 소리지.

“너 자꾸 웃고 있어.”

로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내가?

웃었어?

홀로그램 페이스 가드를 조작해 거울처럼 내 얼굴을 봤다.

은은한 미소가 보였다.

나 웃고 있었네?

왜?

두근.

이유가 뭐가 있겠나.

특수종 세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좋은 거 하나를 꼽자면 이런 순간이니.

나도 내가 이런 인간인 줄 몰랐는데.

나 싸우는 거 좋아하더라고.

이건 분명 아버지의 피일 것이다.

전장을 앞둔 흥분이 심장을 때린다. 그러니, 걷고 나아가 즐거운 한판을 벌여 볼 셈이다.

이게 궁극적으로 미랑의 곁에 있게 되는 일이니.

일거양득이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 좋은.

그렇게 우리는 출정했다.

가는 길 내내 평소와 같이 농담과 웃고 떠들며 보냈고.

남기주 아저씨가 보낸 리무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소리가 먼저 반기는 곳.

전장이 터진 이계 앞은 복잡했다.

이곳에 전부 다 데리고 올 순 없었기에.

“위에서 서른 명, 골라내 줘.”

로니에게 부탁했고.

뇌안으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됐다.

이유를 물어보니, 수긍이 됐다.

“가진 능력의 총합보다, 전투 감각이 더 중요해.”

로니의 말이 맞았다. 미랑도 동의했고.

그렇게 모인 서른 명이다.

여기에 러시아 변신족 친구 나사로크와 추수미, 도라엘 선배가 합류하면 끝이다.

그리 떠난 이계, 검은 황무지의 입구 앞이다.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군부대부터 시작해서 각 단체에서 부른 특수종 무리다.

당연하게도 NS에서도 사람이 왔다.

근데 아버지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기웃거리며 보기도 뭐해서 태연한 태도로 나갔다.

앞을 가로막은 이들 중 태반이.

“나도 합류하겠다!”

“나도!”

“같이 싸우러 왔습니다!”

프리랜서 팀이었다. 그러니까 노 페이스 팀과 사정이 같다.

다만.

“어, 가면.”

“노 페이스 팀?”

“이후?”

중간에 이후는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오리지널인데?”

바로 옆을 보니 어설프게 가면을 쓴 무리 몇도 보이긴 했다.

우리를 따라 한 건가.

그만큼 노 페이스 팀이 주는 영향력이 늘었다는 거겠지.

어쨌든 등장만으로 주변 시선을 모았고.

곧 군용 무늬가 가득한 슈트를 입은 사람이 나와 섰다.

슈우우웅 하고 슈트 사이로 증기가 빠지며 페이스 가드가 퉁 하고 열렸다.모르는 얼굴이었다.

“진입로를 담당하는 유일 부대의 강명찬인데, 그쪽은?”

알면서 하는 물음에.

“노 페이스 팀 서른 명, 진입하고 싶은데.”

막 우리가 도착한 걸 보고 다가오던 기주 아저씨가 나섰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주 아저씨의 무대지.

“자격을 물을 필요는 없겠지.”

강명찬이란 지휘관의 말이다.

그럴 법도 했다.

본래 우리 자리는 무리의 맨 뒤였는데 어느새 모세의 기적처럼 무리가 갈라져 가운데로 나가게 됐으니까.

다들 길을 열었고 우리는 나아갔다.

뒤통수가 간지러웠지만.

“재밌네.”

미랑의 한 마디에 나도 피식 웃어 버렸다.

어쩌다가 벌써 이렇게 유명해진 건지.

절차는 복잡했을까? 모르겠다.

“야, 온신아.”

이제는 내 이름을 똑바로 불러도 되기에 기주 아저씨가 다가와 내 가슴을 툭 치며 날 불렀다.

“조심해라.”

“별걱정을.”

내 말에 기주 아저씨는 ‘그래,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자식아, 위험하면 튀어.”

이건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일까.

아니면 나라는 개인을 위한 걱정일까.

무엇이든 말에 담긴 온정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리 들어선 이계다.

검은 황무지.

“적응하는 데 18시간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안전지대에서 머무르셔야 합니다!”

들어오자마자 누군가 빽 소리를 지른다. 그럴 만도 했다.

뻥! 꽝! 쩡!

꽈르르르르르릉!

꽈과과광!

두두두두둥!

“끄아아아아!”

“다 죽여!”

끼에에에에엑!

외부에서 크리쳐의 찬탈이란 멋들어진 이름까지 붙여 둔 곳은 이미 전장이었다.

피와 살, 폭탄과 초능과 주문이 판치는 그런 전장.

비명과 크리쳐의 괴성이 배경 음악처럼 깔렸다.

하도 넓어 검은 황무지 대신, 검은 평야라 불리는 곳이다.

머리 위로 검은 연기와 푸른 증기가 어우러져 흩날렸다.

여전히 가슴은 뛰었고.

“됐습니다.”

적응에 18시간까지는 필요 없었다.

고르고 고른 인재, 전부 제 몸의 한계까지 굴러 본 이들.

팀원 서른이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은 49분.

가장 늦게 적응한 특수종이 49분째라 생긴 일이다.

“당장 급한 곳부터 말해 주시죠.”

서른 명의 노 페이스 팀의 첫 전장이다.

곧 다른 지휘관 하나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지도 입력해 주십시오!”

홀로그램 맵이 서로의 눈 앞에 떠오르고 그걸 레베카가 냉큼 내려받았다.

“우측 A-10 부근에 골치 아픈 크리쳐 무리가 나왔습니다. 지원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슬쩍 보더니 하는 말이다.

노 페이스 팀은 팔방미인이다. 지금 주어진 임무는 지원이고.

“네.”

일단 출발부터 하고 볼 일이었다.

불멸자의 감은 없지만, 순수한 인간의 감으로도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거든.

드넓은 이계의 땅에 참으로 많은 크리쳐가 모여, 황무지 위를 알록달록 채운 게 보였다.

전장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꼭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건 아닐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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