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71화 (471/488)

외전 62. 그게 지금 내 최선이었다.

“불길한데.”

불멸자의 예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말이었다.

세최특, 유광익의 말에 그의 아내이자 파트너의 입도 열렸다.

“그걸 말이라고 해? 쟤들 뭔데?”

인베이더에서 크리쳐로 변한 명칭은 시대의 변화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의 등을 보고 자랐던 유광익은 이제 모두에게 등을 보이는 위치가 되었고.

작게 시작한 회사 NS는 공식적으로 전 세계 최고의 알파 기업이라 평가받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존재가 그리 만드는 거긴 하지만.

미친 새끼들의 집합소라고 헐뜯는 이들 또한 NS가 최강이란 건 인정하는 편이다.

광익은 엄지로 관자놀이 부근을 긁었다.

페이스 가드 따위도 착용하지 않아 걸리는 게 없다. 이계 한복판에 있는 것치고는 간소한 차림을 넘어 미친 사람처럼 보일 법도 하지만, 그가 누군가.

유광익, 세계 최강의 특수종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 누구도 그를 보고 걱정 따윈 하지 않으리라.

어찌 됐든, 괜히 최강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주어진 일은 제대로 끝내야 하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까 의뢰받은 컨퀘스트, 탐험에 일조하겠다고 했으면 그렇게 하는 거다.

세븐 데이즈, 일곱 개의 태양이 뜨는 땅에 들어선 지 보름.

광익은 자신을 막는 크리쳐 ‘군대’를 만났다.

인베이더와 크리쳐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크리쳐는 부대 단위로 움직이는 놈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몰려다니는 걸 봐도 짐승의 무리 생활과 비슷했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봐도 군대의 그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싱글 혼 드래곤이라든지.

이 땅에서만 보이는 오렌지 레벨의 크리쳐가 속속 나오는데, 섣부르게 덤비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진형을 만들었다.

“내가 해?”

아내의 물음에 광익은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이 정도로 자신과 아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확률은 현저히 낮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불확실한 위험에 던져 둘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광익은 먼저 나섰고.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전력 일부를 개방해야 했다.

요즘은 통 진지하게 싸울 일이 없었는데.

광익의 왼팔에서 에너지가 뭉쳐져 만든 광학 블레이드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솟았다.

기생 기어가 거듭 발전하고 개발되어 생긴 ‘레이저 블레이드’다.

사이오닉 에너지가 뭉치고 뭉쳐져 구현된 것이기에.

일반 광학 병기와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왼손에서 솟은 블레이드로 광익은 썰고 베고 잘랐다.

처음에는 오렌지 레벨을.

이후에는 유니크 급이라는 블랙 & 화이트 레벨의 크리쳐를.

‘음흉한데.’

싸우며 드는 생각이다.

위험은 없다. 하지만 광익은 자신의 수준을 잘 안다.

특수종 세계의 정점.

그게 바로 유광익의 위치다. 그러므로 이런 싸움이 위험하다 할 순 없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고생 좀 하겠는데.’

광익의 예상은 정확했다. 일선에서 뛰는 실무자의 경험과 불멸자의 감에서 비롯된 추측이다. 당연히 실제 일어나는 일과 그의 예상은 얼추 비슷했다.

“주문 냄새는 안 나는데.”

크리쳐의 움직임을 보며 혜민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두 눈이 파랗게 빛났다.

현재 일어나는 일이 스펠, 주문이라 불리는 마법과 관계가 있는가.

아직도 연맹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가.

따위의 잡생각이 들어서다.

여전히 마법 연맹은 헛짓거리를 잘했고.

그게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진 않긴 했지만, 거슬리긴 했으므로.이번에도 그들의 짓일까?

크리쳐를 앞세워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그건 아닌 듯했다.

마법의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았으니.

광익과 혜민이 일곱 개의 태양이 뜨는 땅에서 크리쳐 무리를 학살할 때.

언라이벌 식스라 불리는 이들 중 반도 함정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 또한 무난히 이겨 냈다.

애초에 그들을 노린 함정이 아니었다.

전 세계 어떤 곳이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지.

과거, 인베이더 시절에나 경험했던 이상 현상이 크리쳐의 시대에 일어났다.

“끄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죽은 사람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계 곳곳에서 크리쳐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졌으므로.

그 희생하는 이들 중 일환의 팀도 있었다.

조일환.

사관학교 출신으로 일환도 천재 소리를 들으며 졸업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그 생각보다 더 가혹했기에.

팀을 이적하고 경력을 쌓아 가며 이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그가 속한 팀은 벨라루스.

이름은 동유럽에 위치한 국가에서 따왔다.

팀장과 핵심 전력이 그쪽 출신인지라.

변신족 타격팀을 주력으로 두고 그 외 서포터가 되는 초능과 불멸이 한 팀이다.

일환은 불멸자로 여기에 합류해, 이제 서포터 팀 또한 주력인 변신족 타격 팀만큼 키워 내는 중이었다.

거기에 어쩌다 보니 변신족 타격 팀에 아내도 있었다.

이제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팀을 만들어 이끌던, 후일 언라이벌 식스를 넘볼 만한 재능이라던 친구, 팀장이 그의 아내였다.

‘안젤라.’

그 안젤라가 사지가 찢겨 죽었다.

“시발.”

일환은 욕설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이 빨갛다. 시뻘건 색으로 채워진 세상이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붉지?

왜긴, 머리통이 터져서 눈깔까지 피가 스며들었기에 그렇지.죽고 죽는다.

상대는 유니크 크리쳐.

하얀 악몽이라는 벼락의 신을 본떠 이름 붙인 인간형 크리쳐, 토르다.

하얀 벼락을 두른 크리쳐가 일환의 곁에 도달했다.

손짓 한 번이면 전신이 타올라 죽을 텐데.

그는 일환을 두고 스쳐 지나갔다.

왜?

초고속 재생, 무명가의 일원이기에 일환은 육신은 이 순간에도 재생되는 중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꺾였다.

그가 살아날 확률은 없었다.

단 한 번만 누군가 일환의 숨통을 끊으면 그의 재생은 멈출 테니까.

마음이 죽은 불멸자의 몸은 죽은 것과 다름없음으로.

‘안젤라, 안젤라.’

죽음과 공포, 좌절과 절망이 일환을 잠식했다.

조일환의 정신은 이미 죽었기에 뇌가 자연스레 상황에서 도피하는 상상력을 뿜어냈다.

그의 세상에서 일환은 안젤라와 함께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특수종의 세상을 떠나 한적한 곳에 정착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첫째를 조이라고 이름 붙였다.

둘째는 아직 아내의 배 속에 있었다.

“행복하다.”

일환이 말했다. 안젤라는 생긋 웃으며 뭐라 말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일환은 제 귀를 후비며 다시 물었다.

불멸자의 청각이 고장이라도 난 건가.

“뭐라고?”

“좋은 꿈 꿨나요?”

안젤라의 물음이 들린 순간, 꿈같은 세상이 부서졌다. 금이 간 유리처럼 사방이 쪼개지더니 곧 펑 하고 부서져 사라졌다.

다시 본래의 세상, 세계다.

“초고속 재생, 그것도 순혈, 좋은 재료네요.”

눈앞에 까만 옷을 걸친 누군가가 보였다.

왜소한 체구, 목소리, 말하는 모든 게 여자의 그것이라 불멸자의 감각이 말한다. 그런데도 일환의 직감은 상대의 성별을 유추하지 못했다.

왜?

이유는 모른다.

까만 망토 따위를 두른 성별을 추측할 수 없는 누군가가 손을 뻗어 일환의 이마에 올렸다.

망토 안에서 나온 하얀 손이 눈에 가득 찼다.

그 손이 일환의 이마를 짚었다. 반항할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이 꺾이기도 했고 눈앞의 존재가 보이는 이질적인 기운이 전신을 옥죄었다.

“당신은 이제부터 이 땅의 파수꾼.”

그게 마지막이었다. 일환의 의식은 사라졌다.

그의 육신 또한 틀어지고 찢어졌다.

찢어진 근육 안에서 새로운 팔과 다리가.

새로운 무언가가 초고속 재생과 더불어 생겨났다.

녹색의 피부, 인간의 그것과 다른 질감의 무엇이다.

블라인드 페이쓰 교주는 변하는 불멸종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생명이 새로이 태어나는 중이다,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능이, 신비를 보임에.

추방자 무리는 숨죽인 채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꼭 추방자 무리가 나서야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녀, 또는 그는 계획이 있었다.

이계 대통합.

언젠가 인간의 세계까지 잠식하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신의 부름을 들으리.

블라인드 페이쓰, 광신의 성가대가 그녀의 뒤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없다.

아아아아, 신음 또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로 억지 음률에 맞춰 소리만 토해 낼 뿐.

교주는 자신을 찬송하는 노래를 들으며 몸을 돌렸다.

‘크리쳐의 찬탈’이라 불리는 대형 사건의 시작이었다.

* * *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학교에 돌아와 상황을 보니, 이건 뭐 할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뉴스에서 연신 크리쳐의 찬탈이란 문구를 썼다.

정부에서 지침을 내렸던지, 누군가 한 말이 제대로 꽂힌 건지.

그 말 그대로 대부분 이계에서 크리쳐의 레벨이 높아졌다.

녹, 파, 노, 빨, 주로 나뉘는 등급에서 녹색의 크리쳐는 숫제 머리 채우기 용도로만 나올 정도로.

기본 등급이 파랑이고 유니크 등급의 괴물도 속속 튀어나왔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가 벼락의 크리쳐, 토르가 나온 곳이다.

유니크 크리쳐 중에서도 오랜 시간 이름을 날린 괴물이다.

그와 조우한 특수종 중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

곳곳에서 사고가 터졌고 곳곳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

그중에서도 한국이 최악이었다.

다른 곳보다 더 가혹했다.

소위 말하는 고위 레벨 크리쳐는 대부분 여기서 튀어나왔으니까.

땅덩이가 좁기에 이계의 문도 적게 가졌다.

그런데도 한국 담당 이계에서 나온 ‘토르’급 크리쳐만 여섯이다.

그러니 절로 나온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관학교에서 시작된 노 페이스 팀의 희생이 없다는 것에.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겹쳤다.

일단 남기주 아저씨의 탁월한 전략이다.

이 아저씨는 ‘위험한 곳에는 위험한 놈들을’이라는 생각으로 팀을 운영했다.

그 덕분에 노 페이스 팀 내에서 고위 레벨의 능력자는 전부 상대적으로 고위험군으로 향했다.

반대로 능력이 출중하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활동이 쉬운 이계에 들어갔고.

둘째는 노 페이스 팀은 소거만 담당했다는 거다.

지금 사고가 일어난 건 대부분 컨퀘스트 미션 팀 쪽이다.

탐험과 탐사를 담당하는 이들의 희생이 대부분이었다.

소거 팀 중에서 사고를 당한 건 극소수다.

마지막으로 노 페이스 팀의 훈련 정도가 이들을 살렸다.

“극한을 경험해 본 덕이 크다.”

변신족 동기 중 하나의 말이다.

평소 워낙 격하게 대련하고 싸우는 이들이니까.

그중 목숨이 간당간당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았다.

물론 대련이니 죽을 정도까진 가진 않지만.

팔다리가 부러지는 건 예사였다.

하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니, 교내 소속 의사가 신경질을 내는 것도 그러려니 할 판이고.

“운이 좋은 거지, 그리고 위험한 거고.”

로니가 다가와 말했다. 얘도 고생 좀 한 듯했다.

나와 함께 나간 이들도 고생 좀 한 거고.

이런 상황에서 깔끔하게 임무를 완료했음에, 오히려 팀 가치가 더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일인 거다.

아니, 이게 당연한 걸지도.

위기 속의 기회, 기회 속의 위기라 했으니.

어쨌든 이번 일로 당분간 탐사 팀의 일정이 전부 멈췄다.

남기주 아저씨가 말하길.

“당분간 소거 일에 집중할 테니, 우리는 일이 좀 줄겠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와 비슷한 말을 뱉으며 기주 아저씨의 끝말에 씁쓸함이 담겼다.

대련장 구석에 앉아 있자니, 내 눈에 노 페이스 팀 일원이자 동기 무리가 보였다.

여기에 선배 무리가 섞이기도 했으니.

많다. 참 많은 인원이다.

올해가 지나면 2학년이 되는 인원이 태반인데.

당분간 외박, 출장으로 작전에 나서기 모호한 시기였다.

이러니 기주 아저씨가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라는 말을 하는 거다.

팀이 자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건 좋은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으니, 걱정되는 거다.

기실 나도 죽은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게 대단히 큰일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큰일이 나면 아버지를 비롯한 진짜들이 해결하겠지.

나? 나는 이 상황에서 여전히 내 목표를 위해 나아갈 뿐.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그래서 미랑을 찾아 쫓아가 물었다.

대답은 곁에 있던 이후가 대신했다.

“불멸자다. 다쳐도 낫는다.”

아, 귀를 씻고 싶다. 미랑이한테 물었는데 왜 대답을 네가 하는 거냐?

눈을 부라리자, 옆에서 미랑이 내 손목을 잡았다.

찌릿하고 전기가 오는 것 같다.

마음에서 시작된 뇌전이 몸을 한 바퀴 돌아 손목에서 머무른 그런 느낌.

“너야말로.”

미랑의 눈이 반짝였다. 은하수가 담긴 눈동자다.

이 여자야말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아닌가.

“난 안 다쳤다.”

옆에서 이후가 말한다. 그래, 너 새끼는 안 다쳤나 보구나.

난 인정할 건 인정했다.

이후와 나는 생각보다 손발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것.

이게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남자의 취향 때문일까.

“필요한 거 있어?”

“응?”

그런 날 두고 미랑이 묻기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봤다.

“진급 선물.”

진급, 아, 그렇지.

이제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 다가왔으니.

2학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데이트.”

난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미랑에게 받을 선물 중 최고봉이 둘 사이에 낳을 아이라면.

시작은 데이트가 되겠지.

명확하게 목표를 위해 달리는 것, 그게 지금 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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