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69화 (469/488)

외전 60. 주황

묵직한 일격에 등을 내준다.

이후는 피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자해라도 하는 줄 알았으니.

지금 상대하는 크리쳐는 아울베어.

부엉이 대가리에 곰의 몸을 가진 신화 속 괴물의 이름을 딴 크리쳐다.

실제로 크리쳐의 대가리가 부엉이를 닮진 않았으나.

비슷해 보이긴 했다.

눈은 크고 동그랗고 주둥이에는 가시 같은 이빨이 한가득했다.

놈의 앞발이 이후의 등에 떨어졌다. 발톱이 칼날처럼 빛났다.

쩡.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 날리는 일은 없었다.

사이오닉 아머를 입었나?

아니다.

스펠 기어로 필드 주문이 발동했나?

그것도 아니다.

변신족이 가진, 육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빛을 발했을 뿐.

강체.

그의 전신에 솟아난 털이 강철처럼 굳어졌다.

강철 털북숭이라.

이건 뭐 보고도 안 믿기네.

기교로 익힌 게 아니라, 변신족의 혈통을 타고난 순수 강체다.

그러니까 저건 타고났다는 거다.

강체만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쩡.

주먹 한 방에 동그란 눈깔이 특징인 아울베어의 대가리가 터졌다.

왼 주먹을 바깥으로 휘두른 행위에 불과한 동작에 무지막지한 힘이 담겼다.

그 틈에 다시 한 놈이 허벅지 어림을 손톱으로 갈겼으나.

쩡.

강체, 강철의 털은 모든 공격을 무용하게 했다.

변신족은 세 가지의 특수 혈통이 이어져 온다.

하나가 강체, 둘이 괴력, 셋이 운동 능력 특화인데.

이후는 강체와 괴력을 자연스레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 운동 능력까지 증명하니.

앞뒤, 두 놈이 덮치며 위아래를 노리자, ‘탁’ 하고 몸을 띄워 땅과 수평으로 만든 뒤, 양발을 벌려 앞뒤 놈을 동시에 찼다.

당연히 괴력이 담긴 발길질이었기에.

뻥뻥- 하고 두 마리 아울베어가 이산가족이 되어 멀어졌다.

한 놈이 미랑의 발치까지 굴러오길래, 내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염동력이 발동, 그대로 놈이 멈췄고.

미랑은 놈이 멈춘 걸 보더니 품에서 권총을 꺼내 놈의 미간을 쐈다.

탕!

광학병기는 아니지만, 위력은 출중했다. 기어의 일종으로 보였다.

미랑의 총질에 한 마리.

남은 한 마리는 구스타프가 처리했다.

위에서 밑으로 염동력의 압력으로 찍어 눌러 멈춰 세우니, 아울베어의 몸이 덜컥 멈췄다.

이후 구스타프가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검지와 중지를 붙여 허공에 선을 긋는다.

최근에 단련 중인 염동인이다.

염동력을 날카롭게 갈아 만든 칼날이었다.

곧 아울베어의 목에 가는 혈선이 생기더니 목이 드드득 하고 잘렸다.

단면이 지저분하긴 했지만, 위력만큼은 충분했다.

아울베어의 몸뚱이는 주문을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단단하기도 하니.

“이게 바로 오스트리아의 아들, 구스타프 님의 염동인이다.”

구스타프 자식, 분명 처음에는 재수 없는 양아치 같았는데, 왜 점점 푼수가 되는 것 같냐.

이게 저 자식의 본모습이겠지.

이전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가면을 쓴 것일 테고.

오롯한 집중과 단련의 나날.

명확한 목표, 그로 인한 성장의 순간들.

구스타프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잘했다.”

대강 말하고 돌아서자, 이후가 돌아와 앞에 섰다.

이건 어떤 재주일까.

부분 변신의 일종이겠지.

전신의 털만 수북하게 자랐다. 얼굴은 아직 인간의 그것이다.

털 사이로 무늬 따위가 보이진 않았다. 호랑이 변신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야.

“강체는 아직 미숙하다.”

그리고서 툭 뱉는 말.

아, 이 새끼.

이건 지금 도발인가? 그런 거지?

옐로 등급 크리쳐의 일격을 막으면서 미숙하다고 말하는 거잖아, 지금.

그러니까 강체보다 괴력과 운동 능력은 더 좋다? 자기가 더 세다? 이거지?

특이 체질 변신족, 이후는 세 가지 혈통을 다 타고났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보육원에서 자랐기에.

그의 혈통의 원류는 몰랐다.

각성 이전부터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시달릴 뻔했다고도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 미친 과학자 무리가 날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딜 감히.

아버지가 계시는데.

NS 산하, 동훈 삼촌이 만든 변신족 보육 센터는 그런 접근을 애초에 차단했다.

즉, 이후는 각성이 예정된 변신족이 낳은 아이였다.

동훈 삼촌의 보육 센터에 맡겨짐으로 NS가 출범한 재단의 특혜를 받았고.

“나도 다 보여 준 게 아니야.”

말을 맞받아치자, 옆에서 미랑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게 보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평소와 같지만, 나한테는 보였다.

미랑이가 지금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는 걸.월광을 뿌리자마자, 호기심을 표현했으니.

“그거 뭐야?”

라고 묻지 않았나.

“월광.”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보여 주니, 신기하다는 듯 손끝으로 톡 건드리기도 했다.

이후 월광은 두 배 더 강해졌다.

외적으로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그걸 다루는 내가 내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여신의 축복을 받았으니.

“넌 진짜 오래 살 거야?”

푸닥거리는 아니지만, 강체를 자랑하는 이후를 두고 돌아서자, 구스타프가 다가와 말했다.

“왜?”

“한국에 이런 말이 있다.”

오스트리아 놈이 한국의 고사를 논했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고.”

“근데 이럴 땐 오스트리아 속담을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게 중요하냐?”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런데 내가 뭘 어쨌다고.

구스타프는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앞으로 나갔다.

그런 말이 왜 나오는 건지 묻고 싶으나, 더 물어볼 틈이 없었다.

“여섯.”

미랑이 입을 연다. 그녀의 레이더 능력은 탁월했다.

주변을 감지하고 먼 곳을 바라보며 세밀하게 상대를 파악했다.

그리고 입을 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빨간 게 섞였다.”

레드 등급이 섞였다는 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앞쪽, 오렌지 다섯을 이끄는 크리쳐가 보였다.

드문 경우일까? 아니다. 클라우드 필드는 본래 옐로우와 레드가 섞여 나오니.

내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한참 가면 지금쯤 그곳에서는 유니크 몬스터를 상대한다고 알고 있다.

우리 역할은, 정확히 말하면 우릴 포함한 몇 개의 팀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곳으로 가는 크리쳐를 끊어 내는 거다.

엘리트급, 블랙 & 화이트로 통합해 부르는 크리쳐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주변 크리쳐를 끌어모으는 성질이 있다.

지원 병력 소거.

그게 임무다.

“이제야 제대로 된 놈들이 오는구나.”

구스타프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단련한 능력을 발현해 제힘을 증명하는 것.

그건 힘을 가진 특수종이라면 누구나 흥미가 동할 일이니.

“조심, 또 조심.”

이삭 형이 말한다. 이 형은 걱정이 많다.

구스타프와 내 능력.

그리고 이후가 보여 준 것.모든 걸 종합했을 때.

레드 등급도 따위다. 위협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리 개인 능력에 치중해서 활동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포지션.”

내가 말했다. 리더는 나니까.

이후는 이런 면에서는 깔끔했다. 불만 따윈 토하지 않았다. 처음 네 마리의 크리쳐를 죽였을 때부터, 말없이 나섰다.

공사 구분은 잘하는 편인가 보네.

미랑이 중앙, 내가 그 바로 옆.

“늘었어. 총 열.”

숫자가 늘어난다. 아무래도 여기에 좀 몰리나 본데.

“지원 요청하겠다.”

뒤에서 이삭 형이 다시금 말하고.

이번에는 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구스타프가 답했다.

“지원이 오기 전에 끝날 것 같은데, 놔두세요.”

그 또한 현재 이 팀이 가진 능력을 안다. 경험이 쌓이면 아는 게 많아지는 법이다.

첫 번째 실습을 다녀온 뒤, 그만둘까 고민하던 머저리는 없었다.

이제 고민할 시기는 지났다고 해야 할까.

이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우리는 2학년이 될 테니까.

“다소곳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미랑이 읊조렸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다.

이후가 변신했다. 툭 한 걸음 나서며 양팔이 굵어지고.

다시 한 걸음 나서며 강철같은 털이 전신에서 솟았다.

변신을 완료하고 뒤를 돌아본다. 변신족의 변신체를 처음 보는 사람은 오금이 저린다고들 한다.

특별히 야생의 살기 따위를 뿌리지 않음에도.

그들이 가진 본연의 야수성이 그리 만든다.

이후는 얼굴까지 덮은 털 덕에 눈과 코끝만 간신히 보였다.

무늬 없는 호랑이, 그게 이후다.

난 그런 이후와 눈이 마주쳤다.

본능에 휘말린 사람의 눈이라고 보기에는 더없이 곧고 맑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후는 바르고 곧은 변신족.

본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천재다.

“내가 먼저.”

이후가 말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순서니까.

쾅!

무채색의 하얀 호랑이가 땅을 박찼다. 클라우드 필드의 하얀 흙이 하늘로 치솟았다.

포탄이 날아간 듯했다.

“무지막지하네.”

그걸 보며 중얼거린 구스타프가 앞으로 더 나아가고.

미랑은 묵묵히 제 기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저격수는 둘.

불멸자는 아니지만 저격 훈련 상위권에 랭크된 나, 타고난 저격수인 미랑.

둘 다 준비된 기어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울 때 보니, 총기 조립에 길어야 3분을 준다고 했는데.

나와 미랑은 둘 다 1분을 넘기지 않았다.

미랑이 꺼낸 총은 아는 종류였다.

총신이 긴 레일 라이플, 별명은 벼락, 블리츠.

만든 건 독일의 기어 제조회사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어 장인의 손이 닿은 물건.

저걸 구하기 위해서 장인어른의 본가인 순혈 정가까지 움직였다지?

그만큼 처가에서 미랑을 위해 열과 성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인어른, 이제는 제가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장인어른께 마음의 편지를 한 장 보낸 뒤, 나도 총기에 달린 스코프를 조절했다.

기어 제조회사는 한국이 제일이라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총기류는 미국과 독일을 따라잡기 힘들다.

내가 준비한 기어도 똑같은 대구경 저격 총.

별명은 종군 기자다.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해 붙은 별명이다.

그만큼 소음이 적은 총이다. 폭약의 메커니즘으로 쏘아지는 탄이 아니니까.

한쪽은 벼락이 불릴 만큼 시끄럽고 다른 한쪽은 종군 기자란 별명이 붙을 만큼 조용한 라이플이다.

“이후 선배를 기준으로 내가 우측.”

미랑이 범위를 정했고.

난 그에 따랐다.

두 개의 저격 총은 타입이 달랐다. 미랑은 단순한 스코프가 달렸고.

내 건 인류 과학의 총합이라 할 만한 조준 보준경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금액대가 비슷하다지, 아마?

그 이유를 미랑이 먼저 보여 줬다.

“우측 반경 셋, 범위 안에 도달. 숫자 더 늘고 있다. 최소 서른 이상, 옐로우 등급, 웨이브 형태.”

그녀가 말하며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꽈-앙!

페이스 가드에 달린 소음 차단 장치가 알아서 발동했지만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진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고막이 찢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한 굉음이다.

괜히 ‘벼락’이란 별명이 붙은 총이 아니다.

스코프에 눈을 대고 미랑이 한 짓을 봤다.

뇌전 에너지를 머금은 포탄이 옐로우 등급 크리쳐 셋을 쓸어버린 게 보였다.

찢기고 터진 크리쳐 무리가 보였다.

‘이건 뭐.’

사기에 가까운 무기 아닌가.

일견 이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투자할 돈만 충분하다면 이제 크리쳐는 사냥의 대상이지, 위협의 대상이 될 순 없으니까.

녹, 파, 노, 빨, 주로 나눈 등급이 크리쳐의 위험성을 나타내는가.

아니지.

그저 사냥하기 까다로운 순서대로 나열한 것에 가깝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랑의 탄은 벼락을 머금은 스펠 기어이니, 이만한 위력은 당연했다.

나 또한 손을 놀렸다.

찰칵, 찰칵, 찰칵.

세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건 곧 크리쳐의 영정 사진이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는 행위이니.

스코프로 보고 정확히 쏘는 게 내 일이었다.

내 총은 사이오닉 기어.

날아간 탄이 긴 거리의 곡선 비행을 끝내고 크리쳐의 머리에 꽂혔다.

퍽.

탄환은 충격을 받으면 여덟 조각으로 갈라져 퍼진다.

관통이 아니라 분열탄이다.

즉, 크리쳐의 머리통에 꽂힌 순간, 팍 하고 놈들의 뇌를 조각내는 폭발물이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셋, 미랑이 셋.

스타일은 다르지만, 여섯의 크리쳐가 죽었고.

“총기 과열, 대기 12초.”

미랑이 읊는다.

나도 전기 에너지를 머금어서 풀어낸 총열의 상태를 점검했다.

쉴 필요는 없지만.

이후가 잘 막고 있기에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막 레드 등급의 크리쳐가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게 보였다.

이러다 보면 구스타프가 할 일이 없는 거 아닌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뒤에서 이삭 형이 중얼거릴 때였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밑!”

갑자기 들린 미랑의 외침.

내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랑의 말 아닌가.

밑?

몸을 틀어 저격 라이플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땅을 밀어내며 일어나는 사이다.

내가 누운 곳에서 겨우 두 뼘 옆, 파삭하고 땅이 부서지며 그 아래에서 뭔가가 튀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것 같은데.”

이 모든 게 이삭 형의 중얼거림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이삭 형의 말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내 바로 밑에서 땅이 들렸다.

펑 하고 흙이 솟구치고 무언가 내 배를 후려쳤다.

맞으면서 보니, 형체가 보인다. 원뿔 형태의 손톱이다.

젠장할.

기척을 감추는 데 특화된 오렌지 등급의 괴물이었다.

맞으며 시선을 집중하니, 상대의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성인 남성 정도의 크기에 둥근 코와 원뿔을 단 것 같은 양팔.

그림자 두더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까아아악.

머리 위에서 까마귀 울음 같은 게 터졌다.

이쪽도 주황 등급 괴물이다. 무서운 속도로 날며 먹이를 낚아채는 크리쳐.

미친 까마귀다. 전신에 검은 털이 난 여섯 개의 발과 길고 뾰족한 부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배를 얻어맞고 1초 내외.

까마귀의 울음이 들렸고.

난 상황이 엿 같아졌음을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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