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9. 이후는 이후였다.
클라우드 필드.
이계의 땅이다.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하는 건 지구와 다른 가벼움이다.
중력의 다름이다.
그 뒤, 적응만 한다면 운동 능력을 비롯한 모든 게 지구보다 발달하는 곳.
이렇게만 보면 매력만 풍부한 땅이나.
이계의 땅이 매혹적일 때는 언제나 가시를 숨기는 법이라 했으니.
정확한 이유가 밝혀진 바 없으나, 변신족은 이 땅에 적응하는 데 최소 열흘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한 변신족은 옆 사람의 어깨를 두드린다고 팔을 휘두를 때도 괴력을 담곤 했다.
이 말인즉슨, 자기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일부 학자는 변신족의 뇌와 몸에 오가는 전극 신호에 다른 주파수가 끼어들어 생기는 문제라 하지만.
그거야 알 바 아니었다.
아니, 내가 그런 걸 알아서 뭐 하게.
일선에서 뛰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결과다.
“그렇군. 그래.”
이후가 중얼거리며 내 가면을 빤히 봤다.
“네가 유오…….”
“거기까지, 이름은 말하면 안 됩니다. 선배.”
이후의 말실수를 미랑이 막았다.
그걸 보는 순간 심사가 꼬일 뻔했으나.
“네가 리더고 이건 일이고 실수하면 다 죽는 거고.”
옆에서 구스타프가 주문을 외웠다.
오기 전에 로니와 함께 준비한 날 제어하는 주문이란다.
“안다.”
구스타프를 일별하고 미랑에게 시선을 던졌다.
단둘이 여기에 왔다면 어땠을까.
크리쳐 한 마리 잡고 하하.
크리쳐 두 마리 잡고 후후.
세 마리 잡은 뒤, 미랑이 ‘나 잡아 봐라’ 하고 내달리면 나 또한 그 뒤를 쫓겠지.
크리쳐 사이를 오가며 데이트를 즐길 것이다.
그걸 방해하는 놈들은 월광을 뽑아 머리통에 구멍을 내줄 것이고.
“일이다. 일, 일이라고.”
구스타프가 계속 중얼거린 덕에 상념이 금세 깨졌다.
좋았는데.
“아, 안다고.”
이후와 함께하는 게 싫다. 너무 싫다. 정말 싫다.
그러다 보니 자꾸 생각이 엇나갔다.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 이건 일.
나는 이 팀의 리더.
일전에 나사로크 자식이 이끄는 팀이 위험에 처한 걸 보지 않았나.
그걸 보니 알겠다.
이들이 내 책임이라는 걸.
그러니 내 책임하에 이후를 어디 죽음의 구렁텅이에 던져 버리는 거다.
이후는 말실수를 자각했는지, 입을 다물고 한참 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다시금 말했다.
“이제 됐다.”
이곳은 클라우드 필드, 별칭 변신족의 무덤.
이곳에 오는 변신족 태반은 제대로 힘을 통제하지 못해 자멸하고 만다.
그에 반해 나오는 크리쳐는 하나 같이 운동 능력이 탁월한 종류의 것들.
거기에 항마력을 갖춘 놈이 또 태반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불멸과 초능이 유리해야 하지만.
어디 크리쳐 새끼들이 그렇게 입맛에 딱딱 맞춰서 나오나.
최초 클라우드 필드가 열렸을 때는 상대하기가 하도 까다로워서 세최특, 그러니까 아버지가 혼자 들어와서 한 바퀴 휩쓸었다고 했다.
불멸과 변신, 있을 수 없는 진한 피를 이은 혼혈, 거기에 현존하는 기어 중 최고의 기어를 들고 날뛰었으니.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
어디까지나 처음에 그랬다는 거다.
지금은 뭐.
견딜 만하다.
변신족이 아니더라도 전투 슈트가 있고.
특히 초능 특수종 중 사이오닉 슈트에 능숙한 이들이라면 변신족 이상의 효율이 나올 때도 있으니.
에너지 소모량만 체크하면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즉, 변신족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땅인데.
“통제됩니까?”
미랑이 이후에게 말하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걸 본 이후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딱.
딱딱한 장갑과 이후이 손바닥이 만나 둔탁한 소음을 냈다.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지만, 이후 레벨의 변신족이 제대로 후려치면 부러지는 수준을 넘어서 찢어져 날아갈 것이다.
울컥하려는 순간.
“오오오, 너는 리더, 오오오, 너는 리더다.”
구스타프가 구슬땀을 흘리며 연신 입을 놀리는 게 보였다.
숫제 주술을 외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땅은 적응하는 일이 반인 땅.
변신족에게 특별히 가혹하다고 해서 다른 특수종에게 친절하다는 건 아니었다.
이 자식도 몸을 이계에 적응하며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구스타프의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후는 완벽하게 제 몸을 통제해 보였다.
“됐네요.”
미랑은 그게 또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반응했고.
둘만 아는 어떤 역사가 있는 듯한 그런 대화다.
그걸 보니 내장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자, 옆에서 이번 팀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코드명 토스트, 이삭 형이 읊조렸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네.”
이후를 비롯해 온신까지 팀원으로 왔으니.
남기주 아저씨가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 보낸 게 이삭 형이었다.
그래. 이 형을 봐서라도.
“저 새끼가 원흉입니다. 어디 위험한 지역 없어요? 유니크 레벨 크리쳐가 출현했느니 마느니 한다면서요.”
어서 치워 버리는 거다. 가시방석의 원흉을, 원인을, 나와 미랑이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우리 임무는 주변 크리쳐 소거입니다.”
어째 이삭 형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가면 때문에 표정이 보이진 않았는데 축 처진 눈매가 절로 연상이 되는 어투였다.
어찌 됐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나 또한 이미 적응이 끝났다.
사실 어렵지도 않았다.
붕 뜬 기분 잡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그게 끝이다.
사실상 내 운동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만 있다면 적응하는 거에 별문제는 없었다.
난 한계까지 몸을 굴려 봤기에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구스타프도 금세 적응했고.
내가 그동안 좀 굴렸을까.
초능 특수종은 특히나 제 능력 믿고 단련을 허술히 하면 안 되는 놈들이니.
미랑이야 불멸자고.
특별히 불멸자의 감각을 교란하는 땅이 아니라면 불멸자들의 적응력은 항시 뛰어난 편이니.
예민함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과 같은 적응력이다.
하물며 미랑은 순혈 호칭까지 받은 불멸자다.
그녀의 적응력은 사관학교 내 최강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의외는 이후였고.
평범한 건 이삭 형이었다.
“다들 괴물이네.”
이미 이 땅을 여러 번 와서 어지간한 특수종보다 익숙한 데도 그보다 처음 온 나와 미랑, 구스타프, 이후가 먼저 몸을 풀었으니.
이삭 형을 보니 새삼 깨닫는 점이 있었다.
몸을 한계까지, 그러니까 극한까지 육체를 몰아붙이는 경험을 한다면, 사실상 이런 적응력은 금세 따라오는 게 아닐까?
갑자기 떠오른 가설이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지금 나를 포함 넷과 하나의 차이를 보니 더더욱.
그럼, 이후도 나만큼 훈련을 고되게 한다는 소리일까.
재능만 믿고 뜨끈한 방구석에 누워 배 긁으며 노는 건 아니다 이거지.
얼마 안 있어, 미랑이 오른손을 들었다. 손가락 네 개를 편 채였다.
저 수신호가 의미하는 것, 크리쳐가 나타났다는 거다.
배정된 지역의 모든 크리쳐를 소거하는 게 이번 미션의 목적이기에.
“다들 준비됐지?”
내 말이 끝난 직후다.
앞에서 희끄무레한 점이 보이더니, 금세 성큼성큼 커지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필드에서 흔히 보이는 크리쳐.
옐로우 급의 크리쳐, 윙 타이거다.
사족 보행, 등에 독수리의 날개를 단 변신족 급의 운동 능력을 보이는 크리쳐.
놈들의 외피는 주문을 거부하고 앞발에 실린 힘은 능히 인간의 육신 따위는 깨부수고 만다.
그래서 이 땅에 들어오는 최소 조건이 전투 슈트 착용이다.
맨몸으로는 올 수 없기에 채집팀은 구경하기도 힘든 땅.
본격적으로 프론티어 미션을 수행하는 곳 중 하나였다.
“나가.”
전면에 사람을 붙드는 건 근접 전투원인 이후의 몫.
그의 개인 능력을 굉장히 높게 샀기에 장옥을 데려오지 않았다.
요즘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로니와 장옥 둘 다 다른 작전에 나간 것도 이유의 일부긴 하지만.
그럼, 이후가 막고 있는 사이, 지원하면 될 것이다.
본래 이후가 막고 나머지가 서포트다.
구스타프와 내가 염력 방어막을 준비하는 사이다.
“넷이잖아.”
미랑이 말하며 팔짱을 꼈다.
구경 모드였다.
의문을 느낄 새도 없었다.
변신족의 전투 슈트는 얇다. 그들의 힘을 온전히 전달하고 방어 일부를 담당하면 그만이니까.
이후는 그런 변신족 슈트 따위도 입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예전 이후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공략할 것 아닌가.
그런 이유로 찾아본 자료였다.
2학년 초기, 외부 임무에 나갔다가 돌아온 이후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짧고 굵게.
“번거로워서.”
전투 슈트의 효용성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말이었다.
왜 그럴 수 있는가.
그렇게 멋대로 움직여도 왜 다들 저 새끼를 인정하는가.
그 답이 눈앞에 있었다.
툭.
이후는 마주 내달렸고 날개 달린 호랑이 괴물을 마주한 순간, 사라졌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뒤 이후가 나타난 건 체고가 1m나 될 법한 크리쳐의 밑이다.
아래에서 위로 이후의 몸이 솟구쳤다. 그 결과, 뻐-엉! 하는 굉음과 함께 크리쳐 한 마리가 허리부터 갈라졌다.
찢어져 두 조각이 된 크리쳐다. 죽음이다. 당연했다.
저 크리쳐는 재생력 따윈 없으니.
이후는 뛰었고 때렸고.
나는 그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내 동체 시력으로는 무리였다.
다만, 결과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옐로 등급, 그중에서도 상위 레벨의 크리쳐 윙 타이거 네 마리는 이후에게 몸풀기용이라는 것.
내장과 뼈, 피, 살이 바닥에 흩뿌려진 하얀 바닥 위, 이후가 선 채로 손을 털고는 날 본다.
그 눈빛에 어린 오만함이 묻는 듯했다.
어떠냐, 내가 이 정도인데 미랑이 가져갈 수 있겠냐?
“다음 가시죠.”
아, 열 받네. 절로 입이 열렸다.
내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불꽃이 타올랐다. 기름을 부은 불길처럼 아주 활활.
* * *
미랑은 이후의 눈빛을 보고는 그 속내를 짐작했다.
이후의 속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감정이나 태도를 보면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듯하지만, 몇 가지 행동 패턴만 숙지하면 끝이니까.
페어를 이루려고, 손발을 맞추려고 했던 노력이 뜻밖의 곳에서 빛을 발하긴 했다.
‘빠돌이.’
크리쳐 넷을 죽인 괴물 변신족이 온신을 바라본다. 가면 덕에 눈빛은 볼 수 없지만, 저 태도의 저변에 깔린 의미는 분명했다.
‘나 잘했지? 어때? 쓸 만하지? 같이 있으니까 괜찮지? 이제 같이 놀 거지?’
이후가 말한 대상은 온신.
온신의 반응 또한 미랑에게는 너무도 읽기 쉬웠다.
어릴 때부터 봐 왔기에 잘 알고.
자신에게 항시 마음을 여는 상대이기에 더 잘 안다.
빠득빠득.
무표정이지만, 어금니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이거 재밌어.’
미랑은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다시금 전진, 다시금 크리쳐가 나타났을 때다.
온신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본래 그의 역할은 저격과 견제.
그런데 이후의 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아이고?’
그러자 이후가 좋아하는 게 보였다.
제 옆에 온신이 선 것 자체가 마음에 든 거다.
“아까 몇 분 걸렸죠?”
온신은 이후 옆에 선 게 아니라 앞으로 나선 것이었기에 입을 열어 제 목적을 취할 뿐이고.
“응?”
“크리쳐 네 마리 잡는 데 얼마나 걸렸냐고요.”
“3분?”
합류한 코드명 토스트가 답했다.
이번에 나타난 크리쳐는 셋이다.
미랑이 손가락 셋을 펼쳤다가 접은 뒤다.
“좋네요.”
팅.
그와 동시에 온신의 손에서 빛을 뿌리는 칼날이 날았다.
미랑의 눈이 칼날을 따라갔다. 궤적만이 눈에 남을 정도다. 무섭게 빨랐다.
팽 하고 날아간 칼날은 날아오는 호랑이 세 마리 머리에 구멍을 냈다.
구멍 뚫린 크리쳐 셋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옐로우 등급인데.’
노란 등급의 크리쳐라면 일반인 처지에서 보자면 저승사자 그 이상이다.
어지간히 훈련받은 특수종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버거운 상대고.
그런 크리쳐 셋이 10초 내외로 죽었다.
은빛 칼날이 날고 머리를 뚫고 호선을 그리고 다시 머리에 박히고.
그렇게 크리쳐 셋이 죽었다.
“10초 정도 걸렸나.”
온신이 말한다. 가면 안에 든 그의 얼굴에 웃음이 어려 있다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그래, 이후를 보니 알겠다.
이 자식을 팀에 받긴 해야 한다는 걸.
잘 싸운다. 아니, 무지하게 잘 싸웠다.
프로 수준의 변신족에게 나던 냄새가 물씬 난다. 팀 레드 울프, 최초로 함께 이계를 노닐던 이들.
변신족으로만 이뤄진 팀이기에 전투 레벨만은 높았던 집단.
그런 팀에서도 우월하게 빛날 것이다.
왜 이후를 그렇게 칭송하는지.
그 이유, 알 것 같았다.
변신족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롭다는 크리쳐를 상대함에도.
그에게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그저 훈련하고 단련한 제 능력을 믿을 뿐.
그리고 이게 끝도 아니었다.
이후는,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