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8. 삼각관계
이후는 세최특을 보고 자란 세대였다. 그런 그에게 세최특은 신과 동격이었으니.
온신이 노 페이스 팀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자마자였다.
“팀에서 빠지겠다고?”
소속된 팀의 선배가 묻는다.
옆에서 미랑도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선배? 이건 미친 짓 같은데.”
“팀에서 나가야겠습니다.”
이후는 단호했다. 미랑의 말에 답하는 대신 선배를 향해 뜻을 밝혔다.
기실 가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여기, 팀 안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몸을 단련하는 것도 좋았다.
일도 꽤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도 좋았다.
다만, 상황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세최특의 아들, 온신이 소속된 팀이라니.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거기서 싸운단 말인가.
그곳이 자신의 자리였다.
그의 아들과 어깨를 맞닿고 싸우다가 세최특을 만난다면.
상상만으로도 희열이 전신을 휩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합류해야 했다.
“선배?”
옆에서 후의 눈을 본 미랑은 이제 멈출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미친 빠돌이 변신족 새끼 대갈통에 또 마가 낀 거다.
분명 머저리 같은 상상을 하는 중일 터.
그동안 쭉 봐온바, 미랑은 이후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라이 새끼.’
미랑은 속으로 후를 욕하고는 포기했다.
이런 상태에 돌입한 후는 돌아서지 않는다. 포기하지도 않는다. 될 때까지 나아갈 뿐.
‘재능은 천재 그 자체인데.’
그 안에는 빠돌이만 존재한다. 이걸 세상이 알면 기가 찰 것이다.
하긴 이런 우직한 열정이 지금의 이후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안 됩니까? 그럼 제명하십시오.”
이후는 단호했고.
팀장은 이 개자식을 확 죽여 버리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건 알지?”
“네, 상관없습니다.”
“네가 소속된 팀이 언라이벌 식스 중 하나인 건 알고 하는 소리냐?”
그걸 아니까 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다.
이후는 물러서지 않았고 팀장은 포기하니.
팀에서 나가는 건 당연했다.
홀로 남은 미랑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결국, 미랑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너도?”
“어차피 이후 선배 페어로 들어온 거니까.”
“……가라, 가.”
선배는 질린 얼굴이었다.
우여곡절 끝이다. 별의별 생각이 들긴 했지만, 미랑도 굳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 보낸 동생의 부대를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아니라면 애인?
온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허술한 웃음이, 자신에게만은 하염없이 웃어 버리는 그 얼굴이.
그리 찾아간 길이다.
이후를 마주한 온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금세 도로 돌아왔다.
상상하던 웃는 얼굴은 안 보였다.
대신 무슨 생각인지 빤히 보였다.
‘싫어해.’
한쪽은 진성 빠돌이인데, 다른 한쪽은 이쪽이 빠돌이인지도 모르고 자신과 스캔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싫어한다.
‘이거.’
미랑은 서로의 오해를 안다.
다만.
‘재밌어.’
그녀는 구경하기 여념이 없었다.
온신의 착각을 알기에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놔둔다. 실상 그게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기에.
어쨌든 자신과 후를 보는 온신의 눈빛의 온도 차는 명확했다.
그리고 후는.
“나도 합류하고 싶다.”
말재간이 없었다.
이건 통보에 가깝다.
들어선 온신을 보고 이름만 말하며 빤히 쳐다보는 건 도발이고.
‘너무 좋아서 저러는 거지만.’
주변 모든 이들은 단단히 오해했다.
가운데 낀 미랑과 이후, 그 둘을 시야에 담은 온신까지.
평소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 동기 몇이 주먹을 꽉 쥐었다.
삼각관계는 고래로 내려오는 재미의 공식 아닌가.
* * *
“나도 합류하겠다.”
이 새끼가?
네가 하겠다고 하면 내가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냐?
도라엘 선배도 추수미 선배도 정중하게 말했는데.
이건 순 통보네?
“재밌네, 아주 재밌어.”
나도 안다. 웃음기 하나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그런데 정말 짜증 나게 구는 상대 아닌가.
내 말에 이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응? 왜, 너도 내가 마음에 안 드냐?
미랑이랑 페어로 일하는 것도 더럽게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 하는 짓도 그만큼 마음에 안 든다.
이곳은 내 팀이 자리한 곳.
내 사람이 있는 곳.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만든 내 터전이다.
그런 곳에 당당히 들어와 헤집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도 없잖아.
이후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게 보였다.
변신족 새끼가 피가 끓나 본데.
혹시, 너 예전의 유온신을 생각하고 덤비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그럼, 생각 잘못한 걸 텐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보여 줘야 할까.
파직.
의지를 따라 초능이 새어 나온다. 내 오른 검지 끝에서 뇌전이 튀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만큼 고요해진 장내다.
조용한 가운데 이후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
그 가운에 미랑이 선 채였다.
상황을 인지하는 내 머리는 차갑고.
내 본능을 자극하는 심장은 뜨거웠다.
이후의 면상에 염동력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팀에 합류하고 싶다고?
그래, 마음먹었다.
피떡으로 만들어서 뻥 차 주기로.
“잘 지냈지?”
말하며 힘을 개방하려는데, 미랑이 앞을 막았다.
“……미안, 인사가 늦었네.”
이후에 시선이 팔려 미랑이랑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저 자식이 신경 쓰였다는 걸 자각한 순간이다.
큰 실수였다. 미랑이를 두고 한눈을 팔다니.
그것도 재수 없는 변신족 남자 새끼한테.
“나도 같이 받아 줘.”
“……응?”
“합류시켜 줘, 안 돼?”
미랑이가 애교를 부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말투지만.
방금 말끝을 살짝 올리지 않았나?
그럼 애교다. 나한테는 그렇다.
“돼.”반사적으로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다 되지.
그와 동시에 끓어오른 마음이 식었다.
손끝에서 터지던 뇌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
“재밌을 뻔했는데.”
“그러게. 좋은 구경 놓쳤네.”
장옥의 외마디 신음과 함께다. 동기들 몇이 떠들었다.
나랑 이후의 싸움을 기대했나 본데.
“괜찮아?”
순간 들렸던 동기의 목소리가 우주 저 너머로 사라졌다.
지금 내 눈에는 미랑이만 보이고.
내 귀에는 미랑의 목소리만 들렸으니.
“응. 괜찮지.”
“그럼 된 거지?”
“된 거지.”
냉정하게 보면 조금은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자체가 정미랑 때문임에야.
나의 태도는 당연했고, 정당했다.
* * *
“으음.”
상황을 지켜보던 로니가 코웃음을 뱉었다.
“와, 한판 붙는 줄 알았는데, 그걸 참네.”
“참은 게 아니고 말린 거지.”
“어?”
구스타프는 눈치가 깡통이었다. 로니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냉정하게 굴어서 겨울 마녀라 불리는 여자가 저렇게 여우처럼 굴다니.
겨울 마녀가 아니라 겨울 여우라 불러야 하지 않나.
로니는 그런 생각과 함께 이후를 봤다.
현 수준에서 프로보다 잘 싸운다는 변신족의 천재다.
‘무슨 생각일까?’
괜한 호기심이 앞서기에.
예민한 감각을 앞세워 이후의 몸 상태를 보고 감정을 파악하려 했지만.
이후는 단단히 잠긴 철문과 같았다. 안이 엿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훈련을 받은 것일 터.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 같았다.
미랑은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고.
로니는 그런 미랑의 곁에 다가갔다.
근처에서 기척을 흘리자, 미랑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할 말이라도?”
“친구를 괴롭히러 오신 것인지, 아니면 아쿠아리움을 꾸리는 게 희망 사항이신지 궁금해서요.”
로니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미랑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본래 미소를 짓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미 1학년 사이에서 봄의 꽃이 주변 벌을 다 잡아다가 양봉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아니었어?”
만만치 않네. 로니는 속으로 생각하며 어쩔까 고민했다.
서로 속을 떠보는 말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정직하게 부딪치는 건 어떨까.
“재밌는 건 함께 즐기는 게 어떤가요.”
그 말에 미랑의 눈가가 1초 내외로 잠깐 흔들렸다.
“후배 중에 이런 친구는 또 처음이네.”
“제가 유니크한 편이죠.”
“특별하지 않으면 여기에 남을 순 없겠지.”
미랑의 말에 담긴 여기가 온신의 곁인지, 아니면 사관학교인지, 그것도 아니면 노 페이스 팀인지, 불분명했다.
로니는 여전히 상대가 겨울 여우와 같다 생각했다.
“저는 선배 같은 사람도 처음입니다.”
너도 독특해.
나만 그런 건 아니잖아?
로니가 속내를 비친다. 미랑은 평소와 같았다. 웃음을 보이지 않고 무표정으로 답할 뿐.
“그런 얘기는 자주 듣지.”
서로 한 발자국 밀리지 않는 기 싸움의 현장이었다.
이후 더한 얘기가 오가나 싶을 때, 두 여자가 둘에게 다가왔다.
도라엘과 추수미다.
“특수종 사관학교의 사대 계절 미녀가 다 모인 셈인가? 그것도 한 팀에?”
“그러게요.”
“내가 삼등이구나.”
그 말에 도라엘이 반응했다.
“나 그거 묘하게 기분 나쁜 것 같은데?”
“진실은 언제나 호된 매와 같지.”
“뭐라는 거야, 선배, 머슬걸 좋아하는 애들도 많아.”
“다수의 심미안을 기준으로 말한 거다. 후배.”
3위, 외모 순위를 말한 거였다.
넷은 괜한 일로 투덕거렸다. 나름대로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 * *
“다음 작전에는 나도 같이 간다.”
이후를 받아들이자마자다.
이 새끼가 또 통보네.
“굳이?”
그래서 되받아치니.
“확인해야지. 실력을.”
딱 부러지는 말투로 답했다.
아하, 그러니까 내 실력이 미심쩍다?
“구경만 해도 된다.”
이후가 다시 말했다.
그게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같이 갑시다. 선배.”
난 상큼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몸을 돌렸다.
“보기 좋네.”
한쪽에서 유신이 하는 말을 듣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사대 계절 미녀 넷이 모여 떠드는 게 보였다.
도라엘은 육체미를 뽐내며 호탕하게 웃고.
추수미는 마법사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흘리며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 사이에서 로니가 화사한 미소를 보였고.
마지막으로 나의 미랑이 이지적이고 화려하고 섹시한 외모를 자랑하며 곧게 앉아 있었다.
“겨울 마녀는 겨울 마녀네, 혼자만 표정이 딱딱해.”
“지금 웃은 건데.”
유신의 말에 내가 답했다.
“언제?”
“방금, 어 봐, 지금도 웃네.”
“……이 새끼는 내가 불멸자야, 미친 친구 새끼야. 언제 웃어? 안 웃었어.”
“웃었어.”
진짜다. 어릴 때부터 봐 왔기에 난 알 수 있다.
“또라이 새끼.”
일상적인 호칭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인원이 합류했고.
어느새 노 페이스 팀 중 일부가 학교 생도라는 게 공공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뭐, 이제 와서 숨길 순 없는 노릇이긴 했다.
“전원 생도는 아닙니다. 일부 팀원을 받은 거죠. 아, 이후 군의 합류는 예상에 없었습니다.”
이후는 차세대 특수종 중에서도 슈퍼스타였다.
“이후 군은 변신족이고, 노 페이스 팀의 리더는 초능 특수종입니다. 혼혈 아닙니다. 초능은 혈족 계승이 아닌데, 혼혈은 무슨 혼혈입니까?”
덕분에 홀로그램 TV에서 남기주 아저씨가 나와 떠드는 날이 많아졌다.
합류한 슈퍼스타 덕에.
다른 2학년, 3학년들도 거듭 팀에 들어오길 원했다.
그 시작은 변신족 무리였다.
“크르르, 나도 받아 주세요.”
2학년인데,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왔다. 무슨 늑대 크루 리더라는 양반이었는데.
“나도 먹고 싶어요.”
말투는 예의 발랐고 태도는 공손했다. 유신의 요리에 푹 빠진 사람 중 하나였다.
“선후배가 어디 있습니까, 나보다 세면 선배지.”
독특한 마인드를 가진 선배였다. 하는 짓이 약간 독특하긴 했으나, 능력은 출중했다.
무리를 이끄는 크루의 리더답게 팀 전술 이해도가 뛰어났다.
그렇게 합류한 선후배까지.
인원이 부쩍 늘었고.
이제 학교도 다 알 것 같은데, 딱히 호출은 없었다.
아직 내가 팀 리더라는 건 모르려나.
내 정체는 지금도 비밀이고.
난 평소와 다른 가면을 쓴 채로 이후와 미랑이, 구스타프까지 합류한 팀으로 이계에 진입하기로 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웨이브 현상이 일어난 곳이다.”
가는 곳은 이계 클라우드 필드.
몽글몽글한 감촉의 중력이 지구의 0.8배밖에 안 되는 구름의 땅이다.
이번에 그곳에 유니크 크리쳐가 몰려나와 문제가 터졌다고 했고.
남기주 아저씨가 그 일을 물어 왔다.
“그, 이후라는 친구의 데뷔전이잖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염병, 얼마나 대단한 놈이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그리고 호랑이 가면을 쓰고 다니면 너라는 걸 다 알지 않나?
아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어째 노 페이스 팀의 취지가 흐려지긴 하는 것 같지만.
난 선선히 입을 열었다.
“처음이네, 같이 이계 가는 건.”
다른 어떤 일도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무슨 상관인가.
미랑과 이계 데이트는 처음 하는 것임에야.
“응. 처음이다. 기념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계 작전 들어가는 날을 기념일로 삼자는 거야? 미친 짓이야.”
“응, 그래, 그럼 하지 말자.”
나는 말 잘 듣는 연하 남친.
돈도 많고 싸움도 잘하지.
야야, 야야.
절로 노랫말이 흘러나오는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계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