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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66화 (466/488)

외전 57. 이 자식도?

상대가 원하는 게 명확하다면.

반대쪽도 대답이 단순해지기 마련이었다.

도라엘 선배가 줄줄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의문이랄 게 생길 것도 없었고.

“재밌어 보여서.”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왔다.”

“팀 계약? 위약금 물고 왔지.”

“졸업? 그거야 뭐 1년쯤 더 뒤에 해도 되지 않나?”

사실 이딴 이유야 다 무슨 소용인가.

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인데. 받느냐, 받지 않느냐.

문제라면.

“어떻게 알고?”

이런 물음뿐이지.

노 페이스 팀에 들어오는데 왜 날 찾았는가.

내 질문에 도라엘이 피식 웃었다.

“사관 학교 내에서 매일 대련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너희 쪽 1학년 애들이 단체로 외출만 나가면 밖이 난리가 나는데, 모를 것 같아?”

뭐야, 겉보기에는 ‘전 뇌에도 근육이 가득해요’라고 말하게 생긴 여자가 왜 이렇게 날카로워.

“괜찮아. 생도가 아니라면 알아채기 어려울 테니까. 그러니까 받아 줘. 안 받아 주면 방송 나가서 다 까발릴 거다.”

귀여운 협박이라 하겠다.

좋은 전력이기도 하니, 받아 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가면은 어떤 모양으로?”

“섹시한 사자로 하자.”

도라엘답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여기서 끝났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텐데.

아무래도 이번 일이 크긴 컸던 것 같았다.

도라엘 다음에 다른 계절 미녀도 이곳을 찾았으니.

“왜? 의외야? 넌 교내에서 내 위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가을 마녀, 추수미 선배다.

평소와 같은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와 허리를 펴곤 노려보듯 바라본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 선배도 도라엘 선배만큼이나 바쁜 거로 아는데.

이 선배도 알 거 다 알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의 반향이 큰 탓이다.

“너 마음에 들었어. 내가 함께해 주지.”

“뭘?”

“팀에 합류해 주겠다는 거다.”

“이전 팀은요?”

“합의하고 나왔지.”

“제가 꼭 받아 줘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난 도라엘보다 미디어에 익숙하단다.”

그래, 개인 방송도 한다고 들었다.

이 또한 귀여운 협박이지.

“그럽시다.”

추수미 선배도 능력만큼은 인정받은 특수종 아닌가.

그것도 드물고 드문 재능, 스펠 크리에이터와 유저 둘 다 되는 마법사다.

“합류를 축하합니다.”

노 페이스 팀의 리더가 누구인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

아니, 아예 옆에서 로니가 제대로 연막을 뿌렸다.

“남기주요, 그 사람이 키운 비밀 병기죠.”

내가 치료받는 일주일,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로니가 퍼트린 소문 중 하나였다.

남기주의 비밀 병기 초능 특수종이 곧 노 페이스 팀의 리더라는 것.

로니의 정치 공작은 이미 물이 오를 만큼 오른 듯싶었다.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는 건 예상했지.”

“그건 나도!”

지금 재차 그 얘기가 나온 거고, 추수미가 한마디 보태자 옆에서 도라엘이 끼어 들었다.

로니가 날 끌어당기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나 귓가에 속삭였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건 알지?”

그건 알지. 이미 대강은 아는 내용이고.

레베카를 통해서 로니가 이미 지나간 일주일을 정리해 뒀다.

그런데 얘는 왜 입에서 민트 향 같은 게 나는 걸까.

냄새 참 좋네. 한순간 입을 맞추면 민트 맛이 날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알았다.”

그걸 인지한 순간, 슬쩍 밀어내니.

“왜?”

로니가 되물었고.

“아니, 너무 가까워서.”

“부끄럽니? 우리 온신이?”

“그런 거 아니다. 남녀칠세부동석도 모르냐? 우리 집 유교 믿는다.”

“유교도 믿는 종류였어?”

로니가 웃으며 농담을 받아 줬다.

어쨌든 그녀가 친 연막은 적절했다.

숨겨 둔 비밀 병기 리더라…….

되지도 않은 이야기로 넘길 법도 했지만, 상황이 이걸 진실처럼 보이게 했다.

일주일 전, 내가 죽인 이들의 면면을 들어 보니 아예 난리가 난 것 같더라고.

추방자는 네 개의 집단을 이뤘는데, 그중 이터의 전력을 전부 때려 부쉈다고.

하물며 예언자란 여자애도 잡아 왔으니.

그 공로가 드높다. 드높은 수준이 아니라 드문 수준이다.

언라이벌 식스라는 차세대 특수종 리더들도 못 할 짓을 홀로 해 버렸으니.

이제 내가 원하면 언제든 조기 졸업이 가능하게 됐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졸업 각인가?

원하면 100개 팀 중 상위에도 단숨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하진 않을 거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난 대련장이라 부르는 커다란 실내 시설물 벽에 등을 기대고 주변을 둘러봤다.

“덤벼!”

“핫!”

“도라엘한테 맞는 법 배울 사람!”

“주문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 주지.”

“존경합니다. 슨배님!”

“미친 새끼들아!”

“크헝, 부활했다. 나!”

곳곳에서 떠드는 소리가 장내를 놀이공원 한복판처럼 만들었다.

간간이 머리 위를 날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이들은 이제 그냥 동기가 아니라 친구였다. 다 같이 주먹을 맞대고 치고받았으며, 목숨을 걸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노 페이스 팀 안에서 우리는 친구가 됐다.

간지럽긴 한데.

이 새끼들을 두고 지금 당장 학교를 떠날 순 없었다.

“어이, 미친 너도 사람은 사람이었어. 장옥이한테 두들겨 맞았다며?”

“맞는 거 보여 주기 싫어서 몰래 대련했다며?”

“신나게 얻어터졌다며?”

“로니를 두고 싸웠다던데 맞냐? 그럼 나도 끼워 줬어야지!”

한가로이 구경하고 있자니, 주변에 붙어서 말을 거는 놈이 산더미다.

내가 기절한 걸 무마하기 위해 던진 얘기가 있는데.

어째 연막으로 던진 그 정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한판 붙을까?”

그중 쟝의 팀에 소속된 변신족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얘 변신 형태가 뭐였더라.

곰이었던가, 늑대였던가.

“그럴까?”

일단 이 거짓된 정보를 뒤집어 줄 필요가 있겠는걸.

“꾸엑!”

이 친구의 변신체는 멧돼지였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아 둔 뒤다.

“구장옥 들어와.”

“좋아요!”

그 뒤는 기린 새끼의 목을 휘어잡은 후 바닥에 메다꽂았고.

“좋아, 나도!”

도라엘 선배도 덤볐다. 이쪽도 만만찮은 레벨의 소유자이자, 학생 수준이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30레벨에 육박하는 괴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되려 도라엘 선배가 가진 재능이 보였을 뿐이다.

뇌안이 상대를 훑는다. 그동안 상대의 전신에 흐르는 전류 형태를 눈여겨봤다.

그로 인해 깨닫는 것.

“육체 단련보다 기술에 좀 더 전념해 보시죠.”

몸에 쌓인 에너지의 방출이 어설픈 게 보인다. 그조차 어설프다는 말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 균형이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육체 단련 정도에 비해 기술의 섬세함이 부족했다.

“너, 초능 주제에 변신족한테 몸 쓰는 걸 조언하는 거니?”

“뭐, 듣고 싶은 사람만 듣는 거죠.”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주변에 산증인이 이리 많음에야.

다들 내 안목을 믿고 실력을 키운 이들이다.

노 페이스 팀 전원, 그러니까 교내에 있는 동기 전원이다.

“너 진짜 귀여워. 내 숙소 어딘지 알지? 밤에 놀러 와도 좋다. 온신.”

“안 갑니다.”

이 선배는 진짜.

대부분 변신족이 본능에 충실한 편이긴 한데, 뭐 이런 말을 다 보는 데서 하고 그러냐고.

“몰래 말해 줘야 고민하죠. 그런 건.”

옆에서 로니가 조언하고.

“흥, 엉덩이가 가볍구나. 너.”

추수미 선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제껏 미랑 외에 어떤 여자에게도 몸을 허락한 적이 없건만.

하물며 미랑이랑도 스킨십은 없었는데.

“근데 밥은 안 줘?”

정작 이런 오해를 받게 한 도라엘 선배는 상큼한 얼굴로 끼니를 물을 뿐이었다.

“주죠.”

안 그래도 나 또한 유신의 음식이 그리운 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희끼리 먹는 강유신의 요리 교실이 부럽기도 했다.”

도라엘 선배가 말했다.

“이게 유명해요?”

“유명? 야, 교내 모든 변신족은 다 미쳐 돌아가는 중이야. 냄새가 좀 퍼져야지. 딴에 자존심 챙긴다고 안 오는 애들 빼고는 한 번씩 다 오갔을걸? 아예 교내에 식당을 내 달라고 싹싹 빌 판이다.”

소음은 막았으나, 냄새를 막을 순 없었으니.

유신의 요리는 모든 변신족과 불멸자에게 고문과 다름없었다.

“웰컴이다. 멍청아.”

아까도 봤지만, 새삼 말한 유신이 그릇을 내려놨다.

오늘의 요리는 삼겹살이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구워서 내놓은 요리는 아니었다.

두껍게 썬 삼겹살을 통째로 오븐에 한 번, 프라이팬에 한 번 구워 스테이크처럼 만든 거였다.

냄새가 코끝을 찔러 뇌를 흔들었다.

겉에다가 뭘 바른 건가? 고기 겉면이 반들거렸다.

“으.”

숫제 침까지 흘리는 변신족이 나왔다.

“안 돼, 기다려.”

옆에 있던 구스타프가 그런 변신족을 말렸다.

“너 온다고 특별히 준비한 거다.”

구스타프가 유신 대신인 듯 변신족을 말리며 말했다.

“그러냐?”

내가 답하고 유신은 고깃덩이를 수십 개를 더 꺼내며 말했다.

“삼겹 오븐구이. 밑간했고, 고기 자체는 건식 숙성해 둔 건데, 그건 내 비법이니까 넘어가고.”

슥.

유신이 말하며 한 점 잘라서 포크에 쿡 찍어 내 손에 건넸다.

“먹어. 웰컴 선물이다.”

“뭐 이런 걸 다.”

말과 함께 입에 고기를 넣고 씹었다.

바삭, 와작, 쭉.

이건 뭐지.

난 순간 환상을 봤다. 이곳은 천상이었고 하늘 위의 나라였다.

신선이 줄지어 앉아 고기를 먹는다.

“진미, 진미로다.”

근데 신선은 채식주의가 아니었나.

채식으로 신선이 된 이들조차, 입맛을 바꾸게 할 그런 맛이긴 했다.

겉은 바삭했고 안은 촉촉했다. 바삭한 겉 부분이 치아에 맞닿아 찢어지는 순간 안에서 육즙이 쭉 튀어나와 입 안을 휘돌았다.

“호로로로로로!”

나도 모르게 호들갑스러운 소리가 나올 만한 맛이었다.

이후 씹어 삼키니, 이게 바로 천국 아닌가.

“하, 못 참겠다!”

그러자 사방에서 요리를 향해 내달렸으나, 다들 질서정연하긴 했다.

유신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곳은 지금 요리로 하나 된 이들만 존재했으니.

선배고 후배고 간에, 그저 먹는 일에 집중하고 즐기는 이들만 남았다.

난 고기를 연신 씹다가 좌우로 붙은 구스타프와 로니를 보며 말했다.

“난 이럴 때 아버지를 원망한다.”

둘이 슬쩍 날 본다. 그 시선을 느끼며 난 말을 이었다.

“불멸자의 미각이면 이게 얼마나 더 맛있겠냐.”

그게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참이다.

“넌, 참.”

그런 날 보고 로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니야. 불멸자라고 더 맛있진 않아. 맛의 극을 느끼는 건 비슷해. 그건 뇌 활동과 연관된 거지, 혀의 섬세함만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유신이 만든 건 일반인도 불멸자만큼 기쁨을 느끼게 할 맛이고.”

로니는 냉정했고 구스타프는 내 말을 무시했다.

한참 먹으니 금세 배가 찼다.

그러고 있자니, 손목이 울었다.

“마스터가 죽으면 전 어떻게 될까요?”

레베카였다.

음, 어떻게 되긴, 포맷돼서 새 주인 찾겠지.

내가 죽을 뻔한 건 아닌데, 치료 캡슐에 들어갔다 온 게 충격이었나?

무슨 AI가 이런 거로 충격을 받나.

“아마도 포맷되겠죠. 그럼, 그때의 전 레베카가 아닐 테고.”

“음. 그러겠지?”

“근데 마스터가 쉽게 죽진 않겠죠?”

음?

“그럼, 한동안 여기에 묶인 거네.”

하하하, 우리 AI가 날 환영하는 방법이다.

이거 처음 성격 넣을 때 어떤 미친 새끼가 프로그래밍을 짰는지 그 새끼를 잡아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살아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마스터.”

레베카가 이어 말하고.

AI라도 치를 떨게 만들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다.

“전화 들어와요.”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 전화는 현시대에도 존재했다. 무시했다. 아예 차단까지 해 두라고 할 참에.

“메시지도 같이 오네요.”

텍스트 형태의 메시지였다. 홀로그램을 띄워 보니.

- 전화 안 받으면 까발린다. 하운드.

아, 내 가면 벗겨졌었지.

다시 걸려 온 전화를 보고 몸을 일으켜 대련장 밖으로 나갔다.

불멸자가 엿듣지 못하도록 교내 곳곳에 있는 방음 전화 부스 하나로 들어갔다.

외부 시선도 가리고 소음도 가리는 곳이다.

전화를 받으니, 홀로그램 너머 헌터 하운드가 보였다.

“어쩔래? 돈으로 막을래? 몸으로 막을래? 아니면 뭐 줄 거 있니?”

대뜸 뭘 달라고 하는 이 여자의 정신 상태도 궁금하군.

“암살로 막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제안이군요.”

“암살? 쉽게 죽어 줄 것 같아?”

“아니요. 어렵게 죽어 주실 것 같은데요.”

“안 죽을 건데?”

말하며 배시시 웃는다.

참 재밌는 사람일세.

“고마워요.”

대뜸 말했다. 내 정체를 숨겨 준 것도 마지막 뒤처리도 전부 고마워할 일 아닌가.

그 말에 하운드는 버럭 화를 냈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

“내가 먼저 말해야 했다. 고맙다. 덕분에 다 살았다.”

“그렇습니까?”

이걸 왜 화를 내면서 말하나.

이쪽도 정상은 아닌 듯싶다.

“살아남은 채집 팀원 중 여럿이 노 페이스 팀이 한 일을 말하고 다니는 거 못 봤어? 덕분이야.”

“그래서 정체는 숨겨 주는 거로?”

“그건 다른 얘기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이 비정상적인 누나랑 말을 나누는 게 꽤 재밌다.

서로 알고 하는 농담이었다.

정체를 까발릴 거면 진즉 말했을 거다.

사실 까발려도 별 타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보자고. 얼굴 안 보여 준 대가로 나중에 데이트 한 번 정도는 해 주겠지?”

이건 또 진심이네.

“저 좋아하는 여자 있는데요.”

“자식아. 나도 너 어떻게 안 해. 그냥 하루 놀자는 거지.”

“네, 뭐.”

여기서 더 거절하긴 어렵지.

전화를 끊고 부스에서 나오고.

다시 돌아가는데 새삼 미랑이 보고 싶었다.

우리 미랑이는 어디서 고생하고 있는 걸까.

밥은 먹고 다니니?

난 여기서 죽여주는 삼겹살 오븐구이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데?

“나도 합류하겠다.”

그리 돌아간 방.

정작 보고 싶은 얼굴 말고 보기 싫은 얼굴이 보였다.

이후, 사관 학교가 배출한 최고의 천재가 있었다.

“온신.”

그가 날 보고 눈을 빛내며 이름을 불렀다.

로니가 우리 둘 사이를 돌아보며 상황을 전해 줬고.

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는 왜 또?

이후도 팀에 들어오고 싶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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