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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459화 (459/488)

외전 50. 더 없이 제대로.

‘시발, 시발, 시발.’

용찬은 속으로 욕을 되뇌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다.

라바 레인에서 채집할 수 있는 건 불꽃초다.

특수 재질의 장비가 없다면 애초에 손도 댈 수 없는 종류의 풀이었다.

토치처럼 불꽃이 타오르는 풀이니, 당연하지 않겠나.

그걸 전용 용기에 담아서 돌아오는 것. 그게 채집팀이 할 일이었다.

박용찬은 라바 레인의 땅에 들어온 게 처음이었다.

발을 딛자마자 떨어지는 비를 맞는데, 세상 다시 없을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긴 천국?’

이런 잡생각이 들었을 정도니.

“침 흘리지 마라. 방화복 망가진다.”

습기와 열기를 차단하는 방화복이다. 외부 빗줄기가 옷 안에 하나도 들이치지 않는다는 거다.

습도 조절 센서가 알아서 방호복 바깥으로 응축된 습기를 내보낸다.

손끝 하나 젖지 않으면서도 샤워기에서 따뜻한 온수를 종일 맞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다.

온화하다.

이곳이 이계라는 걸 잊을 정도로.

기온에 취한다는 말이 나오는 땅이다.

이것 덕분에 가끔 부자들의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미친 짓은 미친 짓이지.’

용찬은 채집팀만 3년째다. 이계에 들어오는 건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더구나 여긴 무려 옐로 등급의 크리쳐가 나오는 땅이 아닌가.

옐로 등급부터는 어지간한 특수종도 반드시 팀으로 싸워야 하는 놈들이다.

그런 곳에 무슨 관광을 온단 말인가.

평소 그런 이들을 그리 비난했음에도 용찬은 지금, 이 순간 기온에 취하긴 했다. 따뜻한 빗줄기가 주는 포근함에 빠져들었다.

툭.

그러자 동료가 어깨를 밀쳤다.

“정신 차리라니까.”

일은 일이다. 용찬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

그 뒤, 기지를 중심으로 안전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곧 안전지대 안을 채집팀이 빼곡하게 채웠다.

이건 불꽃초보다 사람이 더 많을 판이었다.

그럴 만했다.

불꽃초는 고가의 자원 중 하나다.

3송이 이상만 캐면 보름은 쉬어도 될 정도로 비싼 자원이니.

당연히 사람이 몰렸다.

사람이 많다 보니 종일 땅을 훑고 다니는 게 일이었다.

성장한 불꽃초를 캐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걸 찾는 게 목표니까.

그걸 전용 용기에 담아 불꽃을 틔울 때까지 기다린다. 채집하고 일주일이면 되는 일이다.

그럼 그때부터 불꽃초의 가치가 높아진다.

용찬도 눈을 씻고 배우고 익힌 대로, 홀로그램으로 수없이 본 불꽃초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운이 없는 건지 눈깔이 잘못된 건지, 눈에 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좋았어.”

“굿!”

옆에서 저리 말하는 걸 들으니, 숫제 초조해질 지경이었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면 장성한 불꽃초를 캘 수 있는데.’

생각만 했다.

실제로 나가면 죽은 목숨일 테니.

‘여기에 뼈를 묻자.’

나가면 뒈진다. 박용찬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부스슥.

땅이 흔들렸다. 눈을 비비려다가 방호복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숫제 땅을 노려보는데, 땅 사이에 낀 자갈 하나가 퉁 하고 튀어 올라 방호복 페이스 가드를 때렸다.

딱 소리가 났다.

“으헉.”

용찬은 기함하며 굳었다.

부스스스스.

땅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빨갛게 빛나는 둥근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순간, 입과 몸이 굳었다.

‘저거 손인가?’

손모아장갑을 낀 것 같은 모양새인데, 손처럼 보이긴 했다.

땅 밑에서부터 팔뚝 따위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화르륵.

뚝 하고 흐르는 용암 한 방울이 주변 땅에 불을 붙인다.

불꽃 거인, 라바 골렘.

이 땅을 옐로 등급으로 만드는 존재다.

환경은 더없이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크리쳐의 수준이 극악이었다.

구어엉.

묘한 울음을 토하며 용암 거인이 튀어 나왔다.

두껍고 긴 팔뚝이 다 나오자, 팔뚝만 봐도 용찬의 상체보다 길다. 두께도 만만찮고.

‘어? 시발?’

몸이 굳어 뒈질 것 같은 순간이다.

“움직인다. 멍청이.”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등을 낚아채 뒤로 던졌다.

붕 날아간다. 몸이 중력을 거슬렀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용찬의 기억이 끊겼다. 기절한 건 아니고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중간 과정이 생략된 거다.

쿵 하고 바닥에 궁둥이를 부딪친 뒤에야 용찬은 시야가 트였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앞으로 향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음에도 보이는 건 명확했다.

그곳에 전투 슈트를 입은 변신족이 있었다.

라바 골렘의 주먹에 막 맞는 장면이었다.

퍽!

용암이 슈트 위를 덮는다. 라바 골렘의 팔이 녹으며 전신을 덮는 용암 덩어리가 됐다.

‘죽었네.’

멍하니 생각하는데.

“우어어!”

기합과 함께 용암 덩어리 안에서 빨갛게 달궈진 슈트를 입은 존재가 뛰쳐나왔다.

그제야 정신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리쳐, 습격, 구원.’

여긴 안전지대인데?

안전지대가 왜 안전지대인가.

아무런 습격이 없기에 그렇다. 그런 습격이 없도록 소거팀도 운영하는 거고.

“왜?”

그 모든 의문이 짧은 대답이 되어 나왔고.

“으아아아아!”

비명이 들렸다. 용찬의 멍한 시선이 본능을 따라 돌아갔다.

아까 불꽃초를 캤던 다른 채집팀원이다.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의 몸이 녹는 중이었다.

길쭉한 대가리를 가진 용암 늑대가 덮친 상태였다.

피부가 녹고 뼈가 드러난다. 안에서 핏줄기가 새어 나오는데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며 핏줄기 일부가 피 냄새를 물씬 풍기는 수증기가 됐다.

“으흐.”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수없이 죽어 나간다.

용암 거인, 용암 늑대, 용암 사슴, 용암 곰.

온몸이 마그마로 이뤄진 크리쳐가 곳곳에서 튀어나오니.

“으아아아아!”

그제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꼼짝없이 죽을 것 같은.그런 상황이다.

“뒤로, 간다.”

자신을 구해 준 남자다. 한국말이 퍽 어색한 특수종이었다.

그의 말에 얼굴에 묘한 가면을 쓴 이들이 모여서 살아남은 사람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안전지대 안으로 피하는 소거팀도 있었고.

무작정 도망가는 채집팀도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소거팀은 총 50명, 채집팀은 500명이 넘는다.

그중 반수도 살아남지 못했다.

대대적인 크리쳐의 습격이었다.

용찬은 엉겁결에 가면 무리와 도망쳤고.

도망치며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공포가 엄습해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용암 늑대 따위가 뒤를 덮칠까 봐.

거기에 묘한 장면이 보였다.

마치 크리쳐와 한 팀인 듯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한둘이 아니었다. 십여 명이다.

‘시발, 시발, 시발.’

그렇게 도망가서 안전지대도 아닌 곳에 자리 잡고 몇 시간이 지났다.

그 와중에 운 좋게 살아남은 무리다.

전원 가면을 쓴 소거팀이다.

“안전지대 안쪽으로 가야 했는데.”

옆에서 누가 중얼거렸다.

용찬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으나, 솔직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거긴 안전할까?’

안전지대 안에서부터 크리쳐가 튀어나온 건 어떻게 설명이 안 될 것 같은데.

‘어쨌든 죽었군.’

삶을 포기할 시점이었다.

“결계 유지 못 해.”

가면 무리 중 하나가 초능으로 이쪽을 다른 공간과 단절시켜 둔 상태였는데.

그게 깨졌다는 의미의 말이다.

‘시발, 시발, 시발.’

욕만 수차례 되새길 뿐이다.

그만한 절망이다.

좌절이 전신을 덮친다.이제 죽는구나.

그리 생각하는데, 가면 쓴 무리 중 누구도 포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나 싸운다. 나 따른다. 니들.”

말한다. 한국말이 어색한, 외국인 특수종이.

그의 말을 따라서 가면 무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왜 리더로 뽑았나 했더니.”

“그러게.”

가면 무리 중 누군가가 또 떠들고.

“멍청이들도 일어난다. 당장, 즉시.”

처음 입을 연 남자가 명령했다.

그때부터는 더 지랄 맞은 일의 연속이었다.

크리쳐가 튀어나오고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시작됐다.

용찬도 연신 욕하면서 버티고 버텼다.

쩡, 드드드드.

지진이 일기 시작하더니.

바닥에서 붉은빛이 치솟았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오로라를 본 적은 없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인 광경이.

제 목숨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다들 멍하니 봐야 할 정도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땅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길게 자란 손톱 따위가 보였다.

“아.”

용찬은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들 놀랐으리라.

“뒈졌군.”

누군가 중얼거렸다.

라바 레인의 땅.

용암류 크리쳐가 즐비한 곳.

그들이 옐로 등급의 괴물이라면.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옐로 등급의 왕이라 할 만했다.

같은 옐로 급 내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크리쳐다.

마그나 드래곤.

실상은 전신에 용암을 흩뿌리는 거대한 뱀이나, 이름은 용이다.

한 줄기로 쭉 뻗은 용암 덩어리다.

놈이 땅을 가르며 올라왔다.

“우어! 포기, 모른다. 나!”

그런데도 리더라 불리는 특수종은 여전했고.

용찬을 비롯해 간간이 버티던 이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뒤에서 블러드 젝이나, 치료 약을 통해 다친 이들을 돌보던 이들.

모두가 포기를 입에 담으려 했다.

리더란 작자가 뛰쳐나가는데, 용이 꼬리를 흔들었다.

팽.

용찬의 눈에 보인 건 없다. 그저 날아가는 리더가 펑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힌 것만 보였을 뿐.

“다 죽었네.”

용찬이 말했다.

좌절과 절망이 다시금 몸을 적신다. 머리 위에서 용암의 비가 내렸다.

전처럼 따뜻한 온화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가 방광을 조일 뿐.

‘오줌을 지리진 말자.’

그게 마지막 발악이 되리라.

그리 생각한 순간이다.

그들의 머리 위로 뭔가 반짝 빛났다.

은색? 모두의 눈에 보였다. 그만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 빛은 그대로 뱀의 머리통에 꽂혔다.

뻐-엉!

무슨 짓을 한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압력포 따위가 터지더니, 내리던 비를 한순간 밀어낸다.

귀가 먹먹해졌다.

코앞에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터져 나온 빛의 폭발에 다들 눈을 감았다.

용찬도 그랬다.

다시 눈을 뜬 순간이다.

머리 위에 뜬 사람이 있었다.

“늦을 뻔했네.”

가면을 쓴 인간이었다.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 * *

“같이 갑시다.”

내 말에 하운드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막 진입하려는 시도가 보였다.

“너 나 누군지 알지?”

안다. 하운드, 깽판 치는 게 취미인 특수종.

“대충은.”

마음이 급하니, 말이 좀 험하게 나왔다.

“요새는 맹랑한 애들이 많아. 내가 헌터란 말이야. 여긴 지금부터 통제 구역이 됐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물리는 중이니까.

이계 진입로 일부에 펜스까지 쳤다.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들어설 수 없는 땅이 됐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심심해서?”

말이 막 나왔다. 말했듯 마음이 급했기에.

“너 머리가 나쁜 것 같은데 팀장 맞냐? 아닌 것 같은데, 멍청한 놈이 위에 앉으면 나머지가 고생인데.”

동의하는 바였다. 협회를 보라. 욕심 많은 두꺼비 같은 협회장과 그 무리 때문에 고생이 많다.

내 머리가 나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이고.

“그래서?”

“안에 추방자의 수작질이 보였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가는 거고.”

헌터는 추방자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그들을 잡고 죽이는 이들이다.

온신은 이해했다. 그리고 말했다.

“같이 좀 갑시다.”

그래서 어쩌란 거냐.

당장 안에 들어가야 뭘 해도 할 판인데.

“그래, 가자. 대신 빚진 거다. 너.”

“그렇다고 치고.”

거듭 말이 막 나온다. 한데 정작 불쾌해야 할 하운드는 유쾌했다.

“동료를 구하러 간다. 이거지? 재밌는 놈일세.”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허락은 받았다.

그렇게 이계에 들어선 직후다.

통로는 기지 내부, 안전지대 중 안전지대인데.

앞에, 먼저 발을 디딘 하운드의 팀원 하나가 배를 움켜잡으며 쓰러진다. 등 뒤로 삐죽 솟은 길쭉한 무언가가 보인 순간, 온신은 전신에 염동의 방벽을 둘렀다.

퉁.

막힌다.

“눈치 빠른 새끼.”

누군가 읊조린다. 그걸 상대할 틈은 없기에.

염동 산탄.

양 손가락을 휘저어 전면에 염동탄을 쏟아부었다.

투두두두둥!

퍼버버벅!

그게 시작이었다.

막은 건 다섯이었다.

눈깔이 묘하게 익숙한 빨간 색이다. 식인과 식괴의 상징인 빨간 눈깔이다.

“이터?”

뒤에서 따라온 누군가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염동 나선탄.’

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무력을 행사했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만약, 내 팀원 누군가 하나라도 죽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칼 들고 팀에 들어오라고 위협한 건 아니다.

하지만.

책임을 진 사람에게는 다른 의미인 법이다.

고로 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더 없이 제대로 능력을 발동했다.

‘뇌전 부스터.’

읊조리고 행한다.

곧 내 전신에서 뇌전의 스파크가 줄기줄기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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