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9. 비상 상황
하운드는 이런 경험이 처음, 아니 두 번째였다.
자신이 누구인가.
십 인의 헌터.
그중 한국에서 활동하는 특수종 중에서는 손꼽히는 재원이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헌터와 추방자의 세계를 아는 사람 중 자신을 무시할 사람은 없었다.
‘기다리라고?’
정부 쪽에 말 한마디 던지면 당장 최고급 호텔과 전용기를 탈 수 있는 인재가 바로 자신이다.
한국 헌터 중 탑 오브 탑.
그래, 세최특은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규격 외의 혈통을 타고난 특수종 세상의 유일한 존재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식사 중이시라.”
‘밥 먹는다고 기다리라고?’
하운드는 세최특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응, 건드리지 마.”
“응, 하지 마.”
“응, 놔둬.”
“응, 관심 갖지 마.”
노 페이스 팀 얘기를 꺼낸 뒤에 들은 답이었다. 유광익은 세최또가 맞았다.
미친 새끼가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너 속으로 내 욕 했지?”
그러면서 눈치는 귀신 같았다.
하운드는 고개를 젓고는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아드님이 초능을 발현한 거로 아는데, 그 능력을 헌터 쪽에 활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헌터 쪽으로 스카우트하겠다는 말이다. 이 또한 당연히 반대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아들 인생은 내 아들이 알아서 하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전대의 영웅, 세최특과의 만남은 건진 게 없었다.
고집불통에 제 할 말만 하고 싶은 위인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이후 특수종 사관 학교에 당도한 뒤, 총장에게 통보하고 온신을 부른 거고.
그런데.
지금 밥 먹는다고 기다리란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올드포스 소속의 장성급 특수종이란 말을 전했나?”
AI에게 화를 낸다고 변하는 건 없다. 하운드는 차분했다.
“아, 지금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여서.”
AI가 곤란해한다. AI가.
‘뭐 하는 새끼야?’
아버지고 아들이고 정말 이상한 집안 아닌가.
하운드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18분 48초가 지났을 때다.
기다림이 끝났다.
노크와 함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인내심이라면 그 누구 못지않기에,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아니?”
카페테리아의 방음룸이다.
안에 들어선 이는 멀쑥해 보이는 남자였다.
“네? 아뇨.”
“몰라?”
아직도 정체를 안 들었다고?
“그게, 전 심부름 온 거라서요.”
“심부름?”
하운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네. 전부 거절이라는데요.”
들어온 남자는 태평했다.
하운드는 오기 전에 온신의 이미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오면 만나리라 생각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태평해 보이는 놈을 보라.
아무리 봐도 초능 특수종으로 보이진 않았다. 얼굴은 말끔하지만, 몸이 근육이다. 변신족이리라.
변신족 특유의 향도 있다. 동족이다. 알아봤다.
“넌?”
“구장옥인데요.”
“변신족?”
특유의 냄새가 나서 물으니.
“네. 코가 좋은 편이신가 보네요.”
상대도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 새끼가?
인내의 왕,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참던 하운드는 이 순간 없었다.
“유온신, 이 개새끼가?”
화가 잔뜩 난 최고의 헌터 중 하나가 바짝 독이 올라 온신을 찾기 시작했다.
* * *
“에취!”
“봐, 감기라니까.”
“아니라니까. 손수건은 나중에 빨아서 줄게.”
다시 로니가 준 손수건으로 코를 훔쳤다.
장옥이 잘하고 있겠지?
정부 소속 헌터가 왔다기에 장옥이를 대신 보냈다.
거절의 의미였다.
동기 중 누구도 헌터로 보낼 생각은 없다.
어떻게 키운 애들인데.
대련이나 하자. 그걸로 잡념을 떨구는 것이다.
“온신.”
레베카가 다시 날 불렀다.
“왜. 바쁘다.”
“그, 찾아온 손님이 카페테리아에서 농성 중이에요.”
“농성?”
“당장 온신을 데려오라고.”
“아니, 교내 보안팀은 뭘 하고?”
“직접 보시죠?”
레베카가 카페테리아에서 생중계되는 화면을 홀로그램으로 틀었다.
로니를 포함한 몇몇이 시선을 돌렸다.
이 와중에도 훈련과 식사에 열중하는 이들이 더 많긴 했다.
다들 주어진 훈련을 소화하기도 바쁘긴 하니까.
“유온신, 그 새끼 데려오라고!”
왜지, 장옥이가 실수했나?
아닐 것이다. 신신당부한 뒤에 보냈으니까.
그냥 얌전히 거절의 의사만 밝혔을 뿐이다. 그럼 그게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주변에 예스맨밖에 없는 여자인 건가?
“왜 저래.”
“그러게.”
“흠, 이 몸을 소개해 주지 않아서 아니냐?”
내 말에 로니가 동의하고 팔이 부러진 반푼이 구스타프가 어림도 없는 의견을 내놨다.
“가 봐야겠는데?”
로니가 말했다.
상대는 헌터 중의 헌터라는 작자다.
코드명 하운드.
그냥 뒀다가는 골치 아픈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홀로그램 정면에 선 남자가 보였다.
중봉 큰삼촌, 아니, 그러니까 총장님이 직접 나섰다.
“나 잠깐.”
말하고 밖으로 나서니, 로니와 구스타프가 붙어 왔다.
“넌 훈련 안 하냐?”
“헌터 업계가 날 부른다. 오스트리아의 자랑이자, 국보인 날!”
구스타프 얘는 왜 애가 점점 망가지는 것 같냐.
옆에서 붙은 로니가 내 표정을 보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바보.”
쟤는 요새 입버릇이 바보라 고정된 것 같은데?
부지런히 달려서 도착하니, 아직 대치 중이다.
삼촌은 주변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지, 말투에 거침이 없었다.
“야, 그만해라. 그러다 머리 깨진다.”
“누구 머리가 깨진다고? 유온신 새끼 데려와. 건방진 1학년 나부랭이 낯이나 좀 보자고.”
헌터도 거침없는데?
주변 웅성거림이 커질 무렵, 큰 삼촌의 손짓에 보안팀이 움직였다.
주변에 시선을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갖가지 초능이 저 둘을 따로 유리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난 안으로 들어섰다.
관계자 몇 명, 그러니까 교내 주요 인물만 새로운 공간에 초대되는 중인데.
나야 뭐, 뇌안으로 보고 들어올 수 있으니.
로니는 감으로 따라왔고, 구스타프는 내 상의를 붙들고 딸려 왔다.
나 말고도 불멸자나 기타 몇몇 특수종이 자기만의 재주로 유리된 공간에 들어온다.
좋은 구경거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만한 능력자라면 어차피 말려도 볼 건 다 볼 테니,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너, 그만하라고 했지.”
총장, 삼촌은 말했고 사라졌다.
난 로니에게서 기척 죽이기의 궁극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전대의 영웅, 코드명 팬텀.
훙!
헌터는 단숨에 제 뒤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묵직한 일격이었다. 변신족이 제대로 후려치면 두개골이 으깨지고 뇌가 부서진다.
다만, 감으로 후려친 듯 헛손질이었다.
뇌안으로 보고 있는데도, 큰삼촌의 모습이 흐릿하다.
저게 팬텀이었다.
눈앞에 있는데도 유령처럼 사라지는 남자, 그런 불멸자.
사라진 것처럼 보인 삼촌은 왼쪽 뒤로 움직였다가 도로 앞으로 돌아왔다.
헌터의 코앞, 삼촌의 주먹이 변신족의 머리통을 때렸다.
꽝!
꽝? 퍽이 아니라?
폭음이 터진다. 눈을 부릅떠 보니 큰삼촌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폭음이 터진 거로 보아,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기어다.
주먹질 한 방에 터프한 변신족의 발이 허공에 떴다.
“끅.”
맞은 헌터의 머리통에서 피가 흘렀다. 소리에 비해 큰 부상은 아니다. 그녀도 머리 몇 번 흔들더니 털어 냈을 뿐이니.
“뒈질래? 너?”
그 앞에 선 삼촌이 읊조린다. 무력을 통한 위협이기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보이지 않는 주먹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직접 당하면 어떨까.
“아직 안 죽었네, 솜씨.”
하운드가 제 머리의 상처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머리칼 일부가 폭발에 타고 잘려 허공에 흩날렸다. 남은 머리칼도 허공에 휘날리는 게 보였다.
근데 싸울 때 머리 길면 안 불편한가?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매섭게 팬텀 삼촌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큰삼촌은 덤덤했다. 그저 묵묵히 손가락으로 헌터를 가리키고 밖으로 휘저을 뿐.
“나가. 한 번 더 소란 피우면 올드 포스에서도 너 못 감싸 줄 테니.”
특수종 사관 학교의 총장이다. 그럴 만한 힘은 있다.
때아닌 소란이었다.
헌터도 곧 이성을 찾았는지 후- 하고 긴 숨을 뱉더니 답했다.
“변신족 특유의 본능이 끓어 올랐습니다.”
조악한 핑계지만, 그럴듯하긴 했다.
“그래.”
총장도 넘어가는 눈치고.
그러자 상황 파악이 끝난 능력자가 핑거 스냅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유리된 공간이 풀린다. 누가 만든 건지 뇌안으로 쫓아가 보니 교수 중 한 명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크리쳐 대처법 교수님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공간이 풀리자마자.
“폐를 끼쳤네요.”
차분해진 변신족이 말하고.
“공식 절차 밟아서 와.”
큰삼촌도 중재안을 말했다.
공식 절차만 밟으면 날 만나게 해 주겠다는 거겠지?
그리 구경하며 보는데.
삐이이이익.
헌터 누나의 손목에서 듣기 껄끄러운 소음이 터졌다.
음?
“어?”
헌터 누나가 제 손목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가 봐야겠네요.”
그녀가 부리나케 등을 돌려 뛰듯이 나가는데 잡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난 그녀의 등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그 경보가 불길했다.
“반했어?”
옆에서 로니가 헛소리를 뱉는다. 내가 하운드의 등에 시선을 고정하니 하는 말이다.
“아닌 거 알면서 묻는 거지?”
“응. 불길하지?”
로니의 불멸자로서 직감은 탁월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레베카가 있는 시계를 톡톡 두 번 두드렸다.
“네?”
“무슨 일인지 알아봐 줄 수 있어?”
“네. 그러죠.”
기밀 수준의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사관 학교의 정보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하고.
생도의 AI에게는 어느 정도 시설 활용이 허용된다. 하나의 특수종 전투원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준다는 취지다.
레베카는 그걸 이용했고 곧 답을 가져왔다.
“이계, 라바 레인의 땅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라바 레인, 용암비의 땅, 사시사철 열기에 휩싸인 땅이다. 비조차 열기를 띠고 내리기에 붙은 별명이 용암비.
실제로 용암이 비로 화해서 내리는 건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적당히 뜨거운 비다.
데일 정도는 아니지만, 뜨끈함을 느낄 정도는 되는.
땅을 함부로 파면 용암이 치솟긴 한다.
환경 위험도 레드 등급.
등급은 그린, 블루, 옐로, 레드, 오렌지로 나뉜다.
나오는 크리쳐도 옐로 등급 이상인 곳.
그만큼 위험한 곳이다.
“노 페이스 팀원 열둘이 한 팀으로 나가 있어요.”
위험하지만, 또 안정성이 보장된 땅이기도 했다.
왜냐, 이미 공략법이 잘 나와 있으니까.
애초에 노 페이스 팀이 나간 것도 기지 근처에서 소거 임무를 위해 나선 것이다.
탐험, 그러니까 인류의 영역을 늘리러 간 게 아니다. 그러므로 위험도는 생각보다 낮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
“통신이 끊겨서 이계 내부 상황 전달이 안 된다고 해요. 들어가는 족족 돌아오지 않는다고.”
“불길한데.”
옆에서 로니가 말한다. 불멸자의 직감도 필요 없을 정도다.
불길함을 넘어섰다.
“외출 되려나.”
속으로 묻고, 총장이자 큰삼촌을 보는데, 삼촌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말투는 덤덤하지만, 본래 이런 분이다.
“상황이 비상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무슨 일일까요?”
“학교에서 신경 쓸 일은 아닐 거다.”
삼촌은 냉정했다. 실제 학교가 상관할 일은 아니므로.
이런 쪽으로 할 일을 할 사람은 또 따로 있는 법이니.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학교 빠져나가는 방법 플랜 A를 쓸 차례였다.
이제까지야 정당한 방법으로만 외출을 시도했지만.
만일을 대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발을 재게 놀리며 걷자, 옆에 로니와 구스타프가 붙었다.
“갈 거지?”
구스타프가 묻는다.
“들어간 팀원 열둘, 상황을 파악해 봐야 하니까.”
본래라면 고민해야 할 순간일까.
하지만 이 순간 난 고민 따윈 하지 않았다.
만약 들어간 열두 명 중 죽는 이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는 걸까.
구역질이 치솟았다. 꾹 눌러 참으며 생각했다.
추방자 무리를 그리 죽이면서도 모든 정신적 데미지는 뒤로 미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견딜 만도 했고.
그런데 만약 내가 만든 팀에서, 내가 직접 끌어들인 이들이 거기에서 죽는다면?
“누가 메인이야?”
열두 명이면 리더가 있을 거고 메인도 있을 거다.
“러시아 곰, 나사로크.”
한국말이 서툴렀던 러시아 친구가 떠올랐다.
변신족, 곰, 그 외 다른 사람들 이름도 이제 낯설지 않다.
남 같지 않다 이 말이다.
난 방에 돌아가서 가면부터 챙겼다. 이후 플랜 A를 실행했다.
“레베카.”
비장의 한 수다.
“길어야 나흘이에요. 그 전에 안 돌아오면 걸릴 거예요.”
“알았어.”
레베카가 홀로그램으로 날 만든다. 이후, 유신을 비롯해 구스타프, 쟝 등이 내 빈 자리를 채울 것이다.
이게 바로 동기 전부를 팀 하나에 넣어 버린 자의 저력이다.
남은 건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만 남았는데.
그건 일도 아니었으니.
난 나오자마자 헬기를 타고 움직였다. 이계 진입 통로는 천안이었다. 헬기 타면 금방이다.
“급한 일이라며?”
헬기는 남기주 아저씨의 작품이다. 이 아저씨는 번 돈을 전부 이런 데에다 쓰네.
사건을 들은 직후, 2시간.
난 라바 레인 앞에 설 수 있었다.
특유의 가면을 쓴 채로.
“노 페이스 팀이다.”
앞에서 대기하던 이들 중 날 알아보는 이들이 많다.
그중 학교에 있던 헌터 누나도 있었다.
“으음. 그쪽은?”
헌터 누나가 관심을 표했다.
난 변조된 음성으로 답했다.
“내 팀원이 안에 있습니다, 노 페이스 팀의 팀장입니다.”
그러니 좀 들어갑시다.
거절하면 억지를 부리더라도 들어갈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