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56화 (456/488)

외전 47. 포로가 생겼다.

꿍꿍!

변신족 둘의 손은 또 다른 방어막에 막혔다.

“남기주 최고.”

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지껄였다.

방어 기어는 많을수록 좋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집약해 만든 방어막이다. 아저씨 덕분에 내 몸에 두른 기어가 여섯 겹이었다.

그러니까.

처음 변신족 공격을 막은 수준의 방어막이 다섯 겹 더 남았다.

“크르르.”

개인지 늑대인지, 대가리가 묘하게 생긴 놈이 침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내가 보기에는 질려 보이는 표정인데 맞겠지?

크리쳐 낯짝을 보고 표정을 알아맞히는 것만큼이나 변신족의 표정은 읽기가 어렵다.

어쨌든 빈틈 발견.

염동력을 뭉쳐 쐈다.

뻑!

묵직한 한 방이 변신족의 턱을 갈겼다.

갈기는 순간, 놈이 턱을 당겨 방어하지 않았다면 이 한 방으로 그로기 상태는 됐을 텐데.

반응 속도가 예술이다.

역시 근접전 최강이라는 변신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나머지 셋이 다시 방어막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펑! 펑! 펑!

연신 폭음이 터진다. 제자리에서 휘두른 주먹이 포탄처럼 방어막을 후렸다.

개 대가리 셋이 어찌나 집요하게 달라붙는지, 염동력을 마구잡이로 쏟아붓고 나서야 몸을 뒤로 뺄 수 있었다.

신속을 발동한 채로 뒤로 물러난 순간이다.

꽈앙!

다시 코앞에서 폭발이 터진다.

염동력 방패를 만들어 막고 옆으로 몸을 날린다. 그럼 변신족이 또 길을 막는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난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몸을 빼내기 바빴다. 간간이 반격으로 틈을 만들어 내려고 해도 통 먹히질 않으니.

“저기!”

변신족의 동체 시력이 매섭다.

며칠 굶은 개처럼 변신족이 다시 달려든다.

그중 두 놈은 숫제 짐승처럼 네 발로 뛰었다.

저거 어째 변신 형태가 짐승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난 밑에서 정강이를 물려는 놈을 발끝으로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실제로 걷어차 봤자 간지러울 뿐이니, 당연히 염동력을 실었다.

두-웅.

공기를 밀어내는 압력이 변신족 머리 하나를 때리고.

다시 세 놈의 무차별적인 주먹, 손날, 나이프 따위에 무형의 방패가 깨지고 터진다.

그 뒤에 또 펼쳐지는 헥사곤 필드!

“몇 겹이냐!”

변신족 하나가 외친다.

“아직 구백구십 개 남았다!”

나도 마저 외쳐 줬다.

대답에 감탄했는지, 눈이 시뻘게진 놈이 미친 듯이 손과 발을 휘둘렀다.

유성우였다. 내 눈으로는 제대로 따라갈 수도 없는 속도로 몰아친다.

몰아치는 유성우의 손짓과 발짓에 맞춰 헥사곤 필드가 그걸 막아섰다.

뻐버버버버벙!

눈앞에서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어째 이거 빈틈이 안 나냐.

잠깐 숨 고를 틈도 없이 몰아친 덕분에 절로 심장이 쿵쿵 뛰며 숨이 턱턱 막혔다.

그렇게 변신족 넷에게 발이 묶인 순간이다.

턱하고 누군가 발목을 잡아채더니, 꺾으려고 비튼다.

아, 이거.

극히 짧은 순간, 찰나라 말하기 무방한 시간에 난, 로니가 떠올랐다.

* * *

쿡.

볼을 찌른 로니가 날 빤히 보며 말했다.

“못 피했지?”

얘는 뭐 이렇게 사람을 빤히 보는 건지.

얼굴이 붉어질 뻔했다.

“넌 사람이 오해할 짓 좀 하지 마라.”

“무슨 오해?”

“아니다. 됐다.”

“이렇게 불멸자가 뒤에서 볼을 찌르면 어떻게 할 거야? 너 못 피한다.”

이건 경고인가, 고백인가.

그런 고민을 했었다.

* * *

그때, 로니 덕분에 경각심이 들었다.

불멸자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련에 들어서면 뇌안을 뜨고 필드 위의 축구 선수처럼 좌우로 고개를 휘젓지만, 항상 그럴 순 없는 법이니.

특히나 지금처럼 변신족 넷에게 시선과 발이 묶였다면 이렇게 당할 수도 있었다.

“잡았다.”

내 발목을 잡은 놈이 희열을 보인다. 그게 놈의 목적으로 보였다. 허나, 발목이 꺾이진 않는다.

굳건하게 땅에 꽂은 뿌리처럼 버텨 냈다.

그 순간이다.

내 머리 위로 아찔한 수준의 에너지가 뭉친 게 보였다.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아직 육안에 보이진 않지만, 뇌안에는 보였다.

폭발의 초능.

“죽이십시오!”

내 발목을 잡은 건 불멸자로 보였고.

내 머리 위에 에너지를 뭉치는 놈은 초능 특수종의 수작이고.

아, 자꾸 위기다.

물론 실제로 엄청난 위기라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초능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가령, 염동력을 아주 세밀하게 다룰 수 있다면 이런 짓도 가능했다.

불멸자가 발목을 잡고 변신족 넷이 폭발의 여파에 벗어나기 위해 물러나고.

“아!”

눈먼 불멸자 여자, 그러니까 나랑 눈 마주친 여자의 외마디 신음이 들린 순간.

난 전신으로 염동력을 뿜어내 실처럼 엮었다.

이거 만들려고 내가 대련하는 와중에도 뜨개질을 붙잡고 살았다.

염동력으로 끈을 만들어 엮는다. 마구잡이로 엮는다.

막대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빠져나가면 전신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체력 소실이다.

과하게 사이오닉 에너지를 쓸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뻐-엉!

폭음이 귀를 때린다. 방어막 너머였기에 고막이 터질 일은 없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방음벽 너머에서 들리는 폭음과 같았다.

퍼버버버버벙!

사방에 있는 모든 게 터진다. 집약된 폭발의 힘이 내 머리 위를 때리고 갈겼다.

대지를 달궈 팬다. 사방에 흙먼지가 일고 가시덩굴 따위가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머리 위로 날았다.

용오름이 생기며 회오리바람이 일어 흙과 가시 가득한 덩굴 따위를 휘말려 올렸다.

그럼에도 난 멀쩡했다.

터진 폭발의 여파가 몸을 두드리며 헥사곤 필드를 깬다. 다음 방어막이 발동하기도 전에 폭발로 날 으깨 버리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그럴 만한 공격이기도 했다.

다만, 헥사곤 필드가 깨지기 무섭게, 내 머리 위로 갤럭시 필드가 열렸다.

은하수를 본 따 만든 방어막.

현존하는 최강의 방어 주문이다.

다만, 지금 만들어진 방어막은 주문과 마나로 이뤄진 게 아니라, 염동력 뜨개질로 만들었다는 게 다를 뿐.

“……안 죽어?”

내가 만든 염동 은하수 방패 덕분이다. 내 발목을 붙든 불멸자도 멀쩡했다. 놈이 중얼거리며 날 올려다봤다.

“안 죽어.”

나는 불멸자는 아닌데, 철저한 준비가 있다면 쉬이 당하진 않는단다.

로니에게 당한 덕분에 이후 항상 한 겹의 엷은 염동 방어막을 몸에 두르는 이미지를 그려 내고 다녔기에.

놈이 붙든 발목에도 충격은 없다.

폭발 덕분에 틈이 생겼다.

난 손을 위에서 밑으로 내렸다.

내 손짓은 염동력을 일으키고.

염동력의 실은 월광에게 닿았으니.

훙.

퍽!

월광이 불멸자의 머리통을 찍었다.

퍽 하고 터진 머리에서 뇌수와 피가 흘러나왔으나, 불멸자는 꿈틀대며 뒤로 빠졌다.

실시간으로 상처가 치유된다. 고속 재생 능력이었다.

사관 학교 생도 중에도 재생력만 믿고 날뛰는 애들이 몇 있었지만, 지금은 나랑 대련도 잘 안 하려고 한다.

왜냐고?

이런 거 때문이지.

월광이 다시 내리꽂힌다. 재생력이 탁월하며 뭘 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다시 머리통을 쪼갠 뒤, 염력으로 척추뼈를 뽑아 버렸다.

우드드드득.

가히 혐오스러운 광경이었으나.

이런 걸 동기에게 할 순 없었다.

걔들한테는 계속 팔다리만 부러뜨렸다.

그것 또한 끝없이 당하다 보면 괴로워 미친다.

고통에 미치고 무력감에 미친다.

상대는 적이자 추방자다. 난 더 과하게 손을 썼다.

아예 월광을 당겨 손 위에 띄운 뒤, 에너지도 주입했다.

“죽여야 합니다. 당장.”

눈먼 불멸자 여자의 외침이다.

차분해 보이더니, 왜 저리 흥분하는지.

내 손 위를 돌던 월광이 빛을 토한다.

미안한데, 이럴 틈이 없어서 위기였단다.

뇌안에 반사 방어막이 보였다.

아까의 월광은 막혔다.

그럼 이번에는 어떨까.

뭐든지 튕겨 내는 방어막이란 게 가능할까?

설마. 그런 건 없다.

초능의 싸움이다. 누구의 에너지가 더 위인지, 그게 관건이다.

여기에 다른 차이가 있다면 에너지 집약도, 단련된 육체 차이가 남을 테니.

달빛을 뿌리는 칼날이 난다.

방어막이 그 앞을 막는다.

달려드는 변신족은 무시했다.

영토 선언보다 뜨개질 염동 방패가 심력은 더 소비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퍽! 펑! 꽝!

변신족 넷이 연신 두드리지만, 깨질 일은 없고.

허공에 은빛 궤적을 그린 월광의 목표는 방어막을 부리는 초능 특수종이었다.

놈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뇌안에 놈이 만든 방어막이 보였다. 월광이 날아, 방어막에 닿는 순간이다.

푹, 퉁.

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어막에 구멍이 생기자, 균열이 일며 깨지고 이후 월광은 제 소임을 수행했다.

방어막을 부린 놈의 머리통을 뚫고 이후 폭발 초능 특수종을 향해 부드럽게 비행하듯 날아갔다.

상대가 양손을 들어서 막으려 했다. 그도 훌륭한 기어를 지니고 있었다.

몸 위로 헥사곤 필드가 생겼다.

하지만 월광은 그조차 뚫었다.

미안, 너희가 레벨 6과 7이지?

난 현재 순수 사이오닉 에너지만 레벨 9란다.

난전만 아니었다면 본래 압승이었을 터였다.

푹, 씽!

월광이 결국 폭발을 부린 특수종의 목을 꿰뚫었다.

“끅.”

목을 부여잡은 놈이 무릎을 꿇는다.

“이런 씹!”

“커어어어!”

“크아아아!”

변신족 넷이 흥분해 날뛴다. 월광을 불러들여 뒤로 날렸다. 변신족 머리 하나에 손짓 한 번이다.

막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변신족이라고 해도 날아가는 칼날보다 빠를 순 없으니.

내 에너지를 머금고 절삭력과 관통력을 보이는 기어다.

아마 이걸 만든 디자이너 박이란 아저씨도 이 정도 수준은 예상치 못했을걸?

사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뜨개질 염동 방패에 쏟을 에너지 빼고 다 쏟아부었더니, 월광이 미쳐 날뛰는 수준 아닌가.

픽 하고 코피가 터졌다. 묘하게 차갑게 느껴지는 액체가 코 안에서부터 흘러 떨어졌다.

그사이 월광은 변신족 넷의 머리통을 뚫어 시신으로 만들었고.

연신 살아나려고 발악하는 고속 재생의 불멸자의 목과 척수를 여덟 번 넘게 자르고 척추를 여섯 번 벴다.

틈틈이 처음 덤빈 뒤 기척을 죽이고 숨은 불멸자의 머리통도 꿰뚫었고.

은빛 궤적만이 허공에 선을 그렸기에.

아무도 잇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끄르륵, 내, 내가 여기서, 이렇게.”

목이 뚫린 채로 무릎 꿇은 폭발 초능 특수종이 비명과 신음 대신 처량한 말을 읊조렸다.

그리고 난 유일하게 남은 눈먼 불멸자에게 물었다.

“죽을래? 얌전히 따라갈래?”

여자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에겐 포로가 생겼다.

* * *

“누굴 잡아?”

남기주는 들려온 소식에 기겁했다.

“이터의 일원이라던데요.”

온신의 말에 남기주가 숨을 헐떡였다. 그러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는다.

“싸웠다고?”

“네.”

“이겼고?”

“네.”

“그 와중에 이터의 예지자를 잡아 왔고?”

“네, 예지자가 걔 별명이에요? 애가 좀 이상하던데.”

이상하기만 하겠냐. 새끼야.

그 이터의 주요 간부 중 하나인데.

“자꾸 저보고 먹으면 강해진다고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터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온신은 묵묵부답으로 질문을 무시했다. 중간에 귀찮아서 혀를 잘라서 데려갈까도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덤비는 추방자야 죽이기도 했지만, 가만히 입만 터는 불멸자의 혀를 자를 순 없었다.

“크리쳐나 식인을 하면 강해진다니, 완전히 미친 새끼들 아닙니까?”

그 미친 새끼들하고 시비 붙어서 격하게 싸우고 온 놈이 할 말이냐.

남기주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긴 했다.

온신이 멀쩡히 돌아왔으니.

적어도 세최특에게 맞아 죽을 일은 없다.

“다행이다. 살아와서.”

“네? 아, 제 걱정 하셨구나.”

걱정만 했겠냐.

할 수만 있다면 정안수를 떠서 기도라도 드릴 판이었다.

“제발, 둘이서만 이계에 간다는 말은 하지 마라.”

며칠 만에 늙어 버린 남기주의 말에 온신은 웃었다.

“어쨌든 공적이죠?”

“원하면 지금 당장 가면을 벗어도 조기 졸업 이상이지.”

과장 하나 없이 그럴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이터의 예지자를 잡아 온 건, 현재 헌터란 이명을 달고 활동하는 특수종의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반향이 크리라.

남기주의 예상이 맞았다.

* * *

“겨우 그린 등급의 땅에서 예지자가 잡혀?”

이터의 왕은 화를 내는 걸 넘어 하얀 분노를 느꼈다.

말 그대로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화가 끌어 올랐다.

“애들 모아라.”

예지자를 잃으면 이터의 활동 반경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잘못하면 본거지가 털릴 수도 있다.

일은 꼬였고 해결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기분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

욕구를 억제하지 못했기에 생겨난 집단이 이터.

왕은 고민하지 않았다. 욕구를 단어로 바꿔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다 죽여 버려. 전쟁이다.”

네 개의 추방자 무리 중 하나.

이터의 왕은 전쟁을 말했다.

“그 가면 새끼들 전부 죽인다.”

대상이 명확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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