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6. 마지막에 믿을 건 결국 네 몸이다.
속칭 바퀴벌레는 뒤를 연신 힐끔거렸다.
‘됐다.’
쫓는 기척은 없었지만.
그는 몰랐다.
머리 위에서 누가 따라온다는 건.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고.
온신의 뇌안은 그만큼 사기적인 초능에 가까웠으니까.
바퀴벌레는 결국 이터의 기지에 들어섰다.
기지 자체는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마이스터처럼 연구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버려도 무방한 곳이었기에 흑색 비단의 제안을 받은 거였다.
수틀리면 단체 이주하면 된다. 이터의 주요 방침이기도 했다. 장소에 연연하지 않는 것.
“왜 혼자냐?”
기지를 지키는 추방자가 묻는다. 왼쪽 눈썹만 꿈틀거리는 게 심기가 편치 않아 보였다.
“다, 당했습니다.”
바퀴벌레는 숨만 고르고 말한 뒤, 있었던 일을 풀어 냈다.
“흑색 비단도 죽었습니다.”
“동료도?”
“네, 전부.”
온신의 싸움을 지켜보고 머리에 빨간 등이 울려 여기까지 튀었던 바퀴벌레의 위기의식이 전이됐다.
‘위험.’
남자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동시에 눈으로 누군가를 찾았다.
얼기설기 만든 판잣집 수준의 기지다.
간신히 머리 위만 가리고 곳곳에 불을 피운 흔적만 있을 뿐.
물론 시간은 꽤 들였기에 어느 정도 형태는 잡아 둔 곳이다. 가시를 제거해 공터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품을 많이 파는 일이니.
그래도 이게 아까울 건 없었다.
정작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니까.
이터의 핵심 방침이었다.
“재닌은?”
“여기요.”
남자가 공터 기지를 가로지르며 묻자, 얼굴이 시커먼 여자가 한쪽 천막에서 나오며 답했다.
까만 피부와 흰자위만 있는 눈, 아프리카계 여자였다.
오밀조밀한 외모다. 누가 봐도 미녀라 할 만했으니, 곧 불멸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재닌은 이레귤러 불멸자였다.
그녀의 삶은 시작부터 독특했다.
불멸자 모친과 일반인 부친을 뒀는데.
부친이 누군지는 모친조차도 몰랐다. 그녀는 문란했고, 낳은 자식을 굳이 데리고 키우고 싶지도 않았다.
재닌은 그렇게 버려졌다.
그것도 도시가 아니라 초원, 자연에.
재닌의 삶은 현대판 정글북에 가까웠다.
짐승과 야생과 삶.
그게 그녀가 가진 유년 시절의 전부였다.
그렇게 12년 동안 방치된 그녀를 우연히 추방자가 발견했다.
추방자는 그녀에게 이터의 사상을 주입했고.
애초에 살려면 먹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당연했기에 재닌은 금세 이터의 사상에 물들었다.
이후 스무 살이 된 재닌은 각성하고 불멸자가 된 것이다.
본래 타고난 기질과 독특한 성장 환경, 두 가지의 합이 재닌을 아주 특별한 불멸자로 만들었다.
“별이 보여.”
별과 달, 하늘과 땅, 그 모든 걸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감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불멸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앞은 볼 수 없었고 대신 새로운 눈을 얻었다.
그녀가 가진 불멸자의 육감과 직감은 일반적인 불멸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앉은 자리에서 반경 1km 이내의 누구라도 감지할 수 있었다.
감지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재닌이 가진 특유의 육감은 그대로 적의 무력 수준까지 짐작하게 했으니.
“고위 레벨의 헌터예요.”
그런 재닌의 말이었다. 무시할 수 없었다.
“몇 명?”
“혼자예요.”
재닌은 우두커니 멈춰서서 허공 너머를 바라봤다.
하얀 흰자위만 보이는 눈은 실제로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네요.”
재닌이 말한다.
“당장 대피한다. 뭐가?”
남자가 재닌의 손목을 잡았다. 이곳에 있는 이터의 숫자는 열.
바퀴벌레까지 포함하면 열하나다.
본래 이곳에 머물던 이들은 바퀴벌레가 데리고 나가서 전부 죽었다.
남은 이들은 재닌의 호위대였다.
재닌을 포함한 이들은 본래 머무는 이계로 가는 중, 잠깐 들른 것뿐이었다.
호위 숫자가 적지 않았다.
재닌이란 인재의 중요함을 알려 주는 척도였다.
그녀는 이터의 생명줄 중 하나였으며.
살육을 일삼는 미친 추방자 무리가 이제껏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였다.
상대가 보기 전 미리 느끼는 예지력에 가까운 육감의 소유자.
당연히도 아끼는 걸 넘어서 잃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가자.”
재닌은 호위대장의 말에 발을 떼면서도 제 육감의 눈을 한쪽으로 향했다.
감각을 갈고 닦아 밀어내면 거리를 넘어서 상대의 내부가 보이곤 했다.
그야말로 신비다.
마법과 주술의 영역이다.
재닌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심안이 상대를 직시하는 순간이다.
재닌은 각성 이후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육감이 절로 미래의 일면을 열어 보인다.
상대의 수준, 이곳에 남은 이터의 수준.
모든 것이 그녀의 뇌리에 남아 있기에 그녀의 뇌는 알아서 모든 걸 예측하고 추측했다.
“도망가요. 다 죽습니다. 위험한 능력자예요.”
보는 것만으로 상대 능력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녀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예지에 가까운 육감과 직감이 미래의 일면을 엿보게 했다.
상대가 덤비면 전부 위험하다. 전신 세포 하나가 경고를 보냈다.
상대의 몸을 세밀하게 쪼개어 보자, 보였다.
단련하고 또 단련해, 숙달을 넘어선 괴물 수준의 몸뚱이가.
재닌의 말투가 더없이 다급했기에 남자는 다시금 아찔함을 느꼈다.
‘누가 온 거지?’
십대 헌터라도 온 걸까?
언라이벌 식스?
모른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건 여실했다. 남자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넷, 공격하라. 위치 알려 줘.”
재닌이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그녀의 손가락이 빽빽한 가시 정글을 가리킨다. 아니, 정확히는 그 위쪽을.
“위.”
이어 말한 그녀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솟았다.
그제야 그들도 봤다.
유유히 허공에 뜬 존재를.
그와 동시다. 이터의 일원 중 하나가 제 특기를 보였다.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는다.
사이오닉 에너지를 뿜고 그걸 통해 분출한 염동력을 압축, 무형의 압력포가 미지의 헌터를 때렸다.
* * *
지켜보고, 돌아가서 보고한다.
정말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 둥둥 떠서 쫓으니, 정말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이 새끼들 방심이 과한데?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기에,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전부 토낄 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난 고민했다.
더 쫓아?
아니면 여기까지 할까?
뇌안과 비행 능력이라면 안 들키고 쫓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추방자가 이계 곳곳에 있다고 하니, 그들이 어떻게 이계를 넘나드는지도 궁금했다.
그걸 알아낸다면 꽤 큰 공적이 아닐까?
그럼 나중에 가면 벗고 내가 유온신이다 하는 순간, 조기 졸업을 넘어서 초유의 공적을 쌓은 학생으로 남지 않을까?
이후 새끼가 쌓은 공적 따위는 저기 우주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공상이 이어졌다.
아니, 망상이었다.
그 순간이다.
누군가 날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다. 묘한 경험이었다.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실제 뇌안이든, 육안이든 얼굴이 보이는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친 것 같았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한순간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었으니.
걸렸다고?
상대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
뇌안의 힘을 보는 것에 국한한다면 불멸자보다 나았다.
그들의 탐색 범위는 작으니까.
하지만 뇌안은 아니다. 멀리 넓게, 보이기만 하면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저 밑에 있는 추방자 무리 중에 자신의 뇌안보다 뛰어난 레이더가 있었다.
웅.
그와 동시에, 뇌안에 사이오닉 에너지가 뭉치는 것도 보였다.
내 코앞이다.
무형의 충격파, 누군가 손을 썼다.
이 거리에서?
이 또한 놀랄 일이었다. 난 오른 주먹을 당겼다가 뻗으며 염동력을 발동, 나 또한 충격파를 보내 상대가 날린 충격파를 상쇄했다.
펑!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난 고도를 낮췄다.
비행 능력은 아직 완벽하게 몸에 익진 않았지만, 다루는 게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신속이 더 다루기 어렵다.
신속은 동체 시력을 비롯해 보고 느끼는 속도까지 높여야 하니까.
그에 반해 이 정도는 쉽다.
부웅 하고 날아가는 사이, 염동 충격파가 여섯 번 더 날아왔고 전부 상쇄했다.
그 능력을 발동한 놈의 표정이 보이는 자리까지 다가가자, 질린 안색으로 노려보는 남자가 보였다.
“안녕.”
고도를 낮춰, 겨우 2m 높이에 뜨자, 상대 무리가 전부 눈에 들어온다. 뇌안이 발동한 채, 난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건넸다.
열하나.
그중 하나는 내가 쫓던 놈이고.
나머지 열 명 중 날 노려본 사람도 있었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친 상대 아닌가.
비록 그게 육안으로 서로 바라보는 개념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너구나.”
난 아무 생각 없이 느낀 대로 말했다. 눈 마주친 상대를 찾았을 뿐인데.
그 순간이다.
“죽여!”
뒤쪽에 처져 있던 남자 하나가 급발진을 했다.
“어? 잠…….”
전원 레벨 6.
만만치 않은 상대라 생각하던 참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물며 죽이라고 외친 남자는 레벨 7의 중턱은 넘어선 것 같은데?
내가 자기들 부모 욕을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러냐고.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미 수차례 실패했으나, 포기를 모르는 무형의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염동력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이들이다.
“크러러르를!”
거기에 넷이 변한다. 변신족이었다. 짐승의 형태로 변하며 풍성한 털을 가진 거대한 개의 머리가 어깨 위로 솟았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난 뇌안을 발동한 채였기에 가장 급한 것부터 해결했다.
신속과 동시다. 왼쪽 뒤로 몸을 틀며 팔꿈치를 뻗었다.
뻑!
“끽!”
비명조차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내 바로 뒤, 기척을 감춘 불멸자가 안면이 함몰된 채, 뒤로 굴렀다.
변신족과 초능 특수종이 시선을 돌린 사이 뒤로 접근하던 불멸자다.
음흉한 놈이었다.
동시에 염동의 압력은 니들 볼을 해치웠을 때처럼 풀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여기는 내 염동력이 지배하는 땅이란 것.
염동 영토 선언.
압력이 사라진다. 이 모든 게 몇 초 이내로 이뤄졌음에도 변신한 네 마리 변신족이 다가와 손톱을 휘두를 시간은 충분했다.
머리 위다.
손톱이 떨어져 내린다. 날카롭고 강력하다. 염동 방패를 꺼낼 타이밍조차 나오지 않았다.
불멸자를 쳐내고 염동력 발동을 억제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근접 공격은 무시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쩡!
놈들의 손톱이 막혔다. 내가 입은 슈트에 새겨진 주술 기어가 발동했으니까.
헥사곤 필드다. 카가가각 하고 손톱이 긁어내긴 했다만.
그리 쉽게 뚫리고 잘릴 방어막은 아니지.
이거 남기주 아저씨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전신에 기어로 도배를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보낸다고 하더니.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시발, 염동이 안 일어나!”
영토 선언에 당한 놈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울상을 지었다. 독특한 재주다.
화를 내며 울상이라니.
난 그놈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겨눴다.
염동탄, 나선.
윙.
소리를 상상하고 이미지를 구현, 모든 걸 발동해서 쏜다.
변신족이 손톱을 휘두르고 물러난 짧은 틈에 한 일이다.
그러니, 제 염동이 사라지고 한탄한 놈은 불만 어린 말을 내뱉자마자 머리에 구멍이 생겼다고 봐도 좋았다.
퍽!
미안한데, 나도 봐주면서 할 만큼 여유가 있진 않아서.
다른 한 명의 염동력자를 향해서는 월광을 날렸다.
핑 하고 날아간 은빛 궤적 앞.
텅!
방어막이 월광을 막았다. 아니, 일반 방어막이 아니었다.
튕겨 나간 월광이 나한테 도로 날아오는데, 내 의지를 벗어나 내 머리통에 구멍을 낼 것 같았다.
신속을 발동한 상태였기에 허리를 숙여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팽하고 월광이 뒤로 날아가자, 다시 변신족이 달려든다.
관수, 손날을 세워 뻗는다.
이 새끼들은 싸울 줄 알았다. 헥사곤 필드를 깨는 법, 힘의 집중이다.
긁고 때릴 게 아니라 뚫는 거다.
그들은 그대로 했고.
난 헥사곤 필드가 벌어 줄 몇 초를 믿고서 월광을 다시 염동력으로 붙잡고.
호흡을 한 번 짧게 들이마신 뒤, 땅을 찼다.
뇌안으로 방어막의 범위를 전부 봤기에 달리며 몸을 바짝 숙였다.
훅 하고 방어막 밑을 지나쳐, 두 번째 염동력자 앞에 도달, 그대로 나이프를 뽑아 턱 밑에 꽂는다. 이 모든 게 한 동작이었다.
사관 학교 내의 끝없는 대련이 동기에게만 도움이 된 건 아니다.
그건 나한테도 도움이 됐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법이었다.
그렇게 배운 것, 염동력자는 생각보다 근접전에 대한 대비가 형편없다는 것.
하물며 지금 난 신속 발동 상태니, 변신족이 아니고서야 반응조차 힘들 것이다.
턱 밑으로 보위 나이프의 칼날이 꽂힌 놈이 입으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넘어간다.
신속 발동 이후다. 날 쫓아온 건 변신족 넷뿐이었다.
열하나 중 셋을 떨구긴 했으니, 이제 여덟이 남은 셈이었다.
영토 선언은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다. 그걸 푸느라고 이 둘을 우선 처리했다.
뒤쪽, 변신족 넷이 짓쳐들어 온다.
푹- 하고 헥사곤 필드를 찔러 구멍을 만든다. 이번에는 필드가 버티지 못하고 뻥 뚫렸다.
한 곳이 뚫리면 전체 방어막의 결집도가 약해져 풀린다.
방어막이 구멍 난 순간,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술래잡기의 시작이었다.
급박한 전투, 숨 고를 여유 없는 격전.
그럼에도 내 머리는 돌아갔다.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았다.
상대가 덤빈 것? 추방자가 덤비는 이유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다.
내가 내 능력, 뇌안을 너무 맹신한 것.
안 걸릴 줄 알았기에, 너무 마음을 놓았다.
그게 문제였다.
새삼 새로이 배운다.
능력을 너무 맹신하지 말 것.
속으로 되뇌는데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였다.
어릴 때 훈련 도중 날 옆에 두고 수없이 하셨던 말이다.
“마지막에 믿을 건 결국 네 몸이다.”
그게 불멸과 혼혈 양대 피를 가장 진하게 이은 분이 할 말이냐고 물었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능력은 부가적인 것.
되새기고 배웠으니, 이제 여기서 살아나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데.
미친 듯이 내달리는 와중.
펑!
내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사이오닉 에너지가 뭉쳤다 싶더니 일어난 폭발.
대응해야 했다. 아니면 뒈질 테니.
순간적으로 염동 방패를 비스듬하게 세워 폭발의 여파를 한쪽으로 흘리고 굴렀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변신족 둘이 떨어져 내렸다.
위기였다.